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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운몽 - 제16장 양승상등고망원 진상인반본환원

지식창고지기 2009. 7. 14. 09:19

제16장  양승상등고망원  진상인반본환원

(楊丞相登高望遠  眞上人返本還元)


승상이 성은을 감격하여 고두사은하고 거가(擧家)하여 취미궁으로 옮아가니, 이 집이 종남산 가운데 있으되, 누대의 장려함과 경개의 기절함이 완연히 봉래 선경이니, 왕 학사의 시에 가로되,
"신선의 집이 별로 이에서 낫지 못할 것이니, 무슨 일 퉁소를 불고 푸른 하늘로 향하리오?"
하니, 이 한 글귀로 가히 경개를 알리러라.
승상이 정전을 비워 조서와 어제 시문을 봉안하고 그 남은 누각대사에는 제 낭자가 나눠 들고 날마다 승상을 모셔 물을 임하며 매화를 찾고 시를 지어 구름 끼인 바위에 쓰며, 거문고를 타 솔바람을 화답하니, 청한(맑고 한가로움)한 복이 더욱 사람을 부러워할 배러라.
승상이 한가한 곳에 나아간 지 또한 여러 해 지났더니, 팔월 염간은 승상 생일이라. 모든 자녀 다 모다 십 일을 연하여 설연(잔치를 베품)하니 번화성만함이 예도 듣지 못할러라. 잔치를 파하고 제자(諸子)가 각각 흩어진 후 문득 구추가절(九秋佳節)이 다다르니 국화 봉오리 누르고 수유 열매가 붉었으니 정히 등고(登高-높은데 오름)할 때라. 취미궁 서녘에 높은 대(臺) 있으니, 그 위에 오르면, 팔백 리 진천을 손바닥 금 보듯이 하여 가린 것이 없으니, 승상이 가장 자랑하는 땅이러라.
이 날, 양 부인과 육 낭자를 데리고 대에 올라 머리에 국화를 꽂고 추경(秋景)을 희롱할 새 입에 팔진(八珍)이 염오(厭惡-싫어하고 미워함)하고 귀에 관현(管絃)이 슬민지라. 다만 춘운으로 하여금 과합(과일 상자)을 붙들고 섬월로 옥호(옥으로 만든 술병)를 이끌며 국화주를 가득 부어 처첩(妻妾)이 차례로 헌수(장수를 비는 뜻으로 술잔을 올림)하더니, 이윽고 비낀 날이 곤명지에 돌아지고 구름 그림자 진천에 떨어지니, 눈을 들어 한 번 보니 가을빛이 창망(넓고 멀어서 아득함)하더라.
승상이 스스로 옥소를 잡아 두어 소리를 부니 오오열열(목이 메어 욺)하여 원(怨)하는 듯하고, 우는 듯하고, 고할 듯하고, 형경이 역수를 건널 적 점리(漸離)를 이별하는 듯, 패왕이 장중(帳中)에 우희(우미인)를 돌아보는 듯하니, 모든 미인이 처연하여 슬픈 빛이 많더라. 양 부인이 옷깃을 여미고 물러 가로되,
"승상이 공을 이미 이루고 부귀 극하여 만인이 부러워하고 천고에 듣지 못한 배라. 가신(佳辰-경사스러운 날)을 당하여 풍경을 희롱하며 꽃다운 술은 잔에 가득하며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으니, 이 또한 인생의 즐거운 일이어늘, 퉁소 소리 이러하니 오늘 퉁소는 옛날 퉁소가 아니로소이다. "
승상이 옥소를 던지고 부인 낭자를 불러 난단(난간)을 의지하고 손을 들어 두루 가리키며 가로되,
