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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계 소설

지식창고지기 2009. 7. 31. 10:46

판소리계 소설


 

판소리계 소설이란 판소리 사설이 소설로 정착된 것이다. 따라서 판소리 사설과 판소리계 소설 사이에는 질적 차이가 별로 보이지 않으며 부분적인 차이만 있을 뿐이다.
판소리계 소설로는 <춘향전>, <흥부전>, <심청전>, <토끼전>, <화용도>, <배비장전>, <옹고집전>, <장끼전>, <숙영 낭자전> 등이 있다. 판소리계 소설은 세속 소설의 대표적인 작품들로서 민중의 발랄성과 진취성을 기반으로 한
민중의 공동작이다. 다시 말하면 적층되어 오는 과정에 민중의 참여에 의해 끊임없이 개작되고 또 민중의 체험이 투영되어 온 것이다.

  1. 문
  사설이 <-가>의 명칭으로 불렸다면 판소리계 소설은 <-전>으로 불려진 경우가 많았다. 판소리사설이 소리판의 창본으로 쓰이다 어느 시점부터 쓰임새가 달라져 소설로 바뀌어 나간 것으로 짐작된다.
본래 판소리는 12마당이었다고 했으므로 12편의 사설이 있을 터이고 따라서 적어도 그만큼의 판소리 소설을 예상할 수 있는데 그 가운데 일부는 없어져 확인이 어렵다.
송만재가 관우희(觀優戱)에서 말한 판소리 12마당이란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 변강쇠타령 배비장 타령 강릉매화전 옹고집타령 장끼타령 왈자타령 가짜신선타령 등인데, 그 가운데 소설로 바뀌어 지금까지 소설로 남아있는 것으로 춘향전, 흥보전, 심청전, 토끼전(별주부전), 화용도(적벽가의 정착), 배비장전, 옹고집전, 장끼전, 숙영낭자전 등이다.    

● 율문적 문장
판소리계 소설은 사설을 문자로 고정시킨 것이므로 문체에서도 공연을 목적으로 했던 사설의 여러 특징이 먼저 눈에 띈다. 단순한 서술체 문장에서 보기 어려운
율문적 문장체는 곧 창의 대본이었음을 말해준다. 노래를 위한 바탕글에 목적을 두다보니 자연 문장 길이가 짧아지고 3-4음을 기본으로한 리듬이 알맞게 되었다.
 판소리 사설은 아니리와 창의 결합으로 이루어진다. 아무래도 창의 부분에 율문이 많이 들어가고 아니리 부분은 산문 위주로 처리될 것이나 자세히 보면 아니리 부분도 산문이라기 보다는 3-4음을 기본으로 한 이야기로 처리되고 있어 오히려 율문에 더 가깝게 되어있다.

● 삽입가요
판소리계 소설에는 여러 삽입가요가 많이 들어있어 여러 양식의 복합수용체라는 느낌을 준다. 그런데 바탕글조차 율문 위주로 흐르다보니 어떤 시가 형식이 삽입되더라도 그리 낯설게 보이지 않는다.

● 생생한 의태어, 의성어
 판소리계 소설은 살아 숨쉬는 듯한 순수한 우리말과 생생한 느낌의 의성어 의태어가 고스란히 채록되어 있어 다른 국문소설 한문소설 혹은 번역소설에서 맛보기 어려운 독특한 감칠맛을 느끼게 한다. 이런 부분은 개인의 독서 때보다도 강담사, 강독사 같이 여러 청중을 대상으로 읽어줄 때 한결 그 감칠 맛이 높아졌을 것이다.

2. 수사법과 시제
   수사법에서 판소리계 소설은 감탄법, 나열법에다 직유나 은유를 많이 쓰고 있다.
굳이 말을 고르지 않고 일상의 구어를 그대로 받아 들이다보니 이야기가 외설스럽게 흘러갔고 천하고 거친 말이나 사투리가 걸러지지 않은 채 그대로 문장 속에 들어와 독자들을 당황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미 사라진 조선 후기 민중의 말과 삶을 판소리 소설을 통해 들여다 볼 수 있음은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니다.
   판소리계 소설에서 시제는 거의
현재진행형으로 처리된다. 소설 일반이 과거시제로 쓰여지는 것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 역시 판소리 연행이 공연성과 현장성 중심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판소리 연행은 출연자나 관객에게는 오직 특정 공간에서 벌어지는 <현재> <여기>에서의 일이므로 그 공연의 자취인 소설 역시 현재진행형으로 된 것이다.

