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대사에대한 간단한 정리
| 중국의 25사와 <삼국사기> <삼국유사> <환단고기> 그리고 <일본서기>등의 기록을 통해서 한(韓)민족의 강역을 살펴봅니다. 중국의 요녕성 적봉에서 신석기시대 홍산문명(紅山文明)이 발견되었고 산동반도에서는 대문구(大汶口)와 용산(龍山)이 홍산문명의 영향을 받았는데 이 적봉지역이 한(韓)민족 최초의 활동 중심지였으며 홍산문명은 황하(앙소)문명 보다 먼저 고대국가를 형성합니다. BC. 5000년에 요녕의 적봉지역에 홍산문명이 있었는데 <환단고기>에 나오는 환인씨(桓因氏)의 환국(桓國)시대로 BC.6000~BC.5000년대의 흥륭와(興隆窪)와 사해(査海)를 기반으로 세워졌고 요녕과 내몽고지역에 넓게 전개됩니다. 그리고 소주산(小朱山)으로 연결되고 하가점(夏家店)에서 발전되어 중국 황하유역과 산동반도에 영향을 미치는데 산동반도의 대문구(大汶口)는 하남서쪽의 앙소문화와 대비되는 용산(龍山)문화로 전개됩니다. <사기> [치우는 신농의 나라가 쇠하자 군사를 일으켜 회,대(淮,垈)를 점령하고 탁록싸움에서 기(箕)의 땅을 차지하고 탁록에 성을 쌓고 회,대에 자리 잡았다] 용산문화는 환국시대의 치우씨(蚩尤氏)가 헌원과의 탁록(琢鹿)싸움에서 승리하고 기(箕), 회(淮), 대(垈)의 땅을 차지하고 청구국(靑邱國)을 세우면서 동이, 구려, 묘족의 왕이 됩니다. 이 때의 회.대가 현재의 황하지역의 태안(泰安)에 있는 태산(太山)과 회수(淮水)지역이며 기(箕)는 하북에서 산동지역으로 치우가 최초로 금속기를 사용한 갈석산(碣石山)이라는 지명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이렇게 치우는 대문구를 이어서 용산문화를 일으키고 나라를 세웠는데 고조선(古朝鮮)앞에 이미 청구국이라는 환국의 고대국가가 있었던 것입니다. <사기> 皇覽曰蚩尤 吊平郡壽張縣咸陽城 高七丈民常十月祀之 有赤旗出如匹縫帛民名爲蚩尤旗 [치우의 묘는 동평군 수장현 함양에 있으며 높이는 7장이고 10월에 백성들이 제사를 지내며 붉은 기운이 비단같이 솟아올라 사람들이 치우기라고 부른다] 환국시대의 14대왕 치우환인의 묘가 동평군 수장현에서 발견되었고 또 환국시대의 5대왕 복희씨(伏羲氏)의 묘가 산동에 있고 형산시(衡山市)에는 신농씨(神農氏)의 묘가 있고 광동 광주(廣州)에는 3대 가륵단제의 후손인 번우씨(番雩氏)가 세운 번우국이 지금의 번우시로 있습니다. 동이족(東夷族)이 바이칼지역에서 몽골초원을 지나서 적봉시 흥륭와에서 살았고 6000년전에 적봉지역에서 홍산고국을 세운것이 환국시대로 흥륭와 - 홍산 - 하가점으로 발전하여 고조선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환웅, 복희, 신농, 치우, 헌원, 소호, 고신과 요, 순, 우가 모두 한(韓)민족의 선조였음을 고대사서들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북신, 대문구-용산으로 이어지는 [산동문화]와 흥륭와, 홍산, 하가점으로 이어지는 [요령문화]가 모두 한(韓)민족의 문화입니다. 