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리아유월절

사마리아유월절

2500여년 전통을 이어온 사마리아의 유대인, 사마리아 유월절

예루살렘에서 나블루스 길을 따라 약 60여 키로을 북쪽으로 달리면 세겜에 다다른다. 에브라임산지와 므낫세 산지의 굽이굽이 난 계곡길은 약 1시간 반의 멋지 드리이브 코스다. 팔레스틴의 여러 마을을 지나야 하는 위험이 있어 유대인들은 최근에 잘 닦인 우회도로를 만들어 놓았다. 벧엘 실로 세겜으로 연결되는 새 도로를 이용하면 한시간이면 갈 수 있지만, 그래도 옛길이 세겜을 여행하는 정감이 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도착한 첫 도시 세겜으로 향하는 길은 그와 함께 이삭 그리고 야곱 여행길에 이용했던 길이라고 생각되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세겜의 그리심산, 이곳에는 유대주의(유대인)로부터 떨어져나간 후 자신들만의 삶의 방식을 고집하며 실로 2,500여년 동안 그 명맥을 유지해온 한 무리의 종족이 있다. 이를 사마리아인 또는 사마리아 유대인이라고 부른다. 사마리아인들은 자신들이야말로 사라진 에브라인과 므낫세의 진짜 후예들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탈무드에서 발견되는 개혁된 유대주의 대신에 참 토라(모세오경)의 믿음을 지키고 있다고 자부한다. 물론 이스라엘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북이스라엘이 앗시리아에 점령되었을 때 앗시리아 군에 의해 생겨난 혼열아의 후손이라고 한다. 

2500년 전통의 사마리아의 유월절, 예수님시대의 유월절을 보기 위해서는 사마리아로...

사마리아 유대인들을 특징짓는 네 개의 요소가 있다. 이스라엘에만 산다. 토라의 기록데로 안식일을 지킨다. 그리심 산에서 매년 양 잡는 유월절 예식을 행한다. 공동체의 순수성을 지킨다.

그 중에서도 사마리아인들을 특징짓는 것이 바로 2,500여 년간 내려오는 전통적인 유월절행사다. 보통 유대인의 유월절 보다 한달 뒤에 있다. 오늘날 유대인에게서는 양을 잡고 피를 뿌리는 성서시대의 유월절은 성전파괴 이후 없어졌다. 그러나 그리심 산 사마리아 유대인들은 모세 시대부터 행했던 양을 잡고 피 뿌리는 유월절 예식을 그대로 하고 있다. 모세오경만을 경전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40여 마리의 양들을 잡아 피를 뿌리고 고기를 구워 급하게 먹는 예식은 이스라엘에서 실감 있게 볼 수 있는 유일한 성경시대 때의 예식이다.

단기 여행자는 한 행사를 위해 팔레스타인 자치 시 깊숙이 들어가 아침부터 자정까지 시간을 할애한 다는 것은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다. 행사 현장에는 이스라엘 거주 외국인들을 비롯해 외교관 및 주재 상사원들 그리고 큰 맘 먹고 찾아 온 방문객들만이 취재진과 함께 북적거린다. 그래서 사마리아 유월절 참관은 더욱 값진 것이다. 보통 유월절 참관은 저녁부터이지만, 사마리아 유대인들은 아침부터 분주하다. 며칠 전부터 준비해 놓은 양을 가져오고 양고기를 구울 서 너 개의 구덩이를 파고 또 땔감을 준비한다. 이어 잡은 양의 피가 흐르는 도랑을 만들고 객을 맞을 준비가 되면 어느새 석양이 물든다.

그리심산 정상, 석양에 붉은 태양이 가라앉을 때 쯤이면 분위기가 활기찬다. 대제사장의 집례에 따라 기도문과 유월절 성경봉독이 낭독된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일시에 양의 목을 베는 순간이다. 대제사장의 명령이 떨어지면 방문객과 취진진들의 초미의 관심 속에

일제의 어린양의 목을 친다. 흰옷의 사마리아 유대인들은 피를 뿌리며 환호를 연발한다. 문설주 대신 흰옷 입은 사마리아 유대인들의 옷깃과 몸에 빨간 피로 물든다. 구원의 표시다. 3200여 년전 죽음의 신이 양의 피를 바른 유대인들의 집을 넘어 애굽의 장자를 친 구원의 표시다.

