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넬슨과의 숨바꼭질

지식창고지기 2011. 8. 29. 10:11

지난 치기어린 계획, 그러나 완벽한 출항 편에는 프랑스인들치고는 정말 놀라운 기밀 유지로 인해, 영국 해군이 나폴레옹 원정군의 목적지를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5월 20일 프랑스 함대가 툴롱을 출항하는 것까지 보셨습니다. 

여기서 문맥을 유심히 살펴 보시면, 영국 해군이 프랑스 함대의 출항을 전혀 몰랐다는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을 아실 수 있을 겁니다.  4만이 넘는 병력과 300척이 넘는 선박들이 툴롱 항구에 집결하는데, 그걸 모른다면 그거야말로 바보겠지요.  또, 생각해보면 굳이 그 함대의 최종 목적지를 알 필요도 없습니다.  제1차 대불 동맹 전쟁이 한창일 때처럼, 프랑스 항구 앞바다에서 진을 치고 기다리다가, 프랑스 함대가 나오면 나오는 대로 때려 잡으면 그만이니까요.  로열 네이비는 한창 잘 나가던 지휘관 넬슨을 파견하여 프랑스 함대를 요격하도록 했습니다. 




(잉글랜드의 이순신 호레이쇼 넬슨입니다.  C.S. Forester의 명작 Horatio Hornblower의 이름도 물론 넬슨의 first name에서 따온 것입니다.)



(바로 작년, 1797년 7월 22일, 넬슨은 스페인 항구인 Santa Cruz de Tenerife를 공격하다가 적의 머스켓 총탄에 오른팔 뼈가 산산조각 납니다.  한쪽 눈은 그 이전에 이미 잃은 상태였지요.  그는 부러진 팔을 절단하는 수술을 받은 뒤 30분 만에, 다시 갑판에 서서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고 합니다.)



예전, 한 80년대 초반에 우리나라 TV에서 방영된 미드 중에 (한국 제목은 기억 안납니다만) The Persuaders 라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로저 무어가 영국 귀족으로, 그리고 토니 커티스가 미국 백만장자로 나와서, 이 둘이 일종의 첩보원/해결사 노릇을 하는 코믹 활극이었지요.  별로 재미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에피소드 중 하나는 아직도 기억이 나는데, 인텔리 악당들이 뭔가 금괴였나 현금이었나를 강탈한 뒤, 그걸 들고 자가용 비행기로 외국으로 튀려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때 악당 중 하나가 '여러분, 이제 우리는 단 하나의 장벽만 넘으면 성공합니다' 라고 말을 하자, 동료 악당들이 '그게 뭐요' 하고 묻습니다.  그러자 대답이 이거였지요.  "The U.S. Air Force !"  그 말을 들은 동료 악당들의 표정이 가관이었습니다.




(이 드라마 기억하시는 분들이 있나요 ?)



나폴레옹도 마찬가지 상황이었습니다.  모든 준비를 마쳤지만, 이집트에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로열 네이비의 포위망을 뚫어야 했습니다.  대체 나폴레옹은 그에 대해서 어떤 대책이 있었길래 자신만만하게 출항을 했던 것일까요 ?


그 스토리는 사실 1798년 5월 툴롱 항구에서가 아니라, 1783년 파리 베르사이유 궁에서 시작됩니다.  이때는 미국 독립 전쟁을 마무리짓기 위한 파리 조약도 열렸지만, 그 전쟁에서 영국의 뒷다리를 붙잡은 프랑스 및 스페인과의 전쟁도 결말을 맺습니다.  이 베르사이유 조약에서, 영국은 18세기 내내 로열 네이비의 지중해 기지로 애용되던 미노르카(Minorca) 섬을 상실하게 됩니다.  이 섬은 1708년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도중에 최초로 영국이 발을 디딘 이래, 잠깐 스페인에게 다시 빼앗긴 적도 있었지만, 로열 네이비의 지중해 기지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그러다 미국 독립 전쟁의 와중에 프랑스 및 스페인 연합군에게 1782년 이 섬의 영국 군항인 마혼 항구 (Port Mahon)을 다시 한번 함락당했었지요.  결국 이 섬은 1783년 파리 베르사이유 조약에 의해 완전히 스페인 소유가 됩니다.



