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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承晩 국회의장의 대한민국 국회 개회사(1948년 5월31일)

지식창고지기 2009. 7. 25. 09:21

李承晩 국회의장의 대한민국 국회 개회사(1948년 5월31일)

『기미년 國民大會員들의 決死血鬪한 정신을 본받아 최후의 一刻까지 奮鬪하여 나갈 것을 맹세합니다』

편집자 주 1948년 5월10일 제헌의회 선거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李承晩은 5월31일 열린 제헌국회 개원식에서 198명이 참석한 가운데 188표를 얻 어 초대 국회의장으로 선출되었다. 이날 의장으로 선출된 李承晩은 개식사 를 통해 앞으로 세울 나라에 대한 자신의 구상을 피력했다.

李承晩 국회의장은 日帝 이전의 정치를 君主정치라 표현하며 지금부터 民主 정치를 하겠다고 선포하고 개개인의 자유를 강조하며 民權의 각성, 권리의 주창을 강조했다. 오랜기간 한국인들이 개인의 자유를 행사하는 데 익숙할 수 없었을 것이란 점을 감안하고 본다면 이 연설문 속에 담긴 자유, 민권 , 권리 등 자유민주시민으로서의 기본 양식에 관한 설명들은 政治思想的으 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특히 남북 분단과 함께 全體主義체 제가 북한정권의 政體로 확인된 이상 李承晩 의장의 개식사에 담긴 문장들 은 한국민의 의식 속에 심어질 자유민주주의의 씨앗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李承晩 의장은 上海(상해) 임시정부의 탄생일인 1919년 4월 13일을 거슬러 올라가 1919년 3월1일 서울에서 수립된 임시정부(한성 정부 )의 법통을 잇겠다는 연설을 하고 있다.

「이 民國은 기미년 3월1일에 우리 13道 대표들이 서울에 모여서 국민대회 를 열고 大韓獨立 民主國임을 세계에 공포하고 임시정부를 건설하여 民主主義의 기초를 세운 것입니다.…(중략) 이 국회에서 건설되는 정부는 즉 己未年(기미년)에 서울에서 樹立(수립)된 민국의 임시정부의 계승에서 이날이 29년 만에 민국의 復活日(부활일)임을 우리는 이에 공포하며 民國年號(민국 연호)는 己未年에서 起算(기산)할 것이요…」

이 연설을 할 당시 上海 臨政은 金九가 대변자로 인식되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李承晩 자신이 집정관으로 선출되었던 漢城政府(한성 정부)를 내 세워 金九를 견제하겠다는 계산일 수도 있고, 혹은 임시정부의 원천이 한성 정부이므로 당연히 한성 정부를 내세웠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하지만 당시 국회는 李承晩 의장의 연설을 통한 공표에도 불구하고 반대함으로써 이 年號는 시행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