잡은 양을 거대한 꼬쨍이에 달아 불구덩이에 집어넣고 철망 뚜껑을 덮고 그 위를 다시 흙으로 위를 덮는다. 이때가 밤 열시. 방문객들은 사마리아 유대인들과 독주를 나누기도 하고 남은 축제를 즐긴다. 그리고 서서히 산을 내려가 예루살렘으로 향하기 시작한다. 거의 자정이 되어야 잘 익은 양고기를 꺼내 다시 그들만의 축제가 시작된다. 꺼낸 양고기를 거대한 양동이에 담아 이집 저집에 나르기 시작한다. 자정까지 기다린다 해도 20-30여 마리의 그 많은 양고기 일지라도 이방인에 대한 몫은 없다. 설령 먹다 남은 것이 있더라도 태워버린다. 성경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어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 날로나 물에 삶아서 먹지 말고 그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고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며 아침까지 남은 것은 곧 소화하라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 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로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레2:8-11)

대제사장 중심의 소수민족

사마리아 유대인들의 수는 세겜의 그리심산과 텔아비브 근교 호론 두지역을 합해봐야 600여명이 조금 웃돈다. 5세기 경만해도 120만명에 달했던 것에 비하면 거의 사라진 존재에 불과하다. 그러나 1917년 팔레스틴 땅에서 영국이 터키를 몰아낸 직후 실시된 인구조사에서 106명이었던 것에 비하면 산술적으로 봐도 대 성장을 이룬 것이다. 현재 사마리아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적은 소수민족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기에 사마리아인들에겐 새로 태어나는 생명은 아주 귀한 존재이며 경사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결혼은 종족보존을 위해 가장 큰 행사로 매년 여름에 모아서 한번에 식을 치룬다. 최근 적령기의 남자들이 결혼을 약속해 놓고도 이런저런 이유로 결혼을 연기해와 큰 염려를 주기도 했다. 

사마리아 유대인들의 대제사장은 제사장 가족의 최연장자로서 사마리아인 공동체의 정신적인 지도자이면서 모든 종교생활을 지도한다. 모세오경의 율법과 지난 천년간 대대로 내려오는 율법 해석들 그리고 대제사장 자신의 율법해석을 기준으로 삶의 지침을 준다. 한 예로 몇 년전 쌍둥이가 태어났는데 조산으로 인큐베이터에 있어야만 했다. 사마리아 유대인들도 태어난지 8일만에 할례를 행한다. 할례를 행하지 않으면 구성원으로 인정되지 않는 엄격한 예식이다. 문제는 이 쌍둥이의 할례시점이다. 대제사장은 인큐베이터도 어머니의 뱃속으로 인정한다는 해석을 내렸다. 따라서 인큐베이터에서 나오는 날을 기준으로 8일째 할례를 행했다고 한다.

물론 사마리아인들도 토라(모세오경)을 중요시 여긴다. 그러나 율법주의자들 처럼 삶에 철저하게 적용하지는 않는다. 유대인들처럼 매 안식일에 불을 켜 놓지 않는다. 심지어 추운 겨울에도 연료를 태우지 않는다. 다만 비상시 대비해 가정과 회당에 몇몇의 전기불을 켜 놓을 뿐이다. 뜨거운 여름에 에어컨을 가동시킬 것을 요구하지만 대제사장은 이를 금지시킨다. 시원한 바람이 부는 그리심산에 거주하는 대제사장은 지중해 해안가의 호론에 사는 사마리아인들을 배려하지 않는다. 에어컨 철거 명령이 떨어졌을 때 불평은 하지만 그래도 따른다. 사마리아인들은 유대인들에게 영향을 받았지만, 유대인들은 한 랍비을 중심으로 다른 것은 철저하게 배제하는 여러 공동체가 있지만, 이들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단일한 종교적 권위하에 있다. 만일 대제사장의 권위에 복종하지 않으면 공동체에서 제외되어 이방인이 된다. 지난 30여년간 출교된 수는 약 20여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도둑맞은 사마리아 오경 사본

1995년 3월, 사마리아인들에게 크나큰 슬품이 찾아왔다. 700여년간 내려오던 사마리아 오경 사본을 도둑 맞은 것이다. 사마리아오경은 주전 4세기경 유대분파에서 분리되면서 오직 구약성서의 모세오경만을 경전으로 삼은 사마리아 유대인들의 경전이다. 가장 최초의 것은 9세기 경에 기록된 것이지만 대부분 6-700여년 된 것들이다. 이중 가장 권위있는 것으로 알려진 사마리아 오경은 그리심산 사마리아 회당에 보관되어 있는 것으로 아론 증손의 이름이 붙은 '아비샤'라고 불리는 바로 도둑 맞은 그것이었다. 이는 사마리아인들의 종교적 자부심으로 그 가치는 결코 돈으로 따질 수 없는 보물이었다. 도둑이 오경을 꺼내가기 위해 바닥에 버리고 간 수백년 된 청동케이스도 값으로 치자면 수백 만불에 달한다고 한다.

