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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토지설

지식창고지기 2009. 7. 4. 18:49

구토지설

 

이 이야기는 동물 우화로도 나오지만 신라 선덕여왕 때 김춘추의 딸과 사위 품석이 백제군에게 죽임을 당하자 김춘추는 이를 보복하기 위해 고구려로 구원병을 요청하러 떠났다. 그러나 오히려 김춘추는 첩자로 오인되어 옥에 갇히게 되었는데, 그때 고구려에 들어올 때 가지고 온 청포 3백 보를 고구려 장수 선도해에게 뇌물로 주자, 선도해가 탈출을 암시하며 들려준 이야기이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에서 용왕은 고구려 보장왕이며, 거북은 그 신하이고, 토끼는 김춘추가 된다.

 

신라 선덕왕 11년(642)에 백제가 대량주(합천)를 침공하므로 신라군이 패하여 김춘추 공의 딸 고타소랑도 그 남편 품석과 함께 전사하였다. 춘추는 이를 원통히 여겨 고구려에 군사를 청하여 백제의원수를 갚으려 하니 왕은 이를 허락하였다. 춘추는 고구려로 떠나려 할 때 유신에게 말하기를,
"나는 공과 한 마음 한 몸으로 나라의 팔다리가 되어 왔는데, 지금 내가 고구려에 들어갔다가 해를 입을 것 같으면 공은 어찌 무심하리오?"
하니 유신은 말하기를,
"공이 만약에 갔다가 돌아오지 않으면 나의 말발굽이 반드시 고구려와 백제 두 나라 궁정을 짓밟아 버릴 것이오. 이와 같이 아니하고서야 장차 무슨 면목으로 나라 사람들을 볼 수 있으리오?"
하였다. 이에 춘추 공은 기쁨을 느껴 유신과 서로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내어 이를 맹세하고 말하기를,
"내 계획대로라면 날짜는 60일이면 돌아올 것 같으나, 만약 그때에 돌아오지 않으면 곧 다시 볼 기약이 없을 것이오."
하며 서로 작별하였다.
뒤에 유신은 압량주(지금의 경산)의 군주가 되었다.
춘추는 사간 훈신과 함께 고구려로 가게 되었는데, 대매현에 이르니 현인 사간 두사지가 청포 3백 보를 기증하였다.
춘추 공이 고구려로 들어가니 고구려 왕은 태대대로 개금(연개소문)을 파견하여 춘추 공을 맞아들이어 성대한 잔치를 베풀고 극진히 대접하였다. 그런데 고구려의 어떤 사람이 왕에게 이르기를,
"신라의 사자는 보통 사람이 아니옵고, 그가 지금 온 것은 우리나라 형세를 염탐하러 온 것으로 보이오니 왕께서는 그를 죽여 버림으로써 후환이 없도록 하소서."
하자, 왕은 그 말을 좇아 엉뚱한 질문으로 그 대답을 곤란하게 만들어서 욕을 보이려고 하였다. 왕은 이르기를,
"마목현은 죽령과 함께 본래 우리나라의 땅이다. 만약 이를 돌려주지 않으면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하였다. 춘추는 이에 대답하기를,
"나라의 땅은 한 신하의 마음대로 할 수 없으므로 감히 그 요구를 받들 수 없습니다."
하니, 왕은 크게 노하여 그를 옥에 가둬 죽이고자 하였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때 춘추는 먼저 사간 두사지에게서 받아가지고 온 청포 3백 보를 비밀리에 왕의 총신 선도해에게 선사하니 도해는 성찬을 갖추어 가지고 와서 함께 술을 마셨는데, 술이 취하자 도해는 농담 삼아 춘추에게 말하기를,
"그대는 일찍이 거북과 토끼의 이야기를 듣지 못하였는가? 옛날에 동해 용왕의 딸이 심장병이 들어서 앓았는데, 의사의 말이 토끼의 간을 얻어서 약을 지어 써야먄 가히 치료할 수 있을 것이라 하였으나 바다 가운데는 토끼가 없으므로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는데, 이때 한 거북이 용왕에게 이르기를 '제가 능히 토끼의 간을 얻어 올 것입니다'하고, 드디어는 육지로 올라가서 토끼를 만나 말하기를 '바다 가운데 한 섬이 있는데 샘물이 맑고 돌도 깨끗하고 숲도 무성하고 좋은 과실도 많이 열리고 춥지도 덥지도 않고 매나 독수리와 같은 것들도 감히 침범할 수 없는 곳이다. 만약 그곳으로 갈 것 같으면 가히 편안하게 살 수 있어 아무런 근심도 없을 것이다. 하고 꾀어 드디어는 토끼를 등뒤에 업고 바다에 떠서 한 2,3리쯤 가다가 거북은 토끼를 돌아보고 말하기를 '지금 용왕의 따님이 병이 들어 앓는데 꼭 토끼의 간을 약으로 써야만 낫겠다고 하는 까닭에 내가 수고로움을 무릅쓰고 너를 업고 오는 것이다'하니, 토끼는 이 말을 듣고 말하기를, '아아, 그런가. 나는 신명의 후예이므로 능히 오장을 꺼내어 깨끗이 씻어 거지고 이를 다시 넣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요사이에 마음이 좀 답답하여서 드디어 간을 꺼내어 깨끗이 씻어서 잠시 동안 바위 밑에 놓아 두었는데, 네가 좋다는 말만 듣고 오느라고 그만 간을 그대로 두고 왔구나. 내 간은 아직 그곳에 있는데 다시 돌아가서 간을 가지고 오지 않으면 어찌 네가 구하려는 간을 가지고 갈 수가 있겠는가? 나는 비록 간이 없어도 살 수가 있으니, 그러면 어찌 둘이 다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하니 거북은 이 말을 그대로 믿고 토끼를 업고 도로 돌아서서 육지로 올라오니, 토끼는 풀숲으로 뛰어들어가면서 거북에게 말하기를 '거북아, 너는 참으로 어리석구나. 어찌 간이 없이 사는 놈이 있겠느냐?'하니, 거북은 아무 말도 못하고 돌아갔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였다. 춘추는 이 말을 듣고 그 뜻의 비유를 깨닫고, 곧 왕에게 글을 보내어 말하기를,
"마목현과 죽령의 두 영은 본래는 대국(고구려)의 땅이므로, 신이 귀국하면 우리 임금에게 청하여 곧 돌려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나의 말을 믿지 못하시겠다면 동녘에서 뜨는 해의 밝은 빛을 두고 맹세하겠습니다."
하니 왕은 기뻐하였다.
춘추가 고구려에 돌아간 지 60일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자 유신은 국내의 용감한 장사 3천인을 뽑아 놓고 고구려를 칠 채비를 차리고 왕에게 보고했다.
이때 고구려의 첩자인 중 덕창(德昌)이란 이가 이 일을 고구려왕에게 보고 하니 춘추를 돌려 보내지 않을 수 없어 대우하여 보냈다.
춘추가 국경을 넘어서자 전송하는 사람에게 말하길,
"내가 백제에 대한 원한을 풀려고 여기 와서 군사를 요청하였던 것인데, 대왕은 이를 허락하지 않고, 도리어 토지를 구하니, 이것은 신하로서 마음대로 할 일이 아니다. 전번 대왕에게 글을 보낸 것은 죽음을 면하려 한 것이다."
하였다.

