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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지구촌현장] ‘고이즈미 극장’ 대박

지식창고지기 2009. 7. 8. 16:25

[2005지구촌현장] ‘고이즈미 극장’ 대박

 

6.도쿄 나가타초

 

‘9·11 대격변!’

지난 9월 자민당의 역사적 대승으로 막을 내린 일본 중의원 선거가 정치권과 일본 사회에 던진 충격파는 메가톤급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296석(전체 480석)을 거느린 공룡여당의 절대권력자로 변신했다. 각종 행정 및 정치 기관들이 밀집한 도쿄 중심거리 ‘나가타초’의 한복판에 자리잡은 총리실은 군사혁명을 주도하는 ‘계엄사령부’를 방불케 한다.

총선 발표 전까지 내각지지율은 줄곧 하향곡선을 그었고, 자민당에선 고이즈미 ‘무용론’이 끊이지 않았다. 우정민영화 법안이 간신히 중의원을 통과하자 그가 ‘식물인간’ 신세로 내년 9월 임기만료를 맞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자민당 반대파는 8·8일 참의원에서 법안을 부결시킨 뒤 그의 숨통을 끊어놓았다며 여유를 보였다. 당시 거대한 후폭풍을 예측한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타고난 승부사인 고이즈미의 뛰어난 이미지 정치는 사태를 극적으로 뒤엎었다. 속전속결식 중의원 해산과 반대파 죽이기를 위한 자객 투입 등으로 선거판을 볼거리 넘치는 사무라이 드라마로 바꿔놓았다. 고이즈미의 ‘구호성 개혁’은 카리스마를 갈망하는 젊은층에서 폭발적 열풍을 낳았고, ‘고이즈미 극장’은 대박을 터뜨렸다. 올해의 유행어 대상에 ‘고이즈미 극장’이 선정된 데 이견을 다는 이는 전혀 없다.

고이즈미가 ‘봉건군주’에 버금가는 권력을 틀어쥔 뒤 나가타초에선 ‘학의 한마디 울음소리’라는 관용구가 자주 등장한다. ‘지상명령’을 뜻하는 이 말은 고이즈미의 한마디를 가리킨다. 그는 ‘고이즈미식 개혁’의 걸림돌인 당내 파벌과 족의원(특정분야에 영향력을 행사해온 의원), 관료들의 저항을 무력화시켰다. 지지부진하던 세·재정(삼위일체)개혁, 공무원 감축, 의료비 삭감, 정부계 금융기관 통폐합, 국채발행 감축이 차례로 결정됐다. 후생족과 스크럼을 짠 의사회의 반대를 뚫고 사상 최대 폭의 의료수가 인하를 관철했다. 도로관련 재원이 일반재원으로 바뀌어 공공사업 감축 속도가 빨라지는 것을 막으려 안간힘을 써온 도로족과 건설업계도 역부족이었다.

 

고이즈미는 당 조사회장과 특별위원장의 임기를 2년으로 제한했다. 도로·교육·의료 등 분야별 조사회를 거점으로 기득권을 사수해온 족의원들의 힘빼기를 겨냥한 조처다. 헌법개정 초안의 전문에 담겼던 복고풍 기술의 삭제나 전격적인 담배세 인상 결정 등도 그의 지시로 밀어붙였다. 심지어 연금업무를 담당할 새 조직의 이름이 정부·여당의 합의로 결정된 뒤 고이즈미의 한마디로 백지화되는 해프닝까지 빚어졌다.

9·11 이후 ‘철의 삼각형’으로 불려온 정·관·업계의 기득권 구조가 와해돼 ‘2005년 체제’의 개막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렇지만 그 동력은 고이즈미 개인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 개혁의 구체적 각론이 확정된 상태도 아니다. 그의 퇴진만 숨죽여 기다리는 족의원·수구관료의 반격으로 일과성 돌풍에 그칠 가능성이 작지 않다. 더욱이 작은 정부를 외치는 신자유주의식 개혁의 가속화로 계층간 양극화의 확대는 불가피하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공룡여당이 쓴소리를 하기 힘든 분위기여서 고이즈미가 ‘폭주 기관차’로 돌변할 위험이 크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