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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본문 이해를 돕는 화자(話者)의 구별

지식창고지기 2011. 11. 21. 06:31

9. 본문 이해를 돕는 화자(話者)의 구별

"홍의를 입고 보스라에서 오는 자가 누구뇨" (이사야서 63:1-19)



          

엠비씨 강변 가요제 금상을 받은 "흥보가 기가 막혀"라는 정흥철 작사 작곡의 노래가 있다. 가사를 보니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얼수 헛헛헛 헤야 헛 ... 붐바라 붐바라 붐바라 헤야 아 헤야라 ... 흥보가 기가 막혀 ... 아 이고 성님 동상을 나가라고 하니 어느 곳으로 가리오 이 엄동설한에 어느 곳으로 가면 산 단 말이오 갈 곳이나 일러주오 지리산으로 가오리까 백이숙제 주려죽던 수양산으로 가오 리까 아따 이 놈아 내가 네 갈 곳까지 일러주랴 잔소리 말고 썩 꺼져라이 해지는 겨울 들 녘 스며드는 바람에 초라한 내 몸 하나 둘 곳 어데요 어디로 아 이제 난 어디로 가나 이 제 떠나가는 지금 허이어 굳게 다문 입술 사이로 쉬어진 눈물이 머금어진다 그렇지 무거 워진 가슴을 어루만져 멀어진 기억 속에 담근다. 어슴푸레 저가는 노을 너머로 소리내어 비워본다 어디서부터 잘못됐나 이제 나는 어디로 가나 갈 곳 없는 나를 떠밀면 이제 난 어데로 가나 안으로 들어가며 아이고 여보 마누라 형님이 나가라고 하니 어느 명이라 안 가것소 자식들을 챙겨보오 큰자식아 어디 갔냐 둘째 놈아 이리 오너라 이삿짐을 짊어지고 놀부 앞에다 늘어놓고 형님 나 갈라요

위의 가사 안에는 흥보와 흥보의 아내와 놀부와 이야기꾼 등이 등장한다. "얼수 헛헛헛 헤야 헛 ... 붐바라 붐바라 붐바라 헤야 아 헤야라 ... 흥보가 기가 막혀"는 이야기꾼이 하는 말이고, "아이고 성님 동상을 나가라고 하니 어느 곳으로 가리오"는 흥보가 하는 말이고, "아따 이 놈아 내가 네 갈 곳까지 일러주랴..."는 놀부의 말이고, "큰자식아 어디 갔냐 둘째 놈아 이리 오너라"는 흥보의 아내가 하는 말이고, "이삿짐을 짊어지고 놀부 앞에다 늘어놓 고"는 이야기꾼의 말이다. 비록 우리말을 잘 배워 구사하는 외국인의 경우라 하더라도 현재 형태의 가사 본문을 이해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이 노래의 배경이 되는 흥보와 놀부의 이야기를 알아야만 이 본문을 이해할 수 있다. 둘째, 여 기 노랫말에는 대사(臺詞)만 나올 뿐, 그 대사를 말하는 화자(話者)의 표시가 되어 있지 않 으므로, 흥보와 놀부 이야기를 훤하게 알고 있지 않으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누구의 말 인지도 구별하기가 어렵다. 셋째 남도 방언이 지닌 묘한 뉘앙스는 번역에서는 결코 살리지 못한다.

우리 나라 청중을 위해서는 화자를 밝히지 않고 대사만 늘어놓는 것이 간결할 뿐만 아 니라 노래에 더 긴장감을 준다. 화자를 일일이 밝힌다는 것은 번거로울 뿐만 아니라 오히려 문학적 긴장감을 못살려 노래로서의 흥미를 절감시키고 만다.

이사야서를 비롯하여 예언서에는 화자가 생략되는 시구(詩句)가 많이 나온다. 등장 인물 들이 이미 앞 문맥에서 확연하게 언급되어 있거나 암시되어 있으므로 히브리어본문과 그 역 사적 배경에 대한 별도의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 당대의 독자들에게는 그것이 잘 이해가 될 수 있었다 하더라도, 최초의 독자들과는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현격한 거리에 떨어 져 있는 오늘의 한국인 독자들에게는 화자가 생략된 본문은 이해에 어려움이 있다. 이사야 63장에서 그 대표적인 예를 하나 들어본다.

