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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성씨의 뿌리... 자신이 한족인줄 믿고사는 소수민족 성씨포함

지식창고지기 2009. 12. 27. 10:56
中교수 “순수한 漢族은 없다”… 多민족 섞여 혈통 불분명

2007년 02월 16일 | 글 | 베 이징=하종대 동아일보 특파원ㆍorionha@donga.com |

일개 민족이 전 세계 인구의 19%인 13억 명이나 될 수 있을까.

이런 의문을 가진 학자가 있었다. 중국 란저우(蘭州)대 생명과학학원의 셰샤오둥(謝小東) 교수. 회족(回族)인 그는 한족(漢族)과 서북지역 소수민족의 유전자(DNA)를 몇 년에 걸쳐 조사했다. 중국 서북지역 소수민족의 기원과 이동 경위를 파악하기 위한 연구였다.

조사 결과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다는 한족은 실제로 1개의 민족이 아니었다. 한족이라고 부를 만한 순수한 혈통이 존재하지도 않았다.

중국 언론은 13일 셰 교수의 연구 결과를 자세히 보도했다.

셰 교수는 “오래 전부터 한족은 중원(中原)에 살고 있는 것으로 여겨졌지만 이는 어느 한 시기에 한족을 주변 국가 또는 민족과 구별하기 위해 지역적으로 획정한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일반적으로 ‘염제와 황제의 자손(炎黃子孫)’으로 생각돼 온 한족이지만 연구 결과 염제와 황제의 발원지는 중원이 아닌 ‘북적(北狄·북쪽 오랑캐)’지역으로 드러났다는 점이다.

황제(黃帝)의 발원지는 현재의 간쑤(甘肅) 성 친양(沁陽)에서 톈수이(天水)에 이르는 지역이고 염제(炎帝)의 발원지는 간쑤 성 동부에서 산시(陝西) 성 서부에 걸쳐 있는 황토고원으로 이들 지역은 원래 ‘북적’ 지역이었다.

중국 역사에 나타나는 중원의 범위는 산시(山西) 성 남부와 장쑤(江蘇) 성 서부 및 안후이(安徽) 성 서북부를 포함한 허난(河南) 성 일대. 따라서 이 지역에 사는 사람이 바로 중원 사람이라고 생각돼 왔지만 이 역시 사실과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셰 교수는 “연구 결과 현재 소수민족이 된 객가족(客家族)이 오히려 고대 중원인의 문화전통을 계승한 것으로 드러났다”며 “순수한 한족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오랜 기간에 걸쳐 주변의 소수민족이나 주변 국가가 한족과 융합한 결과”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셰 교수의 연구결과에 중국의 일부 누리꾼은 셰 교수가 한족의 ‘동포감정’을 훼손했다며 사죄할 것을 요구했다.

한족의 비율은 중국 대륙이 92%, 대만이 98%, 홍콩과 마카오가 각각 95%와 97%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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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동아>에서

“漢族, 단일민족 아니다 해!”

중국 유전연구소 충격 발표 … “지배민족 편입된 ‘가짜 한족’ 수천 년간 묵인”

중국을 여행해 본 사람이면 누구나 중국의 남쪽과 북쪽 사람의 생김새가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문외한이 보더라도 광둥(廣東) 지방 사람과 베이징 사람과는 겉모양이 뚜렷이 구분된다. 그런데도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자신들을 같은 한족(漢族)이라며, 한족과 닮지 않았다는 말에 상당한 불쾌감을 표하곤 한다. 그러나 최근 중국에서는 이들을 몹시 불쾌하게 할 만한 발표가 있었다. 54개 소수민족으로 이루어진 다민족 국가임에도 13억 인구의 92%가 한족이라는 중국 정부의 공식 인구 통계를 부정하는 연구결과를 발표했기 때문. 거대 순수 혈통으로 인정받던 중국 한족이 단일한 민족이 아니라는 이번 연구 결과는 중국 사회를 뒤흔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이번 발표가 중국 한족에게 더욱 충격적인 것은 중국 한족의 ‘순수혈통론’에 반기를 들고 나선 주체가 바로 중국 국영 연구소라는 점이었다. 중국 과학원 소속 유전연구소 인류유전자연구센터가 지난 5월 26일 15년 동안 진행한 중국인의 성씨와 유전자 관계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 한족이 단일한 민족이 아니라고 전격 선언하고 나선 것. 분석자료를 통해 연구팀이 내린 결론은 중국 남부 지역인 푸젠성(福建省)과 장시성(江西省)에 걸쳐 있는 우이산(武夷山)과 난링산맥(南嶺山脈)을 경계로 남쪽과 북쪽에 거주하는 ‘한족’이 혈연상으로 확연하게 구분된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연구팀은 두 개의 ‘한족’이 한족과 소수 민족 간 유전적 차이보다 더욱 큰 차이점을 보였다고 발표해 파장을 더했다.

난링 산맥 경계 두 개의 ‘별개 집단’

이 연구팀의 한 관계자는 “한족이 통치하던 송나라와 명나라 시기, 그리고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등 모두 세 차례의 인구조사 내용을 분석하고 500여 편에 이르는 고문헌과 족보를 참조했다”며 “동시에 수백만 명의 중국인 혈액을 검사해 분석한 결과 이와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고 주장한다.

유전학자들의 이런 연구 결과는 일부 소장 역사학자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더욱 힘을 얻고 있다. 중국의 역사는 황허(黃河) 유역 한족세력의 남방 침략과 정복의 역사였고, 이 과정에서 남방의 토착민이 자신의 출신을 속이고 한족 행세를 하면서 이같은 결과가 빚어졌다는 게 학자들의 주장이다. 북경의 한 역사학자는 “한족만이 중국 사회에서 정치적 파워를 가질 수 있는 상황에서 토착민들이 우월한 중화문화권에 편입하기 위해 한족임을 자처했다”며 “중앙 정부도 소수민족 복속정책의 일환으로 그것을 묵인하고 장려해 왔다”고 말했다. 한편 이들 ‘가짜 한족’ 외에도 한족과 소수민족 간의 결혼으로 인해 태어난 후손 중 절대 다수가 소수민족을 포기하고 사회생활에 유리한 한족을 택한 것도 한족 양산의 주요인으로 꼽힌다. 현재 중국에서 부모의 출신 민족이 서로 다르면 자녀에게 선택 권한이 주어지지만, 소수민족을 택하는 자녀는 거의 없는 실정. 바로 이와 같은 상황이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온 것이다.

결국 한족은 ‘가짜 한족’에 대한 묵인과 ‘민족 선택제’라는 소수민족 통치 기술로 그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이는 거꾸로 지배민족으로서 한족의 위치를 수천 년 동안 보전하는 힘이 되었다. 역사학자들은 소수민족을 한족의 수로 압도하려는 중국 정부의 ‘인해전술식’ 인구정책의 결과물이 바로 92%라는 통계수치라고 비웃는다.

어쨌든 ‘중화주의’라는 민족적 개념을 통치 이념의 전면에 내세우는 중국 당국에게 ‘한족이 사실상 두 개의 별개 집단’이라는 사실은 커다란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인지 인류유전자연구센터의 이번 발표는 국영 연구소의 발표임에도 중국 언론매체에 거의 소개하지 않고 있다. 한족의 이익이 중국 전체의 이익을 대변하였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단면이다.

< 소준섭/ 상하이 통신원 >
youngji@81890.net
 
 
중국 성씨의 뿌리... 자신이 한족인줄 믿고사는 소수민족 성씨포함
 

중국의 성씨들 중 최초로 성씨를 정리한 것이 宋의 百姓이며, 100가지 성이며, 원래 중국에서 성씨의 기원은 bc 2852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하지만 한국의 경우, 본관이 언제나 지명인데 반해, 중국의 경우는 꽤 틀려진다.한국은 언제나 지명(본관) +xx 氏; 다음은 중국의 성씨 차용 요소

*****중국은 ; 1.상나라 姜姚氏가 빈번히 쓰임

2.나라이름 宋, 吴 陳

3.고향이나 장소 .. 수는 적다

4조상이 받은 작위의 성을 이름으로 .伯爰

5.가족중에서의 서열을 말하는 성.(孟),  (仲), (叔) ji (季)-장남을 말함

6.직업관련  Sima (司马)군인을 말함/,陶도예가 /巫샤먼

7.동화된 부족명


  • 중국 북부 王)9.9%> Li (李)> Zhang (张)>劉
  • 중국 남부 陳> 10.6%>李>& #40644;>林


* 중국은 1姓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2가지 3-4자의 성도 있다.

한국도 소수지만 2자의 성이 있다.

수천개의 중국인의 姓이 있지만; 100개의 성이 전 인구의 85%를 차지한다.李 王 張이 약 7.9/7.4/7.1%를 구성하고 있다.즉 3성으로 3억명의 인구를 보유한다.