"북으로 바라보니 평평한 들과 무너진 언덕에 석양이 쇠한 풀에 비치었는곳은 진시황의 아방궁이요, 서로 바라보니 슬픈 바람이 찬 수풀에 불고 저문 구름이 빈 뫼에 덮은 데는 한 무제의 무릉이요, 동으로 바라보니 분칠(粉漆)한 성이 청산을 둘렀고 붉은 박공(지붕의 양쪽 끝머리에 붙은 널)이 반공(半空)에 숨었는데, 명월은 오락가락하되 옥난간을 의지할 사람이 없으니, 이는 현종 황제가 태진비(太眞妃)로 더불어 노시던 화청궁이라. 이 세임금은 천고 영웅이라. 사해로 집을 삼고 억조로 신첩(臣妾)을 삼아 호화 부귀 백 년을 짧게 여기더니 이제 다 어니 있나뇨?"
소유는 본디 하남 땅 베옷 입은 선비라. 성천자(聖天子) 은혜를 입어 벼슬이 장상(將相)에 이르고, 제 낭자 서로 좇아 은정(사랑을 베푸는 마음)이 백 년이 하루 같으니, 만일 전생 숙연(전생의 인연)으로 모두 인연이 진하면 각각 돌아감은 천지에 떳떳한 일이라. 우리 백 년 후 높은 대 무너지고, 굽은 못이 이미 메이고, 가무(歌舞)하던 땅이 이미 변하여 거친 뫼와 쇠한 풀이 되었는데, 초부와 목동이 오르내리며 탄식하여 가로되,
"이것이 양 승상의 제 낭 자로 더불어 놀던 곳이라. 승상의 부귀 풍류와 제 낭자의 옥용화태(玉容花態) 이제 어디 갔나뇨."
하리니 어이 인생이 덧없지 아니리요?
내 생각하니 천하에 유도(儒道)와 선도(仙道)와 불도(佛道)가 유(類)에 높으니 이론 삼교라. 유도는 생전 사업과 신후유명(身後留名-죽은 뒤에 이름을 남김)할 뿐이요, 신은 예부터 구하여 얻은 자가 드무니, 진 시황, 한 무제, 현종제를 볼 것이라. 내 치사(벼슬을 사양하고 물러남)한 후로부터 밤에 잠 곧 들면 매양 포단(방석) 위에서 참선하여 뵈니 이 필연 불가로 더불어 인연이 있는지라. 내 장차 장자방의 적송자 좇음을 효칙(본받음)하여 집을 버리고 스승을 구하여 남해를 건너 관음(관음보살)을 찾고, 오대(오대산)에 올라 문수(문수보살)께 예를하여 불생불멸(不生不滅)할 도를 얻어 진세(속세) 고락(苦樂)을 뛰어나려 하되 제낭자로 더불어 반생을 좇았다가 일조(一朝)에 이별하려 하니 슬픈 마음이 자연 곡조(曲調)에 나타남이로소이다.
제 낭자는 다 전생이 근본이 있는 사람이라. 또한 세속 인연이 지낼 때니 이 말을 듣고 자연 감동하여 이르되,
"부귀 번화 중 이렇듯 청정한 마음을 내시니 장자방을 어이 족히 이르리요? 첩 등 자매 팔 인이 당당히 심규(여자가 거처하는 방) 중에서 분향(焚香) 예불하여 상공 돌아오시기를 기다릴 것이니, 상공이 이번 행하시매 벅벅이 (틀림없이) 밝은 스승과 어진 벗을 만나 큰 도를 얻으리니 득도한 후에 부디 첩 등을 먼저 제도하소서."
승상이 대희(大喜) 왈,
"우리 구 인이 뜻이 같으니 괘사라. 내 명일로 당당히 행할 것이니 금일은 제 낭자로 더불어 진취(盡醉)하리라."
하더라, 제 낭자 왈,
"첩 등이 각각이 일배를 받들어 상공을 전송하리이다."
잔을 씻어 다시 부으려 하니 홀연 석양에 막대 던지는 소리가 나거늘 고이히 여겨 생각하되 어떤 사람이 올라오는고 하더니, 한 호승(胡僧)이 눈썹이 길고 눈이 맑고 얼굴이 고이하더라. 엄연히 좌상(座上)에 이르러 승상을 보고 예하여 왈,
"산야(山野) 사람이 대승상께 뵈나이다."
승상이 이인(異人)인 줄 알고 황망히 답례 왈,
"사부는 어디로서 오신고?"
호승이 소왈
"평생 고인을 몰라 보시니 귀인(貴人)이 잊음 헐탄 말이 옳도소이다."
승상이 다시 보니 과연 낯이 익은 듯하거늘, 홀연 깨쳐 능파 낭자를 돌아보며 왈,