3. 전지적 시점과 편집자적 논평
화자는 서술을 중간에서 조절하는 보이지 않는 작품 중에 숨어있는 객관적 인물이다. 작중 인물과 그들을 둘러싸고 빚어지는 사건 상황의 전개는 물론 설명과 묘사까지도 화자가 어떻게 이야기하느냐에 달려있다. 판소리계 소설에서 화자는 전지전능한 입장(전지적 시점)에서 이야기를 엮어 나가지만 느닷없이 그 화자가 얼굴을 드러내고 사적인 말을 하는 경우(편집자적 논평)가 있다.
   
춘향의 곧은 마음 아프단 말 하여서는 열녀가 아니라고 저렇게 독한 형벌 아프단 말 아니하고 제 심중에 먹은 마음 낱낱이 발명할제 집장가가 길어서는 집장하고 치는 매에 어느 틈에 할수 있나. . . . .
   위의 예에서 화자는 직접 보이지는 않으나 춘향의 옥에 갇힌 춘향을 측은하게 보고 그 심정을 드러내는 말, 즉 화자의 느낌 판단이 들어가 있다. 이런 부분에서 우리는 바로 화자이면서 창자인 바로 그 얼굴을 보게된다.

4. 주제

1) 춘향전
   <춘향전>은 사설에서 소설로 정착되고 나서 사본 30종 목판본 7종 활자본 50-60종이 남아있어 작품의 종류가 많다. 춘향전은 남원을 무대로 펼져지고 구체적으로 그 작품 속의 광한루나 오작교가 아직도 남아있어 지방민들 중에는 이를 사실담으로 여기기도 하나 설화에서 유래한 이야기임에 틀림없다.
   춘향은 기생으로 개인의 영달과 신분 상승에 성공한 운좋은 여인으로 결말이 나지만 신분간 경계가 엄격했던 조선 사회에서 이런 전개는 현실적으로 맞지 않다. 여염집 여인도 아닌 기생의 딸이 파격적으로 양반의 정실부인으로 오를 수 있었던 뒤에는 현실이 그렇지 못하니 소설을 통해서나마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 민중이 바람에 힘입은 것이다. 신분간의 장벽을 넣어 인간과 인간으로 만나고자 하는 민중의 욕구는 파격적인 전개까지 개의치 않을 만큼 강렬했던 것이다.
   춘향은 천한 집안에서 아비없이 자란 아이답지 않게 정신적으로 성숙된 면모를 보인다. 기생이라면 그의 어머니가 생각하듯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호의호식할 수 있다면 어느 자리나 상관이 없다는 식으로 처신하는게 보통이었을 터인데 그녀는 이도령과의 사랑을 위해 목숨까지 바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하지만 춘향의 지고한 사랑만으로 변사또의 폭압을 극복하기는 어려웠다. 춘향이 독한 마음으로 변사또에게 저항할 때 이도령은 현실적으로 춘향을 구할 방도를 찾았고 그래서 어사가 되어 남원으로 내려왔다. 양반의 신분에 있으면서 그에 연연하지 않고 굴레를 벗어던지고 사랑을 택했다는 점에서 이도령은 근대적 사고의 소유자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두 사람 사이에 맺어진 믿음과 사랑은 독자에게 변사또가 춘향에게 어떤 폭압으로 누르든 기필코 극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심어준다. 이미 예정된 것이기는 하나 변사또는 결말 부분에서 일시에 그 위세를 잃어버리게 된다. 바로전까지 전형적인 탐관오리로서 민중의 힘을 업은 춘향과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던 변사또는 이도령이 출현하자마자 줄행랑을 치기에 바빴다. 이 대목에서 춘향과 이도령보다 더 기뻐하며 함성을 지른 무리는 춘향의 뒤에서 그녀에게 정신적 응원을 아끼지 않았던 숱한 민중들이었다. 춘향은 모든 시련을 딛고 일어서 억눌린 민중에게 카타르시스와 희망을 보여준 여성 영웅과 같은 존재이다. 밖에 비친 주제는 춘향의 정절이라 하겠으나 환경과 신분을 넘는 남녀간의 지고한 사랑도 그에 못지않은 주제라 하겠다.

