역사의 숨결/역사(한국)

세종대왕 유적 - 인물이야기

지식창고지기 2009. 6. 2. 22:26

 

4대 세종(世宗)   영릉
   

4대 세종(世宗) 소헌왕후(昭憲王后) 심씨

4대 세종(世宗)

 

생몰년도 : 1397년 ~ 1450년

재위기간 : 1418년 ~ 1450년

 

생애이야기

 

세종은 1397년(태조 6) 조선 3대 임금 태종과 원경왕후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1418년(태종 18) 양녕대군이 폐세자가 됨에 따라 왕세자로 책봉되었으며, 같은 해에 22세의 나이로 조선 4대 임금으로 등극하였다.
세종대왕은 54세로 승하할 때까지 31년 6개월의 재위 기간 동안 많은 업적을 남겼다. 1420년(세종 2) 집현전을 설치하여 유망한 인재를 양성하고, 학문을 진흥하여 유교정치의 기반이 되는 의례와 제도를 정비하였다.
민본 정치를 중요시하였는데, 당대의 가장 큰 업적이라 할 수 있는 훈민정음의 창제 역시 백성들과의 소통을 바라던 세종의 고민이 낳은 산물이었다. 유교 정치와 자주적인 문화의 융성을 통하여 조선시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큰 번영을 가져왔다.

 

일화

 

세종은 재위한 이듬해에 집현전을 만들어 많은 신진 학자들을 양성했다. 왕립 연구기관인 집현전의 학자들은 훈민정음 창제, 과학 기술 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세종의 행보에 힘을 실어 주었다. 따라서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의 각별한 관계에 대한 일화는 지금도 여러 가지가 전해진다.
어느 날 세종이 밤늦도록 책을 읽다가 집현전에 불이 켜져있는 것을 보고 내시로 하여금 누가 밤늦도록 집현전에서 책을 읽고 있는지 보고오라 명하였다. 이에 내시는 신숙주가 홀로 독서하고 있다 아뢰었다. 세종은 그 말을 듣고 친히 집현전에 나가 그 광경을 살폈으나, 신숙주는 세종이 온 것을 모르고 계속 독서에 열중하였다.
세종은 새벽이 되도록 밖에서 글 읽는 소리를 경청하다 신숙주가 고단하여 책을 읽다 꾸벅꾸벅 조는 모습을 보고 추운 날씨에 독서에 열중한 신하에게 자신의 어의를 벗어 덮어주고 돌아왔다.
이튿날 아침 깨어난 신숙주가 자신 등에 씌워진 어의를 보고서야 전날 밤 왕이 행차하신을 알게 되었다. 그는 감복하여 왕의 침전을 향해 절을 하였으며 더욱더 학문연구에 열중하였고 한다.

 

 

소헌왕후(昭憲王后) 심씨

 

생몰년도 : 1395년 ~ 1446년

재위기간 :

 

생애이야기

 

소헌왕후는 청천부원군 심온의 딸로 1395년(태조 4)에 태어났다. 1408년(태종 8)에 충녕대군(훗날 세종)과 가례를 올리고 경숙옹주에 봉해졌다. 1417년(태종 17)에 삼한국대부인에 봉해졌으며, 충녕대군이 1418년(태종 18) 세자에 책봉되자 이와 함께 경빈(敬嬪)에 진봉되었다가 세종의 즉위와 함께 공비가 되었다. 그러나 중전에게 이러한 이름을 붙이는 예가 없다 하여 1432년(세종 14)에 왕비로 승봉(陞封)되었다.
아버지 심온이 역적으로 몰려 한때 왕후의 지위가 위태로웠다. 심온이 영의정에 올라 명나라에 갔을 때의 일이다. 그의 아우 심정이 병조판서 박습에게 군국의 대사를 상왕인 태종이 처리하는데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였는데, 박습이 이를 왕실에 고자질하여 심온과 심정이 모두 사사되었다. 이때 소헌왕후도 폐위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있었으나 세종을 내조한 공이 컸으므로 무사하였다. 슬하에는 8남 2녀를 두었는데, 문종과 세조가 소헌왕후의 소생이다.

 

일화

 

세종과 소헌왕후는 매우 금슬이 좋은 부부였다고 알려져 있다. 사료에 따르면 1436년(세종 18) 10월, 세종은 사정전으로 나아가 소헌왕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칭송했다.
우리 조정 이래로 가법이 지극히 바로 잡혔고, 내 몸에 미쳐서도 중궁의 내조에 힘입었다. 중궁은 매우 성품이 유순하고 언행이 훌륭하여 투기하는 마음이 없었으므로 태종께서 매양 나뭇가지가 늘어져 아래에까지 미치는 덕이 있다고 칭찬하셨다.
1446년(세종 28) 소헌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세종은 매우 슬퍼하며 그녀의 명복을 빌기 위해 수양대군에게 부처님과 그 가족의 일대기를 기록하고 이를 한글로 번역하여 책을 내라고 지시하였다. 이에 수양대군이 김수온 등의 도움을 받아 『석가보』,『법화경』등에서 일부를 발췌하고 이를 한글로 옮겨 『석보상절』을 편찬하였다. 30권에 달하는 방대한 양에 문헌 자체의 내용만으로도 귀중한 가치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