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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리(高句麗)의 명칭 연구

지식창고지기 2009. 7. 4. 15:06

< 고구리(高句麗)의 명칭 연구 >

우리는 주몽이 건국하고 보장왕대 패망한 고구리(高句麗)의 이름을 하나로만 인식하고 있으나 여러 가지 다른 이름으로 불려 졌다는 사실이 사서에 기록되어 있다.

고구리(高句麗)의 발음도 우리는 '고구려'로 발음하고 있으나 사서(삼국지)에서는 '고구리'로 발음 하라고 되어있으며 옥편에서도 '고구리'로 발음된다고 기록하고 있다.

사기권(史記)권 6에서도 리음리(麗音離)라 하여 분명히 '리'로 발음하라고 기록하고 있다.
(삼국지, 고리즉고구려 : 三國志,  離卽高句麗)

사서에서 고구리(高句麗) 이외 다른표현이 있음을 알아야 고구리 역사를 바로 밝힐 수 있는 것이다. (동음이자화 등)


< 사서별로 이름을 검토해 보면 >

- 고구리(高句麗) : 삼국지(三國志)권30, 위서(魏書)권100, 북사(北史)권94, 남사(南史)권79, 김부식 삼국사기

- 구리(句麗)     : 삼국지(三國志)권30, 남사(南史)권79, 김부식 삼국사기잡지(雜志)6

- 하구리(下句麗) : 삼국지(三國志)30

- 고구리(高句麗) : 후한서(後漢書)권85, 송서(宋書)권97, 양서(梁書)권54

- 구리(句驪)     : 후한서(後漢書)85, 양서(梁書)권54, 한서(漢書)권26

- 하구리(下句驪) : 한서(漢書)권99, 양서(梁書)권54

- 고리(高麗)     : 위서, 북사, 구당서, 당서(魏書, 北史, 舊唐書, 唐書)

- 고리(高驪)     : 송서(宋書)

- 고리( 離)     : 삼국지(三國志)

- 고리( 離)     : 양서(梁書)

- 구여(句餘)     : 사기(史記)

- 색리(索離)     : 북사(北史)

- 맥이(貊耳)     : 후한서(後漢書)

- 구루(溝 )     : 삼국지(三國志)

- 요동국(遼東國) : 진서지리지(晉書地理志)

- 평주목(平州牧) : 양서(梁書)권54

위와 같이 여러가지 문자로 기록하고 있는데 문자는 달라도 하나의 국가였음을 염두에 두어야 사서를 바르게 볼 수 있다.

- 구여음자각이부득위 사기(句餘音字各異不得爲 史記)31-4,
- 구루자구려(溝 者句驪) : 구루자구려 삼국지(溝 者句麗 三國志)30-26,
- 구려일명맥이 후한서(句驪一名貊耳 後漢書)85,
- 고리즉고구려 삼국지( 離卽高句驪 三國志)30-24.
- 북옥저일명구루 삼국지(北沃沮一名溝  三國志)


< 해모수(解慕漱)시대의 국호는 무엇인가 ? >


- 고리( 離,  離 ; 高句麗)이다 -


삼국지에는 색리(索離) 또는 탁리( 離)로

삼국유사에는 북부여(北夫餘)

광개토대왕비에는 북부여(北夫餘)

위서(魏書)에서는 부여(夫餘)라고 하였다.

양서(梁書)에서는 고리( 離)

북사(北史)에서는 부여(夫餘)

신구당서(新舊唐書)에 부여(夫餘)라 하였다

북부여, 부여, 고리(北夫餘, 夫餘,  離) 등으로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당서와 김부식 삼국사기에서 '해모수의 부여(夫餘)'는 고구려역사(高句麗歷史)라 하였다
(보장왕 27년(668년) '고려비기일부급구백년(高麗秘記日不及九百年)')

장안(長安) 중심의 두번째 사서인 한서(漢書)권26에
'무제시치조선예맥구려만이(武帝時置朝鮮濊貊句驪蠻夷)'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분명히 구리(句驪)는 해모수의 부여(夫餘)를 이른 말이라 할 수 있다.

고구리역사를 바르게 연구하려면 고구려와 북부여의 여러가지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 모든 기록이 고구려역사로 대입하여 보는 마음자세가 필요하다.

< 소리로 정리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

'고구리'는 高句麗, 高句驪
'구리'는 句麗,句驪
'고리'는 高麗, 高驪,  離, 離
'구루'는 溝 , 溝婁
'맥이'는 貊耳
'구여'는 句餘
'부여'는 扶餘,夫餘
'북부여'는 北夫餘, 北扶餘, 索離,  離
'요동국'은 遼東國, 平州
'遼동대방2국왕' 등

어떤기록으로 되었던 고구리역사가 BC239-AD668년내에 있다면 하나의 고루리로 정립해야 마땅한 것이다.

북부여(北夫餘)를 고리( 離)로 불렀다고 하니 북부여와 고구리(高句麗:高麗)는 모두 고구리 역사인 것이다.


< 고구리(高句麗)는 동이(東夷)의 일부로 기록하고 있다 >


장안(西安)중심의 주(周), 진(秦), 한(漢)을 정통으로 하고 있는 한족의 기록에 의하면 고구리(高句麗)는 동이(東夷)의 일부로 기록하고 있다.

진(晉:265-316)때 편찬된 삼국지(三國志)에 부여, 고구려, 동옥저, 예, 한, 위(왜)인(夫餘, 高句麗, 東沃沮, 濊, 韓,倭人)을 동이(東夷)로써 기록되어 있다.

송(宋:420-479)때 편찬된 후한서(後漢書)에도 부여, 읍루, 고구리, 구리, 동옥저, 예, 한, 위(夫餘,  婁, 高句麗, 句驪, 東沃沮, 濊, 韓, 倭)가 동이(東夷)로써 기록되어 있는데 고구리가 포함되어 있다.

양(梁:양;502-557)때 편찬된 남제서(南齊書)에도 高句麗(고구리),百濟(맥제), 加羅(가라), 倭(위)가 동이(東夷)로써 기록되어 있다.

당(唐:618-907)때 편찬된 양서(梁書)에서 高句驪(고구리). 百濟(맥제), 新羅(신라), 倭(위)가 동이(東夷)로써 기록되어 있다.

후진(後晉:936-946)때 편찬된 구당서(舊唐書)에 高麗(고리), 百濟(맥제), 新羅(신라), 倭國(위국), 일본(日本)이 동이(東夷)로써 기록되어있다.

송(宋:960-1126)때 편찬된 당서(唐書)에 高麗(고리), 百濟(맥제), 新羅(신라), 日本(일본)이 東夷(동이) 로써 기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