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단체/연구 단체

아웃라이어, 모방할 수 없지만 배울 수 있다

지식창고지기 2009. 7. 8. 15:05

최근 전통적인 강자 기업들의 몰락과는 대조적으로 독특한 사업모델이나 경영방식으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는 아웃라이어(Outlier) 기업들이 눈에 띈다. 이들 기업은 시대 변화에 대한 통찰력을 가지고 기존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고 고차원적이고 대담한 목표를 지향하고 있다. 그리고 이 대담한 목적의식을 공유한 구성원들은 자율성이 넘치는 혁신적인 조직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맘껏 모으고 헌신하고 있다. 이를 통해 창의적인 영역을 개척하고 성공한 이후에도 이들 기업은 끊임없는 자기 재창조 노력을 통해 또 다른 변화를 꿈꾸고 있다. 
 
그러나 급변하고 예측 불가능한 미래 환경에서 현재의 아웃라이어 기업도 온전하리라는 보장이 없다. 앞선 기업을 모방하는 경영의 시대는 의미를 잃어가고 있기 때문에, 아웃라이어 기업의 단편적인 베스트 프랙티스를 따라 하자는 것은 아니다. 자신만의 독특한 문제제기와 목적의식, 그리고 인내하는 혁신의 길을 걸어가는 기업만이 21세기 경영환경에 맞는 환골탙태한 모습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 목 차 > 
  
Ⅰ. 아웃라이어의 의미 
Ⅱ. 비즈니스 세계의 아웃라이어 
Ⅲ. 아웃라이어의 독창성 
Ⅳ. 환골탈태 (換骨奪胎)
 
  
 
Ⅰ. 아웃라이어의 의미 
  
 
흔히들 괴팍하고 아무렇게나 그려놓은 그림이나 이해하기 힘든 그림을 보면 피카소 그림 같다는 말을 하곤 한다. 그만큼 피카소가 그린 그림은 다른 화가들의 작품과는 확연히 구분이 될 만큼 독특하며, 많은 사람들이 미술사에서 대표적인 화가로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를 손꼽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 최근 영국 더 타임스가 전 세계 누리꾼 투표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피카소는 20세기 최고의 예술가로 선정됐다. 
 
미술의 혁명가, 아웃라이어 - 파블로 피카소 
 
지금이야 추상주의나 초현실주의, 그리고 추상표현주의 등 미술에서 다양한 주제와 형식이 보편화되어 있다. 하지만 피카소가 ‘아비뇽의 아가씨들(1907년)’을 필두로 대상을 수많은 단면으로 재구성하여 표현한 것은 그 당시 혁명적인 시도였다. 주변의 많은 친구들도 그가 미쳤다고 수군대었다. 한마디로 그는 당대의 다른 화가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아웃라이어(Outlier)’였다. 
 
그러나 단지 그가 주목 받기 위해 이런 이상한 그림들을 그렸다면, 지금껏 미술사에서 위대한 화가로 자리매김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피카소가 독창적일뿐 아니라, 가치를 인정받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의 새로운 시도가 동시대의 변화를 꿰뚫는 통찰력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이 괴짜 화가가 활동하던 20세기 초는 격동의 시대였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하루가 다르게 신기술이 개발되고 다양한 문화적 실험이 다채로운 꽃을 피웠다. 물리학에서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가 등장하여 기존의 시간과 공간 개념을 파괴하고 더 이상 절대적인 것이 아닌 상대적인 것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최첨단의 과학 기술과 다원화된 현대 문명은 그로 하여금 미술의 본질이 과연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했고, 피카소는 그 대답을 ‘형태’에서 찾았다. 이전 화가들은 대상을 하나의 고정된 시점에서 관찰하면서 그림을 그렸다. 수백 년 동안 원근법은 화가들에게 미술의 경전이었으며, 시간과 공간이 당연히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반면 피카소는 평면에 3차원의 형상을 표현하기 위해 여러 각도에서 관찰하여 대상을 조각조각 낸 다음 다시 재조합했다. 이는 원근법의 근본적인 파괴를 의미하며, 그림에서 시점의 이동을 통해 공간을 해체함으로써 미술사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피카소가 아웃라이어로 빛나는 또 다른 이유는 평생 새로운 영역을 탐색하며 끊임없는 변화를 추구했다는 점이다. 미국의 심리학자인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창의적인 인간을 기존 영역을 변화시키거나 새로운 변형을 만드는 행위나 사고방식, 또는 새로운 작품을 창작한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 제아무리 창의적인 거장이라도 전성기가 있게 마련이고, 생의 말년까지 새로움을 추구하기란 어려운 일인데, 피카소는 정말 예외적인 아웃라이어였다. 그는 ‘多시점 회화’를 창안하여 전위적인 예술가들의 우상이 되었음에도 이에 만족하지 않고, 창의적인 시도들을 이어나갔다. 입체주의 양식의 다양한 변주를 거듭 발전시켜나갔고, 폐품을 이용한 미술품의 제작을 상상조차 못하던 시절에 재활용 미술품인, 이른바 ‘정크 아트’를 창안했다. 그 이후에는 캔버스에 물건을 붙이는 ‘콜라주’ 기법을 창안해서 그림이란 화가가 붓과 물감을 이용해서 손으로 직접 그린 것이라는 미술의 오랜 전통마저 파괴했다. 지칠 줄 모르는 자기 변화와 재창조의 노력으로 피카소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많은 작품을 남겼다. 92세까지 장수한 점을 감안하더라도 무려 1만6천여 점에 달하는 회화와 소묘, 650여 점의 조각, 2천여 점의 판화 작품을 남겼다.  
 
피카소 이외에도 미술사에는 전통적 주제를 파괴하고 방법을 혁신한 ‘올랭피아’로 현대 회화의 원형을 제시한 마네(Manet), 예술의 상품화, 소비화를 외친 선구자로 팝 아트의 제왕으로 불리는 앤디 워홀(Andy Warhol), 주제를 강조하기 위해서는 죽은 상어 등 충격 요법도 마다하지 않은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 등의 아웃라이어가 있어왔다. 이들은 동시대 대다수의 아티스트들이 주어진 틀 안에서 고민하는 데 반해, 기존 틀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시대 변화가 요구하는 미술의 본질을 파악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에 부합하는 주제와 표현 양식의 끊임없는 재창조로 미술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하고 가치를 인정받은 예술가들이다. 

 

아웃라이어, 모방할 수 없지만 배울 수 있다.pdf
0.94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