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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금 불상이 귀한 이유는 - 금 부처

지식창고지기 2009. 7. 8. 17:33

순금 불상이 귀한 이유는 - 금 부처
 

   지난 3월, 위쪽부터 돌 하나 하나를 들어내려 다시 고쳐 쌓기로 한 국보 제39호 경주시 현곡면 나원리 5층 석탑 3층 지붕 돌 윗면에 가로 세로 30cm, 깊이 20cm 되는 네모진 홈 구멍을 만들어 모셔둔, 사리 장엄구 속에서 작은 탑 5채와 서있는 부처 모습(불상의 높이 4cm) 등이 발견되었다.
   국립 문화재 연구소가 5월 21일, 과학적인 보존 처리를 거쳐 세상에 공개한 바에 따르면, 탑에서 나온 그 불상은 금으로 만든 ‘순금제 불상’ 임이 밝혀졌다.

   2,30년 전만 해도 간혹,
   “어느 동네 누구가 밭 갈다가 금부처를 줏었단다.”
   “금부처를 어떤 사람이 살라고 했는데 밭 값보다 더 주겠다고 했단다.”
하는 소문이 떠돌았다. 실제로 진위를 알아보면 금부처는 금부처인데 순금 불상이 아니고 금동불상임이 판명되곤 했다.
   지금까지 경주에서 발견된 순금 불상은 단 두번에 걸쳐 3구(軀) 뿐이다. 그것도 밭 갈다가 나온 것이 아니고, 모두 탑 속에서 학술적으로 발굴하여 나온 것이다.
   처음은 1942년 경주 구황리 황복 마을 절터에 있던 3층 석탑을 해체 복원하는 과정에서 2층 몸체 돌 윗면에서 발견된 사리장엄구 안에 모셔진 것으로, 선 모습과 앉은 모습의 두 상이었다. 금동으로 된 겉 함(函)의 뚜껑에 새겨진 글에 의해, 서기로 692년, 706년 경 두 차례에 걸쳐 만들어진 불상임이 밝혀졌다. 두번째가 바로 이번 나원리 5층 석탑 속에서 발견된 것이다. 그러니 이것은 광복 후 처음 발견된 순금제 불상이다.
   이런 일은 일반인들도 관심이 많은 발견이었는데, 이 분야의 불교 미술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획기적인 발견이다.
   앞으로 더욱 연구가 진행되겠지만, 전문가들의 견해에 따르면 제작 시기가 대략 680년대일 것이라(불교미술연구소 문명대 박사)한다.
   탑의 구조로 보아, 나원리 5층 석탑은 감은사 동서 3층 석탑이 이룩된 해(682년)보다는 늦게 만들어진 탑이므로, 그 속의 유물도 682년 이후일 것이라는 점이고, 불상의 형태나 조각 수법으로 보아 황복사에서 나온 불상(692년)보다는 앞선 양식이기 때문에 680년대라는 것이다.
   왜 순금으로 만들어진 불상이 이렇게 희귀하냐 하면, 금이 귀해서 그런 것만 아니고, 그보다는 순금으로 불상을 조각하기란 매우 어렵고 까다롭기 때문이다.
   금은 녹이 슬지 않는 금속으로 공기 중에서는 표면 색이 약간 변하는 점은 있지만, 땅 속에서는 오히려 황금 빛을 그대로 지니는 성질이니, 철, 은, 구리 같은 금속보다는 사람들의 사랑을 많이 받는 것이다.
   순금은 두드리면 펴지고 휘면 굽어지는 성질이 있는 반면 불에는 아주 강하다. 그래서 다른 금속처럼 주물(鑄物)로는 형상을 만드는 것이 매우 곤란하다.
   일반적으로 많이 만드는 금동 불상 제작 기술인 주물 방법은 이렇다.
처음 찰흙으로 부처의 모습을 빚어 만든 다음, 그 겉에 석고 반죽을 발라 틀을 만드는데, 석고가 굳어진 다음, 속에 있는 찰흙을 파내버리면 겉 모양만 남는다. 이것을 거푸집이라 한다. 거푸집 속에 구리와 주석, 아연을 섞어 녹인 합금인 청동액을 부어넣어 식히면 굳어지는데, 그후 거푸집을 떼내면, 처음 찰흙으로 만든 모습과 꼭 같은 형상이 된다. 구리, 주석, 아연은 각각 낮은 온도에서 녹고 잘 휘어지고 쭈그러지는 금속으로, 무른 편이지만 일단 합금되고 난 후에는 여물고 단단한 금속이 된다.
   이렇게 만든 상을 청동상이라고 하는데, 청동 녹이 피고 빛깔도 변색하기 때문에 그 위에다가 금을 입히면 찬란한 노란 빛이, 부처님의 광명을 표현하는 효과가 극대화되기 때문에 도금을 한다.
   요즘은 전기 분해로 도금을 하지만 옛날 신라 때는 수은 도말감법으로 하였다. 금가루를 수은 액에 반죽하여 청동 표면에 문지르면 금가루는 금속 표면에 묻고, 수은은 흘러내려 찬란한 금으로 된 불상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금으로 불상을 만들자면 두드려서 만드는 단조(鍛彫)를 해야만 된다.
   얇은 금판을 두드려서 만들거나 불에 달구어 가면서 두들겨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돋을 새김은 쉬운 편이나, 두리 새김은 매우 어려울 수밖에 없다. 특히 얼굴 표정, 옷 주름 등을 의도대로 나타내기에는 아주 곤란하여 부적합하다.
   불상은 예배의 대상이기 때문에, 만드는데 여러 가지 어려움이 따르고, 만든다 해도 어지간해서는 뜻대로 표현이 잘 안되는 순금으로 굳이 만들어야 하겠는가? 그래서 금동 불상이 많이 만들어졌고, 순금으로는 잘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신라 불상으로 지금까지 발견된 순금 불상이 3구 밖에 안되는 것이다.

   사진의 왼쪽에 보이는 불상이 나원리 5층 석탑 속에서 나온 불상은 얼굴을 생동감있게 표현했는데, 가느다란 눈에 입 가에는 예스러운 고졸(古拙)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
   옷자락을 보면 주름이 큼직하게 U자 모양으로 되어있다. 머리 뒤에 나타나는 빛인 두광(頭光)에는 판면을 두들겨 만든 불꽃 무늬가 뚜렷하다.
   ‘두려워 말라’ 는 시무외인(施無畏印)을 나타낸 왼손, ‘소원을 모두 들어주마’ 라는 약속인 여원인(與願印)의 오른손 수인(手印)을 하고 있다.
   '복련'이라는 수그린 연꽃 잎을 새긴 대좌 위에 서 계신 부처님의 몸체가 어린이와 같이 보이는 이유는 얼굴 크기가 키 높이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크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몇 가지 이유로 인하여 이 불상은 삼국시대 신라 때 만들어진 경주 남산 배동 3존 석불과 비슷한 면이 있기 때문에 시대가 올라가는 불상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