계속해서 환국에서 나온 환인씨(桓因氏)의 후손인 왕검(王儉)이 환국의 홍산문명을 계승하여 하가점에서 고조선(古朝鮮)을 건국하고 우하량(牛河梁)지역을 중심으로 대륙의 요녕과 하북, 산동, 만주, 한반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고 삼한으로 분리하여 통치합니다. 마한(馬韓)은 산동지역이며 진한(辰韓)은 만주지역이고 번한(番韓)은 하북지역 입니다. <삼국지>'위지동이전' 及往 二千載有檀君王儉 立都阿斯達 開國號朝鮮 與高同時 [지금부터 2000년전에 왕검단군이 아사달에 도읍하고 나라를 세워 조선이라 하고 이는 고와 같은 시기이다] *고- 요나라 왕 고조선은 BC. 2333년에 우하량지역을 기점으로 건국했으며 단군 47대 2096년을 지속하는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국에 존재했던 은(殷)왕조는 고조선이 세운 나라이고 주(周)나라는 고조선을 상국으로 받들던 속국이었는데 그러한 기록이 중국의 사서에 나옵니다. <고사변> 玄鳥是殷人東夷的時先神 [현조는 은나라 사람과 동이의 조상신이다] 東夷與殷人同族 基神話赤同源 [동이는 은나라 사람과 동족이며 그 신화 역시 뿌리가 같다] 중국이 자신들의 나라라고 주장하는 은왕조도 고조선과 같은 한(韓)민족이라는 기록이며 하(夏)왕조가 은왕조에 망한 것이 고조선에 의한 것이라는 기록도 있는데 소개합니다. <후한서>'동이전' 傑爲暴虐 諸夷內侵 [걸왕이 포학함을 일삼자 여러 동이들이 쳐들어 왔다] <후한서>'서강전' 傑之亂 犬夷入居濱岐之間 [걸왕이 어지럽자 견이가 빈과 기사이에 들어와 점거하였다] 하왕조의 걸왕(傑王)시대에 고조선세력이 중국대륙의 빈(濱), 기(岐)지역으로 지금의 회(淮), 대(垈)지역을 장악하고 은왕조를 세웠으며 은왕조는 동이족 즉, 고조선세력이라는 겁니다. 회.대지역은 환국시대의 용산문화(龍山文化)로 치우의 청구국이 있던 지역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막강하던 고조선도 21대 소태단제시대에 소태가 서우여에게 왕권을 주려했으나 색불루가 반대하고 스스로 단제에 등극합니다. 그러자 서우여가 군사를 동원하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22대 색불루단제가 서우여를 회유하여 번한(番韓)의 왕으로 임명합니다. 고조선이 내분을 보이자 고조선의 속국 주나라도 힘이 약해지면서 대륙이 춘추전국시대로 분열되었고 중국의 춘추시대 나라들과 고조선의 전쟁도 발생합니다. <사기>'제태공세가' 二十三年 山戎代燕 燕告急於齊 齊桓公救燕代山戎 至干孤竹而還 [제나라 환공23년 산융이 연을 정벌하자 연은 제에 위급을 알렸고 제 환공은 연을 구원하기 위해 산융을 고죽까지 이른 후 돌아왔다] 여기서 산융(山戎)은 고조선이고 제(齊)나라가 승리하지 못한 것을 감추고 있는데 다시 말하면 돌아왔다는 내용입니다. 즉, 승리하지 못하고 패했다는 기록입니다. 이런 기록이 <사기>에 또 나오는데 '조선전'에 쓰지 않고 '흉노전'에 실어 놓았습니다. <사기>'흉노전' 基後四十四年 而山戎代燕 燕告急干齊 齊桓公北代山戎 山戎走 [44년 뒤 산융이 연을 치자 연은 제에 위급을 알리고 제 환공이 북의 산융을 치자 산융이 돌아갔다] 전국시대의 7국이 각기 왕이라 하고 주왕실은 명목상으로만 존재하게 되어 대륙의 속국들이 고조선의 통제를 벗어나고 고조선의 속국 흉노(匈奴)도 세력이 강성해지기 시작합니다. 