"소유, 전일 토번을 정벌할 제 꿈에 동정 용궁에 가 잔치하고 돌아올 길에 남악에 가보니, 한 화상이 법좌에 앉아서 경(經)을 강론하더니 노부가 노화상이냐?"
호승이 박장대소하고 가로되,
"옳다, 옳다. 비록 옳으나 몽중(夢中)에 잠간 만나 본 일은 생각하고 십 년을 동처(同處)하던 일을 알지 못하니 뉘 양 장원을 총명타 하더뇨?"
승상이 망연(아득함)하여 가로되,
"소유, 십오륙 세 전은 부모 좌하(座下)를 떠나지 아녔고, 십육에 급제하여 연하여 직명이 있으니, 동으로 연국(燕國)에 봉사하고 서로 토번을 정벌한 밖은 일찍 경사를 떠나지 아녔으니, 언제 사부로 더불어 십 년을 상종(相從)하였으리요?
호승이 소왈,
"상공이 오히려 춘몽을 깨지 못하였도소이다."
승상 왈,
"사부, 어찌면 소유로 하여금 춘몽을 깨게 하리오?"
"이는 어렵지 아니하니이다."
하고, 손 가운데 석장을 들어 석난간을 두어 번 두드리니, 홀연 네 녘 뫼골에서 구름이 일어나 대상에 끼이어 지척을 분별치 못하니, 승상이 정신이 아득하여 마치 취몽 중에 있는 듯하더니 오래게야 소리질러 가로되,"사부가 어이 정도(正道)로 소유를 인도치 아니하고 환술로 서로 희롱하나뇨?"
말을 마치지 못하여서 구름이 걷히니 호승이 간 곳이 없고, 좌우를 돌아보니 팔 낭자가 또한 간 곳이 없는지라 정히 경황(놀라고 두려워함)하여 하더니, 그런 높은 대와 많은 집이 일시에 없어지고 제 몸이 한 작은 암자 중의 한 포단 위에 앉았으되, 향로에 불이 이미 사라지고, 지는 달이 창에 이미 비치었더라.
스스로 제 몸을 보니 일백여덟 낱 염주가 손목에 걸렸고, 머리를 만지니 갓 깎은 머리털이 가칠가칠하였으니 완연히 소화상의 몸이요, 다시 대승상의 위의(위엄있는 몸가짐) 아니니, 정신이 황홀하여 오랜 후에 비로소 제 몸이 연화 도량 성진 행자인 줄 알고 생각하니, 처음에 스승에게 수책(꾸지람을 들음)하여 풍도(지옥)로 가고, 인세에 환도하여 양가의 아들되어 장원 급제 한림학사 하고, 출장입상(出將入相)하여 공명 신퇴(功名身退-공을 세우고 벼슬에서 물러남)하고, 양 공주와 육 낭자로 더불어 즐기던 것이 다 하룻밤 꿈이라. 마음에 이 필연 사부가 나의 염려를 그릇함을 알고, 나로 하여금 이 꿈을 꾸어 인간 부귀와 남녀 정욕이 다 허사인 줄 알게 함이로다.
급히 세수하고 의관을 정제하며 방장(고승의 거처)에 나아가니 다른 제자들이 이미 다 모였더라. 대사, 소리하여 묻되,
"성진아, 인간 부귀를 지내니 과연 어떠하더뇨?"
성진이 고두하며 눈물을 흘려 가로되,
"성진이 이미 깨달았나이다. 제자 불초(못나고 어리석음)하여 염려를 그릇 먹어 죄를 지으니 마땅히 인세에 윤회할 것이어늘, 사부 자비하사 하룻밤 꿈으로 제자를 마음 깨닫게 하시니, 사부의 은혜를 천만 겁이라도 갚기 어렵도소이다."
"네, 승흥(乘興)하여 갔다가 흥진(興盡)하여 돌아왔으니 내 무슨 간예(관계하여 참견함)함이 있으리요? 네 또 이르되 인세에 윤회할 것을 꿈을 꾸다 하니, 이는 인세와 꿈을 다르다 함이니, 네 오히려 꿈을 채 깨지 못하였도다. '장주(장자)가 꿈에 나비 되었다가 나비가 장주 되니' 어니(어느 것) 거짓 것이요, 어니 진짓(참됨) 것인 줄 분변치 못하나니, 어제 성진과 소유가 어니는 진짓 꿈이요 어니는 꿈이 아니뇨?"