2) 흥부전
   단순하게 보면 흥부전은 형제간의 의리와 그 갈등을 비판적으로 다룬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시각에서 살필 때 조선후기 사회상과 평민의식을 잘 드러내는데 더 큰 뜻이 있었던 것같다. 특히 <흥부전>은 동요하는 조선후기 사회상 가운데 경제적인 면에서 특히 여러 점을 시사해주고 있다.
조선 후기는 이앙법과 경작법의 발달로 농민 중에서도 부를 누리는 사람이 늘어났으며 무역과 장사로 대도시 주변에 부유한 상공업자들이 급격히 늘어가던 시기였다. 이 시기의 졸부의 한 전형이 놀부이다. 그는 흥부와 여러 면에서 달랐다. 흥부가 양반의식을 지니고 가난한 살림에도 예의와 염치를 소중히 하는데 비해 놀부는 시세에 맞춰 영리하게 재산을 불려 나갔다. 그의 그런 적응력은 나무라기는 커녕 다른 여러 사람이 본받아야할 점이었다. 그러나 그는 부모 유산을 혼자 가로채는가 하면 아이가 12명이나 딸린 아우 흥부가 굶주림에 지쳐 구걸하러 오자 뭇매질하여 내쫓는 포악함을 보인다. 그는 극단의 이기주의자로 결코 관대함이나 인정을 베푼 적이 없었다. 형제간이지만 흥부는 당시 가난과 고초에 허덕이지만 나날을 고통으로 이어가던
민중 대부분의 삶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으며 반대로 놀부는 고리대금업자, 지주 혹은 악랄한 상공업자로 평민의 피를 빨고 있는 졸부를 상징한다고 보아 좋을 것이다.
민중들은 흥부를 동정했고 놀부를 응징하는 방법을 고심했다. 그러나 그 방법을 현실안에서 찾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신화가 없어진 시대에 그런 이야기 전개방식을 좇게 되었고 제비와 박을 통해 현실적으로 처리하기 힘든 문제를 단숨에 해결하였다. 유치한 발상이기는 하나 제비와 박은 권선징악의 결말을 가져다주는 고마운 존재이다.
   형제간의 우애는 표면적 주제일 뿐 수탈과 착취, 그리고 복종과 희생으로 나누어지는 그 두 계층을 통해 경제문제와 당대 현실을 꼼꼼하게 보여주는데 더 큰 뜻이 있었다 하겠다.

3) 심청
   <심청전>에는 악인이 없어 다른 작품과 구별된다. 심청이 어려서부터 심한 고난과 시련을 겪지만 그것은 특정인의 훼방이나 보복 때문이 아니라 그 자신의 타고난 운명 탓이다. 그렇지만 그의 어머니 곽씨나 심청은 전세에 천상에서 살다 지상에 내려와 다시 태어난 인물들로 설정하고 있어 사실 지상의 인간이 겪는 단순한 비극과는 사뭇 다르다. 천상과 천인의 결연은 일시적인 것이고 언젠가는 귀양이 끝나고 구원될 것이라는 가능성이 숨어있는 것이다. 심청이 죽었으되 다시 살아나는 재생 모티브의 삽입은 그러므로 그리 어색하지 않게 된다.
심청은 그녀를 낳고 일주일만에 세상을 떠난 곽씨부인과 같이 심봉사에게는 구원자나 다름없다. 심청의 비극은 그 아버지가 집안 사정을 헤아리지 못하고 공양미 삼백석을 낼 수 있다고 덜컥 화주승(시주를 얻어 절의 양식을 대는 중)에게 약조하면서 시작된다. 아버지가 눈을 뜰 수 있다면 자기의 몸이라도 바치겠다고 벼르던 심청이 공양미 삼백석에 팔려 임당수에 몸을 던지지만 여전히 심봉사는 앞을 보지 못하고 딸의 죽음으로 해서 절망감과 외로움만 더 쌓이고 만다. 이 소설의 전반부는 신성한 내력을 지닌 곽씨부인, 심청, 장승상 부인등의 등장과 심청의 죽음으로 신성적 분위기와 비극성이 강조된다. 생기발랄한 인물이나 분위기를 찾기 어렵다.
그러나 후반부는 다르다. 뺑덕어미가 나타나 흥미와 발랄함을 한껏 불어넣는 것이다. 그녀는 외상 달기를 밥먹듯하여 심봉사의 재산을 거덜내는가 하면 풍기문란한 행동으로 동네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하곤 한다. 당시 어디서나 볼 수 있었을 법한 이 여인을 중심으로 독자들은 향촌의 풍경을 보다 잘 볼 수 있고 일순 익살과 해학을 맛보면서 실컷 웃게 된다. 심봉사와 뺑덕어미의 결합은 심각하게 진행되던 줄거리를 이완되게 하는 데 큰 몫을 한다.
그러나 심청의 재생으로 초점은 다시 심봉사에게서 심청으로 넘어가고 이야기는 급하게 해결을 향해 치닫게 된다. 아버지에게 효를 다한 심청을 상제가 구원해줌으로써 그 뒤의 국면은 모두 화해롭게 전개될 수 있었다. 모든 가치를 넘어 부모에게 일방으로 바친
심청의 고귀한 헌신이 결국은 행복을 불러왔다는 결말은 불교적 세계관이라 할 수도 있겠으나 계층을 가리지 않고 누구나가 바라던 바로 그 결과였다. 심청전의 주제에서 이외 다른 것을 생각하기는 어렵다.

