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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와 십계명

지식창고지기 2011. 11. 30. 18:29

현대와 십계명

우리는 잠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시내산 앞에 서 보십시다 .
두터운 구름이 산을 가리웠고, 천둥 번개가 치며, 온 산이 용광로처럼 연기에 휩싸이고,
감히 한걸음도 시내산을 향하여 내 디딜 수도 없는 엄숙하고 두려운 상황에서 암흑을 뚫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 옵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1)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
(2)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 부터 아들에게로 삼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3)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4)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일을 행할 것이나 제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츅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딸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하여 그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5)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6) 살인하지 말찌니라.
(7) 간음하지 말찌니라.
(8) 도적질하지 말지니라.
(9)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
(10)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말라.
(출애굽기 20:2-17)

이 유명한 하나님의 말씀은 모세가 전했으며, 십계명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나무 잘 알려지다보니 어떤 사람들은 잘못 오해를 하는데,
예를 들면;

첫째로, 이 십계명은 오직 유대인들만을 위하여 주어졌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신명기 5:2-3 말씀에서 이 십계명을 직접 받아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전한 모세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호렙산에서 우리와 언약을 세우셨나니 이 언약은 여호와께서 우리 열조와 세우신 것이 아니요 오늘날 여기 살아 있는 우리 곧 우리와 세우신 것이라”
라고 강조하였습니다.

둘째로, 또 이 십계명은 일시적인 것으로 나중에 다시 새 계명이 주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 이니라” 예레미아 31:31-32

셋째로, 또한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을 무효화 하셨으며, 더 이상 법으로 우리에게 효력을 갖고 있지 않음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성령에 감동함을 받은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습니다.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의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의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늘 하물며 영의 직분이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없어질 것도 영광으로 말미암았은즉 길이 있을 것은 더욱 영광 가운데 있느니라"-고린도후서 3:7,8,11.

바울은
"영의 직분" 곧 신약이 남게되고, 돌에 새긴 십계명은 끝났음을 설명했습니다.
골로새서 2:14에서는 낡은 율법이 십자가에 못밖혔다고 하였으니 신약이나 그리스도의 유언(뜻)을 쓴 사람들의 글이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인하여 효력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율법으로서의 십계명이 끝이 나고, 새로운 그리스도의 율법이 시작되는 것을 알리는 전환점이 되는 것입니다.

넷째로, 구약의 십계명 중에서 아홉 가지의 계명이 신약으로 넘어왔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신약의 계명들은 구약의 계명들과 같이 한곳에 기록되어 있지 않고,
신약의 이곳 저곳에 흩어져 있으므로 선뜻 납득이 가지 않을 수도 있겠으나
이들 각 계명들은 구약의 경우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포괄하고 있고,
개선되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구약의 십계명을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적용하셨고, 이 새로운 그리스도의 계명들이 무엇인지를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오늘날의 우리도 십계명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구약의 십계명이 아닌 신약이 십계명인 것입니다. 구약의 십계명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언급한 처음 네 가지 계명과 인간관계를 취급한 여섯 가지 계명, 이렇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가 있는데, 마태복음 22:36-39 말씀을 볼 것 같으면 유대인들은 이 십계명을 다음과 같이 둘로 나누었습니다.

(1)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2)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I.  "나 외에는 위하는 신들을 네게 있게 말라."
이것은 첫번째 계명으로 순서로서도 그리고 중요성에 있어서도 첫번째입니다.
이 계명을 복종하지 못하면, 다른 계명들을 지키는 의미도 없고 지킬 수도 없습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금송아지를 의지하려했던 민족의 경우는 아주 좋은 예가 됩니다.
이 계명의 열쇠는 "나 외에는"입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 그들이 예배해야 할 대상이었던 것입니다.
신약에서는 예수께서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실 때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라고 하시므로 다시금 강조하신 계명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집착하고 의지하려는 것이 바로 신이다"라고 말합니다.
또는 "생활 속에서 제일 우선이 되는 것이 신이다"라고도 말합니다.
우리가 커다란 나무나 돌로 깎아 만든 우상에게 절하는 습관은 버렸으나 아직도 여호와 하나님과 경쟁이 되는 다른 어떤 신들을 혹시 갖고 있지나 않습니까?
우리가 금송아지에게 절하지는 않으나 황금을 숭배하고 있지나 않습니까?
바알에게 절하지는 않으나 백불 짜리 지폐에는 몸을 굽히고 있지는 않습니까?
꿈이라는 명목으로 자신의 야심이나 허영심 그리고 자만심을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 위에 두고 있지나 않습니까?
아니면 세상 학문에 대한 열정을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지나 않습니까?
삶속에서 인생에 많은 도움이 되는 좋은 것들이 많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들이 하나님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이 첫째 계명은 구약의 십계명으로서가 아니라 신약에서 재 강조된 그리스도인의 중대한 생활 원칙인 것입니다.

