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 사/잡다한 것

[2005지구촌현장] 지진해일 1년, 마르지 않는 아체의 눈물

지식창고지기 2009. 7. 8. 16:24

[2005지구촌현장] 지진해일 1년, 마르지 않는 아체의 눈물

 

8. 아체

 

“지금까지 10번 이상 지진해일(쓰나미)이 이곳 텐트촌을 덮치는 꿈을 꾸었어요. 잠에서 깨어나 눈을 뜨면 지진해일이 다시 일어난 것인지 아닌지 정말 알 수가 없어요.”

지난해 12월26일 23만명 이상의 목숨과 삶의 터전을 앗아간 남아시아 지진해일이 발생한 지 1년이 지났지만, 인도네시아 아체주의 13살 소년 나시르는 아직도 악몽에 시달린다고 <시엔엔(CNN)>에 말했다.

나시르는 당시 누나 두 명과 함께 동네 이슬람사원으로 피난갔다 자신만 살아남았다. 나중에 엄마가 피난민촌에 구사일생 돌아와 뛸듯이 기뻤지만 엄마는 죽은 남편과 딸을 그리워하며 삶의 의욕을 잃었다. 그래서 나시르는 오히려 엄마를 돌봐야하는 처지다. 나시르의 사례는 아체에서는 특별하지 않다. 지진해일로 양친을 모두 잃은 어린이만해도 수천명에 이르기 때문이다.

지진해일 피해는 동남아 11개국에 이를만큼 광범위하지만, 아체에 남긴 상처는 특히 모질었다. 전체 사망자·실종자의 절반 이상이 아체에서 발생했다. <로이터통신>이 최근 11개 지진해일 피해국 정부의 통계를 토대로 파악한 사망·실종자는 23만 1천명을 넘는다.

800㎞에 이르는 아체주의 아름다운 해안선을 쑥대밭으로 만든 지진해일로 아체주에서만 12만9498명이 숨지고, 3만8606명이 아직도 실종 상태이다.

1년이 지난 지금 아체에는 낙관과 비관이 엇갈린다. 1년전 진흙과 콘크리트 잔해, 금속조각 등 쓰레기더미가 2m 가까이 쌓였던 주도 반다아체의 길거리는 이제 활기를 되찾고 있다.


지난 8월 아체주독립운동을 펼쳐온 자유아체운동(GAM)과 정부군이 30년 가까운 싸움을 멈추고 평화협정을 맺은 것도 지진해일이 큰 계기가 됐다. 자유아체운동 대변인 바크티아르 압둘은 “지진해일이 양쪽을 협상테이블로 불러들였다”고 말했다. 다른 무엇보다 재해복구가 우선이었던 것이다.

▲ [2005지구촌현장] 8. 아체

무위로 끝난 과거 두차례 합의와 달리, 이번 평화협정의 내용은 예정대로 착착 이행되고 있다. 자유아체운동쪽은 지난 19일 마지막 남은 35정을 반납해 올해말까지 무기반납이라는 합의각서를 이행했다. 아체에 남아있는 인도네시아 정부군과 경찰도 오는 29일 완전 철수할 예정이다.

그러나 아직도 6만명이 넘는 생존자가 텐트 생활을 하고 있다. 자재부족과 노동력 부족, 관료주의 등으로 영구주택으로의 이전 계획이 지지부진한 상태이다. 인도네시아에서 지진해일 피해로 파괴된 14만1천가구 가운데 재건축된 곳은 1만2천가구, 건축중인 곳도 1만3천가구에 불과하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보도했다. 서쪽 해안가에 이르는 간선도로가 아직도 통행불능 상태여서 물자 수송도 애를 먹고 있다.

이에 따라 구호단체들은 현실적인 대안으로, 알루미늄 구조물에 나무 바닥과 벽을 붙인 가설주택을 지어 이재민들을 텐트생활에서 벗어나게 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