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후의 범죄는? (오해하기 쉬운 구원관)
평범한 말로 "예수 믿고 중생 된 성도는 죽을 때까지 천국을 소망하며 말씀대로 살다가 주님 부르시면 천국을 간다." 는 정도의 표현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중생과 믿음의 순서를 논하는 대목은 아니라는 전제를 기억하기 바란다.
I. 구원관의 일반적 견해
믿는 사람이면 누구나 이러한 사실이 평범하고도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쉽고도 간단하게 지나칠 구원관에 대하여 성경 전체적으로 확실한 깨달음을 갖지 못하면 성경을 바로 깨닫지도 못할 뿐더러 실제 신앙 생활에서도 많은 의문들을 가지게 되어 신앙에 많은 손해들이 있게 된다.
보통 믿는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이 구원관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는 그 속에서 몇 가지 기독교의 근본교리들을 찾을 수 있다.
"예수 믿고 중생 된 성도는 죽을 때까지 천국을 소망하며 말씀대로 살다가 주님 부르시면 천국 간다." 는 평범한 신앙관을 다음과 같이 약간 분석을 해보자.
1)예수: 예수님만이 유일하신 구주
2)믿고: 처음 구원 받게 되는 것은 오직 "믿음"
3)중생: 죽은 영이 다시 살아남
4)성도: 택한 자는 믿게 되고 믿은 사람은 불변의 천국구원을 가짐
5)죽을 때까지: 말씀대로 사는 수고와 노력은 생전에만
6)천국소망: 세상에서는 본향인 천국 준비로, 나그네로
7)말씀대로 살다가: 말씀으로 산 것만 건설구원이 되어 성도의 천국실력
8)부르시면: 세상 마치는 시간은 인간은 전혀 모름
9)천국간다: 천국 영생
2. 구원관에 관한 교리문제들
믿는 사람이면 이렇게 분석을 해보지 않았을 뿐이지 만일 한마디 한마디를 따져보라면 이렇게 깨닫고 또 알고 있을 일이다. 그러나 여기서 이제 신학의 노선들이 크게 나뉘고 또 신학적으로는 같은 입장이라 해도 실제 신앙생활에서는 달리하는 문제들이 있으니 다음과 같다.
1) 예수님만이 유일하신 구주인가?
91년 가을학기 감리교계통 신학대학 학장, 조직신학 교수 등이 "예수밖에도 구원이 있다" 는 주장을 하여 신학계가 찬반으로 대논쟁을 하였다. 간판 좋은 신학자들은 대개 찬성이었고, 비교적 무명의 신학자들은 반대였다. 그러나 반대하는 측도 예수님만이 구주시라는 교리만 강하게 주장했을 뿐 예수님 믿음 외에는 누구든지 다 지옥 간다는 주장은 선뜻하지 못했다.
요3:16, 행4:12, 16: 31 등의 말씀을 근거하여 예수님만이 유일하신 구주시다.
2) 구원받는 유일한 길은 믿음뿐인가?
믿음, 곧 전적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주장은 주로 칼빈주의 신앙관이며, 믿음 외에 인간노력도 어떤 형태로든지 동존해야 한다는 주장은 천주교와 감리교 등에서 볼 수 있다.
요3:16,갈2:16,롬3:22 등의 말씀을 근거하여 "믿음으로만" 천국 갈 수 있다.
3) 성도의 중생은 단번인가, 반복인가? 또 중생된 것은 무엇인가?
사람의 중생은 영원 불변의 완전 중생인가? 아니면 중생 후 다시 범죄하여 죽을 수 있고, 그후 믿음으로 또 중생하게 되는 반복적인 불완전한 중생인가?
완전중생을 주장하는 측은 믿고 중생받은 사람은 다시 범죄치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중복중생을 주장하는 측은 회개하면 중생, 또 범죄하면 다시 죽음으로 반복하다가 최종 임종시 회개하는 자는 천국이며, 회개를 못하고 죽으면 지옥이라는 것을 주장한다.
그러나 히7:27, 요일3:6-9 등의 말씀을 근거하여 중생은 단번에 중생되고 중생은 그 자체가 완전과 영원이라는 것이 옳다.
4) 믿는 성도의 여생 신앙생활은 무엇이 기준인가?
성경말씀대로 다 지켜 살아야한다는 주장과 신약은 은혜시대라 믿기만 하면 은혜로 구원 얻는다는 주장으로 논쟁이 있다
* 전자(前者)의 주장: 지킬 필요 없는 말씀을 우리에게 왜 기록하고 또 다 지키라 하였겠는가?
*후자(後者)의 주장: 전자의 주장은 율법주의며, 중생한 사람은 믿음으로 구원은 받았고 신앙생활은 본능적으로 하게 된다고 주장
마7:21,약2:14-26 등의 말씀을 근거하여 성도의 심신성화에는 여생 있는 힘 다하여 말씀대로 살도록 노력해야 한다.