2자 성의 중국성 ;??(百里)  (東方) (獨孤)  (端木) (公孫) (穀梁) (賀蘭)  (赫連) (賀若)  (呼延) //소수민족 (万俟)>선비 .  (慕容) (歐陽) (沙吒)-터키 a Turkic surname

  •  직업 (上官) (司徒)  (司馬) -軍관계자  (司空)  (尉遲),   (西門),  (諸葛) (祝融)(左人) **現在 (2006); 현재 중국의 성씨와 한국의 성씨를 나름대로 비교했습니다.

    예를들어 중국성씨라고 해도  漢의 성씨가 아닌 소수민족의 성씨가 많다.

    ?,

    ??

    & #40852;

  •  

     빨강색; 한국 혹은 동이의 기원에 가깝거나 정확히 들어 맞는다.

    오렌지색 ; 漢족의 중국 혹은 한국과 관련없는 성씨 즉 타민족의 성씨

    ; 푸른색 중국성씨 검은색; 중국에 있으나 한국에 없는 성씨

    -분홍색; 漢 혹은 韓 중 하나지만; 판별어려운 성씨

    아직; 중국 대만 홍콩 싱가폴 월남 말레이지아 한국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한자 성이 쓰인다. 하지만 단정하기 이르다 다음을 보자.위 도표의 해석.

    -王-商의 왕의 개명/

    -李-타 민족의 개명된 성 삼국시대, 소수민족들 북방계가 趙 張 李로 개명 선비족이 李로 개명을 많이 함 ..선비족은 퉁구스계 북방민족 

     張; 원래의 시조는 예전부터 동이의 부족의 수령인 少昊에서 파생된 것

    -趙; 상고시대부터 , 역시 동이의 少昊天子;

    -;제무시절 ; 동이의 부락 수령 백익이 우 황제의 치수사업에 공을 들여 성을 하사받다帝舜時,東夷部落首領伯益因助治水有功

    -徐; 중국기원 찾을수 없음, 고조선에서 유래한 것이 徐氏라고 하는 것이 한국의 주장./////林-선비족///-


  • 高; 高夷族에서 나왔다고 함 동이.상고시대의 부터

    -鄭; 전설에 따르면; 염제의 시절 농업신의 성씨라고 함(한국에서는 , 일부 염제를 동이로 말하고 있다)《史記& #8231;五帝本記》

    -羅-夏나라때 동방의 유일한 檀군장의 시족을 라羅라고 칭함  한화된 胡가 羅

    -韓-중국은 周부터; 한국은 고조선부터, 오히려 한국쪽이 앞섬.

    -許-천축국의 무리중 중국 양츠강 근저에 살던 사람들에게 내린 성씨 인도인 무사계급.

    -潘-한국이나 월남에도 있다고 한다; 중국의 유래가 설명되지 않았다.

    -蘇 한국>중국순으로 출현한다.

    -呂;由魏가 성 개명  어쨌든 북방민족임에는 확실

    -魏 (사기)或在中国,或在夷狄라고도 했던 魏는 사실; 월지족이나 흉노계의 국가로 북방민족

    -田 丁 기원누락

    -沈 퉁구스 선비족의 개명; 선비족은 동이의 일부지만 고조선과의 연결은 ?

    -姜;염제 신농씨가 姜水에 살았다고 함; 역시 동이의 신화라고 한다.오히려 동이?

    -崔; 한국성씨라고 중국 wiki는 말하고 있다.^0^

    -金-한국에 무게를 두어 얘기하고 있는데 ; 역시 보통의 web이라면, 원래 淸부터 金氏가 나온다고 말한다.그런데 중국의 역사에도 동이나 청의 왕조, 혹은 흉노로 金을 말한다.물론 한국과 관계깊고, 직접적인 연관이 있지만.^^

    -한 무제때 흉노의 태자가, 김씨로 개명, -청의 국호가 금, 김씨로의 개명을 황제가 친히 내린적도 있다.그러니까 김씨는 중국에 있어요.란 말을 절대 할수 없을 것이다. 그 중국의 김씨는 한국계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秦東夷部落首領伯益的裔孫非/역시 동이 동이는 proto-korean의 가능성 충분

    -白.  혼동. 신라후대에 건너간 성씨로 되어있는데 중국 ㅡwiki에도 별다른 설명이 없고 唐시대 발생한 것으로 되어있다.唐朝时候有白居易元朝时候有白朴..어디가 앞서는지 알수 없다.

    -嚴-원래는 중국의 성씨지만; 만주족이 개명했었고 조선족중에도 있다고 .

    -尹삼국사기에 金氏는 소호금천 少昊金天에서 나왔다고 했다. 하지만 중국 소스도 尹은 소호금천씨 에서 나왔다고 말하고 있다.

    (通志·)氏族略載,少昊金天氏之子殷被封於尹城소호금천씨의 아들이 은으로 피해가 윤씨 성주에 봉해지다.***************

    우선은 시조만으로 판별한 것, 중국의 wiki로 확인(80%)+사전에 알고 있던 것등.

    동이의 문제는 적어도 漢과 틀리고 모든 동이가 한국인은 아니겠지만w

    적어도 한국인의 선조가 될 가능성은 漢족 보다 훨씬 높겠죠.proto-korean 정도 왜 한국인들이; 중국계 성씨라고 하며, 알아볼 생각을 하지 않는가?


  • 진짜 중국의 wiki만으로도 이 정도라면, 생각보다 한국의 주류성씨를 중국기준으로 분석해도 거의 동이계입니다/.제대로 알아야 한다.


  • 더이상 최면에 속지 않도록

  •  

    <출처> 금소영당 

     

     민족이란 용어가 근대 국민국가 이후에 생겨났다고 해서,
    한겨레, 배달겨레가 부정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민족이라는 말을 사용하기 훨씬 이전부터 겨레라는 순수 우리말을 사용해 오고 있습니다.
    겨레는 같은 혈족,언어,풍습,문화 등을 공유하는 용어입니다.

    고대의 배달겨레가 동이계,흉노계와 융족계 등으로 나누어졌지만 그 뿌리는 함께 공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배달민족이 먼저 생긴 개념이고 이것이 후에 광의의 동이족, 협의의 동이족 개념으로 나누어집니다.

    그리고 배달계통이 흉노니 예맥이니,말갈(여진),돌궐,거란,선비,강(티벳)족,오환족,묘족 등으로 좀더 세분되어집니다.

    배달민족이란 용어 안에는 흉노계나 융족계나 동이계 등 모두 담을 수있는 말이지만, 동이족이란 말은 그렇지 못 하죠.

    그리고 한웅배달시대가 단군조선시대보다 더 이전의 시대니 당연한 것이죠.

    요하문명 전시회도 심양이나 대련 등에서 열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짱골라들은 그 유산들과 우리 배달민족의 연관성을 숨기려고

    무지 노력을 하더군요. 그래서 역사공정을 더욱 펼치는 거죠.

    한웅배달국의 홍산문명이나 단군조선국의 요하문명 등 여러 고대유적들이 드러나고 세계 학자들 사이에 논문이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국회에도 자료가 올라가 있죠. 그리고 지금 짱골라들이 그 고대 유적들을 조사 못 하게 막고 있다는 것도 여러분들이 알았으면 합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오랑캐라 치부하던 치우천황이나 단군왕검,징기스칸 등을 지금 에 와서는 짱골라들이 자신의 조상들이라고까지 우기는 코미디도 연출하고 있죠...

    사실 복희, 신농,요순임금 등 삼황오제 모두 배달민족이죠.


    진시황의 진나라마저도 배달갈래 흉노계국가니 이미 말 다 한 것이지. 짱골라들 왕조 라 해봤자 한,송,명 세 왕조뿐입니다.



    이 블로그 http://blog.daum.net/hearo9mars 에서




    출처표시가 없는 것은 대부분 본인이 조사해서 직접 작성한 것이고,
    다른 이들의 글을 퍼거나 인용하는 부분에서는 본인은 대부분
    출처를 표시하고 있으니 알기 쉬울 것입니다.

    한가지 더 말하자면 본인은 펀글이라도
    내용이 좀 모자란다 싶으면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나 조사했던 것을 덧붙이거나
    좀더 보충시킵니다.
    그래서 펀글이라도 내용 후반부분들에 가서는
    오히려 내용이 원문보다 더 풍부해지거나 달라지는 것이 많습니다.
    그러니 펀글같은 경우는 본인의 부연설명이 붙은 글들과 비교해서
    읽어봐도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본인 자신의 블로그의 글들을 퍼 가도록 공개해 놓았습니다.
    다만 지킬 것은 반드시 출처를 확실히 기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의 자료들을 이용하더라도 출처를 밝히는 것은
    인터넷을 쓰는 네티즌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네티켓이겠죠.
    물론 온라인상에서뿐만 아닌 오프라인에서도 마찬가지죠.
    밝히지 않고 무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범죄이니까요.
    그런 기본 예의만 지킨다면 자료를 퍼가도 전혀 문제없죠.
    돈 드는 것도 아니고 어려운 것도 아니니
    지키기는 쉬울 것입니다. ^^~

    blog.daum.net/hearo9mars 이 블로그에서는
    요하문명이나 홍산배달문명 등 여러 공신력있는 자료들이
    있으니 보면 도움이 될 겁니다.
    (국회자료,방송다큐멘터리,신문,여러 대학교수 등을 비롯한 학자들의 논문,
    짱골라들의 역사공정에 대한 현상황까지 알 수 있습니다.
    동북공정은 고구려,발해뿐만 아니라
    그 위의 한웅배달국, 단군조선국의 홍산배달문명,요하문명,장강문화,하가점문화 등
    고대문명을 노리고 벌이는 짓입니다.
    궁금한 점은 본인의 블로그에서 검색해서 둘러보시길...)




