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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말은 된다, 그러나 뜻은 아니다

지식창고지기 2011. 11. 21. 06:32

10. 말은 된다, 그러나 뜻은 아니다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시편 23편 5절)



          

시편 23편은 우리 기독교인들이 애송하는 시편이다. 많은 이들이 이것을 암기하고 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1절)라는 구절은, 비록 우리에게 양떼 와 목자가 익숙한 것은 아니지만 이 본문 자체가 난해하지는 않다. 시인은 우리를 양떼에 비유하고 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을 목자에 비유하고 있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2절), 역시, 이해하 기 어려운 데가 없다. 푸른 풀밭에는 양떼의 먹거리가 풍성하다. 풀밭 한 가운데로 내가 흐 르고 있어서 마실 물이 넉넉하다. 그리고 목자가 지켜주니 맹수의 위협이 없을 것이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도다"(3절)라고 하 는 본문에는 조금 어려운 표현이 있다.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한다"는 대목이 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의(義)의 길" 곧 "정도(正道)"로 인도하신다. "자기 이름을 위하 여"라는 말이 어렵다. 어떤 번역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라고 번역하였다. 또 다른 번 역은 이 구절을 "하나님은 당신의 자신의 이름에 진실하신 분"이라고 번역하였다. 하나님께 서 당신의 양떼인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서명(署名)이 보장하는 약 속이라는 말일 것이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 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4절)라고 하는 4절에는 어려운 낱말과 혼돈하기 쉬운 동음이의어(同音異義語)가 있다.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할 때에 여기 "해"는 태양을 가리키는 해가 아니라 사람을 해롭게 하는 그 해(害)를 말하는 것이다. 오존층의 파괴로 태양에 피부를 노출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하여 "해를 두려워하는 것"하고 는 다른 것이다. "지팡이와 막대기"는 동의어반복(同義語反復)이 아니다. 이스라엘 목자들은 두 가지 물건 곧 "짧은 막대기" 하나와 "긴 지팡이" 하나, 이렇게 둘을 가지고 다녔다고 한 다. 짧은 막대기는 들짐승이 접근해 올 때 방어하거나 막는 것이었고, 긴 지팡이는 양떼를 모는 것이었다고 한다. 목자가 이런 막대기와 지팡이를 가지고 지켜주고 인도해 주니, 양떼 는 안전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것을 우리 번역자는, 주께서 지팡이로 인도해 주고, 막대기 로 맹수를 막아 주기 때문에,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몸을 위로한다"는 뜻으로 "나를 안위 (安慰)한다"고 고백한 것 같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5절) 라고 한 이 구절은 이해하기가 어렵다. "원수의 목전에서"라는 말은 "원수 가 보는 앞에서"일 것이다. "상을 베푼다"는 것은 표창(表彰)과 같은 "상(賞)"이 아니고 밥상 과 같은 식탁(食卓)을 말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나를 위하여 잔치를 베풀어주셨다는 말이다.

그런데, 5절 하반절,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개역})라든 가, "기름 부어 내 머리에 발라 주시니, 내 잔이 넘치옵니다"({공동번역})라는 본문은 이해 하기 어렵다. 잘못하면 엉뚱한 뜻으로 오해하기도 쉽다. 여기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다"라는 표현과 "잔이 넘친다"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두 번역문이 두 가지 문제를 공통으로 지니고 있다. 첫째는 "머리에 기름을 바르다"라는 말과 "내 잔이 넘친다"라는 말이 그 문자적 의미 의 차원에서 논리적으로 연결이 안 된다는 점이다. 둘째는 "머리에 기름을 바른다"는 것과 "잔이 넘친다"라고 하는 이 두 표현이 지니고 있는 실제의 뜻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머리에 기름을 바른다는 것은 우리에게는 쉽게 머리 손질을 연상시킨다. 우리에게는 포 마드, 동백기름 등 조발용 기름을 총칭하는 머릿기름이라는 말이 있어서, 머리에 기름을 바 른다라고 하면 으레 머리 손질을 연상한다. 우리 나라 여인들은 일찍부터 동백기름으로 머 리카락을 손질하였고, 남성들은 헤어 로션이나 헤어크림 혹은 반고체(半固體)의 포마드를 머 리털에 발라 광택과 방향(芳香)을 내고 머리를 가지런히 다듬는다. 머리에 기름을 바른다는 것은 우리에게 이처럼 친숙한 표현이다. 그러나 시편 23편 5절에 나오는 이 말은 우리의 이 러한 이해와는 무관한 것이다. 이러한 번역은 히브리어 본문을 글자대로 번역하였을 때, 우 리말이 되기는 하지만, 전혀 다른 뜻을 전달한다는 문제를 제기한다.