본 론:
I. "구원관"의 교리 연구
1.1 범죄와 대속의 성경역사(구원론 약사 略史, 상식)
1)산 자로 창조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 사람은 하나님과 연결되어 하나님으로 피동 되어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사람에게는 주격되는 영이 있고 영의 소유격이 되는 육, 즉 마음과 몸이 있었다. 그래서 산영이 심신을 소유격으로 붙들어 하나님 안에 산 것이 에덴동산의 범죄 이전 사람인 것이다.
2)범죄로 사망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하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아담과 하와는 범죄하자 바로 죽었던가? 범죄 후에도 하나님과 대화를 하고 또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에도 9백여 년을 살았다. 범죄로 죽고 믿음으로 살아나는 생사는 육의 생사를 말함이 아니요 영의 생사를 말함이다.
*범죄 즉시 사람의 영은 죽었고,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것은 육뿐이다. 이제 하나님과 하나되어 심신을 움직이던 영이 죽어버렸음으로 범죄한 사람은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진, 즉 죄로 죽은 사람이 된 것이다. 주격인 영이 죽었으므로 소유격인 심신만이 살아있는 것은 이미 뿌리에서 끊어진 가지가 생명은 끝났고 다만 뿌리에 연결되었을 때 받아 가졌던 그 흔적이요 이것 역시 주격인 영의 사망으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완전히 활동이 멈추게 되는 때가 있으니 그때가 육의 사망, 곧 초상날인 것이다. 범죄한 사람에게 이제는 악령이 죽은 영을 대신해서 영이 움직이던 소유격, 즉, 마음과 몸을 붙들고 육의 사망 때까지 하나님 없는 사망의 생활을 하는 것이다.
3) 예수님 대속
"죄의 값은 사망"이니 이는 하나님의 진리의 법이다. 범죄로 죽은 영을 살리는 것은 죄의 값인 "사망"을 치러야한다. 죄 없는 사람이 없음으로 사람으로서는 다른 사람을 위하여 대신 죽어줄 사람조차 없었고, 죄인을 위한 대속의 한 길은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죄의 값을 대신 내는 것 뿐이었다. 영원전 그리스도 안에서 택한 사람들을 다시 살리시기 위해 예수님이 대속을 완성하신 것이다.
4)믿음으로 얻는 구원: 영의 중생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3:3) 무엇이 죽었기 때문에 다시 살아나야 한다는 말인가? 불신자는 성도와 꼭 같은 마음과 몸을 가졌으나 영이 죽어있는 것이 다른 점이다. 이제 믿음으로 다시 살아나게 되는 것은 "영"이니 중생은 "죽은 영이 다시 살아남"을 말하는 것이다. 이 중생은 "믿음"만으로 단번에 이루어지며, 한번 중생된 영은 완전 중생, 영원 중생, 단번 중생이므로 다시는 범죄치 않고 따라서 다시 죽는 일이 없다. 따라서 믿음으로 영이 중생된 사람은 천국 가는 기본구원은 절대적으로 확정된다.
5)행위로 얻는 구원: 심신의 성화
사람의 주격인 영이 살아나면 이제 이 중생된 영이 아직까지 죄로 죽어있는 자기 심신을 여생이라는 기간을 통하여 살려나가는 것이다. 따라서, 영의 중생과 달리 심신인 육은 중생후 여생의 현실들을 통해서 의로 살면 심신의 요소들이 성화되고, 죄로 살면 그 요소들은 다시는 살아날 수 없는 영원한 사망을 받게 되는 것이다. 심신의 성화구원은 영의 중생처럼 단번해결이 아닌 평생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행위로 수고한 심신의 성화는 천국 가는 성도의 영원실력문제이지 천국 가는 기본구원과는 상관이 없다.
이제 여기서 간단하고도 중요한 교리가 도출된다.
영의 중생은 한번 믿기만 하면 전적 은혜로 단번완성이 되고, 육의 성화는, 말씀대로 사는 행위로 일생 노력하여 이루는 중복 완성이다.
6) 천국 영생, 지옥 영멸
이제 주님 부르시는 때가 되면 중생된 성도는 차별 없는 기본구원으로 천국영생, 불신자는 지옥 영멸로 영원히 시작된다. 성도의 천국영생은 중생된 사람에게는 믿음만으로 해결됐고 다만 심신의 평생 성화의 차이는 건설구원으로서, 이는 기본구원 받아 천국간 성도들마다 각각 다르니 영원한 천국의 영광, 활동, 실력의 영원한 차이가 되는 것이다.
이상 대략 살펴본 6단계의 과정을 다시 한번 요약을 해보면
1) 산 사람이
2) 범죄로 죽었으나
3) 예수님의 대속을 힘입어
4) 영은 믿음으로 단번중생, 육은 일생노력으로 중복성화를 이루고
5) 불신자는 영원한 지옥으로 영원이 결정되나, 성도는 중생으로 천국 구원은 꼭 같고 성화의 차이는 천국의 영원한 차이로 영생한다.