II.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라."
이 두번째 계명은 세단계의 금기 사항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첫번째 단계 - "우상을 만들지 말라."
두번째 단계 - "거기에 절하지 말라."
세번째 단계 - "그것을 섬기지 말라."
하나님이나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단 한번도 사진을 찍히신 일이 없습니다.
그리고 어느 조각가의 모델이 되셨던 적도 없으십니다.
그러므로 아무도 하나님이나 예수님의 형상을 만들거나 그릴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모습일 것이라는 상상을 하지 말아야합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은 영이시다"(요4:24) , "하나님은 빛이시다"(요일1:5) , "하나님은 사랑이시다"(요일4:7-11) 라고 했습니다.
우상은 보이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는 그 무엇으로 설명하려 하고, 이해하려 한다면 그 자체가 하나님께 대한 불신앙이요 우상숭배가 되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다"(고후5:7).
이 원칙은 신약에서도 되풀이되어 강조되었습니다.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게서 멀리하라"(요일5:21).
이 두번째 계명 또한 신약에서 되풀이 된 그리스도인의 생활 원칙입니다.

그러나 , 로마 가톨릭에서는 이 두 번째 계명을 삭제하고,
열 번째 계명을 두 개로 나누어 십계명을 맞추어 놓고,
성상 예배를 계속하고 있는 일은 주목할만한 일인 것입니다.
여기 로마 가톨릭에서 가르치고있는 십계명이 있습니다.
일, 하나이신 천주를 흠숭하라.
이, 천주의 이름을 헛되이 부르지 말라.
삼, 주일을 거룩히 지키라.
사, 부모에게 효도하라.
오, 사람을 죽이지 말라.
육, 간음하지 말라.
칠, 도둑질하지 말라.
팔, 거짓 증언을 하지 말라.
구, 남의 아내를 탐내지 말라.
십, 남의 재물을 탐내지 말라.
* 참조 서적- "무엇하는 사람들인가?", p.458, 가톨릭 출판사, 박 도식(신부) 저, 김 수환(추
                  기경)발행,  1964.8.10. 초판발행, 1986.10.25. 26판 발행.

III.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우리의 이름이 우리에게 중요하듯이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께 중요한 것입니다.
"망령되이"라는 말의 "경망 되게 불 경건한 태도"를 뜻합니다.
경망된 욕설과 저주는 그 예가 됩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이름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도 변함이 없어야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마6:9) 라고 기도하도록 가르치셨습니다.
우리는 자칫 잘못하면 하나님의 이름을 가볍게 또는 망령되이 일컬을 수가 있으니
(1) 욕설과 신성모독.
(2) 개인적으로 또는 종파적 이익을 위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멋대로 일컫는 일.
(3) 발음이 비슷한 단어를 사용하여 경망 되고, 거칠게 사용하는 일...등입니다.
사도 바울은 경계하였습니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밖에도 내지 말며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엡4:9).
이 계명은 하나님을 행한 우리의 근본적인 태도와 관련되는 것이며,
신약에서도 되풀이 된 그리스도의 생활 원칙인 것입니다.

IV.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이 네번째 계명은 "제 칠일이 하나님의 안식일"인 것과 그 날은 토요일에 해당된다는 사실을 알게됩니다.
"안식"이라는 말은 휴식을 뜻하므로 그 날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족속과의 관계에서 이 날에는 오직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만을하고 다른 일을 일체 하지 않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신약성서에서는 안식일을 지키라는 말이 한번도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2:14-17 말씀을 볼 것 같으면 아부도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것에 대하여 정죄할 수 없으니 이는 폐해지고 십자가에 못 박혔기 때문이라고 설명이 되어있습니다.
이 네 번째 계명이 구약의 십계명 중에서 유일하게 신약으로 넘어오지 않은 계명입니다.
신약에서는 이 안식일 대신 주의 첫날이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하여 모이는 날입니다.
주의 만찬을 하러 주의 첫날에 모였고(행20:7),
연보를 하러 모였으며(고전16:1-2),
이날은 "주의 날"(계1:10)로 불렸고,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안식이란? 육체의 죽음 후에 있는 것이다 (계14:13, 히브리서 4장 참조). 사도 바울은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지키고"(딤후1:13) 하고 말하였습니다.
주님의 날을 안식일이라고 부르는 죄를 범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네 번째 계명은 신약에서 되풀이되지 않았습니다.

