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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삼킨 가을 천지

지식창고지기 2009. 7. 31. 09:34

[경남일보]

하늘 삼킨 가을 천지
세계 명산 트레킹 백두산과 고구려 답사기 <2>
강동욱 기자  

 이번 답사의 목적은 고구려 유적을 둘러보는 것과 백두산을 오르는 것이었다.
 백두산을 올라 천지(天池)를 본다는 사실은 지금은 평범한 일이지만, 중국이 개방되기 전 까지는 꿈만 같은 일이었다. 아마도 요즘은 백두산 이야기를 하려면 북한으로 가서 백두봉(장군봉)을 올라 보고 해야 사람들에게 관심을 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일행 중 많은 사람들은 백두산에 올라 천지를 본다는 기대감을 이번 답사 내내 가졌다. 어쩌면 고구려 답사보다 백두산 천지에 오른다는 기대감이 힘든 일정에 많은 위안이 되었을 지 모르겠다. 그래서 답사 내내 날씨가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3대가 덕을 쌓아야 천지를 볼 수 있다. 4번 올라가서 4번 다 못보고 온 사람이 있다. ”는 등등. 적어도 우리 일행들은 다 선한 사람들이니 백두산도 우리들을 반갑게 맞이해 줄 것이라는 그런 기대감을.
 아무튼 백두산 등정은 이제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되었다. 기자도 백두산을 3번째 오르는 길이다. 한번은 속초서 백두산 항로를 따라 러시아 땅을 거쳐 중국 훈춘으로 들어가 두만강을 따라 긴 여정에 백두산을 올랐다. 그 때 천지에서 드넓은 만주 땅을 보며 말 달리는 고구려 무사들을 생각한 적이 있다. 이번 답사에서 실제로 고구려 사람들의 숨결을 느끼면서 그 때의 감정을 다시 떠올리기도 했다.
 두번째는 다른 코스였다. 당시 백두산 야생화, 금강협곡 등을 주제로 심양을 거쳐 연길에서 백두산을 올랐는데, 버스로 백두산 길을 달렸다. 가다가 길가 쓰러진 나무도 만나는 등 험한 여정으로 인해 중간에 버스를 포기하고 백두산 나무를 운반하는 트럭을 타고 올랐는데, 날씨 관계로 천지를 보지 못했다.
 
 ◇압록강을 바라보며 통일을 떠올리다.


 지난 19일 오후 대련 공항에 도착해 바로 단동으로 이동했다. 4시간여를 달려 단동에 도착하니 해는 벌써 저물었다. 신의주와 경계 지점인 단동은 북한에 무슨 문제가 있으면 항상 언론에 보도되는 도시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낯익은 도시였다. 하지만 240여만명이 산다는 큰 도시라는 것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일제 침략를 피해 중국으로 들어가는 선비와 독립 지사들이 꼭 거쳐야 했던 안동(安東)이란 도시가 바로 단동이라는 것을 알고 더욱 감회가 깊었다. 안동에서 압록강을 바라보고 나라잃은 비분을 시로 달래던 옛 망명 선비들의 모습이 눈 앞에 떠오르기도 했다. 단동에 오면 당연히 주제는 압록강이었다. 바로 북한 땅이 지척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북한 땅을 바라보고 안쓰러움과 통일을 반드시 생각한다. 우리 일행도 예외는 아니었다. 압록강 배를 타고 북한 땅과 단동을 번갈아 보면서 안쓰러움과 한편으로는 약간의 분노를 느낄 것이다. 이를 이용해 돈 벌이에 혈안이 된 중국인들을 보면 얄밉기도 하고.
 하루빨리 통일이 돼 중국 땅에서 북한을 바라보며 애수를 느끼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생각을 누구나 느낄 수 있었다. 단동에 오면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그러하듯이 압록강에서 분단의 설움을 뼈져리게 느끼고 떠난다.
 단동에서 하룻밤을 묵고 국내성에서 고구려의 숨결을 느끼고 통화(通化)로 들어갔다. 가는 길가에 끝없이 펼쳐진 옥수수밭은 여느 중국 풍경과 다를 바 없었다. 우리가 가는 길이 지금으로부터 약 2000년전 고구려 인들이 걸었던 길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냥 주마간산격으로 보고 지나치기엔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통화에서 백두산까지 4시간여 거리였다.
 우선 통화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지난 2006년 이곳 통화에서  청동기 말기 또는 고구려 초기 것으로 보이는 제사 유적 한 곳과 고분군 두 곳 등이 새로 발견돼 고구려를 세운 주몽의 초기 정착지가 국내성(桓仁)이 아닌 통화라는 주장이 제기된 곳이기도 하다.
 
◇추색 만연한 천지에서 백두봉을 바라보다


 이번 등정은 무엇보다 가을 등정이라 운치가 더 있었다.
 추색(秋色)이 만연한 백두산을 오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8월 말이면 백두산 여행을 잘 하지 않는데, 우리 일행은 9월 중순에 벡두산을 오르면서 그야말로 만산홍엽의 백두산 절경을 감상한 것이다.
 통화에서 4시간 길을 달려 백두산 서파(西坡)로 가는 코스이다.
 가는 길은 산 아래까지 이미 단풍이 들었다. 높은 지대여서 벌써 산 아래까지 단풍이 들었다. 백두산으로 가는 길은 그야말로 단풍길이었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단풍 길을 보면서, 가을 백두산 등정의 또 다른 묘미를 느낄 수 있었다.
 백두산 입구에 도착해 점심을 먹고 본격적으로 백두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비록 버스로 오르는 길이지만, 우리 땅이라는 생각으로 정경들을 바라보니 또다른 느낌이었다.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피었을 때 이 길을 올랐지만, 지금은 야생화는 모두 져서 볼 수가 없지만 가을 색은 일품이었다.
 40여분을 달려 목적지에 도착했다. 백두산 정상 부근은 온통 화산재로 덮여 회색이었다. 역시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 민족의 영산 백두산 천지를 오르는 길이 계단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 마음에 안들었지만, 어쨌든 우리 일행들은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계단을 25분 동안 오르니 천지에 도착했다. 
 백두산을 올랐지만 천지를 보고 내려온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고 들었다. 하지만 우리 일행들에게는 천지를 보지 못했다는 사람들의 말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천지는 눈앞에 선명하게 펼쳐져 있었다.
백두산을 많이 올랐다는 강덕문 지리산여행사 대표도 “오늘처럼 천지가 맑게 보인 적은 별로 없었다. 가을 하늘과 천지가 조화를 이뤄 아름다움의 극치를 자아내는 것 같다”며 연신 셔터를 눌렀다.
 천지에 올라 최고봉인 백두봉을 바라보았다. 원래는 백두봉인데 북한에서는 장군봉이라고 부르고 있다고 한다. 천지를 한 참 바라보면서 다음에는 우리땅으로 올라 올 수 있겠지 하는 기대감도 가졌다. 옆에서는 여전히 중국 감시원 인듯한 사람이 우리나라 사람들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천지에서 백두봉을 바라보며 아쉬움을 달래면서 다시 백두산을 내려왔다. 우리는 금강협곡을 둘러보고 다시 통화로 돌아와 백두산 등정 일정을 마무리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