2. 예수님의 대속과 성도의 중생 (기본구원)
2.1 대속과 중생의 성격
죄로 죽은 사람의 영이 다시 중생되는 데에는 예수님의 대속이 필요하다. 이 예수님의 대속이 단번, 영원, 온전(히7:27-10:10 롬6:10,유3)이기 때문에 이 대속을 힘입어 중생하는 영도 단번, 영원, 온전한 중생으로 다시는 죄와 상관이 없게 되고 또한 이 영의 중생은 누구에게나 동등하다.
1)대속과 중생은 영원(히7:23-24)
"저희 제사장된 자의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을 인하여 항상 있지 못함이로되 예수는 영원히 계심으로 그 제사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나니" 구약 제사 제도의 속죄는 그때 뿐이요 예수님의 대속은 영원한 대속이다. 구원을 받았다.
2)대속과 중생은 온전:(히7:25-27)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구약제사제도의 속죄는 불완전한 것이나 예수님의 대속은 자기 자신을 제물로 직접 드려 완전, 불변 대속을 했다. 따라서, 이 완전 대속을 힘입고 하나님께 나아온 사람은 그 영이 완전 중생으로 중생 되는 것이지, 중생 후 또 다른 죄 문제로 다시 죽고 지옥 갈 수 있는 그런 불완전한 중생이 아닌 것이다.
3)대속과 중생은 단번(히7:27)
"저 대제사장들이 . . . . .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저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니라" 예수님의 대속은 당신 자신을 단번에 드려 이룬 단번 대속이다. 따라서, 영도 중생 될 때에 모든 죄 문제를 단번에 해결 받은 것이요 중복 대속이 아니다
4)대속과 중생은 동등(롬3:21)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 즉 대속과 중생은 믿는 성도에게는 누구나 차별 없이 꼭 같으니 이를 기본구원이라 한다.
2.2 대속받아 중생되는 방법: "믿음"
범죄로 인간의 주격인 영은 죽었고, 따라서 인간 스스로는 살아날 수가 없고 객관의 존재가 살려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대속하였으니 이 대속을 "믿기만 하면" 예수님의 이 대속이 믿는 사람의 것이 되도록 하나님이 "믿음으로 얻는 구원의 법칙"을 세우셨으니 영이 중생되는 것은 아무 인간노력이 상관없다. 전적 은혜요, 인간은 거저 만들어진 대속을 저 위한 것으로 믿기만 하면 된다. 이것이 믿는 사람이면 누구나 천국가게 되는 기본구원이다.
그러나 믿는다는 것도 또 하나의 행위일 수 있다. 인정하는 믿음 정도의 마음만이라도 움직여야 중생이 되는가? 실은 그 믿음조차도 성령이 주신 것이요 성령이 믿게 만드니까 믿어지는 마음이 생긴 것이요, 이런 깊은 내부를 모르는 일반적인 사람으로서는 믿는 믿음을 가지니까 중생이 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3. 예수님의 대속과 성도의 성화 (건설구원)
3.1 대속과 성화의 성격
택자를 범죄, 타락에서 구원한 예수님의 대속과 성도의 중생은 죄 문제를 영원히, 온전히, 단번으로 또 누구에게나 동등으로 해결하였다. 그렇다면 중생 후에도 범죄하는 성도의 육, 즉 심신의 범죄문제는 어떻게 되는가?
1) 성도의 성화는 개별적:(심신의 성화는 개별적 )
몸과 마음으로 이루어진 육은 수많은 요소로 이루어진 복합체이다. 따라서 단일체인 영과 달리 심신의 요소들은 해당된 현실에서 개별적으로 대속을 입어 개별적으로 살아나게 된다. 물론, 심신의 개별요소를 살리는 것도 예수님의 영원, 완전, 단번 대속이 살리는 것이므로 살아나는 개별요소도 요소별로는 영원, 완전, 단번에 살아난다.
2) 성도의 성화는 중복적: 심신의 성화는 중복적
영은 중생으로 두 번 다시 범죄 할 수 없으나, 심신은 개별요소를 살리는 일생의 기간 동안 심신 자체가 죄로 살수도 있고, 의로 살수도 있다. 또 심신의 지체가 죄로 살수도 있고, 의로 살수도 있다. 다만 죄로 살고 의로 사는 데에 사용되었던 그 요소들만은 영생과 영멸로 결정되고 지나가는 것이다.
따라서 심신 자체와 소속한 지체들은 얼마나 죄에 쓰여지고, 의에 쓰여졌는가에 따라 죄의 기능이 점점 자랄 수도, 또 의의 기능이 점점 자랄 수 있다. 즉 심신 전체적으로는 일생의 전체 현실을 통하여 중복적으로 성화 되어 나가는 것이다.
