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나폴레옹은 왜 교황과 화해했을까 ? ( http://blog.daum.net/nasica/6862386 ) 편에서 언급했듯이, 왕정복고를 위해 반란을 일으켰던 올빼미당의 카두달은, 나폴레옹 암살을 기도하다 체포되어 몇년의 감금 생활 끝에 결국 처형됩니다. 체포될 당시에는 제1통령이었던 나폴레옹은 카두달이 처형될 즈음에는 이미 황제로 등극한 다음이었는데요, 이때 카두달은 다음과 같은 최후의 말을 남기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우리는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 프랑스에 왕을 다시 세우려고 하다가, 결국 황제를 세웠다."
(조르주 카두달... 나폴레옹과 두차례에 걸쳐 회담까지 했었던 올빼미당의 거두였는데...)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약간 의아해집니다. 왜 나폴레옹은 왕이 아니라 황제가 되었을까요 ? 대체 왕과 황제는 무엇이 다른 것일까요 ?
우리가 흔히 아는 황제라는 단어는, 제국의 왕을 일컫는 것입니다. 보통 밑에 왕들을 거느릴 정도로 크고 강한 국가의 지배자를 황제라고 하지요. 극동 지역에서는 중국의 왕을 보통 황제라고 합니다. 원래 황제라는 단어 자체도 중국의 전국 7웅 시대가 진나라의 천하통일로 끝나면서, 진나라 왕이 '왕보다 더 멋진 뭔가 삼빡한 단어가 없을까'라고 생각한 것에서 나온 것입니다. 고대의 삼황오제에서 '황'과 '제'를 따 합쳐서 황제(皇帝)라 칭하면서 자신이 제1대 황제인 시황제(始皇帝), 즉 진시황이 되었지요.
서양에서도 중국처럼 강력하고 큰 대제국이 있었습니다. 바로 로마지요. 로마는 초기에 왕정이었다가 공화적을 거쳐, 결국 케사르의 조카 아우구스투스가 사실상의 제정(帝政)을 창시합니다. 그러나 정작 아우구스투스 본인은 암살당한 위대한 삼촌의 전례도 있고, 또 로마인들이 고대로부터 왕을 싫어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왕(Rex)의 칭호를 쓰지도 았았고 그에 해당하는 단어나 칭호를 새로 만들지도 않았습니다.
(케사르의 암살... 이것이 로마에서 왕을 대접하는 방법이다 !)
그래서 우습게도, 자신의 이름인 케사르가 그대로 황제를 뜻하는 단어가 되어 버렸습니다. 러시아의 짜르(Czar)나 독일의 카이저(Kaiser) 등은 모두 케사르(Caesar)에서 나온 단어이고, 이는 동양에서 번역될 때 황제로 번역이 됩니다.
하지만 영어로 분명히 황제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Emperor입니다. 이 단어는 어디서 나왔을까요 ? 역시 로마의 전통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Emperor는 임페라토르(Imperator)라는 칭호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이 임페라토르라는 칭호는 관직이나 지위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었고, 또 국가에서 부여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는 로마가 공화정이었을 때, 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둔 장군에게 부하 병사들이 도열한 상태에서 크게 외쳐줌으로써 부여하는 명예로운 칭호였습니다. 원로원이나 더 상위의 지휘관이 내려주는 것이 아닌, 부하 병사들이 장군에 대한 존경심에서 자발적으로 외쳐주는 칭호였으므로 정말 뜻깊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옛말에 '윗사람은 속여도 아랫사람은 못 속인다'라고 하쟎습니까 ? 함께 생사를 같이 한 부하 병사들로부터 받는 칭호야 말로 정말 명예로운 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얼굴만 보면 전혀 마그누스(Magnus)틱해보이지 않는 폼페이우스...)
부하 병사들로부터 이 칭호를 받으면 원로원에 개선식을 요구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로마 시민들 앞에서 빛나는 개선식을 하고나면, 당연히 인기가 수직상승했으므로, 정치적으로 야망이 있는 장군들은 어떻게든 이 임페라토르라는 칭호를 얻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따라서, 로마 공화정 초기에는 임페라토르라는 칭호를 받은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만, 유명한 폼페이우스나 율리우스 케사르가 임페라토르라는 칭호를 부하들로부터 받은 뒤 정치적으로 확 뜬 이후에는, 누군지 잘 알려지지도 않은 많은 장군들이 임페라토르라는 칭호를 부여받습니다. 그야말로 임페라토르의 홍수가 벌어진 것이지요. 이는, 많은 장군들이 그 칭호를 받아내기 위해 부하 병사들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의 사전 운동을 벌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물론 이때는 폼페이우스 마그누스가 아프리카 전장에서 빛나는 승리를 거둔 뒤, 병사들을 치하하기 위해 임시로 쌓은 연단에 올라설 때 도열한 수많은 병사들이 일제히 엄지 손가락을 힘차게 뻗어보이며 하늘이 무너지도록 큰 소리로 '임페라토르'라고 외쳐줄 때의 감동은 없었겠지요.
