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뫼에 세운 절 - 천왕사 터
경주역에서 남동쪽으로 울산 가는 국도를 따라 4km쯤의 곳, 경주시 배반동에 사천왕사 터가 있다. 역 건너편 시내버스 정류소에서 불국사 가는 차를 타고 가다가 국도와 통일전으로 갈라지는 삼거리에서 내린다.
도로 북쪽에 남북으로 길게 누에고치를 반으로 자른 모양을 엎어놓은 것처럼 가운데가 잘록한, 높이 104m의 야트막한 산이 낭산(浪山 ; 이리뫼)이다.
옛부터 신령스러운 곳으로 여겨져 오다가 신라 18대 실성니사금은 서기 413년 이곳의 나무 베는 것을 금지하도록 했다.
그 후 선덕여왕은 살아 생전에 신하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어느 때 죽을 것인 즉, 도리천에 장사지내라”
하여, 모두 알지 못하여 어딘지 물었더니 낭산의 남쪽이라 하였다. 과연 미리 말한 그때에 돌아가시매(647년) 그 곳에 장사 지냈다.
그런 뒤 문무왕 19년(679)에 사천왕사가 무덤 아래 세워졌으니 선덕여왕이 미리 알아맞힌 세 가지 일 가운데 하나로 유명한 이야기다. 이것은 불교에서 부처님 나라를 말할 때 인간 세상의 위에 사천왕이 있고 그 위에 도리천이라는 곳이 있다는 데서 나온 것이다.
사천왕사는 어떤 절이었던가?
신라는 당의 힘을 빌어 백제와 고구려를 아울러 싸움없는 평화스러운 세상을 바랐지만, 당나라는 다른 꿍심이 있어 웅진도독부, 안동도호부를 두고는 머무적거리며 신라마저 집어삼키려 들었다. 이에 문무왕은 당군을 공격하여 몰아붙이니, 당 고종은 그때 자기 나라에 머물고 있던 신라 왕의 아우 김인문을 불러
“너희가 우리 군사를 청하여 고구려를 없애고는 도리어 해치니 그게 뭐냐!”하며 꾸짖고는 옥에 가두고, 군사를 훈련하여 신라를 치려 했다. 이때 의상법사가 당에 유학하면서 인문을 찾아갔더니 그 일을 일러주었다. 의상이 급히 신라로 돌아와 임금께 아뢰니 왕이 크게 걱정하여 신하들을 모아 어찌해야 좋을까를 의논하였다. 각간 김천존이
“요즘 명랑법사가 있어 용궁에 들어가 신비한 법[秘法]을 전하여 왔다 하니, 그를 불러 물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여 명랑 스님을 부르니
“낭산 남쪽에 신유림(神遊林)이 있으니 그곳에 사천왕사를 지어 불공을 드리면 되겠습니다.”
하는데 서해 바닷가에서 사람이 급히 와서 아뢰기를
“당나라 군사가 수없이 배를 타고 몰려와 바다 위에 오락가락합니다.”
고 전한다.
임금이 법사에게
“일이 급하게 되었으니 우째야 될꼬”
하므로 우선 물을 들인 비단으로 임시로 절을 짓고, 풀로써 오방신장을 얽어매고, 명랑이 우두머리가 되고, 스님 열 둘이 문두루 비법을 펴니, 황해바다에 갑자기 집채만한 파도가 일어 당나라 배가 몽땅 물에 빠져 버렸다.
그런 뒤에 절을 세워 사천왕사라고 했다.
부처님의 힘을 빌어 외적을 물리쳐 나라를 평안하게 지키려는 절이었는데, 이제 와서 빈 터만 남게 되었다. 다행히 두 곳의 목탑 터와 금당 자리의 주춧돌은 고스란히 남아있고, 사천왕사(四天王寺)라고 새겨진 기왓장이며 화려한 꽃무늬가 아로새겨진 벽돌과 함께, 힘차고 늠름한 모습의 훌륭한 사천왕상이 발견되기도 했다. 그런데 일본이 우리 땅을 떡주무르듯 하던 때, 동해남부선 철도를 내면서 이 절터의 금당과 강당 사이를 잘라 철까치를 놓았고, 절터 앞에 바싹 붙여 국도를 내었으니, 지금 4차선으로 넓힌 길 가에는 3m밖에 안되는 곳에 머리 떨어진 돌 거북 두 마리와 당간지주가 서 있는 꼴이 되었다.
교활한 일본이 우리의 혼을 빼고, 우리 문화 유산이 망가지도록 그리했던가?
울산 쪽에서 무거운 짐을 실은 차가 굽은 길 옆으로 뛰어올라 당간지주를 들이받아 부러뜨리더니, 시멘트로 붙여 놓았는데 또 박고, 다시 붙이고….
앞으로 전철이 경주 서쪽으로 지나게 되고 역이 새로 지어진다니 철도도 다른 곳으로 옮긴다는 말도 있고, 화물차가 다니는 새 길도 낸다는데, 앞으로 잘 처리하여 본디 모습의 터라도 후손들에게 물려주어 거룩한 신라의 얼이 배인 곳으로 생각하게끔 했으면 좋겠다.
'관심 사 > 종교 관련'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국의 탑 (0) | 2009.07.08 |
---|---|
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봉미산(鳳尾山)의 신륵사 (0) | 2009.07.08 |
관세음보살상의 이적과 절경을 자랑하던 누대 - 백률사 (0) | 2009.07.08 |
순금 불상이 귀한 이유는 - 금 부처 (0) | 2009.07.08 |
불교의 연기사상과 황금 분할 조형 - 석굴암 (0) | 2009.07.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