3) 성도의 성화는 건설적: 심신의 성화는 건설적 심신의 어떤 개별 요소가 한번 현실에서 대속으로 사는 데 쓰여지면 그 성화된 요소는 대속의 것이 되어져서 그 다음 현실에서 다른 개별요소를 이 의로 사느냐 죄로 사느냐 는 싸움이 생길 때 힘이 된다. 그래서 성화된 요소, 의로 사는 현실이 많아질수록 점점 더 강한 힘으로 죄와 싸울 수 있게 된다. 즉, 개별적 요소들도 전체로도 점점 건설되어 나가기 때문에 "성화" 라고 하는 것이다. 반대로 성도가 한번 현실에서 자기의 심신을 죄로 살게 하면 그때 요소가 죄의 힘을 가진 기능이 되어져 그 다음 현실이 닥칠 때 죄로 살도록 더 큰 힘을 가지고 점점 건설되어 나간다.
3.2 심신 성화의 방법: "행위"
중생 되기 전 사람은 주격인 영이 죽어있음으로 스스로 살아날 수 없었다. 그러나, 객관의 힘 예수님의 대속이 죽은 영을 살려놓은 이상 나머지 심신을 살려내는 성화는 심신의 주격인 영 이 앞장을 서서 스스로 힘을 쓰게 하는 것이 인간을 유기적으로 길러 가시는 하나님의 역사이다. 물론, 산영이라 해도 단독으로는 할 수 없고 주님의 대속을 힘입음으로만 된다. 영은 전적 은혜로 "믿음만으로" 되었으나 이제 산 주격을 가진 사람은 자기 있는 힘 다하여 노력해야 한다. 어느 정도 힘을 쓸 것인가? 앞서 가신 주님처럼 우리를 다 바쳐야 하는 것이다.
4. 기본구원과 건설구원
4.1 구원관의 체계화 필요성:
1) 삼위일체관(三位一體觀)의 확립
성경의 말씀을 전체적으로 체계화하여 깨닫고 있어야 악령의 어떤 미혹이라도 이길 수가 있다. 초대교회가 삼위일체교리를 체계화하기 전까지 300여년 많은 성도와 교회에 큰 혼란이 있었다. 그러나 삼위일체 교리를 체계화한 다음에는 오늘날까지 하나님관에 대한 이단들이 어떤 면으로 미혹을 해도 다 이길 수 있었다.
2) 신인양성일위관(神人兩性一位觀)의 확립
로마박해가 끝난 뒤 세계의 교회가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구주관"을 체계화한 주후 451년 칼세돈공회 때까지 세계의 성도와 교회들에는 큰 혼동이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신하나님과 인사람 양성이 일위"라는 교리를 체계화한 다음에는 오늘날까지 "예수님관"에 관한 어떤 종류의 이단들이 나와도 다 방어할 수 있었다.
3) 구원관 확립의 필요성
중세기 1000여년 세계의 성도와 교회의 혼란은 "선행"으로 천국 간다는 것이었다. 이 한 교리가 무슨 큰 영향을 끼치겠는가? 그러나, 이 교리가 교황 절대권, 교황의 성경해석권과 어우러져 교황이 해석한 대로 명령한 것을 순종하지 않으면 지옥 간다는 선행구원관이 세계의 교인들을 붙들었다. 심지어 성당 짓는데 연보 안하면 지옥 간다는 협박이 그대로 중세기 교인들에게 인식되어져 천국 가기 위해서 죽는 그날까지 교회가 시키는 것을 해야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국구원에 대한 믿음은 확신 없이 흔들렸다. 때문에 의심 없이 구원의 확신을 갖고 이제 건설구원면으로 힘써 나가는 모든 신앙을 다 막아버렸던 것이 바로 이 기본구원관의 탈선에서 비롯된 것이다.
여기서 믿음으로 얻는 구원을 깨달아 담대히 증거한 종교개혁은 그야말로 중세 1천년 악령에게 사로잡힌 천하의 성도를 해방시킨 일이었다. 그러나 이 종교개혁 때 "믿음만으로 얻는 기본구원 "만 확립하고 구원 얻은 성도의 평생 힘쓸 건설구원"에 대한 교리는 기본구원교리투쟁에 묻혀 버렸다. 따라서 구원관 전체가 체계화되지 아니하여 오늘날까지 많은 신앙의 혼동들이 있게 되었다.
요컨데 천주교는 믿음만으로 얻는 천국구원을 행함으로 얻는 줄 알고 혼동하여 이단이 되어 버렸고, 그후 개혁교회는 행함으로 얻는 천국성도들이 평생 힘쓸 건설구원을 믿음 만 가지면 자연히 이루어지는 줄 오해함으로 심신 성화면에 손해를 많이 보게 되었다. 기본 구원 교리를 확립치 않으면 이단이 나오고, 건설구원의 교리를 확립치 않으면 신앙에 많은 손해가 있게되고 또 여러 종류의 구원관에 대한 이단교리를 극복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4.2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에 대한 정리
(1) 구원관 체계화에 관련된 성구 :
1)믿음만으로 얻는 구원: 갈2:16. 롬 3:20, 4:1-3, 요3:16, 행16:31 등으로 대표되는 `성구들에서 믿음만으로 얻는 구원.
