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와 아랍어의 공방 속에, 어처구니 없이 파장이 난, 네 번째 히어링이
있은지 6 주만이다. 법정에 다시 선 정 부장은 초조함 속에 원고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뒷 좟석에 앉아 있는 M 변호사와 최 상무도 어제 밤에 도착하여, 여독이
아직 풀리지 않은 듯, 가끔 시선을 허공에 박곤한다. 역시 뒷 좌석에
앉아 있는 압둘 변호사도 판사에게 제출한 준비 서면의 복사본을 뒤적이고
있을 뿐이다. 오후 4 시가 되었는데도 원고석은 비어 있다.
(사우디 서부 지역의 제일 큰 항구 도시인 제다시 )
* * *
엊 저녁에 정 부장은 압둘 변호사 사무실을 방문하였었다. 재판정에 제출
할 준비 서면의 내용을 사전에 점검 하기 위해서다.
서류가 큰 묶음으로 싸여 있는 것을 내려다 보며 정 부장이 물었다.
" 무슨 적당한 서면 자료가 있었던가요? "
" 1812 년도 영국 선박이 사우디에 와서 선원들이 불법 행위를 하였던
기록이 있어서 그때의 판례를 설명 하긴 했는데, 지금 우리의 경우와는
조금 다른 경우 입니다. 그들이 저지른 불법 행위는 선박 위에서 이루어
진 경우입니다. "
" 그 때의 선례를 들었다는 이야기이지요? "
" 이삼일 동안 구석 구석을 다 뒤져 보았는데도, 적당한 사례가 나오지 않는
군요 "
" 그래도 애 많이 쓰셨습니다. 이번에도 " 마하티콤 " 작전으로 나가지요. "
최 상무와 M 변호사가 공항에 도착 했을 때도, 정부장은 같은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 그래, 당신 수고가 많군, 그래 이번에도 다른 뭐 특별한 작전이라도
준비 된거 있나? "
" 이번에도 마하티콤 작전밖에 없는 것 같아요. 1812 년도 영국 선박이
사우디 항구에 입항했을 때 선원들이 불법 행위를 해서 시비가 붙은
적이 있었대요. 그 때는 선원들이 배 안에 있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되었던 것 같아요 "
" 배 안에서 이루어 진 일이라면 당초에 시비거리가 될 수 없는것 아닌가?"
" 글쎄, 이스람믹 율법에 의한 금기를 저질렀다면, 처벌 대상이 될 수도 있지요.
돼지 고기를 먹는다든가, 헤자브( Hijab - 얼굴만 내 놓고 전신을 가리는
사우디 여성 전통 의상 )를 입고 지나가는 여성에게 추파를 던지던가, 하면
형사 처벌감이지요. 뱃 사람들이란 여자들만 보면 환장 하지 않아요? "
그 동안 침묵을 지키던 M 변호사가 낮게 신음소리를 낸다.
" 1812 년도 판례라 . . . . . "
* * *
단상에 근엄하게 앉아 있는 세사람의 판사 중 가운데 주심 판사가 앞 면에
걸려 있는 벽 시계를 힐긋 처다보며 아랍어로 빠르게 입을 연다. 정 부장은
이미 통역 없이도 그것이 개정 선포임을 알아 차린다. 아직도 원고석은 비어
있다.
" 지금부터 사건번호 xxx 호 에이전트 수수료 청구 및 손해 배상 청구 소송에
관한 재판을 진행 합니다."
그리고 빈 원고석 자리를 물끄러미 내려다 본다. 그리고 옆 판사에게 무슨
말인가 주고 받는다. 그리고 다시 피고석을 내려다보며 정 부장에게 이른다.
" 피고측의 별론부터 듣겠습니다. 피고측에서 변론을 시작 하십시요! "
정부장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따라 일어난 통역에게 암시를 준다.
암시란 가능하면 통역을 천천히 하라는 암시다.
" 예, 존경하는 재판장님!, 변론의 기회를 먼저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통역에게 시선을 준다. 통역이 천천히 뜸을 드리며 아랍어로
통역한다.
" @#$&*....&^%$#@@ .. . . . #$@&*%! "
통역이 끝나자 정 부장은 조용히 아래 배 단전에 기를 모은다. 그리고
심 호흡을 하고 변론을 계속 한다.
" 존경한는 재판장님! 피고는 외국인 입니다만은 사우디 아라비아 왕국을
사랑하고 사우디 국민을 존경하는 사람입니다. "
통역에게 바톤을 넘긴다. 통역이 끝나자 다시 시작한다.
" 세계 여러나라를 다녀보고 경험도 해 보았지만, 사우디 왕국처럼 전 국민이
단일 종교로 단합되고 믿음이 깊은 나라는 경험하지를 못 했습니다. 유일 신
알라에 귀의하여 그 분의 가르침에 복종하고, 매일 다섯 번씩 경배를
올리는 국민은 형제 국가인 아랍 국가들을 제외하면 세상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
크게 한숨을 몰아 쉬고 재판장들의 얼굴 표정을 읽어 나간다. 통역이 진행
되는 동안 과연, 판사들의 얼굴 표정이 점점 변한다. 의외라는 표정이다.