(이야기는 저 지도에서 A자로 표시된 작은 섬, 미노르카에서 시작됩니다.)



간단히 말해서, 1798년 나폴레옹이 툴롱 항구에서 출항 준비에 여념이 없을 때, 지중해에는 영국 해군 군함이 단 한척도 없었습니다.  적의 항구를 봉쇄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거든요.  레이더와 장거리 포가 없던 시절에, 적 항구를 봉쇄하려면 적 항국 앞바다에 하염없이 떠있어야 했습니다.  문제는 돛으로 운용되는 목조 군함을 비바람과 폭풍에 노출시킨 채 적 항국 앞바다에 장시간 띄워놓으면, 수병들이 지치는 것은 둘째치고 군함의 선체와 삭구의 손상이 심각하다는 점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그렇쟎아도 부족한 군자금에 큰 부담으로 작용했습니다.   당시 영국은 프랑스의 대서양 연안 항구들을 감시하는데만도 힘이 부치는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영국이 지중해에 가지고 있던 자산은 지브랄타 요새 하나 뿐이었는데, 그건 미국 독립 전쟁 때도 스페인군이 매우 열을 올리며 포위 공격 했지만 전혀 끄떡하지 않았던 철옹성이었으므로 별로 지킬 필요가 없었지요.  그래서 당시 지중해에는 근 1년간 영국 함대의 존재가 없었고, 나폴레옹은 바로 이 점 때문에 안심하고 이집트 원정 준비에 착수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Patrick O'Brian의 Master & Commander는 바로 이 미노르카 섬의 마혼 항구를 배경으로 합니다.  이때 마혼 항이 영국 기지였던 이유도, 바로 이 1798년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 당시 지중해 기지가 없어서 대응이 늦었다는 점이 대두되어, 1798년 11월, 영국 해군 덕워쓰 (John Thomas Duckworth) 제독에 의해 스페인 수비대를 공격하여 점령되었던 것입니다.  이 섬은 결국 1802년 아미엥 평화 조약 때 스페인에게 반환됩니다.)




(나폴레옹이 설친 덕택에, 1798년 스페인은 멀쩡하던 미노르카 섬을 또 잃게 됩니다.  윗분은 당시 미노르카 섬 점령 작전을 지휘한 덕워쓰 제독... 정확하게는 제독이 아니라 소함대 지휘관, 즉 Commodore Duckworth 입니다.)



하지만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영국 해군 정보부도 툴롱에 많은 간첩을 유지하고 있었고, 나폴레옹이 뭔가 대규모 원정이 준비 중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로열 네이비의 에이스인 넬슨에게 그 요격 임무를 맡겼던 것이고요.  당시 넬슨이 소속되었던 영국 지중해 함대가 기지로 삼고 있던 곳은 스페인의 대서양 해안에 나있는 타거스(Tagus) 강 하구에 있었습니다.  여기서 명령서를 받은 넬슨은 3척의 전함과 3척의 프리깃함을 이끌고 지브로올터 해협을 지나 지중해로 진입합니다.  이 함대 기동은 거의 1년만에 영국 해군이 지중해에 진입하는 것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이 5월 19일 툴롱 항을 막 나설 무렵, 넬슨의 함대는 툴롱 바로 인근까지 접근한 상태였습니다.  툴롱 항 앞바다에서 나폴레옹을 수장하기에는 하루 이틀 늦을지는 몰라도, 프랑스 함대는 속력이 느린 수송선 300척을 호위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넬슨이 나폴레옹을 따라잡는 것은 시간 문제였습니다.  나폴레옹은 알지 못했지만, 그는 물고기 밥이 될 큰 위험에 처해 있었던 것이었지요.