    [민족과 성씨]와 관련하여 좀 더 자세한 것은 이 블로그에서 일단, 다음의 자료들을 배경삼아 참고하면 도움됩니다.

    전체적인 흐름을 먼저 알아야, 그 전체에 속한 부분에 대한 보다 다각적인 분석과 종합이 가능하게 됩니다.

    그래야 전체와 부분간의 미묘한 상호작용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외의 자료들은 각자 시간 나면 읽어보시길....



    [왕건이 짱골라?]

    [순수한 漢族은 없다]

    ["유학은 동이족의 마음을 담은 사상"]

    [사료를 통해 알아보는 동이의 실체]

    [동북공정은 서막에 불과하다.]

    ["홍산문화와 요하문명, 주인공은 우리 겨레였다&...]

    [홍산문화는 고조선문화권]

    [고조선은 중국 내몽고 자치구에 위치-①]

    [고조선은 중국 내몽고 자치구에 위치-②]

    [단군의 진실]

    [우리의 문화유산 (홍산배달문명~)]

    [한국 역사를 재조명하며]

    [위대한 한글]

    [졸본부여(고구려)의 후예 '대진국(발해)']

    [한민족사의 일부 '대진국(발해)' >>> 동영상... ]

    [“동북아시아 호령한 고구려는 중국도 인정한 흉노의 왕... ]

    [몽골쥬신]
    [만주쥬신(삼전도의 진실)]

    [왜열도쥬신]

    [존 카터 코벨(John Carter Covell·1910∼1996)]

    [왜왕실에 잠들고 있는 우리 사서들]

    [지명 연구]

    [천문학으로 알아보는 역사]

    [배달민족의 한 갈래 훈족(서흉노)]

    [우리의 형제 터키(펌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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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쥐나인들은 고대 중국의 임금이라 하여 배달민족의 <삼황 오제>를 받들고 있다.



    삼황 오제는 삼황 즉 <태호 복희씨, 염제 신농씨, 황제헌원씨> 와 오제 즉 <소호금천씨, 전욱고양, 제곡고신, 요임금, 순임금> 을 말한다.
    이들은 중국문화,종교의 창시자들로 이들이 동이족이라면 중국의 종교와 문화는 다름아닌 우리 민족의 신교문화로부터 파생된 것이다.
    배달국의 5대 환웅 태우의(즉위 BC 3512)는 12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장자 다의발은 대통을 이어 6대 환웅이 되고, 그중 막내인
    태호복희는 중원으로 진출, 현 하남성의 진陳에 도읍하여 문명을 개척하였다.
    복희씨는 삼신산에 올라가 제사하고, 천하에서 괘도를 얻어 천부경을 바탕으로 한 팔괘, 즉 한역을 만들었으니 이는 곧 동양 철
    학의 근본을 마련한 것이다. 한역은 훗날 배달갈래왕조 주나라에서 주역의 모체가 된다.
    <태호복희씨 관련 문헌기록>
    태호복희씨
    “역법은 사실 동이가 창시자이며, 소호 이전에 이미 발명되었다.” -중국의 서량지 교수-
    "환웅 천황에서 5대를 전하여 태우의 환웅이 있었다. 아들을 12명 두었는데 장자는 다의발 환웅(6대 환웅)이라 하고 막내는 태호
    라 하니 복희라고도 한다." -태백일사-
    밀기密記에 이르기를, 복희는 신시에서 태어나 우사의 직을 세습하고 뒤에 청구와 낙랑을 거쳐 진으로 옮겨갔다. 그의 후예들이
    풍산에서 나누어 살았으므로 풍씨로 성을 삼았다. 지금 산서성의 제수濟水에 희족羲族의 옛 거처가 남아 있다.”
    “대변경에 이르기를, 복희는 신시로부터 나와 우사가 되었다. 신룡의 변화를 보고 괘도를 만들고 신시의 계해로 시작되는 역법을
    갑자로 시작되는 것으로 고쳤다. 복희의 무덤은 지금 산동성 어대현 부산鳧山의 남쪽에 있다.” -태백일사-
    한편 복희의 부인 혹은 누이동생이라고 하는 여와는 황토를 반죽하여 인간을 만들었다고 전하는데, 이러한 복희와 여와의 뒤를
    이어 중국에서 농경와 의약의 시조로 불리고 있는 염제신농이 등장하게 된다.
    염제신농은 배달국 8대 환웅 안부련(BC 3240)의 신하인 소전의 아들로서 중원의 남방으로 진출하여 농사짓는 법을 가르치게 된
    다. 또한 팔괘(八卦)를 겹쳐 육십사효(六十四爻)의 점(占)을 보는 점술을 고안해냈고, 저자(시장)를 세워 백성들에게 교역을 가르
    쳤다고 한다.
    즉 그는 중국의 농업 ·의약 ·음악 ·점서(占筮) ·경제의 조신(祖神)이며, 중국문화의 원천으로 알려져 있다.
    <염제신농씨 관련 문헌기록>
    염제신농씨
    “웅씨에서 갈라져 나간 사람 중에 소전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안부련 환웅 말기에 소전은 명을 받들어 강수에서 병사들을 감독하
    고 있었는데,
    그의 아들 신농은 여러 가지 풀을 혀로 맛보아 약을 만들었다. 그는 뒤에 열산으로 옮겨갔다.” - 태백일사-
    “신농은 열산에서 일어났는데, 열산은 열수가 흘러나오는 곳이다. 신농은 소전의 아들이며 소호와 함께 고씨의 방계 지류이다.”
    -태백일사 신시본기-
    치우 천왕과의 싸움에서 패한 뒤 그는 치우 천왕에게 귀의하여 청구국 고유의 천부인 3개에서 유래한 신선도의 길을 걷게 된다
    . 이 신선도는 후대의 노자와 장자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는데, 도교道敎를 일명 신선도교神仙道敎라고 하는 것도 바로 그 뿌리가
    청구국(배달국)의 신선도에 있기 때문이다.
    <자세히 보기- 황제의 반란과 치우천왕의 평정 (탁록대전)>
    치우천황 목각상
    서기전 2707년(갑인년) 우리 민족 불세출의 대영웅 자오지 천황이 배달나라 제 14세 한웅 신시 전통을 이었다. 이 자오지 천황
    이 바로 치우천황(단군 14대)인 것이다.
    그런데 당시 중국대륙은 셋으로 나뉘어 서로 대치하고 있었는데 탁의 북쪽에 대효(大曉)가, 동쪽에는 창힐이, 그리고 서쪽에는
    황제헌원(黃帝軒轅)이 있었다.
    이때 황제헌원은 각각의 나라들과 동맹을 맺어 서로를 치려했으나 치우천황의 제후국들이어서 이마저 성공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이때 기주(冀州)의 염제신농의 나라가 유망(楡罔)대에 이르러 정사가 과격해지더니 제후들이 서로 다투고 민심마저 흩어지며 세
    상이 어렵게 변해버렸다. 그러자 유망을 도와 섭정을 하던 헌원(軒轅)이 반란을 일으켜 판천(板泉:上谷) 벌판에서 유망을 시해(弑
    害)하였다.
    탁록대전
    이에 치우천황은 헌원을 응징하여 유망의 원수를 갚기로 결심하여, 그 유명한 탁록대전이 시작된다.
    이들과 치후천황은 70여 회의 전쟁을 했다. 그러나 치우(후)천황에게 번번이 짐으로 항복하게 되었다.
    치후천황은 헌원을 쥬신의 수석 제후국왕인 황제로 임명. 살아남을 수 있는 영지를 주었다. 하지만 헌원이 황제로 임명됨으로써
    중국의 영토가 중국인들의 손으로 되돌아가는 계기가 되었다.
    치우천황 대에 자부선생(紫府先生)이란 위대한 학자가 있었다. 그는 자부선인(紫府仙人)이라고도 하는데, 하루는 장기간 연구한
    경서인 삼황내문경(三皇內文經)을 치우천황에게 전해 주었다.
    이것은 배달국 초기에 신지씨가 발명한 녹서(鹿書)로 씌어진 연구저서로서 세 편으로 나뉘어졌었는데 후세 사람들이 여기에 주
    를 달고 구분하여 신선음부경(神仙陰符經)이라 하였다. 선교와 도교의 기초가 된 저서이다.
    <황제헌원에게 선도를 전파한 자부선생>
    옛날에 황제黃帝가 동쪽으로 청구靑邱에 이르러 풍산風山을 지나 자부紫府 선생을 만나 뵙고 삼황내문三皇內文을 받았으며 이로써
    만신萬神과 어울렸다. -포박자抱朴子-
    자부紫府 선생이 칠회제신七回祭神의 책력을 만들고 삼황내문三皇內文을 궁궐에 진상하니 천왕께서 칭찬하시고 삼청궁三淸宮을 세
    워 그곳에 기거하게 하시니 공공共工·헌원軒轅·창힐倉詰·대요大撓의 무리가 모두 와 배웠다.- 태백일사-
    <황제헌원씨에 관하여>
    염제신농의 아버지인 소전의 후손 지파중에 공손公孫이라고 있었는데 공손의 후손중에 황제헌원黃帝軒轅(BC 2692~2592)이 나왔다
    .
    (소전少典(염제신농의 아버지) → 공손씨公孫氏(소전의 후손) → 황제헌원)
    "황제(黃帝)는 백민(白民)에서 태어나고...그는 동이東夷족에 속한 사람이다." -중국: 초사-
    삼황三皇이후의 오제五帝는 그 근원이 모두 삼황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다음과 같다.
    요임금
    순임금
    우임금
    소호금천 (BC 2598 ~ BC 2514)
    전욱고양 (BC 2513 ~ BC 2436) ; 황제헌원의 손자
    제곡고신 (BC 2435 ~ BC 2365) ; 황제훤원의 증손자
    제요도당 (BC 2357 ~ BC 2258) ; 요임금이라고도 함. (요임금 25년에 단군왕검조선 건국.)
    제순유우 (BC 2255 ~ BC 2208) ; 순임금이라고도 함.
    "창의(昌意)는 황제헌원씨의 아들로, 창의(昌意)로부터 7세가 순(舜)이다." -사마천 사기-
    즉 황제 헌원씨의 8대손이 순임금이라는 것이다.
    배달국의 고시씨高矢氏 --->소전少典(염제신농의 아버지) ---> 공손씨公孫氏(소전의 후손) ---> 황제헌원(공손씨의
    후손) ---> 전욱고양(五帝중 한사람. 황제헌원의 손자) ---> 제곡고신(오제五帝중의한사람.황제헌원의증손자) ---> 설
    (제곡고신의아들; 은나라를 건국한 성탕의 선조)
    위에서 보듯이 <황제헌원씨> 와 <순임금>이 동이東夷인이고 <소호금천씨> <전욱고양> <제곡고신>
    <요임금> 등도 모두 황제헌원씨의 자손이니 중국인들이 자신들의 고대 임금이라 받드는 <삼황오제> 는 모두 동이인이
    라하는 것을 알수 있다.
    그리고 그밖에 우리 민족이 중국에 영향을 주었던 기록들도 존재한다.
    <9년 홍수때 단군께서 우임금에게 도움을 준 기록>
    갑술 67년(서기전 2267)에 단군께서 태자 부루(扶婁)를 파견하여 도산(塗山)에서 우사공(虞司空: 후에 우임금)과 만나게 하였다
    . 태자는 오행치수(五行治水)의 방법을 전하여 주었고 경계도 따져 정했다 -단군세기-
    당시 요순시대의 중국천지가 9년 간 계속된 대홍수로 인해 전전긍긍하고 있을 무렵, 동방 고조선의 천자 단군성조는 105세 되시
    던 갑술(서기전 2267)년에 태자 부루를 중국 양자강 남방에 위치한 도산(塗山)에 보내 도산회의를 주재하도록 하고 고조선의 제후
    였던 순이 특파한 우(禹)에게 “오행치수(五行治水)의 비법”을 전수케 하셨다(『吳越春秋』, 『歷代神仙通鑑』).
    중국이 동이로부터 독립한 날 쌍십절. 쌍십절은 10월 10일을 말하는 것이다. 이 날 중국인들은 폭죽을 터트리며 이 날을 기린다
    . 그러나 이 날이 바로 중국이 쥬신으로부터 독립한 날이라는 것이다.
    여러분은 관포지교(관중과 포숙)라는 한자성어를 들어 보왔을 것이다. 아주 절친한 친구 사이를 이렇게 말하곤 한다. 훗일 관중은
    재상이라는 자리에 앉게 된다. 그러나 이 관중으로 인해 중국은 동이로부터 독립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중국은 비로서 쥬신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게 된다. 이 날이 바로 쌍십절인 것이다. 관중은 훗일 중국 역사상 최고의 명
    재상으로 기록 되어진다.
    이처럼 중국인들이 자기네 조상이라고 떠받드는 반고라는 자가 이미 거발한 한웅천황이 배달국을 세울 초창기에 서쪽으로 갈라져
    나간 사실이라든가, 태우의 한웅천황이 선도수련법을 체계화한 일이라든가, 치우천황이 나라의 영역을 중원의 핵심 지대로 확장했
    다든가 하는 업적은 우리의 기록뿐만 아니라 쥐나의 기록에도 뚜렷이 나와 있으므로 움직일 수 없는 역사적인 사실이다.
    특히 주목되는 사실은 쥐나의 삼황오제 즉 태호복희, 신농씨, 황제헌원(이상 삼황), 소호, 전욱, 제곡, 요, 순(이상 다섯 제왕인
    오제)이 모조리 배달족이었다는 사실은 쥐나의 상고사 자체가 우리 민족의 상고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역력히 입증해 주고 있
    다.
    이러한 역사적인 추세는 그후 하,상(은),주,춘추전국시대를 거쳐 진나라 대에까지 일관성 있게 지속되는 것이다. 그리고 중국문화를
    대표하는 유교와 도교의 근원이 황제헌원이 배달국의 자부선생에게서 전수받은 삼황내문경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은 그 당시
    배달국의 문화가 얼마나 찬란했으며, 거의 일방통행식으로 동양 문화를 이끌어왔는가를 입증해 주고 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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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역대 왕조의 성씨 계보