2)행위로 얻는 구원: 마7:21, 막10:17-31, 약2:14-26 등에서는 행함으로 얻는 구원
3) 중생 후 범죄 않는 성도: 롬8:1, 요일3:6-9, 5:18에는 하나님께로서 난 자, 중생된 성도는 다시는 죄를 지을 수도 없고 죄와 상관도 없을 것.
4) 중생 후 범죄하는 성도: 계2:5, 요18:27 등 수많은 성경에서 예수믿은 후에도 제자들, 성도들이 범죄했다.
(2) 구원관 해결의 열쇠, 삼분론:
1) 사람은 몸과 마음으로 된 육이 있고, 또 육의 주격인 영이 있다. 살전5:23, 히4:12. 범죄로 단번에 죽었고 단번 중생으로 살아나고 이후 다시는 죄와는 상관없는 것은 영이요, 범죄로 하나님과의 연결은 끊어졌으나 일생이라는 시간을 두고 서서히 죽어가는 것은 육인 몸 과 마음이다. 따라서 중생 된 영은 다시는 범죄치 않고, 죄와는 상관도 없다. 즉 앞에서 분류한 성구들 중에서 1)믿음만으로 얻는 구원과 3) 중생 후 범죄 않는 성구는 영에 대한 것이요, 2) 행위로 얻는 구원과 4) 중생 후 범죄하는 성구는 심신인 육에 대한 것이다.
2) 그러나, 일반적으로 사람의 영에 대한 깨달음이 어두움에 있던 시대에서는 우선 사람이 제일 외부로도 느낄 수 있는 몸과 마음만이 사람의 전부로 알고 구원관의 성구를 대하였으니 모순이 될 수밖에 없다. 사람의 주격, 범죄로 단번에 즉시 죽은 영을 성경에서 찾아 그 다음 구원관을 대하면 기본 구원은 영, 기본구원의 터 위에 평생 건설하기 위하여 힘쓸 건설 구원은 심신에 해당된 것으로 쉽게 밝혀지면서 동시에 구원관에 대한 모순들이 다 풀리게 되는 것이다.
3)이제 삼분론 교리에서 사람의 주격인 영을 찾고, 구원을 성경의 성구들에서 모순관계가 아니라 조화 혹은 단일의 진리로 찾아보면 전 성경 해석에 난해절들이 명확하게 해결이 된다. 마치 삼위일체교리나 신인양성일위교리로서 신관과 구주관에 혼탁했던 교회와 성도들을 확고한 진리위에 세웠던 것과 같은 것이다.
II. 범죄와 중생에 대한 성구연구
1. 열처녀 비유: 마25:1-13
(1)본문소개:
슬기로운 5처녀, 미련한 5처녀의 혼인준비
신랑이 밤중에 오게됨
준비여부에 따라 구원 성패
(2)본문교훈:
평소에 깨어 기름준비하지 못하면 구원얻지 못한다.
(3) 성구연구:
1) 슬기로운 처녀와 미련한 처녀는 누구를 말하는가? 둘 다 성도들이다. 두 종류의 사람들이 다른 것은 인간노력인 "준비"와 "준비 못함"뿐이다. 인간노력의 차이로 성공하고 실패하는 것은 심신성화문제요, 영의 중생, 기본구원문제가 아니다.
2) 그러면, 미련한 처녀들처럼 기름을 준비치 않아도 천국을 간다는 말인가? 천국가는 것은 전적 은혜요, 오직 믿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인간노력, 인간행위로써 천국구원얻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3) 미련한 처녀들처럼 기름준비 없이도 천국을 갈 수 있다면 누가 신앙생활에 열심을 내겠는가? 천국에 가는 것은 믿기만 하면 "믿음"으로 가는 것이나 천국의 영원한 영광, 실력, 활동의 차이가 지극하기 때문에 성도가 힘쓰는 것은 이것 때문이다. 세상 썩을 수십 년의 실력, 돈벌이, 대우, 명예 차이 때문에도 20여년을 밤낮으로 공부하고 기술배우고 온갖 노력을 다하는데 만일 천국에서는 수십년이 아니라 영원히 측량 못할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안다면 어찌 힘쓰지 않겠는가?
4) 미련한 처녀들도 구원얻은 성도라는 것은 어떤 성구를 근거하는가? 중생은 단번, 영원, 완전 중생이므로 개별 사건에 대하여 심신의 성패는 다를지라도 한번 중생된 사람의 천국구원은 변할 수 없다.
1. 처녀성: 성경에는 교회를 신랑되신 주님을 맞이하려고 혼인 준비하는 신부로 비유했다.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자격. 주님의 신부, 주님과 하나될 자격인 처녀는 오직 대속받아 중생된 성도뿐이다.
2. 등: 성도는 하나님과 진리에 암흑인 세상에 불을 밝히는 등의 직분, 직책을 가진 자이다. 이는 중생된 성도만의 직분이다.