그 후에 고조선의 국력은 더욱 약화되어 BC. 238년 47대 고열가단제는 해모수에게 제위를 내놓고 해모수는 백악에서 북부여(北夫餘)를 건국합니다. 이렇게 고조선은 멸망하고 북부여가 고조선을 대신하고 고구려와 백제라는 고대국가의 모태가 됩니다. *한(韓)민족의 고구려와 백제가 성장하고 화하족의 한(漢)나라가 시작됨 북부여에서 고주몽이 독립하여 고구려를 세웠다는 기록이 사서에 나오며 옛 환국시대와 고조선의 강역을 지배하는 대제국으로 성장합니다. <위서> <주서> <북사> <수서> 高句麗 基先出夫餘 [고구려의 선조는 부여에서 나왔다] 광개토대왕 비문(碑文) 惟始祖鄒牟王之創基他 出自北夫餘 天帝之子母河伯女郞 [옛날에 시조 추모왕이 나라를 세웠는데 북부여에서 나왔다 그는 천제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하백의 딸이다] 고구려는 처음 도읍지를 홀본(忽本)지역에 정하는데 유리왕대에 국내성(國內城)으로 천도를 하고 후에 평양(平壤)에 도읍을 정하고 요녕지역 그리고 변한(番韓)의 땅과 진한(辰韓)의 땅을 차지하고 한반도의 옥저(沃沮)와 최리의 낙랑국(樂浪國)을 병합하며 성장합니다. 그리고 고구려의 유리왕대에 부여의 해부루의 손자로 비류와 온조가 고구려에서 분리하여 대륙의 발해만 지역에 백제를 건국하지만 고구려의 압박으로 산동반도로 이동하여 마한(馬韓)세력을 붕괴시키고 한반도의 서부지역까지 장악하면서 성장합니다. 한(韓)민족의 고대국가 역사(요약) 고구려와 백제 그리고 가야의 성장과 서라벌신라와 일본의 독립을 알아 봅니다. 환국시대의 고신씨(高辛氏)가 선조인 고구려(高句麗)는 고조선(古朝鮮)을 계승한 북부여에서 분파되어 대륙의 하북과 산서로 남진을 하면서 한(漢)나라와 수(隋)나라등과 충돌하고 태원(太原)과 부성(阜城)지역 그리고 창해(滄海)의 기(箕)지역을 영토로 확장한다. 계속해서 한반도의 낙랑국(樂浪國)과 서라벌신라(徐那伐新羅)를 평정하고 서라벌지역에 간(干)을 임명하는데 서라벌신라의 마립간(摩笠干)이 그런 직책으로 보인다. 그리고 고조선에서 나온 부여씨(夫餘氏)의 백제(百濟)는 발해만에 도읍을 정하나 고구려의 공격에 후퇴하여 치우의 청구국(淸丘國)이 있던 산동을 중심으로 강소와 안휘, 하남으로 진출하고 한반도로 이동해서 한반도 남부의 가야(加倻)를 합병한다. 백제는 가야를 합병하여 막강한 해상세력이 되면서 대륙의 영토와 한반도 서남부와 동남부 그리고 대마도, 북규수(九州)를 영토로 하고 멀리 대만과 필리핀지역에도 담로를 설치하는 해상제국으로 성장한다. 다시 말하면 고조선이 쇠약해지면서 춘추전국시대의 혼란기로 분열 되었던 중국대륙의 동이족이 고구려와 백제를 중심으로 뭉치게 되고 환국시대와 고조선의 영토를 다시 회복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가야(加倻)는 환국에서 분리된 소호씨(少皓氏)세력의 나라로 대륙의 절강(청양)에서 한반도 남부(영산강, 김해)로 이주하는데 백제에 밀려서 일본열도의 구주로 이동하여 대화왕조를 세운다. *고조선의 속국- 명이변한(소호씨)으로 봄 이렇게 고구려와 백제는 중국대륙과 한반도에서 성장하다가 백제와 고구려가 충돌하는데 이유는 백제의 속국인 전연(前燕)이 고구려를 공격해 고국원왕이 살해되기 때문이다. 