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델리에서 이틀을 보냈다. 향이 강한 인도음식에 서서히 지쳐갈 무렵, 가이드로부터 귀가 번쩍 뜨이는 말을 들었다.
다음 행선지는 바라나시라는 것. 델리가 인도 여행의 총론이라면 이제부터는 각론이다. 바라나시에는 갠지스 강을 무대로 매일 저녁 힌두의식에 거행되고 있다. 인도 배낭객들중에서 바라나시를 최고로 꼽는 사람도 적지 않다. 거기다 우리에게도 친숙한 불교의 유적지도 있다. 석가모니가 처음으로 설법을 펼친 장소로 유명하다. 인도출발 전부터 가장 기대가 컸던 곳이라 전날 인도 소개책자를 보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과연 어떤 곳일까.
◇동물의 왕국, 인도=다음날 오전 9시, 드디어 바라나시로 향했다. 당초 야간열차를 이용하려고 했지만 무려 12시간이 넘는 장거리여행인 점을 고려, 비행기로 이동했다. 인도의 기차문화를 접할 수 없다는 아쉬움도 잠시. 이틀동안 겪어본 인도의 도로사정을 떠오르다보니 차가 아닌 비행기로 간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인도의 도로사정은 우리기준으로 보면 썩 좋은 편은 아니다. 극심한 혼잡이 빚어지는데 2차선 도로에 상·하행선 구분도 없이 마주 오는 차와 언제 부딪칠지 모르는 불안감은 마치 청룡열차 타는 기분이랄까. 신호등 찾기도 힘들다. 고속도로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도 인도인은 태연하다. 사실 교통혼잡에는 동물들도 일정부분 기여한다. 소와 개, 낙타, 심지어 염소, 돼지까지 한가로이 도로 위를 돌아다닌다.
종교적으로 소와 돼지를 먹지 않다보니 잡을 일도 없다. 기껏 인도인이 먹는 육류는 닭과 양고기 정도로 제한된다. 시바신의 이동수단이었다고 하는 소. 길을 막아도 절대 소리쳐 쫓아내는 법이 없다. 조상 잘둔 덕분에 전세계 소 중에서 가장 호사를 누리고 있다는 생각이다. 한편으론 인도인의 여유를 느낄 수 있다는 생각까지든다.
이같은 상황은 바라나시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사실 델리를 벗어나 가장 심각한 교통혼잡을 느낀 곳이 바로 바라나시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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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 흔적을 찾아=사르나뜨는 바라나시에서 10㎞ 떨어진 도심 외곽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인도를 찾는 한국인의 방문이 특히 많은데 바로 석가모니가 처음으로 설법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인도인의 문화적 자부심은 대단하다.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는 중국을 거쳐 아시아 남방을 지난 우리에게까지 전래됐다. 그래서인지 한국에서 온 승려들의 방문도 끊이지 않는다.
현지 관리인에 의하면 작년 한해 이곳을 찾은 한국관광객은 4만명 정도. 올해만 지난 7월부터 현재까지 6000여 명이 방문했다. 사르나뜨는 BC 3세기부터 AD 12세기까지 번영을 누리다 13세기에 이슬람의 침공을 받아 파괴돼 한동안 잊혀져 있다 1836년 한 영국인이 유적을 발굴하면서 세상에 다시 알려지게 됐다.
그렇다면 인도인들은 불교를 어떻게 바라볼까. 가이드의 말로는 인도인들은 불교를 힌두교의 일부라고 생각한다고. 때문에 석가모니도 힌두교의 여러 신중 하나로 보고 있단다. 인도에는 6개의 종교가 있는데 힌두교, 이슬람교, 자이나교, 시크교, 기독교, 불교 등이 있는데 그래서 종교간 마찰도 잦다.
석가모니의 형상이 있는 사원 내부에 들어서면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기념품을 파는 가게가 있다. 보리수로 만든 염주 등 불교관련 기념품을 파는데 가격은 염주하나에 300루피 정도.
사르나뜨 주변에는 석가모니가 깨달음 후 첫 번째 설법장면을 재현해 놓은 곳도 있고 부처의 상징인 높이가 39m에 달하는 스투파(탑)도 눈에 띈다. 석가모니가 50일 동안 거주하며 제자들을 가르친 아쇼카 빌라의 흔적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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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안식처' 갠지스강변에 서다=오후 6시 무렵 드디어 힌두의식을 보러 갠지스강으로 향했다. 갠지스강변에 위치한 수십 개의 선착장(가트)이 있는데 우리가 가는곳은 다자스와메이드로 불리는 인근서 가장 큰 메인가트다. 갠지스강이 인도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대단하다.
일종의 영혼의 안식처라고 할까. 사실 갠지스강의 수질은 결코 깨끗하다고 할 수 없다. 그런데도 이곳에서 목욕을 하고, 의식을 행하고, 기도를 한다. 강 한쪽에는 화장터가 있어 재를 갠지스강에 흘러 보낸다. 신의 품으로 돌아간다는 그들의 믿음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매일 오후 6시께 가트에서 열리는 의식에는 수많은 인도인과 외국인들이 찾는다. 갠지스강을 바라보며 평화와 번영을 비는 ‘아르띠’라고 불리는 이 의식의 정확한 기원은 알 수 없다. 다만 매일 해가 진 후 치러지는 이 의식을 끝나야 하루의 일과를 편하게 마칠 수 있다고 한다.
요란한 종소리와 함께 시작된 의식자체는 간단하다. 몇 명의 소년들이 제단에 올라 노래에 맞춰 연기가 나는 초롱과 닮은 것을 들고 의식을 진행한다.
의식이 중반에 접어드자 한 할아버지가 손자를 데리고 강가로 내려오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손자와 함께 강물에 발을 담근 할아버지는 힌두의식에 따라 물을 머리에 적셨다. 똑같은 동작으로 손자의 머리에도 물을 묻히는 할아버지의 표정에서 손자가 훌륭히 성장하기 바라는 애잔한 마음이 묻어나 보여 정겨웠다.
사실 불과 한 시간 남짓 지켜본 의식으로 이날 인도인의 정서를 이해한다고 말할 순 없다. 그러나 경건한 표정으로 의식을 지켜보며 신을 향해 가족의 건강을 비는 인도인의 표정에서 이 의식이 인도인에게는 삶의 일부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의식과 별도로 눈길을 끄는 건 어린 꼬마들이 팔러다니는 띠아라고 불리는 작은 촛불. 진주에서 열리는 유등축제에서 남강에 띄우는 유등처럼 띠아를 갠지스 강에 띄워 보내 소원을 빈다.
정해진 값은 없다. 아마 이 글을 읽은 독자가 그곳을 찾더라도 그곳의 꼬마 상인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당신이 바라는 행복만큼 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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