3. 등불: 비록 꺼져 가는 불이지만 등불이 비추이고 있었다. 아무리 한 순간, 한번의 빛이라도 중생되지 않은 사람은 가질 수 없다.
4. 주님고대: 불신자는 주님을 알 수도, 고대할 수도 없다. 열처녀가 꼭같이 주님을 고대하는 것은 중생된 성도기 때문이다.
5. 준비부족: 미련한 5처녀의 실패는 준비부족, 곧 행위의 부족일 뿐이다. 중생한 성도가 행위에 부족한 이 면 때문에 지옥간다면, 주님이 명하신 "네 힘 다하고, 뜻 다하고. . . " 여기에 부족하지 않을 성도가 있겠는가? 준비의 차이는 천국의 실력차이일 뿐이요, 천국 들어가는 중생은 준비, 신앙의 차이에는 상관이 없는 것이다.
5) 의문점제기: "그때에", "천국은", "혼인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느니라" 이런 성구를 생각해볼 때 열처녀비유는 재림 할 말세에 천국과 지옥으로 영원히 나뉘게 되는 교훈으로 봐야하지 않겠는가?
1. "그때"는 주님 만나는 때, 주님과 하나되는 때이다. 24장 예수님 재림하는 세상 마지막 때에 대한 설명에서 계속 이어지는 문맥 다음에 "그때에"라고 했으니 이를 재림 때에 있을 일로만 생각하기 쉽다. 여기 24장과 25장의 재림때는 주님이 오시는 때, 즉 성도가 주님을 만나게 되는 때이다. 성도가 주님을 만나는 때, 하나되는 때는
첫째, 역사세계의 마지막이 되는 우주종말이 있고
둘째, 개인의 마지막이 되는 개인종말이 있고
세째, 우주종말, 개인종말이 아니더라도 한 사건 사건적으로 현실을 통하여 주님과 하나되어 통과하느냐가 결정되는 사건종말이 있다. 단순히 우주종말로만 이 24, 25장을 해석한다면 이 성구는 2천년 신약 성도 중에서 재림 당시에 살아있을 성도들에게만 해당되는 성구가 될 것이요, 예수님이 이 말씀으로 직접 가르치신 제자들부터 다른 모든 성도들은 이 말씀과는 무관하게 되니 이는 잘못이다. 이 종말에 대한 말씀이 사건적으로는 주후 70년 예루살렘 함락으로 이루어졌고 오늘도 모든 성도와 교회들에게 현실 현실들을 통하여 주님이 우리를 맞이하기도 하시고 우리를 버려 두시기도 한다.
2. "천국"은 주님과 하나된 곳이다.
10처녀들의 성패가 천국간 성도와 지옥간 불신자를 말하는 큰 근거로 이 비유를 "천국 " 으로 명시한 성구를 드는 사람들이 있다 .
성경의 천국은
첫째: 육체죽음을 통하여 가는 영계의 영원한 천국의 실존세계가 있고
둘째: 주님과 하나된 그때, 그 현실은 세상 속에 있는 천국이다. (눅17:21) 따라서, 열 처녀비유의 "그때에 천국"은 주님만나 하나되는 현실과 개인 혹은 우주종말로 주님 만나 영원히 하나로 사는 천국 두 가지 중에 인간의 노력에 의하여 구원의 성패가 결정된 것을 보아서 이는 현실 속에 이루어지는 심신구원의 천국을 말하는 것이다.
3. "혼인잔치"에 들어간 것은 성도 자체는 우주 종말에, 심신의 요소 요소는 해당된 현실에서 개별적으로 주님과 연결되고 안될 수도 있음을 말한 것이다.
4. "문은 닫힌지라" 하신 것은 구원의 기회는 한번뿐이라는 말씀이다. 불신자가 예수믿고 중생하여 천국갈 수 있는 것은 개인적으로든지, 우주적으로든지 세상 생전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이다. 한번 세상종말이 되면 다시는 중생, 즉 천국 갈 준비는 없다는 말씀이다. 성도의 심신 성화의 기회도 한 전체적으로는 살아 생전만 준비할 수 있는 것이요, 개별 요소들은 그 요소들의 해당된 현실 또는 사건에서 두 번 없는 결정이 된다. 주님과 하나되는 요소가 되느냐 영원히 주님과 상관없는 요소가 되느냐? 문은 닫히고 다시는 기회가 없다.
5.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느니라", 주님이 알지 못한다는 상대가 "너희"들이니 개인이나 우주종말 때는 성도 자체들을 가르침이요, 사건적 종말 각 현실 종말에는 심신의 요소들을 가르침이다. 성도가 어느 현실에서 범죄하였다면 그때 쓰인 심신의 요소는 주님의 대속을 힘입지 않았으니 주님이 모른다 하신 것이다.