    1. 서설
    역대 중국의 왕조는 배달겨레의 왕조이다.
    중원대륙북부,만주,연해주,몽골,한반도 등은 옛 한국, 한웅배달국, 단군조선국으로 정통성을 이어 온 반면에,
    중원대륙 중남부는 한웅배달국으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면서 동이족, 서이족, 거란족, 여진족, 몽고족
    , 만주족 등이 혼합된 복합족인 것이다. 물론 동이족, 서이족, 거란족, 여진족, 만주족은 배달겨레, 단군조선 겨레이다.
    2. 중국 역대 왕조의 성씨 계보
    가. 진제국(震帝國) : 서기전 3528-서기전 3218. 시조는 태호복희(太筦伏羲). 태호복희는 배달나라 한웅(桓雄. 제5대 태우의라 함
    )의 작은 아들. 배달나라의 우사(雨師)를 지내고 나중에 진제국 시조가 됨. 풍(風)씨의 시조임. 진제국은 배달나라 제후국임.
    나 유웅국(有熊國) : 시조는 소전(少典). 웅족(熊族)으로 염제신농의 아버지. 후손 공손씨(公孫氏)가 이음. 공손씨는 황제헌원의
    선조. 유웅국은 배달나라 제후국임.
    다. 염제국(炎帝國) : 서기전 3218-서기전 2698(2333). 시조는 신농(神農)씨. 신농은 웅족으로 강(姜)씨의 시조임. 배달나라의 우
    가(牛加)였으며, 나중에 염제국을 세웠음. 서기전 2697년에 염제국의 후계국으로 단웅국이 세워져 서기전 2357년에 단군왕검이 비
    왕으로 섭정하다가 서기전 2333년에 조선 개국. 배달나라 제후국임.
    라. 웅국(熊國 또는 有熊國) : 서기전 2698-서기전 2357(2224).
    - 시조는 황제헌원(黃帝軒轅). 공손씨의 후손. 공손은 곰족의 후손이라는 말의 이두식 표기임. 즉 웅족임. 원래 공손씨였으나 나
    중에 희(姬)씨로 바꿈. 치우(치우천황)와 탁록지전을 벌인 인물로 중국 역사의 기록상 실질적인 시조로 기록되고 있음. 그러나 배
    달나라의 제후국의 하나에 불과함.
    - 소호금천씨(少昊金天氏). 김(金)씨의 시조. 황제헌원의 아들이라고도 함. 성은 已씨. 황제헌원 이전에 소호(少昊)라는 사람이
    있으므로 소호금천씨는 황제헌원의 아들이 아닌 소호의 후손일 가능성도 있음. 소호(少昊)는 소전(少典)과 더불어 웅족임.
    - 전욱고양(顚頊高陽), 제곡고신(帝嘗高辛), 제지(帝摯), 요(堯), 순(舜)으로 이어짐.
    마. 당(唐) : 서기전 2357-서기전 2284. 요(堯)임금의 나라를 당나라라 함. 요임금은 제곡고신씨의 아들이고, 소호금천씨의 증손
    자이며, 황제헌원의 현손자가 됨. 즉 웅족임. 성씨는 이기(伊祈)씨임.
    바. 우(虞) : 서기전 2284-서기전 2224. 순(舜)임금의 나라임. 순은 맹자(孟子)에서 동이족(東夷族)이라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음
    . 순임금은 요임금으로부터 선양받았다라고 기록됨. 순임금의 아버지인 유호씨(有戶氏)는 단군조선의 중신(重臣)으로 아들 순과,
    순의 동생 유상(有象) 등을 인솔하여 요임금을 치러갔던 인물임. 순임금이 요임금의 뒤를 이어 중국의 천자가 된 후 동생인 유상
    과의 형제간 전쟁을 하였으며, 유호씨와 유상의 무리인 우(禹)에게 패하였으며 이어서 우가 하왕(夏王)이라 자칭함. 순을 전욱고
    양씨의 후손이라는 기록에 의하면 황제헌원의 먼 후손이 되어 웅족이 됨. 성을 요(姚)라고도 함.
    사. 하(夏) : 서기전 2224-서기전1766. 시조는 우(禹). 전욱고양씨의 손자라고 하는 기록에 의하면 황제헌원의 현손자가 되며 웅
    족이 됨. 우의 성은 사(撵)씨. 사(撵)씨는 태호복희의 후손의 성씨라고도 하므로 이 경우 한웅족(桓雄族. 배달나라 天王族)이 됨.
    아. 은(殷) : 서기전 1766-서기전 1122. 시조는 성탕(成湯). 성은 자(子)씨. 제곡고신씨의 아들인 사도(司徒) 설(契)의 후손임.
    즉 웅족임. 동이족임. 한편 은을 물리친 주(周)는 서이(西夷)라 함.
    자. 주(周) : 서기전 1122-서기전 249. 성은 희(姬)씨. 희씨는 황제헌원의 성씨이므로 황제헌원의 후손이 되며, 제곡고신씨의 아
    들인 후직(后稷)의 후손임. 웅족임. 서이(西夷)라고도 함.
    차. 진(秦) : 서기전 249-서기전 206. 원래 영(櫕)씨이나, 진시황은 여(呂)씨의 자손임. 영씨는 전욱고양씨의 후손임. 웅족이 됨.
    여씨는 동이족의 성씨임.
    카. 한(漢) : 서기전 206-서기 263(265). 류(劉)씨의 나라임. 류씨는 요(堯)임금의 후손임. 요임금은 웅족의 후손이므로 류씨도
    웅족의 후손이 됨.
    타. 신(新) : 서기 8-서기 23. 왕망(王莽)은 한무제(漢武帝)에게 사로잡힌 흉노족의 왕의 후손임. 흉노족 왕을 휴도왕이라 하는데
    김(金)씨임. 소호금천씨의 후손이 됨. 즉 웅족의 후손. 우리나라 김씨는 왕망이 후한에게 멸망하면서 한반도로 이동한 일족으로
    소호금천씨의 후손임.
    파. 진(晉) : 서기 265-서기 421. 사마(司馬)씨. ?
    하. 수(隋) : 581-618. 양(楊)씨. * 고구려 장수 양만춘 있음.
    거. 당(唐) : 618-907. 이(李)씨. 노자의 아버지가 한(韓)씨를 이씨로 바꾸었음. 한씨는 원래 희(姬)씨로 주(周)나라의 왕족임.
    희씨는 황제헌원의 성씨이므로 웅족의 후손이 됨.
    * 요(遼. 거란) : 907-1125. 시조 야율아보기(阿保機). 아보기는 아버지(<-아파오치)의 이두식 표기. 아버지는 가장(家長). 거
    란족은 설(契)의 후손이라고 전함. 웅족의 후손이 됨.
    너. 송(宋) : 960-1279. 조(趙)씨. 전욱고양씨의 후손으로 영(櫕)씨이기도 함. 전욱고양씨는 황제헌원의 손자이므로 조씨는 웅족의
    후손이 됨.
    * 금(金. 여진) : 1115-1234. 시조는 아골타(阿骨打)로 김(金)씨임. 고려 초기에 김준이라는 사람이 여진족으로 가서 세력을 잡음
    . 아골타는 아버지(<- 아뼈치)의 이두식 표기.
    더. 명(明) : 1368-1644. 주(朱)씨. 송(宋)나라 주자(朱子)가 있음.
    * 원(元) : 1206-1368. 몽골족은 원래 단군조선의 갈래임. (배달갈래 흉노계가 선비,거란,돌궐,오환,몽골족 등으로 갈라짐)
    러. 청(淸) : 1616-1912. 애신각라(愛新覺羅)씨. 원래 김(金)씨. 시조 누루하치의 누루는 누렇다라는 뜻의 누루이므로 황금의 금
    (金)을 가리키고, 하치는 김알지의 알지처럼 아기, 후손이라는 뜻임. 김수로왕의 후손이라고 함. 청나라는 만주족이 세운 나라.
    애신각라는 신라(新羅)를 사랑하고 잊지 말라는 뜻으로서 성씨로 삼은 것임. 만주족의 선조인 여진족의 금(金)나라도 김(金)씨의
    나라임.
    3. 한국은 줄기나라, 중국은 가지나라
    위에서 보면, 중국의 역대왕조는 한웅배달, 단군조선 겨레가 세운 나라이다. 태호복희씨, 염제신농씨의 나라는 중국 직계의 나라가 아니다
    . 중국의 실질적인 시조는 황제헌원이라고 기록되고 있으나, 실제로는 배달나라의 왕비족인 웅족으로 배달나라의 제후에 불과하였
    다. 배달나라 천왕을 한웅(桓雄)이라 하는데, 천왕의 아들을 단군이라 부른다. 그래서 단군은 배달나라의 정통을 이은 임금이 된
    다. 즉 단군왕검이 세운 조선은 배달나라의 홍익인간 이념을 실현하는 정통성을 계승한 나라이다. 반면, 요임금의 중국은 배달나
    라에서 이탈하기 시작한 갈래 나라가 된다. 황제헌원은 공손씨(公孫氏)의 후손이나 성(姓)을 어머니 성인 희(姬)로 바꾸었는데,
    모계성(母系姓)을 쓴 것이 된다. 중국의 여러 역대 왕조의 시조가 여(女)자가 있는 성을 쓴 것으로 보면, 모계를 중심으로 한 사
    회였음을 엿볼 수 있다. 황제헌원의 희(姬), 순임금의 요(姚), 하나라 시조 우(禹)의 사(撵), 주나라의 희(姬) 등이 그 예이다. 순
    임금도 아버지가 있었으나(高씨라고 함. 고씨는 웅족임.) 아버지 성씨를 따르지 않았다. 순임금의 아버지는 바로 단군조선의 중신
    (重臣)이었는데, 순이 아버지로부터 이탈했기 때문이다. 주나라의 희씨는 물론 황제헌원의 후손으로서 희씨이다. 은(殷)나라는 남
    자성씨인 자(子)씨를 썼다.
    4. 결어
    중국의 역대 왕조의 뿌리는 배달겨레이다. 배달겨레가 아닌 왕조가 없다. 중국의 역사서에 엄연히 기록되어 있다. 중국의 왕조 중
    에서 특히 중국의 줄기라고 볼 수 있는 나라는, 중국의 실질적인 시조라고 하는 배달나라 제후국인 황제헌원의 나라, 요임금의 당
    (唐)나라, 우(禹)의 하(夏)나라, 주(周)나라, 한(漢)나라 등이 될 것이다. 그 뒤 여진족이 세운 나라인 금(金), 만주족이 세운 청
    (淸)은 단군조선, 부여, 고구려, 대진국(발해)의 후예를 기반으로 하여 신라(가야) 김씨가 세운 나라인 것이다.
    이상에서 한국과 중국의 인종학상의 차이점은, 한국은 옛한국(桓國), 배달나라(檀國), 단군조선(檀君朝鮮) 이후로 정통성을 일관
    성 있게 이어 온 나라이며, 중국은 배달나라의 제후국에서 출발하여, 배달나라에서 이탈하면서 단군조선과 병립하게 된 후 점차
    뚜렷이 구별되어 온 배달의 가지나라가 된다