* 성진 :- 꿈과 인생을 다른 것으로 봄
* 대사 : ( '호접몽(蝴蝶夢)'의 비유 -- 큰 깨달음으로 유도 )

성진이 가로되,
"제자, 아득하여(어리석어) 꿈과 진짓 것을 알지 못하니, 사부는 설법하사 제자를 위하여 자비하사 깨닫게 하소서."
대사 가로되,
"이제 금강경 큰 법을 일러 너의 마음을 깨닫게 하려니와, 당당히 새로 오는 제자 있을 것이니 잠깐 기다릴 것이라."
하더니 문 지키는 도인이 들어와,
"어제 왔던 위부인 좌하 선녀 팔 인이 또 와 사부께 뵈아지이다."
대사, 들어오라 하니, 팔 선녀, 대사의 앞에 나아와 합장 고두하고 가로되,
"제자 등이 비록 위부인을 모셨으나 실로 배운 일이 없어 세속 정욕을 잊지 못하더니, 대사, 자비하심을 입어 하룻밤 꿈에 크게 깨달았으니, 제자 등이 이미 위부인께 하직하고 불문(佛門)에 돌아왔으니 사부는 나종내(끝끝내) 가르침을 바라나이다."
대사 왈,
"여선의 뜻이 비롯 아름다우나 불법이 깊고 머니, 큰 역량과 큰 발원(發願)이 아니면 능히 이르지 못하나니, 선녀는 모로미 스스로 헤아려 하라."
팔 선녀가 물러가 낯 위에 연지분을 씻어 버리고 각각 소매로서 금전도를 내어 흑운(黑雲) 같은 머리를 깎고 들어와 사뢰되,
"제자 등이 이미 얼굴을 변하였으니 맹서하여 사부 교령(가르침과 명령)을 태만치 아니하리이다."
대사 가로되,
"선재, 선재(善哉-좋구나)라. 너희 팔 인이 능히 이렇듯 하니 진실로 좋은 일이로다."
드디어 법좌에 올라 경문을 강론하니, 백호 빛이 세계에 쏘이고 하늘 꽃이 비같이 내리더라.
설법함을 장차 마치매 네 귀 진언(부처의 깨달음이나 서원)을 송(誦)하여 가로되,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    모든 유위법은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   꿈, 환상, 물거품, 그림자와 같고
여로역여전(如露亦如電)   이슬, 번개와 같으니
응작여시관(應作如是觀)   마땅히 이같이 보아야 하느니라

라 이르니, 성진과 여덟 이고(비구니, 여승)가 일시에 깨달아 불생불멸할 정과(正果-깨달음)를 얻으니, 대사 성진의 계행이 높고 순숙(純熟)함을 보고 이에 대중을 모으고 가로되,
"내 본디 전도(傳道)함을 위하여 중국에 들어왔더니, 이제 정법을 전할 곳이 있으니 나는 돌아가노라."
하고 염주와 바리와 정병(淨甁)과 석장과 금강경 일 권을 성진을 주고 서천(西天)으로 가니라.
이후에 성진이 연화 도량 대중을 거느려 크게 교화를 베푸니, 신선과 용신과 사람과 귀신이 한 가지로 존숭함을 육관대사와 같이하고 여덟 이고가 인하여 성진을 스승으로 섬겨 깊이 보살 대도를 얻어 아홉 사람이 한 가지로 극락세계로 가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