6. 성경에 "너희"는 "전인"으로서의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요, 사람을 마음 따로, 몸 따로, 영 따로 떼서 말하면 이미 그 한 요소들만으로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해석은 받을 수도 없다고 한다. 그러나 영이 죽은 심신만의 인간을 육체가 되었다고 창6:에 말씀하신 대로 얼마든지 한 사람 안에 두 사람이 있고 그 하나를 특별히 부각하여 말씀할 수 있는 것이다.
6)구원론으로 다시 종합해 본 10처녀비유
10처녀비유는 주님을 맞이하는 것은 준비로만 된다는 것을 가르친 교훈이다. 노력하여 준비한 사람은 주님을 맞이했고, 노력하지 않고 게을렀던 사람은 주님에게 배척당한 사실을 가르쳤으니 이는 중생한 성도냐, 불신자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중생한 성도로서 자신이 힘씀으로 이룰 심신의 성화면을 말한 성구인 것이다.
2. 부자 청년: 마19:16-30, 막10:17-31(10처녀 비유 참고할 것)
(1)본문소개
.어떤 부자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구원방법을 물었고
.예수님의 대답이
1. "계명들을 지키고
2. 있는 것을 다 팔아
3. 가난한 자에게 주고
4. 그리고 와서 나를 쫓아라
이 말씀을 인하여 그 부자는 근심하며 돌아가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음을 비유로 가르침.
.제자들이 심히 놀라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겠는가" 반문
.사람으로는 할 수 없고 하나님은 할 수 있음.
.금세에 주님과 복음을 위하여 집, 형제, 자매, 어미, 아비, 자식, 전토를 버린 자는 내세 영생받음을 말씀
(2)본문내용
생의 천국구원은 모든 성도들에게 공통된 하나님의 명령인 계명을 지켜야 되고 거기에 덧붙여 자신에게 특별히 해당된 하나님의 개별 명령까지도 다 지켜 행해야 구원됨을 가르침
(3)성구연구
1) 예수님이 가르친 구원의 첫째 법은 "계명들을 지키라"는 것이니,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갈2:16)는 말씀과 모순된다. 영이 중생되는 기본구원을 말함이 아니라 심신의 성화구원을 가르친 말씀이다.
2) 예수님이 가르친 구원의 둘째 법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개별적으로 요구하는 명령까지 다해야 구원을 얻는다 했으므로 전적 은혜로 얻는 중생을 말한 것이 아니라 심신의 성화구원을 가르친 말씀이다.
3) 사람으로는 할 수 없고 하나님으로 할 수 있음을 말한 것은 중생뿐 아니라 심신의 성화구원도 인간 단독으로는 안된다는 말씀이다.
4) 예수님이 다시 말씀하신 대로 내세에 영생을 꼭 받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다 버려야 함을 말했으니 믿음으로만 얻는 중생구원을 말함이 아니라 행함으로 얻는 심신의 각 요소들의 성화구원면을 말한 것이다.
5) "먼저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된 자가 먼저된다"는 말씀으로 부자청년에 때문에 오고간 대화의 마지막을 정리했다. 본문의 "구원", "영생"을 천국가고 지옥가는 면으로만 본다면 나중된 자는 지옥갔다고 결론나게 된다. 구원은 천국과 지옥으로 영원히 나뉘게 되는 것이지 먼저되고 나중되면서 바뀌는 것이 아니니 이는 심신의 성화면을 말씀한 것이다. 심신은 얼마나 많은 현실에서 얼마나 자기의 심신에 요소들을 살렸느냐에 따라서 앞서고 뒤서게 되는 것이다.
3. 거짓 선지자 (마7:15-27)
(1) 본문소개: 두 종류의 신앙
1) 구원실패: 거짓선지자들, 노략질하는 이리, 나쁜 열매를 맺는 못된 나무, 찍혀서 불에 던질 나무, 주여 주여 말로 만 하는 자,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자, 불법을 행한 자,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자
2) 구원성공: 아름다운열매를 맺는 좋은나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자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 반석 위에 지은 사람
(2) 본문교훈: 말로만 주님을 부르고 불법으로 행한 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고, 다만 하나님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간다.
(3) 성구연구
1. 본문은 구원 관련 성구:
:19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21 "주여주여하는 자들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 .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3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2. 본문의 구원근거:
아름다운 열매를 맺었느냐, 나쁜 열매를 맺었느냐 아버지 뜻대로 행했느냐, 불법을 행했느냐 반석 위에 집을 지었느냐, 모래 위에 지었느냐
3. 따라서, 본문의 구원여부는 전적은혜로 믿음으로만 얻는 중생의 기본구원문제가 아니라, 행함으로 심신의 요소들을 살려나가는 성화구원 문제이다.
4.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나은 의(義) 마5:17-20
(1)본문소개
.율법과 선지자를 폐함이 아니라 완전케 하려 오심
.율법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까지 지켜서 서기관, 바리새인의 의보다 나아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음
(2)본문교훈: 율법의 지극히 작은 것까지 다 지켜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음
(3)성구연구
1) 20절에서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이 구원여부는 말씀대로 행했느냐 하는 행위 구원 문제이므로 본문의 구원은 심신의 성화구원을 말한 것이다.