그 후 고구려는 광개토왕이라는 정복군주가 등장하면서 한반도(서라벌)와 중국대륙의 하북과 산서지역에서 다툼이 가속화 된다 389년에 백제의 아신왕과 일본열도 가야의 대화왕조(응신)사이에 동맹이 성립되고 고구려와 전쟁을 한다. 그러나 고구려는 광개토왕시대로서 백제+가야(倭)연합과 고구려가 여러번 격돌했으나 백제+가야(倭)연합이 연전 연패한 사실들이 광개토대왕비문에 남아 있다. 그리고 고구려의 속국이던 혁세씨(赫世氏)의 서라벌신라는 백제의 전연세력과 고구려의 전쟁에서 전연의 패잔병이 서라벌신라로 들어가 서라벌신라를 장악하고 고구려로부터 독립을 한다. *진흥왕시기에 간(干)에서 왕(王)으로 호칭변경 그 후 서라벌신라는 중국의 당(唐)나라와 연합하여 백제를 공격하고 백제의 패망으로 한반도와 강소, 절강지역을 차지한다. 그러나 다른지역은 당에게 빼앗기고 일본열도는 백제의 패망 후 백제와 가야의 유민들이 일본(日本)이라는 국호로 독립을 한다. 고구려도 수, 당과 전쟁으로 국력이 약화되고 왕권체제(연개소문의 권력장악)가 붕괴되면서 대조영의 발해(渤海)가 성립되고 요동지역의 소고구려를 합병하고 산동지역에서 제(齊)나라를 세운 이정기를 도와서 당나라와 대치한다. 이렇게 고구려와 백제가 붕괴되면서 한(韓)민족은 환국시대부터 지배하던 대륙영토(태행산맥 동쪽과 양자강 이북)의 상당부분을 화하족에게 상실하고 대륙의 요녕, 산동과 절강, 강소지역과 만주 그리고 한반도를 영토로 하는 발해와 후기신라의 남북국시대가 된다. 여기서 중국의 25사와 <삼국사기> <삼국유사>를 통해서 중국대륙에 기록 된 지명을 살펴보면 한(韓)민족의 활동무대가 확실하게 중국대륙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당서> 鴨綠水 歷國內城西 [압록수가 국내성의 서쪽을 지나간다] 당시의 압록이라 부르던 곳은 현재의 요녕에 있는 요하(遼河)이며 그 동쪽에 고구려의 국내성이 있다는 겁니다. <양서> 句驢地方可二千里 中有遼山 遼水所出 [고구려의 땅은 2천리에 이르고 나라 가운데 요산이 있으며 이 요산에서 요수가 나온다] <남사> 中有遼山 遼水所出 [나라 중심에 요산이 있으니 요수가 나오는 곳이다] 요수(遼水)는 지금의 난하(泥河)를 말하는 것으로 고구려의 중심지역이 요수이고 그러므로 요서지역도 고구려의 영토라는 것이 됩니다. <삼국사기>'고구려본기' 三年春二月 築遼西十城 以備漢兵 [3년 봄 2월 요서에 10성을 쌓아 한나라 군사에 대비했다] 고구려가 쌓았다는 10성인 안시(安市), 석성(石城), 건안(建安), 건흥(建興), 요동(遼東), 풍성(豊城), 한성(韓城), 택성(澤城)이 있는데 안시성과 요동성, 건안성은 난하의 동쪽에 있고 나머지는 난하의 서쪽지역에 있고 석성이 현재도 있습니다. <삼국사기>'태조왕' 遺將襲取遼東西安平 [장수를 보내 요동의 서안평을 습격하여 빼앗았다] 서안평의 위치를 요의 동쪽과 석성의 북쪽으로 보고 있습니다. 