    ===============================================
    우리가 일반적으로 짱골라의 성씨로 알고 있는 대부분의 성씨들은 실제로는 모두 배달민족들입니다.

    한국에 귀화했다는 황黃씨를 일반적으로 후한에서 한 관리가 한반도로 넘어와 그 시조가 되었다고 알고 있는데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배달갈래왕조들인 춘추전국시대에 이미 황씨는 존재했습니다.
    사기의 춘신군열전春申君列傳에서도 황헐黃歇이란 인물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춘신군 [春申君, ?~BC 238]
    전국시대 말 초나라의 정치가. 전국시대 4군(君) 중 한 사람. 성 황(黃), 이름 헐(歇). 초나라 양왕(襄王)에게 발탁되어 관계에 진출, 진(秦)나라의 소양왕을 설득하여 그의 공격을 막았으며, 그 후 초나라 태자 완(完)과 더불어 볼모가 되어 진나라에 있다가 꾀를 내어 탈출하였다. 완이 즉위(孝烈王)하자 헐은 재상에 올라 춘신군이라 칭했으며, 그 후 20여 년 간 권세를 휘두르며, 내치 ·외교로 강적 진과 대항했다. 식객 3,000명을 모았다는 말이 있을 정도의 문화보호자로서 그가 살아 있을 때 순자(荀子)도 초나라에 갔었다. 효열왕이 죽자, 권신 이원(李園)에 의해 그 일족과 함께 살해되었다.