2) 19절에서 "천국구원을 받은 자도 천국에서 작은 자, 큰 자가 있다고 했으니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의는 차별이 없느니라" 하신 롬3:22 말씀과 반대된다. 따라서, 본문은 성도의 심신 성화차이를 말씀하신 성구
3) 계22: 19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이 성구 역시 본문에 연결시켜 볼 때 "거룩한 성"에 참예여부는 심신요소의 성화여부이다.
III. 신앙 실제에 적용
신사참배가 하나의 국가의례라고 제 27회 조선장로교총회는 결의했다. 죄가 되는 줄 알지만 무서워서 찬성한 사람, 물만난 고기처럼 앞장서서 찬성한 사람, 여러 형편이 있었겠지만 신사참배가 6년간 계속되니까 나중에는 완전히 습관이 되어져 양심에 큰 가책도 없이 의례히 하게 되었다. 또한 해방되기 전 많은 종들이 죽었다. 신사참배를 반대하던 종들은 제2계명을 어기고 귀신에게 절하면 지옥간다고 생명을 내놓고 끝까지 반대했다. 신사참배를 앞장서서 하다가 회개할 기회없이 사고를 만나 갑자기 죽은 사람이 있다면 이런 사람의 구원문제는 어떻게 되겠는가? 문제에 실패한 종들이 해방전 2계명에 대한 회개를 못하고 죽었다면 그들은 천국을 갔겠는가, 지옥을 갔겠는가? 주일을 어기고 관광 가다가 차가 굴러 즉사했다. 이 사람은 천국에 가겠는가?
구원관에 대한 오해의 해독. 이것을 바로 잡지 못하면 좌우로 치우치게 된다.
1) 좌로 치우친 주장: 예수믿는 사람의 최종구원은? 죄지으면 영이 죽고 회개하면 다시 영이 살고 평생 중복하다가 마지막 죽을 때 회개한 사람은 천국, 회개 못한 사람은 지옥 간다고 주장하는 설은 대개 성도들의 신앙 실제를 살펴볼 때 하루 생활 중 과연 얼마만큼 말씀대로 살며, 얼마만큼 말씀없이 자기대로 살고 있겠는가? 아마 하루의 1/10 정도만 말씀대로 살아도 평균 이상의 신앙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성도도 자기가 모르고 지은 죄가 자기 일상 생활 속에 얼마나 있었겠는가를 생각해보자 마음으로 스쳐지나간 잘못된 수많은 사소한 죄, 탐심, 시기, 미움, 원망, 음심.....만일 교통사고를 만나 죽은 성도가 있다면 과연 그가 순간적으로 맞은 죽음에서 회개하고 깨끗한 말씀대로의 상태에서 끝이 났겠는가, 아니면 죽음의 두려움, 공포에 순간적으로 휩싸여 죽었겠는가? 그가 죽는 그 순간 직전까지 평범하게 지니고 있던 모르는 사소한 실수, 죄, 잘못들을 과연 그 순간적으로 맞은 죽음에서 전부 회개하고 갔겠는가? 수치로 계산할 바는 아니지만 그럴 확률이 믿는 성도 100명중에 과연 몇이겠는가? 모르고 지은 죄는 지옥 갈 죄가 아닌가? 엡 2:1 - "허물"과 죄로 죽었다고 하신 허물이 바로 구약에는 속건제로 해결할 사망의 죄요, 에베소서에서도 역시 이면을 말씀하신 것이다.
2) 우로 치우친 사람
중생 된 성도는 완전이니 죄 짓도 않고 신앙에 힘쓸 필요가 없다고 한다. '완전주의' 교훈을 가진 교회들과 교인들이 흔히 가지게 되는 신앙 태도들이다. 천주교가 인간 노력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타락했으므로, 종교개혁의 초기에는 '전적은혜'만을 강조하다 보니 인간의 행위, 노력과 구원과는 별개의 것, 상관 없는 것으로 주장하게 되었다.이 주장을 가지는 교회와 교인들은 천국구원의 확신에는 장점을 가졌지만, 천국의 구원을 받아 가진 성도의 남은 여생에 힘써 이룰 심신의 성화구원에서는 안일케 되어 신앙 전진에 큰 해독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3) 많은 교회와 교인들이 현재의 기독교를 외부 조직과 활동면을 보면서 기독교의 전성기라고 서슴없이 부르고 있다. 그러나 성경이 가르치는 구원관을 바로 보지 못하고 기본구원, 건설구원의 양면을 새겨보지 않음으로 현재의 교회와 교인들은 '교훈'면에서 많은 혼동을 가지게 되었다. 구원관의 혼동에서 오는 신앙의 혼란은 결국 그 시대 전체 교회와 교인의 신앙노선 전체의 혼란이 되고 마는 것이니 '구원관'의 각도에서 오늘의 교회를 깊이 새겨보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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