4) 토끼전
   <토끼전>은 전형적인 우화소설이다. 용왕이 중한 병에 걸려 죽음을 앞두고 영약을 찾는 것이 발단이다. 여러 동물의 출현이 곧 인간의 여러 부류를 빗댄 것이라면 여기서 왕은 최상의 지배층일 것이고 별주부는 그런 상층에 끝내 충성을 다하는 복고적 주변 세력이고, 토끼는 상층부의 수탈과 주구에 시달려온 평민이거나 그 이하의 신분층을 가리키는 것이겠다.
중세봉건시대 상층부 그 중에서도 임금에 대해서는 비판적 눈길조차 드러낼 수 없었음을 감안할 때 <토끼전>의 풍자는 매우 신랄한 면이 있다. 일방적으로 희생만 강요당하는, 그러면서도 삶을 지탱해주는데 도리어 감사해야 하는 그 암울한 시대에서 평민들은 이제 스스로 슬기나 기지를 발휘하면서 억압의 상황을 헤쳐 나갈 수 있다고 자신하게 된다. 토끼는 앞장서서 그 일을 하는 인물이다.
용왕의 병은 중세 봉건사회의 총체적 몰락을 예고한다. 이본(異本)에 따라서는 별주부도 용궁으로 돌아가길 포기하고 토끼와 더불어 육지에서 사는 것으로 처리했는데
자아를 각성하는 근대적 사고가 민중들에게 널리 퍼지고 있음을 알아챌 수 있다. 지배층에 대항하여 민중이 뭉치고 새시대를 열어가자는 것이 이 소설의 주제일 것이다.

                       -- 김승호, <판소리와 판소리계 소설의 이해>에서

5) 변강쇠전
   평안도 월경촌에 옹가라는 여자가 있다. 열 다섯에 시집가서 남편이 죽는데, 매년 계속 개가하나 매번 죽는다. 스무 살에도 남편이 죽자, 동네 남자들이 이 여자에게 자꾸 덤벼드는 일이 벌어진다. 결국 동네에서 쫒겨나 청석골에서 변강쇠를 만나 궁합을 본 뒤 혼례를 치룬다.
 둘 다 궁합이 잘 맞아 도회지에서 살다가 변강쇠가 일은 아니하고 싸움만 하여 지리산 속에 들어가 살기로 한다.산 속에서도 일을 아니하는데, 하루는 여자가 나무를 해 오라 하니 길가의 장승을 뽑아 와서 땐다. 이 일로 장승들이 전국적으로 모여 회의를 연 뒤, 변강쇠의 온몸에 병이 들게 하여 죽게 한다. 변강쇠는 여자에게 수절을 당부하며, 만일 그렇지 아니하면 그 상대 남자는 죽게 될 것이라며 죽는다.
  여자가 변강쇠의 주검을 치운다는 핑계로 중을 꼬셨으나 그 중이 갑자기 죽어 버린다. 또 한 남자를 불러 같이 살자고 약속한 뒤 송장을 치다가 그 남자도 죽는다. 이렇게 계속하여 여덟이 죽게 되었고, 몇 사람은 그 송장에 손이 붙어 떨어지지를 아니하였으나, 결국 변강쇠의 영혼을 위로하여 장사를 치룬다.
  모쪼록 오입하지 말기를 부탁하며 끝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