    '현존하는 중국성씨 922개'와 '한국에 귀화한 중국계 성씨'들도
    사마천의 사기,한서,후한서,삼국지 위서,송서,진서,주서,북사,남사,남제서,수서, 청나라의 사고전서 등
    수많은 역사서에 남아있어 그들 모두가 실제로는 배달민족의 후손이란 사실을 알 수 있다.

    고사성어와 관련된 많은 역사와 서적들에도 이를 살펴볼 수 있다. 특히 춘추전국시대를 비롯해서 많은 인물들을 살펴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논어論語, 맹자孟子, 회남자淮南子, 장자莊子, 전국책戰國策, 진정표陳情表, 십팔사략十八史略, 예기禮記,

    사기史記, 순자荀子, 시경詩經, 서경書經, 여씨춘추呂氏春秋, 한비자韓非子,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상서尙書,
    묵자墨子, 춘추좌전春秋左傳, 국어國語, 안자춘추晏子春秋 등에 많이 보인다.


    // [설봉] 현존하는 중국성씨 922개 - 누락한자 보충판 -

    이 자료는 지금은 폐쇄된 "비인부전"에 [설봉]님이 정리해 올리신 자료이며, 먼저 올렸다가 이후 [설봉]님께 허락을 받고, 누락된 한자가 없는 원본 파일을 받아 올립니다. 누락된 한자는 모두 제2수준 한자이며 부수자 중심이 아닌 글자 형태 위주로 하였습니다. 이점 참조하시기 바라며, 위 조합 글자중 "興"자의 경우는 마땅히 나타낼 글자가 없어 가장 비슷한 글자를 사용하였음을 밝힙니다.

    [가]

    가 家 賈 假 柯
    간 干 簡 艮
    갈 葛
    감 甘 減 [門/敢]
    강 江 康 强
    개 改 蓋 介 開
    객 客
    거 居 巨 [玉+(據-手)] 
    건 乾 蹇
    걸 杰 桀 乞
    격 格
    견 見 甄
    겹 [夾+부수邑] 
    경 更 庚 耿 京 經 景 敬 卿 慶
    계 桂 稽 計 季 啓 溪
    고 高 古 顧 [告+부수邑]
    곡 谷 穀 曲
    골 骨
    공 公 恭 鞏 貢 共 空 孔 [龍/共]
    교 喬 橋 膠
    과 戈 過 果 [跨-足] 
    곽 郭 [雨/(雅-牙)]
    관 官 管 冠 貫 慣 灌
    광 光 廣 匡 曠 [廣+부수邑] 
    괴 [艸/朋+부수刀] [艸/貴]  
    구 俱 駒 鞠 具 寇 區 歐 毆 丘 邱 仇 求 瞿 [求/衣]
    국 國 麴
    굴 屈
    궁 弓 宮 穹
    규 奎
    권 圈 權
    궐 闕
    귀 歸
    궤 軌
    극 劇 [谷+부수邑] 


    근 根 [革+斤] 
    급 汲
    금 琴 禽
    기 飢 紀 岐 祁 寄 祈 耆 杞 起 綺 冀 旣 夔 [其/부수絲] [一/{一/(介-人)}] [旣/旦]
    길 吉
    김 金


    [나]
    나 羅 那
    낙 洛 駱 樂
    난 暖 欒
    남 南 藍
    낭 囊 郞 琅 浪
    냉 冷
    년 年
    녕 寧 寗
    노 勞 老 盧 鹵 路 露 蓼 聊 廖
    녹 鹿 祿 錄
    농 農
    뇌 牢 雷 賴
    누 壘 婁 樓 鏤 [女+累] [人+婁]
    뉴 [金+丑]
    능 凌 陵 能


    [다]
    다 多
    단 但 端 段 單 檀 [竹/旦]
    달 達
    담 啖 覃 潭 譚 曇 談 澹 湛 [日/雲]
    답 沓
    당 黨 唐
    대 代 臺 戴
    덕 德
    도 刀 到 道 都 堵 度 陶 屠 徒 塗 圖 [水+余]
    독 督 犢
    돈 敦 頓
    동 東 董 同 童 [人+冬] [人+童]
    두 豆 竇 杜 [金+斗]
    둔 屯
    등 鄧 [勝-力/水] 


    [라]
    리 里 理


    [마]
    마 麻 馬
    막 莫
    만 滿 万 萬
    먀 [也-|] 
    매 枚 買 梅
    맹 孟
    면 綿
    명 明 名
    모 毛 茅 牟 母 慕
    목 木 目 牧 睦 穆
    몽 蒙
    묘 苗 [艸/卯]
    무 繆 巫 毋 無 武 舞 務
    묵 墨
    문 門 文 聞 [艸/興/酉/分]
    미 彌 米 眉 微 [麻/米]
    민 閔
    밀 密


    [바]
    박 博 朴
    반 班 潘
    발 拔
    방 方 坊 防 房 訪 龐 [迂-于+(降-阜)]
    배 裵
    백 白 百 柏 伯 帛
    번 繁 樊
    범 范 氾
    법 法
    벽 [艸/壁-土] 
    변 邊 卞
    별 別
    병 丙 秉 甁 [丙+부수邑]
    보 步 甫 輔 普 溥
    복 卜 伏 福 服 [水+僕]
    봉 封 逢 奉 鳳 蓬
    부 符 扶 父 富 復
    분 賁
    비 肥 費 裨 [示+必]
    빈 賓 彬
    빙 馮


    [사]
    사 沙 社 赦 師 史 士 司 思 斯 巳 駟 嗣 謝 査 [人/示] [厘-里/車]
    삭 索
    산 散 山
    살 薩
    상 桑 商 賞 上 尙 相
    쌍 雙
    새 賽
    생 生
    서 舒 西 胥 徐 序 [金+且]
    석 石 席
    선 善 鮮 先 線 宣
    설 泄 渫 [人+契]
    섬 陝
    섭 [耳/耳耳] 
    성 成 盛 星 姓
    세 稅 洗
    소 巢 韶 召 昭 邵 疏 蘇 訴 蕭 [召+力]
    속 束 粟 續
    손 孫
    송 宋 松
    수 壽 帥 水 肅 繡 隋 隨 須 [毆-區]
    숙 叔 宿
    순 淳 荀
    숭 崇
    습 習
    승 承 昇 勝
    시 柴 匙 施 時 始 是
    식 食 息
    신 申 神 愼 辛 莘 信 新
    심 沈 審
    씨 氏


    [아]
    아 娥 蛾 兒 牙 衙
    악 鄂 岳 [人+屋]
    안 安 顔 晏
    알 [迂-于+曷] 
    앙 仰
    야 冶
    양 梁 壤 襄 羊 陽 楊 養 良 [水+京] 
    애 哀 艾 愛 [艸/謁]
    액 額
    어 於 魚 御
    언 言偃 彦 [焉+부수邑]
    엄 嚴
    여 閭 呂 旅 如 茹 汝 餘 黎 勵 麗 [艸/(力/力力)] [厘-里+萬]
    역 易 力 歷 [麗+부수邑]
    연 涓 燕 延 淵 連 戀
    열 烈
    염 鹽 閻 廉 [苒-艸]
    엽 葉
    영 伶 令 榮 英 永 [瀛-水] 
    예 倪 芮 裔 禮 [羽/卉-十]
    오 敖 烏 吾 吳 午 五 伍 [烏+부수邑]
    옥 沃 玉
    온 溫
    옹 翁 雍
    요 饒 姚 堯 搖 [幼-力] [金+兆]
    용 龍 容 庸
    와 訛 瓦 渦 [水+圭]
    완 完 宛
    왕 汪 王
    외 [阜+鬼]
    우 優 尤 郵 右 于 虞 宇 禹 遇
    욱 郁
    운 雲
    울 蔚 鬱
    웅 雄 熊
    유 類 劉 留 柳 遊 猶 有 兪 庾 喩 [(田/田田)/부수絲]
    육 陸
    윤 倫 輪 尹 綸
    율 栗
    융 戎 融 隆
    원 元 阮 原 袁 垣 苑 爰 源 轅 轅 遠 員
    월 月 越
    위 威 危 韋 爲 委 偉 衛 尉 魏
    은 恩 殷
    음 陰
    응 應
    의 蟻
    이 耳 李 伊 離 利 [利/牛] [人+耳]
    익 益
    인 人 印 藺
    임 林 臨 任


