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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지구촌현장] 짓밟힌 인권의 상징 오만한 미국의 치부

지식창고지기 2009. 7. 8. 16:23

[2005지구촌현장] 짓밟힌 인권의 상징 오만한 미국의 치부

 

4. 쿠바 관타나모

 

지난 11일 쿠바 관타나모 미군기지 근처의 작은 마을에 신부와 수녀를 포함한 25명의 평화운동가들이 모여들었다. ‘고문에 맞서는 증인’이라는 단체에 속한 이들의 손에는 “고문 반대” “관타나모 기지 폐쇄”라고 쓰인 깃발이 들려 있었다.

이들은 ‘세계 인권의 날’인 7일 산티아고를 떠나 이곳까지 80여㎞를 걸었다. 테러 용의자라는 낙인이 찍혀 관타나모 기지에 갇힌 이들에 대한 인도적인 대우를 촉구하기 위해서였다. 이들은 기지에서 8㎞ 가량 떨어진 쿠바군 초소 근처에 천막을 치고 단식을 시작했다.

관타나모 기지는 ‘테러와의 전쟁’에서 무참히 짓밟힌 인권을 상징한다. 국제법의 사각지대, 현대판 강제수용소, 미국의 치부라는 꼬리표가 붙기도 한다. 이곳엔 미국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붙잡은 테러 용의자 540여명이 수감돼 있다. 주황색 죄수복을 입은 이들 중 누구도 재판을 받은 적이 없다.

세상과 격리된 이들은 이따금 목숨을 건 단식으로 존재를 드러낸다. 지난 9월 수십명의 수감자가 미군의 가혹행위와 코란 모독 등에 항의해 단식투쟁을 벌였다. 외신들은 이곳에 갇힌 영국인 9명의 변호를 맡은 한 인권변호사의 입을 빌려 “이들이 죽음을 원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은 목구멍에 관을 집어넣어 음식물을 투입하는 ‘의학적 처치’를 통해 이들의 생명을 연장했다.

미국은 이곳의 수감자들을 ‘전투병’이라고 부른다. 제네바협약의 보호를 받는 ‘전쟁포로’가 아니라는 것을 주장하기 위한 명명이다. 전쟁포로로 인정받으려면 ‘일정한 요건을 갖춘 민병대나 의용군, 저항단체의 구성원’이어야 하는데, 이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라크 침공을 ‘국가 대 국가의 전쟁’이 아니라 ‘테러와의 전쟁’으로 보는 미국으로선 어찌보면 자연스런 귀결이다.

그러나 이런 미국의 규정은 적어도 아프간 농부 파이즈 무하마드에겐 전혀 합당하지 않다. 탈레반 정권에 복무했다는 이유로 관타나모 기지에 수감됐다 지난해 5월 풀려난 그를 <뉴욕타임스>는 이렇게 묘사했다. “쭈글쭈글한 얼굴에, 반쯤 귀가 멀고, 어린애처럼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옹알거리는 그는 간단한 질문에도 답을 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105살이라고 말했지만 70대 후반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노망이 든 게 확실했다.”

 

미국은 관타나모 기지에 갇힌 이들에게 이른바 ‘새로운 심문기법’을 사용했다. <타임>이 폭로한 84쪽의 심문기록을 보면, 조사요원들은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머리에 물방울 떨어뜨리기, 알몸으로 서 있기, 잠 안 재우기, 외설적인 사진 목에 걸기 등 비인도적인 수법을 총동원했다.

관타나모 기지의 인권 유린은 최근 미 중앙정보국(CIA)의 ‘비밀수용소 운영’ 파문과 바로 연결돼 있다. 중앙정보국이 동유럽 나라에 테러 용의자들을 가둔 비밀수용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워싱턴포스트>의 폭로로 촉발된 이 파문은, 이들이 불법으로 납치돼 여기저기로 끌려다녔던 것으로 밝혀지면서 미국의 인권불감증이 금지선을 넘어섰음을 드러냈다.

미국은 이런 비판에 철저히 눈을 감고 있다. 최근 존 매케인 공화당 상원의원이 발의한 고문금지 법안에 90명의 상원의원이 서명했다는 게 그나마 미국의 치부를 가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