1에돔에서 오며 홍의를 입고 보스라에서 오는 자가 누구뇨 그 화려한 의복 큰 능력으로 걷는 자가 누구뇨 그는 내니 의를 말하는 자요 구원하기에 능한 자니라 2어찌하여 네 의 복이 붉으며 네 옷이 포도즙틀을 밟는 자 같으뇨 3만민 중에 나와 함께 한 자가 없이 내 가 홀로 포도즙틀을 밟았는데 내가 노함을 인하여 무리를 밟았고 분함을 인하여 짓밟았으 므로 그들의 선혈이 내 옷에 뛰어 내 의복을 다 더렵혔음이니 4이는 내 원수 갚는 날이 내 마음에 있고 내 구속할 해가 왔으나 5내가 본즉 도와주는 자가 없고 붙들어주는 자도 없음으로 이상히 여겨 내 팔이 나를 구원하며 내 분이 나를 붙들었음이라 6내가 노함을 인하여 만민을 밟았으며 내가 분함을 인하여 그들을 취케 하고 그들의 선혈로 땅에 쏟아 지게 하였느니라 7내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모든 자비와 그 찬송을 말하며 그 긍 휼을 따라 그 많은 자비를 따라 이스라엘 집에 베푸신 큰 은총을 말하리라
위의 본문은 {개역} 이사야서 63장 1-7의 인용이다. 이 본문 이해의 어려움은, 내용으 로 보아, 이 안에는 적어도 둘 이상의 화자가 있고 그들이 서로 주고받는 말이 들어 있는 것 같기는 한데, 그들 각자의 말이 어디에서 시작하여, 어디에서 끝나는지를 알기가 어렵다 는 것과 그 화자들이 누구냐 하는 것 등이 모두 이 본문 이해를 어렵게 한다. {개역}은 마 치 한 사람의 자문자답 형식으로 이 본문을 편집하였다.

이러한 불편을 조금이라도 덜어 보려는 뜻에서 {성경전서 표준 새번역}을 비롯한 연대 의 여러 영어 독어 불어 번역들은 화자가 바뀌는 경우마다 본문 편집에서 한 행을 비우는 방법을 사용했다. {아가}나 {욥기}의 경우에는 화자를 본문 안에 괄호를 만들어 밝히기도 하고 소제목으로 화자를 밝히기도 하지만, 예언서들의 경우는 여러 화자를 동시에 등장시켜 대화라든가 화답의 형식으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하는 문학적 기법을 쓰기 때문에, 본문 안에나 난외(欄外)에 화자를 구체적으로 밝히기가 어렵다. 또 그 구체적인 인물이 누구 냐 하는 것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서 다만 하나의 문학적 기법일 뿐이기 때문에 화자 가 구체적으로 누구냐 하는 것은 때로 불필요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다만 분명한 것은 여러 인물이 등장한다는 것과 그들이 서로 대화를 주고받거나 서로 화답하는 형식의 문체가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위에 인용한 "흥보가 기가 막혀"라는 가사의 본문 역시 화자 들의 구체적 표시를 과감하게 생략하는 방법을 사용하였으며 오히려 그렇게 함으로써 긴박 감을 살리고 있다. 예언서에 이러한 형식의 본문이 많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독자들은 이런 점을 고려하여 편집된 현대어 번역을 읽을 때, 편집자가 행(行)을 바꾸었거나 행을 비운 경 우에 혹시 화자의 바뀜이 없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위의 본문을 화자를 고려하여 재편집해 보면 다음과 같다.

소리 1: "에돔에서 오시는 이 분이 누구신가? 붉게 물든 옷을 입고 보스라에서 오시는 이 분은 누구신가?"(1a절)
소리 2: "화려한 옷차림으로 권세 당당하게 걸어오시는 이 분은 누구신가?"(1b절)
소리 3: "그는 바로 나다. 의를 말하는 자요 구원의 권능을 가진 자다."(1c절)
소리 1: "어찌하여 네 옷이 붉으며 어찌하여 포도주틀을 밟는 사람의 옷과 같으냐?"(2절)
소리 3: "나는 혼자서 포도주 틀을 밟듯이 민족들을 짓밟았다... 그들의 피가 내 옷에 튀어 내 옷이 온통 피로 물들었다..."(3-6절)
예언자: "나는 주께서 베풀어주신 변함없는 사랑을 말하고 ..."(7절)
위에서 보듯이 여기 짧은 본문 안에 소리 1,2,3과 예언자, 이렇게 네 등장 인물이 나온 다. 소리 1과 2를 한 인물로 본다고 해도, 여기에 세 인물의 등장이 있다. 그들이 서로 주고 받는 대화의 형식을 빌어 기록된 예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