    [자]
    자 茨 慈 資 子 紫 自 [木+石] [此/言]
    잔 棧
    잠 岑 [咎-口/日]
    장 藏 長 將 蔣 臧 章 張 掌 莊 [人+(机-木)]
    재 才 宰 梓
    저 楮 儲 邸
    적 赤 狄 籍 翟
    전 全 纏 顚 典 傳 雋 錢 田 展 戰 專 [(山/而)+頁]
    점 占
    접 接
    정 丁 井 靖 正 政 鄭
    제 第 齊 提 祭 諸
    조 操 曹 漕 晁 稠 雕 朝 趙 俎 祖 [刀의 유사형태 부수자]
    종 從 鍾 終 宗 [木+從]
    좌 左
    주 州 周 朱 珠
    죽 竹
    준 俊
    중 仲
    증 曾
    지 池 遲 支 智
    직 直 職
    진 陳 晉 秦 振


    [차]
    차 車
    찬 贊 [興/林/夾]
    창 蒼 昌 暢
    채 蔡
    책 [迂-于+乍] [竹/乍]
    척 拓 戚
    천 千 泉
    철 鐵
    첨 詹
    첩 牒 捷
    청 靑
    체 [迂-于+帝]
    초 草 初 楚 焦 招 [言+焦]
    촉 燭
    총 叢
    최 崔
    추 秋 鄒
    축 丑 竺 祝
    충 充 衷
    치 治 [希+부수邑]
    칠 漆
    칭 稱


    [타]
    탁 鐸 卓
    탕 湯 [石+(日/一/勿)]
    태 邰 太 泰
    토 吐
    통 通
    퇴 頹
    투 鬪


    [파]
    파 巴
    패 貝
    팽 彭
    편 扁
    평 平
    포 包 鮑 布 蒲 浦
    폭 暴
    표 豹 彪
    풍 豊 [豊+부수邑] 
    피 皮
    필 畢


    [하]
    하 何 賀 夏
    학 [赤+부수邑]
    한 韓 寒 罕
    함 咸
    합 哈 合
    항 杭 亢 抗 項 恒
    향 香 向
    화 禾 和
    해 海 亥 奚 諧 解
    행 幸
    허 虛 許
    헌 軒
    혁 革 赫
    현 弦 賢
    협 夾 俠
    형 衡 荊 邢
    혜 惠 [禾+(尤/山)] 
    호 呼 胡 狐 壺 虎 戶 瓠 扈 護
    홀 忽
    홍 弘 洪 紅
    화 花 華
    환 歡 桓 環 宦
    활 滑
    황 皇 黃 況 [貝+兄]
    회 懷 回
    후 侯 後 后
    휼 恤
    흑 黑
    흠 欽
    흥 興


    희 姬 希 [虔-文/豆] 
    힐 [吉+頁] 

    [복성]
    곡양 穀梁 공량 公良 공서 公西 공손 公孫 공야 公冶
    공양 公羊 구양 歐陽
    낙정 樂正 남궁 南宮 남문 南門
    단간 端干 단목 端木 단우 單于 담대 澹臺 동곽 東郭
    동문 東門 동방 東方
    만준 万俊 모용 慕容 무마 巫馬 문인 聞人 미생 微生
    백리 百里 복양 [水+僕]陽
    사공 司空 사구 司寇 사도 司徒 사마 司馬 상관 上官
    서문 西門 선우 鮮于 순우 淳于 신도 申屠
    야율 耶律 양구 梁丘 양사 壤駟 양설 羊舌 여구 閭丘
    영호 令狐 우문 宇文 원관 元官 위지 尉遲
    자차 子車 장독 [人+(机-木)]督 장손 長孫
    전손 [(山/而)+頁]孫 제갈 諸葛
    제오 第五 종리 鍾離 종정 宗政 좌구 左丘
    중손 仲孫
    척발 拓拔 칠조 漆雕
    태숙 太叔
    판상 阪上
    하후 夏侯 혁련 赫連 협곡 夾谷 호연 呼延 황보 皇甫
    헌원 軒轅




    // 한국에 귀화한 중국계 성씨



    가씨(賈) 남양 갈씨(葛) 회산 감씨(甘) 신천 강씨(康) 진주 강씨(姜)
    강씨(强) 경씨(景) 계씨(桂) 곡씨(曲) 곡부 공씨(孔)
    현풍 곽(郭) 구씨(具) 구씨(丘) 영양 김씨(金)
    남궁씨(南宮) 낭씨(浪) 노씨(盧) 노씨(魯) 노씨(路)
    강음 단씨(段) 당씨(唐) 성주 도씨(都) 광천 동씨(董) 두씨(杜)
    열산 마씨(麻) 만씨(萬) 매씨(梅) 신창 맹씨(孟) 명씨(明)
    함평 모씨(牟) 묵씨(墨) 남양 방씨(房) 방씨(方) 방씨(龐)
    수원 백씨(白) 금성 범씨(范) 범씨(凡) 초계 변씨(卞) 밀양 변씨(卞)
    원주 변씨(邊) 황주 변씨(邊) 면천 복씨(卜) 수성 빈씨(賓) 빙씨(氷)
    청주 사씨(史) 진주 사씨(謝) 서문씨(西門) 해주 석씨(石) 보성 선씨(宣)
    섭(葉)씨 평산 소씨(邵) 진주 소씨(蘇) 송씨(宋) 승(昇)씨
    성주 시씨(施) 거창 신씨(愼) 영산 신씨(辛) 풍산 심씨(沈) 광주 안씨(安)
    죽산 안씨(安) 태원 안씨(安) 청주 양씨(楊) 통주 양씨(楊) 어씨(魚)
    의령 여씨(余) 여씨(呂) 곡산 연씨(延) 전주 연씨(連)
    염씨(廉) 오씨(吳) 의령 옥씨(玉) 개성, 제남 왕씨(王) 휘주 요씨(姚)
    단양 우씨(禹) 원주 원씨(元) 위씨(魏) 위씨(韋) 유씨(劉)
    유씨(庾) 육씨(陸) 무송 윤씨(尹) 행주 은씨(殷) 교동 인씨(印)
    풍천, 장흥 임씨(任) 평택 임씨(林) 요양 자씨(慈) 장(張) 거창 장씨(章)
    아산 장씨(蔣) 문경 전씨(錢) 나주 정씨(丁) 서산 정씨(鄭) 한산 정씨(程)
    남양 제갈씨(諸葛) 배천 조씨(趙) 임천 조씨(趙) 평양 조씨(趙) 청주 좌씨(左)
    상주 주씨(周) 신안 주씨(朱) 충주 지씨(池) 흥덕 진씨(陳) 영양 천씨(千)
    파릉 초씨(楚) 제주 초씨(肖) 추계, 전주 추씨(秋) 통천 태씨(太) 용강 팽씨(彭)
    풍덕 포씨(包) 임구 풍씨(馮) 달성 하씨(夏) 곡산 한씨(韓) 강릉 함씨(咸)
    해씨(海) 진주 형씨(邢) 전주 호씨(扈) 파릉 호씨(胡) 남양 홍씨(洪)-당홍
    황씨(黃) 아산 호씨(胡) 회양 후씨(后)


    출처 : mars님의 블로그에서

     

     

    중국의 성씨


      중국 성씨는 원래 모계사회로부터 출발했다. 그래서 맨 처음에는 희(姬)씨처럼 성씨에 여자의 의미가 들어가 있었다. 그러나 차츰 부계사회로 넘어오면서 모계사회의 흔적이 사라졌다.


      기원전 11~8세기에 중국의 성은 단 30개에 불과했다. 그 뒤 춘추전국을 거치면서 400~500년 사이에 성씨가 급증했다. 한대(漢代)의 자료에는 130개의 성이 있다. 명대(明代)의 문헌에서는 4,600개 이상의 성을 찾을 수 있다. 이렇게 역사적 변천을 거쳐, 오늘날 중국인의 성은 대략 6,000개에 이른다. 비교적 많은 것은 2,000개에서 3,000개이고, 그중에서도 자주 사용되는 것은 200개 정도이다.


      중국 전체 성씨 가운데 상위 100개의 성은 전체 인구의 85%를 차지한다. 그 중에서 1% 이상의 인구 비중을 차지하는 성씨는 모두 19개다. 리(李), 왕(王), 장(張), 류(劉), 천(陳), 양(楊), 짜오(趙), 황(黃), 쪼우(周), 우(吳), 쉬(徐), 쑨(孫) 순이다. 한편 중국에는 김씨(金氏)가 매우 드물다.


      중국의 성씨는 단성과 복성 두 가지가 나뉜다. 복성(複姓)은 구양(歐陽), 제갈(諸葛) 등이다. 현재 성씨 비율이 높은 단성은 5,307개, 복성은 60여 개 정도이다.


      2003년 7월 20일 중국 과학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중국의 성씨 가운데 인구가 가장 많은 성씨는 이씨()로 나타났다. 이씨는 전체 중국인의 7.9%를 차지한다. 왕()씨와 장()씨는 각각 7.4%와 7.2%로 2, 3위를 기록하고 있다. 그 다음 유(), 진()순이다. 李, 王, 張 3성은 현재 약 3억명의 인구를 보유하고 있다. 이(李), 왕(王), 장(張), 류(劉), 진(陳)씨 등 5대 성씨의 인구는 3억5천만 명에 이른다.