이것으로 네 가지의 하나님과의 관계 법이 끝났습니다.
이제 인간 관계를 취급하는 나머지 여섯가지의 계명을 살펴보면서  이 계명들이 신약에서는 어떻게 확대 적용되었는지에 관하여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V. "네 부모를 공경하라."  
인간관계의 계명들 중에서 첫째되는 계명이 바로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자녀는 부모에게 그 태도를 배우게 됩니다.
효자 부모가 효자 자녀를 만든다는 말이 있듯이, 그 자녀는 그 부모가 그 조부모를 대하는 태도를 보고 배우게 되는 것이니 결국 이 계명은 부모와 자녀, 모두에게 해당되는 교훈이 되는 것입니다. 이 계명은 신약에서 반복되었고, 그 의미가 확대되었습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공경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에베소서 6:1-4)
이 계명은 다음의 세가지 사상을 포함라고 있습니다.
1. 내가 젊은 자녀로서는 부모님에 대한 복종을 의미합니다.
2. 부모님이 늙으셨을 때는 내가 그 분들을 잘 보살펴 드리는 것입니다.
3. 내가 늙었을 때에는 옳게 사는 것이요, 자녀들을 잘 가르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딤전5:8). 이 계명은 신약에서 더 확대되어 강조된 중요한 계명입니다,

VI. "살인하지 말라."
이 계명은 생명을 가장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뜻이 잘 포함되어있습니다.
다른 모든 물건은 빼앗은 후, 나중에라도 되돌려 줄 수가 있는데
사람의 목숨만은 되돌려 주고 싶어도 되돌려 줄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계명은 사형이 포함되어있는지를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모세의 율법에는 20가지의 범죄에 사형이 적용되었습니다;
[출21:12, 출21:14, 출21:15, 출 21:16, 출21:17(레20:9), 출21:29, 출22:18, 출22:19(레20:15-16), 출22:20, 출22:22, 레20:2(레18:21), 레20:4-5, 레20:6, 레20:10, 레20:11, 레20:12, 레20:13, 레20:14, 레21:9, 레20:27].
그러나 신약에서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근본 원칙으로 대체된 것입니다.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 지라도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롬13:9).
이 계명은 신약에서 더욱더 강화되었습니다.
"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치 말라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마5:21-22).
요일 3:15 말씀을 볼것같으면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하셨는데,
한번쯤이라도 다른 사람을 미워해 본 경험이 있다면?
우리는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 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VII. "간음하지 말라."
이계명은 결혼관 확립을 위한 것입니다.
"간음"이란  남녀간의 모든 부정한 관계를 말하는 것이며,
기혼자와 미혼자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이 계명 또한 신약에서 반복되었고
오히려 그 의미가 확대되었습니다 (롬13:9, 마5:27-28, 마19:9).

1. 육체적인 간음 - 구약의 십계명에서 말하는 부정한 육체 관계.

2. 정신적 간음 - 예수께서는 행위뿐만 아니라 음욕을 품는 것까지도 간음으로 간주하셨습니다.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3. 합법화 된 간음 - 한번이나 혹은 그 이상 성서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이혼을 하고 재혼을 하는 행위를 말하는 것으로, 예수께서는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외에 아내를 내어버리고 다른 데 장가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육체적 간음이든, 정신적 간음이든, 합법화 된 간음이든 조심해야 되는 데,
그 이유는 구약의 율법의 십계명 때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새 계명이기 때문입니다.