또 중국의 사서에는 고구려와 한(漢)나라의 전쟁기록이 있으며 고구려가 평정한 북평(北平), 태원(太原)이 대륙에 현존하고 있고 고구려와 당(唐)나라의 전쟁지명으로 용도(甬道), 은산(銀山), 신성(新城), 고대인성(古代人城)등이 있습니다. <송서> 高驪略有遼東 百濟略有遼西 百濟所治 謂之晉平郡晉平縣 [고려는 요동에 있었으며 백제는 요서에 있었고 백제가 다스린 곳은 진평군 진평현이라 불렀다] <양서> <남사> 百濟亦據有遼西晋平二郡地矣 今柳城北平之間 自治百濟郡 [백제라고 하는 나라는 진나라때 고구려가 이미 요동을 점령하고 백제 역시 요서진평의 2군을 점령하고 백제군이다] 고구려가 하북을 점령(덕흥리-유주자사의 묘)하여 강역으로 차지하고 있었고 백제도 역시 요서지역에 진평2군을 설치했는데 현재에도 진성(晉城)과 고평(高平)이라는 지명이 있습니다. <삼국사기>'개로왕' [성을 쌓고 하수를 따라 제방을 쌓아 사성(蛇城)의 동에서 숭산(崇山)의 북쪽까지 이르렀다] 백제의 개로왕대에 한성(漢城)을 축조한 기록이며 한성의 주변지명에 하수(河水), 숭산(崇山)이 있다는 것이고 지금도 대륙에는 숭산과 황하(하수)가 있습니다. 백제의 황산 동명 항성 독산 동성의 동쪽에 태산이 있으며 청하,평원의 남쪽에 태산이 있고 박산,제성의 서쪽에 태산이 있다. 백마하의 북쪽에 태산이 있으니 백제의 영역에 태산이 있었다 기록에서 같이 태산(太山) 주변지명을 말하는 것으로 지금도 중국에는 하북에 평원(平原)이 있고 산동에 황산(黃山), 동명(東明), 백마하(白馬河), 제성(諸城)이 있으며 하남에 항성(項城)이 있습니다. 그리고 안휘에 독산(獨山), 동성(洞城)이 있고 백제의 태산(太山)은 지금의 중국대륙의 태산(泰山)입니다. 백제가 패망하는 의자왕시대의 지명으로는 <삼국사기>에 평원, 황산, 동명, 주류성(周留城), 백마하(白馬河), 항성, 동성, 잠산(岑山), 독산, 덕안(德安)이 있고 <남제서>에는 동성왕이 중국대륙에 7태수를 두고 다스린 기록이 나오는데 7태수의 지명은 광양(廣陽), 대방(大防), 광릉(廣陵), 청하(淸河), 성양(城陽)입니다. 지금도 대륙의 안휘에 주류성, 잠산, 덕안이 있고 하북에 광양과 청하가 산동에는 성양이 있으며 강소에 광릉이 있고 백제가 패망하고 당나라가 백제의 영토에 도독부를 설치한 지명이 동명과 덕안입니다. 종합하여 살펴보면 한(韓)민족의 환국(桓國- 청구국)이 적봉의 홍산지역에 있었고 환국의 청구국을 이어서 고조선(古朝鮮)은 하가점, 우하량지역을 기반으로 하북으로 확대되었으며 고구려(高句麗)가 요녕과 하북지역을 계승하여 건국했고 고구려에서 분리 독립한 백제(百濟)는 치우의 청구국(淸丘國)인 산동지역을 기반으로 대륙을 장악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중국의 화하족은 하남성 서화(西華)의 서쪽 낙양(落陽)을 중심으로 산악지역에 있었고 중국대륙의 태행산맥의 동쪽과 양자강 이북지역의 대륙의 평야지역은 환국시대의 청구국과 고조선 그리고 고구려와 백제라는 한(韓)민족의 영토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강단학계는 독재정권(60~70년대)의 차별정치에 편승해서 신라는 부각하고 정작 중국대륙을 지배했던 백제(지역적 차별)와 고구려(이념적 편향)는 도외시 하고 가야와 발해는 폐기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한(韓)민족의 역사를 한반도로 축소하고 있습니다. 참조 http://www.baedalguk.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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