아무튼 아우구스투스는 원로원(Senate)과 집정관(Consul), 호민관(Tribune) 3자의 권력을 모두 한몸에 가진 황제가 되는데요, 가장 명예로운 칭호인 임페라토르의 칭호도 받게 됩니다. 이때부터 임페라토르는 주로 황제만이 가지게 되었습니다. 간혹 황제 이외에게도 이 칭호가 주어지기도 했습니다. 가령 아우구스투스의 친척인 티베리우스 아우구스투스 게르마니쿠스에게도 병사들이 게르마니아에서의 승리를 기념하며 임페라토르라고 불러줍니다.
(눈동자가 없어 더 카리스마틱해보이는 옥타비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케사르)
나중에 로마 제정이 어지러워지면서 군인 황제들이 속출했는데요, 황제라는 단어가 임페라토르로 굳어진 것은 바로 이때라고 합니다. 즉, 전임 황제가 간단히 암살되면서 다른 장군들이 손쉽게 황제가 되는 분위기에서, 병사들이 군영 내에서 장군을 임페라토르라고 외쳐주는 것은 곧 반란을 뜻하는 것으로 인식되었습니다. 곧 우리 장군도 황제가 되겠다는 것을 선언하는 것이었으니까요.
(이들이 당신을 향하여 Imperator ! 라고 엄지손가락을 뻗어 외쳐주면 당신도 곧 황제 !)
이처럼 임페라토르, 또는 황제라는 단어는 단순히 부모 잘만난 덕에 왕위를 이어받은 왕과는 그 기원을 달리 했습니다. 로마의 전통에 따르면, 황제라는 직위는 원칙적으로 군국주의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것이었고, 외국의 왕들을 때려잡는 역할을 많이 했던 것입니다. 나폴레옹은 바로 그 때문에, 부르봉 왕가를 쫓아낸지 얼아되지 않은 프랑스 국민들 위에 왕이 되기보다는, 군사적 승리와 권위, 그리고 더 나아가 미래의 영광을 뜻하는 황제가 되었던 것입니다.
(내 황위는 누구처럼 아빠에게 물려받은 것이 아니니라...)
나폴레옹이 황제로 즉위하던 당시, 유럽에는 2명의 황제가 있었습니다. 바로 신성로마황제의 타이틀을 쥐고 있던 오스트리아의 프란츠와, 짜르라는 이름 덕분에 자동으로 황제로 분류되던 러시아의 알렉상드르였습니다. 사실 이 두 나라는 그 영토의 크기나 인구, 동원가능한 병력의 웅대함으로 인해서 (사실 뭐 고만고만한 것이 사실이지만) 유럽에서 황제라고 칭하기에 그리 부끄럽지 않은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사실상 신성로마제국은 이때 이미 세력이 많이 기울어 있었습니다. 오스트리아는 이때 이미 오스트리아 이외의 지역, 그러니까 헝가리나 발칸 반도 쪽에 대해서는 사실상 권력을 가지고 있지 못했거든요. 그래서 볼테르도 신성로마제국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웃는 글귀를 남겼습니다.
"신성하지도 않고, 사실 로마와 상관도 없고, 게다가 제국도 아니다 (neither Holy, nor Roman, nor an Empire)"
(미소가 잘 어울리는 볼테르, 글의 재치도 남달라요)
나폴레옹이 황제가 된 뒤 처음으로 붙은 대규모 전투가 바로 아우스테를리츠였습니다. 이 전투에는 프랑스에 저항하여 동맹을 맺은 오스트리아, 러시아가 참전했는데, 모두 황제 국가였고, 특히 그 연합군의 (명목상의) 지휘자는 러시아 황제 알렉상드르 1세였습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이 전투를 삼제회전(三帝會戰), 즉 3명의 황제가 모여 싸운 전투라고 불렀습니다. 사실 이 전투에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는 직접 참전하지 않았습니다만, 나폴레옹이 황후 조세핀에게 보낸 다음 편지 때문에 삼제회전(三帝會戰)의 이미지는 완전 정착되어 버렸습니다.
(흔히 나폴레옹 최고의 전투로 불리는 아우스테를리츠.. 출연자들의 직위도 남다릅니다)
"오늘 두 명의 황제가 지휘하는 러시아-오스트리아 연합군을 무찔렀소. 다소 피곤하구려..."
아주 간단하면서도 정말 있는 잘난 척은 다 하는 명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솔직히 멋있기는 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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