하지만 나폴레옹은 정말 하늘이 낸 영웅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5월 21일 툴롱 서쪽 인근 바다에 접근하던 넬슨의 함대를 폭풍이 덮칩니다.  이 폭풍으로, 넬슨의 함대는 뿔뿔이 흩어져버렸고, 넬슨이 타고 있던 기함 뱅가드 호 (HMS Vanguard)는 윗돛대(topmast)들을 잃고 거의 코르시카 해안에서 난파될 뻔 합니다.  그 후, 전함들은 사르디니아 섬 인근의 산 피에트로(San Pietro) 섬에 집결했으나, 배수량이 가벼웠던 프리깃함 3척은 끝내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 3척의 프리깃함들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  이때 폭풍을 만나 흩어진 프리깃함들은 피해는 입었지만, 사실 작전은 가능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이 프리깃함들의 함장들은, 이렇게 거센 폭풍 속에서는 3등급함인 넬슨의 기함 HMS 뱅가드도 심각한 피해를 입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나폴레옹 추격을 포기하고 일단 지브랄타 기지로 복귀하여 수리를 해야 할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넬슨과 합류하여 자신들도 정비를 하기 위해 일단 지브랄타로 되돌아갔던 것입니다.




(당시 넬슨의 기함이자, 74문짜리 3급함이었던 HMS 뱅가드입니다.  저도 이런 모형 꼭 한번 만들어보고 싶군요.)



이 프리깃함들의 실종은 넬슨과 나폴레옹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요 ?

먼저, 당시 전함(또는 전열함, ship of the line)과, 프리깃함(frigate)에 대해서 간단히 살펴봐야 합니다만,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한 챕터가 되니까, 여기서는 그냥 간단히 큰 군함과 작은 군함이라고만 하지요.   전함은 최소 2열, 간혹 3열의 포갑판을 장비한 당대의 주력함이었습니다.  당시엔 74문의 대포를 장착한 3등급함이 속도나 방호력, 화력 및 경제성에 있어서 가장 일반적인 전함이었습니다.  배수량으로 따지면 약 1500 톤급 정도입니다.  그에 비해 프리깃함은 1열의 포갑판을 갖춘, 약 28~44문의 포를 장착한 소형 군함이었습니다.  배수량은 약 600톤 정도 생각하시면 됩니다. 영국 해군의 군함 등급에서, 5급과 6급 군함을 프리깃함이라고 분류하지요. 그래도 프리깃함은 3개의 돛대를 갖추고 있고, 또 임시 함장(commander)가 아닌 정규 함장(post captain)이 지휘하는, 제대로 된 군함이었습니다. 




(74문짜리 two-decker의 위용입니다.  이런 정도의 배도 3급함 정도로 분류되었고, 1급함 정도면 three-decker에 120문 정도의 포를 갖추었습니다.)



이 프리깃함은 진짜 함대들끼리 진짜 해전을 벌일 때는 전열(line of battle)에 감히 끼지 못했습니다.  워낙 화력과 방호력이 떨어졌으니까요.  대신 빠른 속력을 이용하여 함대의 눈과 귀가 되어 주었습니다.  어차피 이 프리깃 함들에 레이더가 달려 있는 것도 아니므로, 이들이 있고 없고가 그다지 중요하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했습니다.

당시 영국 해군이 프랑스 해군을 상대하는데 가장 어려웠던 점은 적과의 전투가 아니었습니다.  바로 적함의 발견이었지요.  적을 발견하는 유일한 방법은 돛대 가장 높은 곳에 설치한 망루에 올라가 밤낮으로 살펴보는 것 뿐이었습니다.  당시 74문짜리 3등급 전함의 망루에서 수평선 끝까지 보이는 거리는 대략 최대 15km 정도였다고 합니다.  대략 여의도에서 강남까지의 거리지요 ?  그나마 날씨가 아주 맑고 청명할 때나 그랬지요.  그 넓은 바다에서, 평균 10km/hour의 속도로 항해하며 최대 반경 15km의 원 내부를 탐지 범위로 한다면, 망망대해에서 적과 마주칠 확률은 정말 떨어졌습니다.




(함대가 그냥 뭉쳐서 항진하면 저렇게 오른쪽 노란색 원 정도, 반경 15km 만을 탐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양 옆으로 프리깃함을 거느리고 횡대로 항진하면 반경 25km 정도를 감시할 수 있지요.  지중해 정도의 바다에서라면, 이는 적함 발견 확률을 상당히 크게 높여 줍니다.)