●  구토 설화의 모태인 <용원 설화> (인도 본생경 에 실려있는 설화)
이 설화는 인도에서 유래되었다. 불교 설화에서 들어온 외래 설화의 변용인 것이다. 이 설화와 함께 <두껍전>, <심청전> 등의 근원설화도 인도의 불경에서 왔다.
불교 설화와 구토지설은 같은 점도 있지만 차이점도 있다. 대개의 줄거리는 같지만 그 의미나 등장인물에서는 차이가 있다. 이 설화는 애당초 인도의 불경인 '자타카 본생경'에는 <용과 원숭이>라는 설화로 남아 있고, 설화 문학서인 '마하바스투', '판차탄트라' 등에 보이고, 한역 경전과 중국 불서에도 보인다. 한국 문헌으로서는 <삼국사기>와 <대동운부군옥>에 보인다.
간을 구하게 되는 갈등의 계기는 불경에서는 '임신'으로 인하여, '마하바스투'에서는 '남편에 대한 질투심'으로, 한역 경전에서는 '병으로 인한 약물'로 서로 다르게 나타난다. 그리고 한역 경전에는 어디까지나 종교적 의미가 강하게 나타나 있지만 우리나라에 와서는 종교적 의미는 퇴색해 버리고 만다. 대립 관계의 주체에 있어서도 인도 불경에서는 원숭이와 악어로, 한역 경전에서는 원숭이와 자라로, 우리나라에서는 토끼와 거북으로 나타난다.
이 설화가 바탕이 되어 후에 판소리
<수궁가>가 이루어지고, 그것을 바탕으로 하여 소설 <별주부전(토끼전)>이 나오게 된다. 그리고 개화기에 이해조에 의해 신소설 <토의 간>으로 구술 채록된다. 수궁가나 토끼전의 구토지설은 각각 판소리나 소설의 문맥으로 확충되고 있다. 즉 이야기를 다루는 방법에 있어서 유기적이고 논리적인 전개와 세부 사항의 흥미있는 설정 등으로 확충되고 있다.

/<용과 원숭이> 읽어보기(자타카 본생기) /

● 토끼의 상징성
토끼는 일반적으로 서양에서는 불륜, 성스러움, 중개자, 교활함 등을 의미하고, 현대적인 의미로는 계수나무에서 방아 찧는 토끼로 인하여 부부간의 부부애를 나타내기도 한다. 토끼의 신화적 원형성은 후대의 민속이나 무속에서 나타나는데, 민담에서의 토끼는 힘이 약하고 몸집이 작은 것에 반비례하여 매우 영특하고 착한 동물로 그려진다. '호랑이와 토끼' 이야기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또 토끼는 달과 연관하여 생각되기 때문에 달의 주기와 여성의 생리 현상과 한 고리가 된다. 토끼가 등장한 현대 소설로는 장용학의
<요한시집>이 있는데, 이 소설에서는 토끼가 자유 앞에 희생당하는 자아의 모습을 가지고 우화적으로 등장한다.
윤동주는 이 이야기와 프로메테우스 신화를 원용하여
<간>이라는 시를 쓴 바 있다. 이 작품의 특징은 동서양의 두 고전 - <프로메테우스 신화>와 <토끼전>을 혼합하여 썼다는 것에 있는데, 두 고전을 차용한 이유는 <토끼전>에서는 지배층에 대한 피지배층의 항거를 나타내기 위함이고 <프로메테우스 신화>에서는 속죄양 의식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  윤동주의 <간> 읽어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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