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환 부경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 |
바다의 색은 영원을 담고 있다. 바닷물의 색은 남색, 파랑, 청록, 녹색과 같은 단파장 색이다. 단파장 색이란 무지개의 색 중에서 짧은 파장을 가진 색들이고 이 색들은 차갑고 냉정하고 이성적이다. 그래서 때로는 멀리 바라보거나 때로는 가까이서 나를 들여다보는 내면의 색이다.
파랑이라는 단어 자체에서 묻어나는 느낌 자체가 동화적이고 투명하다. 파랑 중에서도 바다의 파랑과 강의 파랑은 깊이가 다르다. 바다의 깊이가 깊기 때문에 바다의 파랑은 색이 깊다. 때로는 바다 속 같이 짙기도 하다. 그래서 바다의 파랑은 투명하다 못해 빠지면 나오지 못할 깊이감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차고 깊은 바다색과 어울리는 색은 어떤 색일까. 많은 해양도시들의 색이 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세계적으로 브랜드적 가치를 가진 도시, 살기 좋은 도시, 경쟁력을 가진 도시에 단골 손님으로 선정되는 도시들은 항구 도시가 많다. 시드니, 런던, 뉴욕, 바르셀로나, 샌프란시스코, 홍콩, 상하이. 이 많은 도시들이 항구도시들이다. 시드니항이라고하면 떠오른는 조개껍대기같은 오페라하우스가 백색이다. 샌프란시스코에 떠 있는 유람선의 백색, 바르셀로나 해변가에 임시건물같이 보이는 천막식당들의 백색지붕들, 보스포러스해협을 따라 끝없이 나타나는 백색벽의 주택을 가진 이스탄불, 이 해양도시들이 모두 바다색의 파트너로 백색을 선택하였다.
■백색이 갖는 의미
해양도시들의 건축물이 백색을 많이 사용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가장 쉬운 답은 바다에 있다. 바다에서 치는 파도의 색은 백색이다. 바다에서 보이는 파란 하늘에 떠 있는 구름도 백색이다. 바다에서 보이는 액센트색은 모두 백색인 것이다. 백색은 자연에 있는 그대로 바다색과 어울리는 색이다.
그러면 백색은 어떠한 의미를 우리에게 주는 것일까. 한국인의 백색선호 현상에서도 백색이 가지는 심리적 의미를 읽을 수가 있다. 한국인이 백색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한 학설 중 가장 설득력이 있는 논리는 소색(素色)에 대한 경외심이라는 설이다. 우리는 단군 이래 자연을 숭배하는 범신론적인 종교관이 민족정서에 흐르고 있다. 그래서 우리의 행동을 하늘이 보고 있다는 긍정적 감시의식이 있다.
우리 선조들은 하늘과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나타낼 때는 깨끗하고 소박한 색인 소색(素色)을 선택하고, 소색은 흰색이 되었다는 설이다. 우리의 정서에 흐르는 깨끗한 색의 의미같이 백색은 의미의 색이다. 자연에 대한 숨김 없는 마음이 백색으로 표현된다. 바다색이 가지고 있는 영원함과 백색이 가지고 있는 순수함이 시각적으로 서로 조화가 되는 것이 해양건축물에 백색이 유난히 많은 이유라고 생각된다.
지중해에 조그만 섬이나 항구는 대부분의 건축물 외벽이 회반죽으로 이루어져 있다. 회반죽은 건축물을 백색으로 물들게 하고, 바다를 향해 촘촘히 들어서 백색 건축물들은 바다와 어우러져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루게 된다. 지금도 지중해를 비롯한 백색건물을 지향하는 바다마을에는 마을 한쪽에 백색 회반죽을 물에 풀어놓은 웅덩이가 있고 공동으로 백색회반죽을 떠서 가져가 칠하곤 한다. 백색건축물이 만드는 풍광의 기억이 지금도 해양건축의 기본을 백색으로 만드는 마음의 동력이 되곤 한다.
■밝고 선명한 색채의 향연-해양건축의 색
해양건축이 백색으로만 되어있는 것은 아니다. 백색은 혼자 있을 때는 외롭고 슬픈 색이 될 수 있다. 백색은 항시 동반자가 요구되는 색이다. 해양건축의 백색의 동반자는 어느 색이라도 무방하다. 단, 바다와 같이 순수하고 원초적이어야 한다. 그래서 바다에 어울리는 색들은 원색에 가깝다. 내륙도시의 색이 무게 있고 점잖다면, 해양도시의 색은 천진하고 발랄하다고 할 수 있다. 색채의 속성으로 말한다면 도시의 색은 무채색이나 저채도의 색이다. 대부분 회색 기미의 부드럽고 무게감이 있는 색조(톤·tone)의 색이다.
반면 해양건축의 색은 색기미가 뚜렷한 밝은 색이다. 색 속성으로는 중-고채도의 색이다. 그래서 뚜렷한 자기 주장이 있는 색이다. 밝고 선명한 색채의 향연, 이것이 해양건축의 색의 본질이다. 설혹 세련됨이 모자라거나 너무 솔직해도, 바다의 순수함이 배어있어야 해양건축의 색이다.
■'우리의 색'을 찾아야
우리의 해양도시가 갖고 있는 색의 이미지는 어떨까. 과연 영원함과 그리움, 순수함이 있는가. 색은 내면에서 나오는 것이다. 부산이나 경남의 많은 항구도시의 색채를 서울에 소재한 건설사에서 정해 내려보낸다. 우리가 행정적 절차를 통해 조절을 해도 색을 만드는 주체가 내륙도시의 심성을 가졌다면 해양도시 색과는 거리가 있는 경우가 많다.
이제는 우리의 색을 찾아서 내 걸어야 한다. 해양건축에 어울리는 색이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으며 우리 심성과 바다에 물어보고 해양건축의 색을 찾아내는 작업을 해야 한다. 프랑스의 장 필립 랑클로는 이러한 노력을 색채지리학(color-geography)이라 개념정리하고 프랑스의 도시색을 지역에 맞추어 만들어갔고, 지금의 프랑스 도시색을 다시 살려냈다.
청마 유치환이 깃대에 내어 걸던 그 순수한 노스탤지어의 색들은 지금 우리의 어디에 있을까.
국립 한국해양대학교 국제신문 공동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