그래서는 적함 발견 확률이 너무 떨어졌기 때문에, 실제로 역사상 거의 모든 해전은 망망대해가 아닌 항구 근처에서 벌어졌습니다.  적함이 도착하리라고 예상되는 항구 또는 해협 앞에서 죽치고 앉아서 기다리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지요.  그 경우에도, 함대는 전투 대형으로 열을 지어 모여 있으면 곤란했습니다.  서로의 깃발 신호를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의 거리로 횡대로 넓게 펼쳐져, 저인망식으로 사방을 훑으며 항해해야 했습니다.  이때 감시망을 길게 좌우로 펼칠 때 배치되는 군함은 필수적으로 프리깃함이어야 했습니다.  속도가 빠른 프리깃함이어야 혹시 적을 발견했을 때, 즉각 그 소식을 알리면서 적을 추격 감시할 수도 있고, 유사시 함대에 빠른 속력으로 복귀할 수도 있었습니다.  당시 범선들은 바람과 해류의 영향에 너무 영향을 받았으므로, 까딱 잘못하면 서로 간의 간격이 너무 벌어져서 자기들끼리의 신호를 주고 받지 못할 수도 있고, 아예 흩어져버릴 수도 있었습니다.   전에 1804년, 스페인 보물선 함대를 둘러싼 모험 편에서 소개해드린 영국 프리깃 함대도 이런 횡대를 지어 스페인 카디즈 항구 앞에서 스페인 보물선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편, 역시 이 사건에 근거해 씌여진 C.S. Forester의 명작 Hornblower and the Hotspur 편에서는 이런 횡대 감시망의 약점을 보여줍니다.  이 소설에서는 감시망 횡대의 한쪽 끝에서 대기하던 주인공 혼블로워의 핫스퍼 호가 까마득한 수평선에서 적함을 발견하지만, 바로 이웃한 프리깃함과의 거리가 너무 멀어지는 바람에 결국 단독으로 적함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이 그려집니다.  (이 소설 매우 재미있습니다.  꼭 읽어보십시요.)




(결국 혼블로워는 그 스페인 보물선들을 나포하여 벼락부자가 될 수 있었을까요 ?)



이런 프리깃함을 모조리 상실해버린 넬슨은 막막한 심정이었습니다.  희소식도 있었습니다.  프랑스군의 전력은 전열함이 13척, 프리깃함이 7척이라 어차피 넬슨의 전함 3척과 프리깃함 3척으로는 상대가 되지 않았었지요.  그런데 그런 그에게 증원 함대가 온 것입니다.  급히 수리를 끝내고 6월 7일 다시 툴롱 앞바다에 찾아간 넬슨에게는 10척의 전함과 1척의 4등급함 (전함이라고 하기엔 좀 작고, 프리깃이라 하기엔 좀 큰, 50문 정도의 포를 장착한 군함)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절실히 필요했던 프리깃함은 증원군 명단에 없었습니다.  이 증원 함대와 함께 도착한 것은 영국 지중해 함대 사령관 세인트 빈센트 (St. Vincent) 백작의 명령서였습니다.  그 내용은 툴롱을 출발한 프랑스 함대를 추격하여 요격하라는 것이었고요.  다만 그 명령서에도 그 프랑스 함대가 어디로 갔는지는 전혀 힌트가 없었습니다.




('Midshipman Hornblower' 속에서 혼블로워가 근무하던 배로 등장하는, 실존했던 영국 해군 프리깃함 HMS Indefatigable 입니다.)



아무리 실마리가 없다고 해도, 가만히 있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지요.  넬슨은 미친놈처럼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보다 어렵다는, '지중해에서 나폴레옹 찾기'에 들어갑니다.  일단 그는 엘바섬에 들러 항구 사람들에게 '나폴레옹 보셨어요 ?'를 물었습니다.  답을 얻지 못한 그는 이번엔 나폴리에 기항하여 같은 질문을 했는데, 여기서는 나폴레옹 소식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프랑스 함대가 시실리를 지나 말타 섬으로 가고 있는 것을 본 선박이 나폴리에 입항했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나폴레옹은 6월 9일 말타에 도착하여, 6월 12일 요한 기사단의 성채인 발레타 Valletta 성을 점령했습니다.)  급박해진 넬슨은 나폴리에서 나폴리 왕국의 국왕 페르디난드에게 프리깃함 몇척을 빌려달라고 했으나, 바로 작년에 나폴레옹의 위엄을 코 앞에서 목격했던 나폴리 왕은 나폴레옹의 보복이 무서워 감히 그러지 못했습니다.  




