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동왕자와 낙랑공주
대무신왕이 즉위하였다. 왕의 이름은 무휼이니 유리왕의 셋째 아들이다. 왕은 나면서부터 총명하고 지혜롭고 장하고 인품이 뛰어나며 큰 지략이 있었다. 유리왕 33년 갑술에 태자가 되었다. 즉위할 때는 그 나이 11세였다. 그 어머니는 송씨로서 다물국 왕 송양의 딸이다.
4월에 왕자 호동이 옥저를 유람하였는데, 낙랑의 왕 최이가 여기 나왔다가 이를 만나보고 묻기를,
"그대의 얼굴을 보니 보통 사람 같지 않은데 혹시 북국 신왕의 아들이 아닌가?"
하고 드디어 함께 낙랑으로 돌아와서 그 딸을 그의 아내로 맞게 하였다. 뒤에 호동이 환국한 다음 몰래 사람을 최씨녀에게 파견하여 말하기를,
"만약 그대 나라의 무기고로 들어가서 고각(북과 나팔)을 부순다면 내가 곧 예로써 맞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맞지 않겠다."
고 하였다.
이보다 먼저 낙랑에는 고각이 있었는데 만약 적병이 있으면 스스로 우므로 이를 깨뜨려 버리도록 한 것이다. 이에 최씨녀는 예리한 칼을 가지고 가만히 무기고 속에 들어가서 고각을 부숴 버리고 이를 호동에게 알리니, 호동은 왕에게 낙랑을 습격하도록 권하였다. 이때 최이는 고각이 울지 않으므로 방비를 하지 않고 있다가 고구려 군사가 성 밑에 이르러 엄습한 뒤에 고각이 모두 부서진 것을 알고, 곧 딸을 죽이고 나와 항복하였다.
11월에 왕자 호동이 자살하였는데 호동은 왕의 차비(次妃) 갈사왕의 손녀의 소생으로 용모가 아름다웠다. 왕은 심히 그를 사랑하였으므로 호동이라고 이름하였는데 원비(元妃)는 적자를 두고 그를 태자로 삼을까 두려워하여 왕에게 참소하기를,
"호동은 첩을 예대하지 않으니 아마 제 몸을 어지럽히고자 하는 것 같습니다."
하니, 왕은 말하기를,
"다른 사람이 낳은 아이라고 해서 미워하는 것인가?"
하자 비는 왕이 그 말을 믿지 않을 것을 알고 장차 화가 미칠 것을 두려워하여 울면서 아뢰기를,
"청하옵건대 대왕께서는 비밀히 그 징조를 살피시어 만약 이와 같은 일이 없으면 첩은 스스로 복죄하겠나이다."
하므로, 대왕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어 호동을 첩러하려고 하였다.
혹자는 호동에게 말하기를,
"그대는 어찌하여 이를 해명하려 하지 않는가?"
하였으나 호동은 대답하기를,
"내가 만약 이를 해명하면 이는 어머니의 악함을 드러내어 부왕의 근심거리를 만들게 되는 것이니 이 어찌 효도라 할 수 있겠습니까?"
하고 곧 칼을 들고 엎드려 자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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