95년 3월, 관광객으로 보이는 두세명의 남자가 결국은 회당에 보관되어오던 모세오경 2개를 가져간 것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틴 정부에 호소를 하며 잃어버린 오경을 뒤찾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지만 모든 노력은 허사였다. 요르단으로 흘러들어간 사마리아 오경은 7백만불의 돈을 요구했다. 팔레스틴 수반 아라파트가 직접 나서 7백만불에서 2백만불로 협상을 해 놓았지만, 사마리아인들이나 팔레스틴정부나 서로 지불을 거절했다. 그 많은 거금을 지불할 수 도 없지만, 설령 지불한다 해도 그와 유사한일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97년에 마지막으로 1백만불까지 값을 내려서 요구했지만 끝내 지불하지 못하자 이후 행방을 알 수 없다. 아마도 다른 나라로 갔으리라고 추측할 뿐이다.

아라파트에게 서러움 당하다.

사마리이인들의 운명의 성지의 전쟁 역사만큼 파란만장하다. 이스라엘 독립과 더불어 터키의 지배를 받던 사마리아인들은 요르단 손으로 넘어갔다. 이스라엘 유대인 귀환법에 사마리아 유대인들을 받아들임으로 일부 사마리아인들이 시민권을 받아 텔아비브 근처의 호론으로 이주해 왔다. 그러나 요르단은 그리심산과 호론간의 자유로운 왕래를 불허했다. 매년 가장 큰 행사인 그리심산의 사마리아 유월절에도 호론의 사마리아인들의 부분적인 참석만을 허락했다. 그러나 1967년 6일전쟁으로 이스라엘이 세겜을 점령하며서 왕래가 자유로웠고, 이스라엘 유대인들의 따듯한 환대와 지원을 받았다.

그러나 1993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틴간의 오슬로 평화협정은 오히려 사마리아인들에게는 많은 어려움을 예고하고 있었다. 팔레스틴 자치 협정이행으로 세겜(나블루스)이 팔레스틴 행정구역으로 편입되면서 사마리아인들은 아라파트의 통제하에 들어가게되었기 때문이다. 아라파트는 자신의 행정구역으로 편입되는 사마리아인들을 이스라엘 때보다도 더욱 큰 후원을 약속했다. 그리심산에 길을 내어주고, 모든 유월절 예식비(매년 1만불)를 충당하고, 또 대제사장을 비롯해 종교 종사자 및 학교 교사들의 월급을 지불할 것(매년 10만불)을 약속했다. 또한 나블루스 시의원에 2-3명을 할당하고, 또 국가 최고위원에도 위원직을 주겠다고 약속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라파트는 약속을 끝내 이행하지 않았다. 96년에는 유월절이 다가오는데도 행사비용을 지불하지 않아 애를 태웠다. 끝내 이스라엘 유대인들이 보내주어 겨우 행사를 마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들의 보안이 큰 문제였다. 값진 종교 및 문화유산이 되어가는 종교유적지로서 이스라엘의 손이 떠나면서 자신들의 신변 및 세계 유일의 사마리아 오경 사본에 대한 안전이 불안해 진 것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틴의 이양 절차가 진행되는 와중에 결국 95년 3월, 사마리아오경 사본을 도둑 맞은 것이다.

   

이스라엘과 관계는? - 과거에는 배타시 했지만, 현대는 선대

그럼 이스라엘과 사마리아인들간의 관계를 생각해볼 만하다. 역사적으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을 이방인보다도 못한 대우를 했기 때문이다. 유대인으로서 혼혈되었다는 이유로 사마리아인과는 상종도 하지 않았고 이들의 빵은 먹지도 않았다.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의 대화는 당시에도 상황을 잘 설명해 준다.

사마리아 여자가 가로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치 아니 함이러라(요4:9)

현대의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의 관계는 아주 좋다. 1841년 예루살렘의 세파르딤 최고랍비는 사마리아인들을 모세오경을 따르는 유대인의 한 종파로 인정했다. 이스라엘이 건립되면서 국회는 귀한법에 따라 사마리아 유대인들을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과 같은 대우를 한다는 법안이 통과되었다. 특히 전 대통령이었던 이츠하크 벤 제브는 이들에게 남다른 관심을 보이며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다. 이후 1990년까지 이스라엘 내무부는 103명의 사마리아인들에게 이민자로서 완전한 시민의 권한을 주었다. 사마리아인들이 텔아비브 근교 호론시로 이주해간 계기가 된 것이다.

오늘날 유대인 자신들에게는 이미 없어진 양잡는 유월절 예식을 존중하고 이를 보호해 주어왔다. 매년 일만불 가까이되는 40여마리의 양과 행사 경비를 지원해 왔고 방문객들이 안전하게 참석할 수 있도록 길을 안내하고 경비를 강화해 주었다. 이스라엘 언론들은, 유대인들이 극히 배타시 하는, 신약성경 예수님의 비유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인 호칭이 참 이웃의 상징으로 자주 회자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