(말타 섬 요한 기사단의 근거지였던 발레타 성채입니다.)



나폴리를 떠나 말타로 향하던 넬슨은 또 다른 선박을 만나, 나폴레옹의 함대가 5월 16일 말타를 떠나 동쪽으로 갔다는 정보를 얻습니다.  (실제로는 5월 18일에 출항했습니다.)  이때 비로소 넬슨은 나폴레옹의 목적지가 이집트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넬슨은 나폴레옹이 상륙할 것이 확실시되는 알렉산드리아 항구를 향해 전속력으로 항진했습니다.  정황을 종합해보면, 자신들은 나폴레옹에 비해 무려 5일이나 뒤졌던 것입니다.  아무리 프랑스 함대가 수송선을 호위하느라 느리다고는 해도, 5일이라는 시간은 꽤 큰 차이였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겨우 2일이 뒤졌을 뿐이었습니다.  어쨋건 말타에서 알렉산드리아로의 항로는 뻔했고, 그 직선 항로를 따라 전속력으로 달리다보면, 나폴레옹이 알렉산드리아에 상륙하기 전에 그의 함대를 따라 잡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습니다.  만약 나폴레옹의 행선지가 알렉산드리아가 맞다면, 아무리 프리깃함이 없어서 탐지 반경이 작다고 해도, 넬슨은 나폴레옹 함대를 찾을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다시 나폴레옹은 바다 위에서 넬슨과 딱 마주칠 위기에 처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6월 29일, 알렉산드리아 항에 도착한 넬슨의 애꾸눈에 들어온 것은 텅빈 항구의 모습이었습니다.  항구에서 '나폴레옹과 그의 군대가 혹시 여기 상륙하지 않았나요 ?'를 물어보았으나, 돌아온 대답은 '뭔 개소리냐'하는 정도였습니다.  나폴레옹은 이집트에 오지 않은 것이 확실했습니다.  자신의 예상이 틀렸다고 생각한 넬슨은 패닉에 빠집니다.  그는 즉각 알렉산드리아에서 나와 동부 지중해를 미친 듯이 뒤지고 돌아다닙니다.  먼저 크레테 남쪽 해안가를 초계 항해한 뒤, 나폴레옹이 설마 확고한 오토만 영토인 시돈 항이나 아크레 항을 강습 상륙할 것 같지는 않았으므로, 혹시 속았나 싶어 다시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 섬의 시라큐즈 항으로 되돌아오며 초계를 했으나, 역시 나폴레옹의 함대는 흔적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시라큐즈 항에 되돌아 온 것이 7월 19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때 나폴레옹은 이미 순조롭게 알렉산드리아에 상륙한 뒤, 카이로로 진격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2일 뒤인 7월 21일에는 유명한 피라미드 전투가 벌어지지요.  게다가 이때는 이미 나폴레옹이 이집트로 원정을 떠났다는 기사가 실린 프랑스 신문이 영국 본토에 전달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정작 넬슨은 나폴레옹이 대체 어디 있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고, 아무튼 시칠리아 섬 서쪽은 아니라는 생각에, 다시 그리스를 향해 출항을 했습니다.  넬슨에게 나폴레옹이 이집트에 있다는 소식이 포착된 것은 무려 7월 29일이 되어서였습니다.  넬슨은 귀신에 홀린 기분이었겠지요.



(이때 넬슨의 항적을 보면 미친놈이 따로 없습니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것이었을까요 ?  나폴레옹이 스텔스 기술이라도 적용된 군함을 타고 있었던 것일까요 ? 