통역이 끝나기를 기다려 정 부장은 한층 더 목소리를 낮게 깔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계속 한다.
" 사우디 아라비아 왕국에 체류하는 동안 피고는, 이스람 종교에 대하여
많은 것을 생각 해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출발 한것이 최근
에는 깊은 관심으로 변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코란은 물론, 무하
마드가 말하고 ( Qaul ), 행동하고( Fiul ), 인증( Taqreer ) 한 기록을
담은 성서, 하디스, 이즈마, 끼야스까지 시간을 들여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이 번에는 세 판사가 시선을 교환하며, 얼굴 표정이 서서히 놀라움으로
변 해 간다. 정 부장은 지긋이 판사들의 변해 가는 표정을 내심 즐기며,
통역이 끝나기를 기다린다. 통역이 끝나자 다시 이어간다.
" 특히 피고를 감동 시키는 것은 모든 무슬림은 하나님의 말씀인 코란과
더불어 하디스에 기록 된 무하마드의 언행 순나에 따라 행동함을 삶의
기본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즉, 모든 종교인이 그 처럼 깨끗하고
성 스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
통역이 진행 되는 동안, 이제 세 판사의 시선은 정부장에게 고정되어
움직일 줄을 모른다. 놀라움의 도를 넘어 이제는 감탄하는 표정이다.
" 성서에 보면, " 노력하지 않으면, 거두지 말라" 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 약속을 하였으면 의역을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피고는 이런 성서의 가르침이 거룩하고 신성하다고 생각 합니다."
가운데 주심판사가 탁자 위의 찻 잔을 끌어 차를 한 모금 마시자, 옆의
판사들도 따라 마신다. 그리고 시선을 다시 정 부장에게 고정 시킨다.
( 역대 외국인 피고치고, 이슬람교를 마치 자기네 종교 처럼 떠들어
대는 작자는 한번도 본 적이 없는데, 대관절 이 작자는 사이비
무슬림 이냐? 아니면, 사탄이냐? )
정 부장은 잠시 뜸을 드린다. 통역이 끝나기를 기다려 다시 이어간다.
" 여기에 원고와 피고가 체결한 계약서가 있습니다. 이 계약서는
서로의 믿음으로 이루어 진 것입니다. 원고와 피고는 이 계약서에
명시 된 사항들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내기 위하여 함께 노력하자고
약속을 한 것이고, 약속 이행이 않 될 때에는, 계약서에 명시 된 바와
같이 처리하자고 약속을 한 것 입니다."
" 원고는 약속과는 달리, 함께 노력도 하지 않았고, 계약서에 명시 된
바와 같이 처리 하지도 않았습니다. 계약서에는, 쌍방 의견이 대립
될 경우에는 재판소가 아닌 국제 상공 회의소의 중재회의에서 중재가
이루어지도록 규정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본건은 마땅히 파리에 있는
국제 상공회의소 중재협의회에서 처리 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 합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자비로운 마음으로 선처를 바라는 바 입니다.
이상 피고의 변론을 마칩니다. "
정 부장의 변론이 끝 났음에도 불구하고, 장내는 잠시 숙연한 분위기가
계속 되었다. 그리고 통역이 끝 날 때까지도 원고는 법정에 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잠시 시선을 교환하던 세 판사중, 주심판사가 곧 이어 정회를 선언했다.
그리고, 아무도 예상치 못 했던 일이 벌어진 것은 잠시 후였다. 좌측에
자리하던 중년의 판사가 단상으로 내려와 정 부장에게 다가왔다.
" 순나를 어떻게 배우고 있나요?, 누가 가르쳐 주는 사람이 있나요? "
정 부장이 뒷 좌석의 압둘 변호사를 가리킨다.
" 우리 압둘 변호사에게 배우고 있습니다. "
두 사람 사이에 아랍어로 대화가 이루어 졌다. 판사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한다는 표시를 한다. 그리고 정 부장의 어깨를 두두리며
" 인 샬라! " 한마디를 남기고 자리를 떴다.
'관심 사 > 잡다한 것'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기의 엽기 재판 20 편 - 세기의 엽기재판, 확정 판결 (0) | 2009.12.07 |
---|---|
세기의 엽기 재판 18 편 - 음모 (0) | 2009.12.07 |
세기의 엽기 재판 11 편 - 파 장 (0) | 2009.12.07 |
세기의 엽기 재판 10 편 - 사하 마티콤! ( 존경 하는 재판장님! ) (0) | 2009.12.07 |
세기의 엽기 재판 8 편 - 두 번째 히어링 (0) | 2009.12.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