VIII. "도적질하지 말라."
이 계명은 재산을 지키기 위한 것으로, 구약의 율법에서는 도둑이 훔친 물건은 몇 배로 배상하도록 규정하였습니다.
이 계명은 신약에서도 반복되었고(롬13:9), 오히려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는 데에 꼭 필요한 계명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직접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치지 않더라도 다른 여러 가지 방법으로 도적질을 할 수가 있는데;
1. 거스름돈을 많이 받고서도 되돌려 주지 않는 행위.
2. 거스름돈을 고의로 적게 내어주는 행위.
3. 지나치게 비싼 가격을 붙이는 행위.
4. 사치하는 행위.
5. 임금을 지불하지 않거나, 체불하는 행위.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롬12:7).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엡4:28).
오늘날 신약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훔치지 않는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어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라는 더욱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계명으로 확대된 것입니다.
단순히 훔치지 말라는 구약의 계명으로는 부족합니다.

IX. "거짓 증거하지 말라."
이 계명은 사람의 명예를 존중하기 위한 것입니다.  
명예는 다른 무엇보다도 귀중한 가람의 재산입니다.
지혜 자는 말했습니다.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잠22:1).
로마서13:9 말씀에 이것에 관한 언급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거짓 증거"를 하게 되는 일이 많이 있으니;
1. 법정에서의 위증.  
2. 헛소문을 말하는 것.  
3. 중상모략.  
4. 거짓 진술.
5. 불의에 대한 침묵... 등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말했습니다;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벧전3:10).
이 계명 역시 신약에서 확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적극적으로 진리를 외쳐야 하는 것입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말)하여 그에게까지 자랄지니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엡4:15).
옛 계명은 사람의 입을 닫도록 했으나,
새 계명은 진리를 위하여 입을 열라고 지시하는 것입니다.

X. "탐내지 말라."
이 마지막 계명은 각자의 탐욕을 경계하는 것으로
이 탐심이 여러가지 죄악의 근원이 되는 까닭입니다.
구약에서는 타인의 소유에 대한 불법적인 욕심을 뜻했고,
행위뿐만 아니라 그 마음까지도 규제하였습니다.
이 계명 역시 롬13:9 말씀에서 반복했고, 오늘날까지도 이 탐욕의 문제는 심각합니다.
신약에서는 "탐욕"의 뜻이 물질에 대한 도가 넘치는 사랑의 뜻으로 확대되었습니다.
구약의 십계명에서는 타인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고 그 탐욕의; 대상을 타인의 것으로 한정짓고 있지만 신약에서는 자기 자신의 것에 대하여도 지나침 욕심을 갖지 말도록 훈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유산을 정당하게 나눠 갖게 해 달라고 청했을 때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 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눅12:15) 하셨습니다.
황금에 눈이 어두워져 영원한 생명을 보지 못하는 영혼들을 깨우칠 자가 누구입니까?
예수께서는 또한 탐하는 자도 하나님의 나라에서 유업을 얻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엡5:5, 고전6:9-11).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새로운 계명,
더욱 강조된 계명,  
확대된 계명으로의 "탐내지 말라"는 계명을 받고있는 것입니다.

XI. 구원을 위한 계명.
사실 위의 열가지 계명은 구원의 문제를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 십계명은 다만 죄가 죄인 것을 드러내줄 뿐입니다.
십계명은 죄를 드러내는 역할만 충실히 이행하는 것으로 그 임무를 다 한것입니다.
십계명은 사람의 죄를 드러냈으나 그 죄를 어떻데 몰아 낼 수 있는지는 밝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죄를 몰아내는 방법은 신약에서 그리스도께서 갖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그는 새 언약의 중보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를 속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히9:15).
사라밍 구원을 얻으려면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야합니다.
복음이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고, 장사 되셨고,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고전15:1-4).
그 예수께서는 자신의 그런 복음을 믿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막16:16).  
"선한 도덕적 생활" 만으로는 (사람이 온전히 선할 수는 없음) 구원 될 수 없음을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십계명을 충실히 지킴으로서 (사실은 십계명을 온전히 지키지도 못함) 구원을 받는다는 가르침에 현혹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에게는  11번째의 계명이 있으니
그것은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계명인 것입니다.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 얻을 것이요...."
동시에 우리는 더욱 보강되고, 바뀐 십계명을 갖고있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과 함께 변화산에서 신비한 경험을 하였습니다.
그는 예수께서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대화하시는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흥분하여 말했습니다;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주께서 만일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마17:4).

그때, 모세와 엘리야는 사라지고, 구름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마17:5).

십계명을 전한 모세의 말을 들으라고 하시지 않고,
십계명을 고수하려고 목숨을 걸었던 엘리야의 말을 들으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다만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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