알고보면 간단합니다.  넬슨에게 레이더가 없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잠깐 레이더가 있으면 어떤 점이 좋은지 생각해보시지요.  사실 초수평선 레이더를 쓰지 않는 이상, 레이더가 있다고 해도 수상 함정을 탐지할 수 있는 거리는 어디까지나 돛대에 매달린 레이더가 직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거리로 제한됩니다.  즉, 사람이 눈으로 보는 것이나, 레이더로 탐지하는 것이나 별 차이가 없는 것이지요.  (물론 하늘 높은 곳에 떠있는 항공기를 레이다로 감시하는 경우는 탐지거리가 중요하지만 당시는 18세기 말이라서 하늘에는 UFO조차 없었습니다.)






(강력한 이지스급 레이더와 사정거리 500km짜리 대함 미사일이 있어도, 미국 항공모함을 공격하기가 쉽지 않은 이유는... 지구가 둥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왜 레이더가 있는 것이 없는 것에 비해 절대적으로 유리할까요 ?  바다 수면 위에 끼는 바다 안개나 흐린 날씨로 인해 제한되는 시계 ?  망루에서 한눈 파는 견시병 ? 다 맞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하루의 반은 밤이라는 사실 때문입니다.  밤이 되면 조명이 없어 깜깜한 바다에서, 눈으로 10여 km 밖의 적함을 찾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레이더는 밤이건 낮이건 적함을 곧장 찾아낼 수 있지요.  그리고 배라는 물건은 낮에만 가는 것이 아니라 밤에도 계속 항진하는 물건이었습니다.

위에서, 나폴레옹의 출발지와 도착지만 알면, 항로는 뻔하기 때문에 그 항로만 전속력으로 추격하면 나폴레옹 함대를 따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넬슨은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은 맞았습니다.  그러나 운이 나빴다고 해야 할지, 넬슨의 계산이 잘못 되었다고 해야 할지, 넬슨 함대는 나폴레옹 함대에 10여 km 근처까지 접근했던 것까지는 좋았습니다만, 그 시간이 하필 깜깜한 밤중이었던 것입니다. 

6월 22일~23일 밤 사이에, 나폴레옹이 탄 기함 로리앙(L'Orient) 호의 해군 장교들은 넬슨의 함대가 서로 간에 신호용으로 쏜 대포 소리를 듣습니다.  인근에 적함이 나타났다고 생각한 프랑스 해군 장교들은 이를 나폴레옹에게 보고하지만, 나폴레옹은 지중해에는 지난 1년간 영국 함대가 출현한 적이 없었다는 기존 정보만을 믿고 이를 무시해버립니다.  나폴레옹은 툴롱에서 출항할 때, 하늘이 도와 넬슨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사실조차 몰랐기 때문에 이런 태평한 판단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넬슨이 자신을 추적하여 바로 가까이까지 왔다는 것을 알았다면, 나폴레옹은 그 특유의 근거없는 자신감 때문에라도 이날 밤 넬슨과 한판 붙어서 육지 뿐만 아니라 바다에서도 무적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려고 했을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나폴레옹의 신화는 거기서 끝장이었겠지요.  아무튼 그날 밤, 나폴레옹이 경보를 울리지 않고 조용히 있었던 덕분에 프랑스 함대는 바로 근처를 항진하던 넬슨에게 들키지 않을 수 있었고, 넬슨은 이 사실을 전혀 모른 채, 그저 나폴레옹이 저 앞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고 잘못 알고 전속력으로 지나쳐 가버렸던 것입니다.




(나폴레옹이 책에서 읽었던 알렉산드리아)



자신들이 호랑이 아가리를 통과했다는 사실도 알지 못한 채, 프랑스 함대는 느릿느릿 순조로운 항해를 계속하여, 마침내 7월 1일, 알렉산드리아 앞바다에 도착합니다.  여기서 먼저 상륙하여 알렉산드리아 현지 정보를 수집한 장교에 의해, 비로소 나폴레옹은 바로 2일 전 넬슨이 이끄는 강력한 영국 함대가 자신들을 찾아 알렉산드리아에 왔다가, 곧장 다시 자신들을 찾아 북쪽 어디론가 떠나갔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정말 억세게 운이 좋은 사나이 아니겠습니까 ?

다음주에는 지중해 항해 동안 나폴레옹 함대의 이모저모에 대해서 살펴보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