      특히 이(李), 왕(王), 장(張), 유(劉), 진(陳), 양(楊), 주(周), 황(黃),조(趙), 오(吳), 손(孫), 서(徐), 임(林), 호(胡), 주(朱), 곽(郭), 염(染), 마(馬), 고(高), 하(何) 등 20개의 성은 중국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이렇게 주류를 이루는 성을 대성(大姓)이라 한다. 이(李), 왕(王), 장(張),유(劉)는 북방에 많고, 진(陳), 조(趙), 황(黃), 임(林), 오(吳)는 남방에 많다.


      성씨에 관련된 중국 최초의 서적은 서기 1100년대 북송(北宋) 시대에 편집된 『백가성』(百家姓)이다. 여기에는 총 438개의 성씨가 수록되어 있다.  그 특징은 송나라를 건국한 황제의 성씨가 조(趙)였기에 성씨의 시작이 조(趙)부터 시작되었다. 네 글자로 한 문장이 되는 운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예를 들면 "조전손이(趙錢孫李), 주오정왕(周吳鄭王)"이다. 백가성에서는 조(趙), 전(田), 손(孫), 이(李), 주(周), 오(吳), 정(鄭), 왕(王)씨 등의 순이다. 송나라 황실의 성이 "조"씨였기 때문에 "조"씨는 국성으로 백가 성씨 중의 제일 성씨가 되었다. '조(趙)'씨는 현재 7위다.


      중국성씨라고 해도  漢族의 성씨가 아닌 소수민족의 성씨가 많다.

      중국 대만 홍콩 싱가폴 월남 말레이지아 한국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한자 성이 쓰인다.

      한편 중국의 성씨들은 특정지방(省)에 집중 세거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통계상의 오류가 일어나서, 한 두 지방의 통계가 누락되면 순위가 크게 바뀔 수 있다. 실제로 중국의 인구와 성씨 통계를 정확하게 조사하는 일은 매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중국에서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대부분 아버지 성씨를 따른다. 딸이 시집간다 해도 남편의 성씨를 따르지 않고 원래의 성씨를 유지한다. 그렇지만 어머니의 성을 따르는 경우도 있다. 중국의 대표적인 현대 문학가이면서 혁명가였던 루쉰(魯迅)은 본래 주수인(周樹人)이었지만 어머니의 성씨를 따라 노(魯)씨로 바꾼 대표적인 인물이다.

     

    < 중국의 주요 성씨 >

    李,王,張,劉,陳,楊,黃,趙,周,吳,徐,孫,朱,馬,胡,郭,林,何,高,梁,

    鄭,羅,宋,謝,唐,韓,曹,許,鄧,蕭,馮,曾,程,蔡,彭,潘,袁,於,董,余,

    蘇,葉,呂,魏,蔣,田,杜,丁,沈,姜,范,江,傅,鐘,盧,汪,戴,崔,任,陸,

    廖,姚,方,金,邱,夏,譚,韋,賈,鄒,石,熊,孟,秦,閻,薛,侯,雷,白,龍,

    段,郝,孔,邵,史,毛,常,萬,顧,賴,武,康,賀,嚴,尹,錢,施,牛,洪,龔


    < 중국의 2자 성씨 >

    百里, 東方, 獨孤, 端木, 公孫, 穀梁, 賀蘭, 赫連, 賀若, 呼延,

    万俟, 慕容, 歐陽, 沙吒, 上官, 司徒, 司馬, 司空, 尉遲, 西門,  諸葛, 祝融, 左人


    < 성씨의 연원 >

      우선, 주나라 황실의 성씨는 희(姬)씨 이다. (주나라의 대부분의 제후들의 성씨, 제나라는 姜太公-田)

    1. 주나라 봉건국가에서 나타난 성씨 : 노(魯), 오(吳), 진(陳), 조(曹), 연(燕), 진(晋), 채(蔡), 위(衛),정(鄭)

    2. 나라 이름에서 따온 성씨 : 노(魯), 진(晋), 위(衛), 조(曹), 등(藤), 연(燕), 정(鄭), 오(吳), 위(魏), 한(韓), 하(何), 곽(郭), 관(管), 초(焦), 활(滑),형(邢), 진(陳), 조(趙), 전(田), 허(許), 주(朱), 루(婁), 루(樓), 월(越)

    3. 봉지(封地)나 읍(邑) 이름에서 따온 성씨 : 유(劉), 백(白), 최(崔), 포(鮑),비(費), 상구(商丘), 종리(鐘離)

    4. 지방행정 이름에서 나온 성씨 : 온(溫), 원(原), 소(蘇), 모(毛), 감(甘), 제(祭)

    5. 경(卿:성의 장관이상의 벼슬)으로 임명된 성씨 : 배(裵), 육(陸), 염(閻), 비(肥), 대륙(大陸)

    6. 정(亭:역참의 장)으로 임명된 성씨 : 채(採), 구양(歐陽), 유두(兪豆)

    8. 직업과 관련한 성씨 : 사마(司马-군인), 도(陶-도예가), 무(巫-샤먼)

    7. 가족 중에서의 서열을 말하는 성씨 : 맹(孟), 중(仲), 숙(叔), 계(季-장남)

    9. 조상이 받은 작위의 성씨 : 백원(伯爰)

    10. 동화된 부족명의 성씨 : 호(胡)


    < 성씨의 유래 >

    • 王 ; 商나라 왕의 개명

    • 李 ; 타 민족의 개명된 성 삼국시대, 소수민족들이 趙 張 李로 개명.

          선비족이 李로 개명을 많이 함. 선비족은 퉁구스계 북방민족임.

    • 張 ; 원래의 시조는 예전부터 동이의 부족의 수령인 少昊에서 파생된 것

    • 趙 ; 상고시대부터 , 역시 동이의 少昊天子;

    • 黃 ; 제무시절에 동이의 부락 수령 백익이 우 황제의 치수사업에 공을 들여 성을 하사받다.

           (帝舜時,東夷部落首領伯益因助禹治水有功)

    • 徐 ; 중국기원 찾을수 없음, 고조선에서 유래한 것이 徐氏라고 하는 것이 한국의 주장./////

    • 林 ; 선비족

    • 高 ; 高夷族에서 나왔다고 함. 상고시대의 부터 동이

    • 鄭 ; 전설에 따르면 염제의 시절 농업신의 성씨라고 함(일부는 염제를 동이로 봄)《史記‧五帝本記》

    • 羅 ; 夏나라때 동방의 유일한 檀군장의 시조을 라(羅)라고 칭함. 한화된 胡가 羅

    • 韓 ; 중국은 周부터, 한국은 고조선부터 쓰여진 성씨

    • 許 ; 천축국의 무리 중, 중국 양쯔강 부근에 살던 사람들에게 내린 성씨 인도인 무사계급.

    • 潘 ; 한국이나 월남에도 있다.

    • 蘇 ; 한국에도 출현한다.

    • 呂 ; 由魏가 성 개명. 북방민족임.

    • 魏 ; 史記에 “或在中国,或在夷狄”라고도 했던 魏는 사실 월지족이나 흉노계의 국가로 북방민족

    • 田 ; 丁 기원누락

    • 沈 ; 퉁구스 선비족의 개명, 선비족은 동이의 일부로 보임

    • 姜 ; 염제 신농씨가 姜水에 살았다고 함. 동이의 일부로 보임

    • 崔 ; 한국의 성씨라고 중국 측이 말하고 있다.

    • 金 ; 淸부터 金氏가 나온다고 말한다. 중국의 역사에도 동이나 청의 왕조, 혹은 흉노로 金을 말한다.

          청의 국호가 金(금)으로 金(김)씨로의 개명을 황제가 친히 내린 적도 있다.

          무제 때 흉노의 태자가 金(김)씨로 개명하였고, 중국의 김씨는 한국계일 가능성이 높다.

    • 秦 ; 東夷部落首領伯益的裔孫非. 동이의 일부로 보임

    • 白 ;  신라 후대에 건너간 성씨로 唐시대 발생한 것으로 되어있다. 唐朝时候有白居易,元朝时候有白朴.

    • 嚴 ; 원래는 중국의 성씨지만, 만주족이 개명했었고, 조선족 중에도 있다.

    • 尹 ;  少昊金天씨에서 나왔다고 말하고 있다. (通志)氏族略載,少昊金天氏之子殷被封於尹城

           소호금천씨의 아들이 은으로 피해가 윤씨 성주에 봉해지다.


      東夷 족은 적어도 漢족과 틀리고 모든 동이가 한국인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한국인의 선조가 될 가능성은 漢족 보다 훨씬 높겠죠. 한국에 많은 소위 중국계 성씨라는 것이 대부분 고조선계거나 동이의 성씨라는 라고한다. “중국계 성씨가 한국성씨의 주요 성씨입니다.” 라는 어불성설은 사라져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