5절 전체는 잔치 분위기를 묘사한 것이다. 고대 근동에서는 손님이 집으로 들어올 때, 주인이 입구에 서서 그 손님의 머리에 기름을 발라서 그를 정중하게 맞아들이는 풍속이 있 었다. 때로는 들어오는 손님에게 향수를 뿌려 주기도 했다. 예수께서는 시몬이라는 바리새파 사람의 집에 손님으로 초대받아 가셨을 때, 시몬이 상은 잘 차렸는지 몰라도, 예수님의 머리 에 기름을 발라 드리지 않아, 예수께서 그 사실을 지적하시면서, 시몬을 나무라신 적이 있 다.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눅 7:46)라고 하시면서. 이 때의 영어 번역은 "You did not anoint my head with oil" (NRSV)이다.

이 본문을 오해하는 이들이 더러 있다.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다"는 표현을 메시 아 임직의식(任職儀式)으로 오해하는 것이다. '시편 23편은 다윗이 지은 시다. 다윗이 머리에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것은 메시아로 임명된 것을 말하는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러나 머리에 기름을 부어 메시아의 직무를 줄 경우에는 히브리어 동사 "마샤크"를 쓴다. 여 기에서 "메시아"라는 말이 나왔다. 그런데, 여기 사용된 히브리어는 "다샨"이라는 동사이다. 메시아 임직과는 무관한 것이다. 이 때의 영어 번역은 "You anoint my head with oil (NRSV)"이다. 누가복음서 7장 46절과 시편 23편 5절의 영어 번역을 비교해 볼 때, 전자는 부정문이고, 후자는 긍정문이라는 차이밖에 없다. 누가복음의 것이 메시아 임직의 기름부음 이 아니라 손님 접대와 관계된 것이듯이, 시편 23편 5절의 것도 그러하다.

시편 23편 5절에서 시인은 지금 하나님의 손님이 되어 하나님의 식탁에 초대받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를 정중한 손님으로 맞이하신 것이다. "내 잔이 넘친다"라는 표현은 아 쉬움이 없는 풍성한 접대를 뜻하는 것이다. 이렇게 히브리어의 의미를 되찾아서 읽으므로 써, 하나님에게 식사 초대를 받아 본다던가, 하나님의 집에 귀한 손님으로 정중하게 초대받 아 본 감격을 경험해 본 시인의 감격에 우리도 참여할 수 있다.

아래의 여러 번역을 보면, {표준새번역}의 경우는 문자적 번역 ("내 머리에 기름 부으 시어")과 의미 번역 ("나를 귀한 손님으로 맞아 주시니")을 둘 다 시도한 이중 번역을 보여 주고 있고, {복음성서 (GNB)}는 "나를 영예로운 손님으로 맞아 주셨다"고 번역하였고, {생 활성서(LB)}는 "나를 주님의 손님으로 환영해 주셨다"고 번역하였다.

주께서는, 내 원수들이 보는 앞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내 머리에 기름 부으시어 나를 귀한 손님으로 맞아 주시니, 내 잔이 넘칩니다. ({표준새번역} 시 23:5)

주께서, 제 원수들이 보는 앞에서, 저를 위하여 잔치를 베푸시고, 저를 귀중한 손님으로 환영하여 주시고, 제 잔이 철철 넘게 부어주셨습니다 (You prepared a banquet for me, where all my enemies can see me; you welcome me as an honored guest and fill my cup to the brim. GNB Ps 23:5)

주께서, 제 원수들 앞에서, 저를 위하여 맛있는 음식을 제공해 주십니다. 주께서 저를 손님으로 환영하셨고, 베푸신 복이 넘칩니다. You provide delicious food for me in the presence of my enemies. You have welcomed me as your guest; blessings overflow! (LB Ps 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