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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공동체(Yellow Sea Union)와 황해도시 연합

지식창고지기 2009. 12. 27. 10:59

황해공동체(Yellow Sea Union)와

황해도시 연합

 

 

김 석 철      

(아키반건축도시연구원장, 명지대 건축대학장)

 

 

역사적·지리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맺어온 동아시아문명권 중 한반도와 중국의 동부해안 및 동북지역, 그리고 일본열도 서남해안은 한국과 중국과 일본이라는 국가영역을 넘어 오래 지속된 교역과 교류의 역사를 갖고 있다. 지난 10년간 이 지역의 도시간 교역과 교류는 세계 어느 지역, 어느 경제권 보다 크고 밀접했다. 중국의 샨뚱성(山東省)과 랴오닝성(遼寧省)은 자국내의 다른 지역보다 오히려 한반도나 일본열도와 더 깊은 관계를 이어왔다. 거시적인 안목의 도시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생각한다면 중국 경제공동체보다 황해공동체가 더 실질적인 경제권역이다.



 

새로운 경제공동체의 가능성

 

거대도시 중심의 세 메갈로폴리스와

새로운 도시형식인 일곱 개의 어반클러스트가 주축을 이룬다.

 

 

중국의 동부 해안도시와 동북3성(東北三省) 그리고 한반도와 일본열도 서남 해안 도시군이 이루는 황해공동체는 과거의 역사와 지리에서는 동아시아의 변방이었지만, 미래에는 세계의 어느 지역보다 활발한 문화교류와 경제교역이 일어나는 공동체가 될 수 있는 동아시아의 핵심지역이다. 황해 일대가 역사상 지금처럼 강력한 경제공동체의 가능성을 가진 적이 없었다.


중국은 한개의 나라라기보다는 하나의 크고 다양한 세계다. 진시황 이후 통일중국이 중국대륙을 지배했지만 더 오랜 기간 중국은 몇 개의 독립적 지역으로 분할되어 왔다. 현대 중국의 지리적 규모를 거의 완성한 청(淸)의 건륭제(乾隆帝) 때에도 중국은 크게 아홉 개 정도의 준독립적 경제권역으로 분할되어 있었고 지금도 비슷한 정도의 경제권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중국도 총체적 국가발전전략을 마련함에 있어 중국대륙과 황해공동체와 동남아공동체의 세 범주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한 선택이 될 것이다.


세계경제가 블록화의 길을 가고 있는 지금, 동아시아의 미래를 위해서는 유럽연합이나 북미경제공동체에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경제공동체의 형성이 절실하다. 황해경제권은 유럽연합이나 북미경제공동체와 같은 경제공동체를 이루기에는 한국·중국·일본 세 나라의 국가적 규모와 경제력의 격차가 크지만, 황해 일원은 2천년 이상의 오랜 문명적 기반을 공유해왔고 국가를 넘어선 도시간 경제협력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므로 바다를 중심으로 한 경제공동체의 가능성은 어느 지역보다 크다.

 

 

유럽연합과 황해연합의 인구 및 경제지표 비교

 

 

 

 

 황해를 중심으로 본 한반도와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의 형세

 

 

 

한반도와 중국동부해안, 일본의 서남해안


 

 

황해공동체는 유럽연합이나 북미경제공동체보다 훨씬 오랫동안 공동의 문자생활과 정신세계를 공유해왔다. 황해공도에는 세계의 어느 경제공동체도 갖지 못한 공통의 문명적 기반을 갖고 있다. 황해공동체의 세 나 라는 서로 언어는 다르지만 한자라는 공동의 문자를 사용했으며 지난 2천년 동안 유교와 도교와 불교의 세계를 공유해온 것이다.

 

 


바다 인프라와 도시연합 전략


해안도시를 중심으로 4억 인구가 모여 있고 내륙의 연합권까지 합하면 6억이 넘는 인구와 황해라는 거대한 바다 인프라는 황해공동체의 많은 가능성과 함께 해결해야할 과제들을 암시하고 있다. 바다는 자연의 힘을 최대로 이용할 수 있는 기초 인프라이므로 황해공동체는 육지를 기반으로 한 유럽공동체와는 차원이 다르다. 즉 바다를 기반으로 하늘과 땅을 아우르는 종합적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 황해공동체는 바다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이므로 국제공항과 항만을 가진 대도시 중심의 도시공동체일 수밖에 없다. 유럽연합이 고속도로와 고속철도로 거미줄같이 이어져 모든 도시가 공동체의 주역이 될 수 있는데 비해, 황해공동체는 국제공항과 항만을 가진 대도시 위주로 구성될 수밖에 없으므로 대도시 집중과 지역불균형이 심화될 우려도 있다. 대도시와 중소도시가 같은 위계의 네트워크로 조직된 유럽공동체에 비해 황해공동체에서는 중소도시들이 대도시에 종속되는 구도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다.


황해공동체가 유럽공동체와 경쟁할 수 있으려면 대도시만이 아니라 모든 도시를 경제공동체의 일원으로 포괄하는 새로운 도시형식을 만들어야 한다. 황해공동체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려면 메갈로폴리스(megalopolis) 그룹인 뻬이징-텐진, 샹하이-양쯔(揚子江)델타, 인천-서울, 후꾸오까-오오사까와 함께 경쟁하고 협력할 수 있는 중소도시와 농촌이 연대한 ‘’도시연합(urban union)을 조직화해야 하는 것이다.


도시군 집합은 하나의 도시로는 국제경쟁력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도시들이 연대하여 세계와 경쟁할 수 있는 규모를 이루려는 것인데, 대도시 중심으로 도시연대가 이루어질 경우 주변의 도시가 종속화되고 농촌지역까지 흡수되어 대도시와 중소도시와 농촌이 이어진 거대한 도시군(群)인 메갈로폴리스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메갈로폴리스의 문제점은 결국 대도시 중심으로 재편되어 중소도시는 변방이 되고 모든 것이 대도시로 집중될 수밖에 없는 점이다. 뻬이징-텐진, 샹하이-양쯔 델타의 3천만 인구의 메갈로폴리스가 갖고 있는 문제점이 바로 그것이다. 대도시가 거대도시가 되면서 실질적으로는 대도시 중심으로 도시력이 집중되어 나머지 대부분의 지역은 황폐해지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이에 비해서 도시연합은 중소도시들이 기존 도시의 틀을 유지하면서 통합신도시에 의해서 하나의 연합을 이루는 것이다. 이 도시연합이 공단 중심의 산업클러스터와 함께, 농촌을 남겨두면서도 농촌과 도시의 벽을 허물고 어반클러스터(urban cluster, 도시집적체 또는 도시성군星群)라는 새로운 도시구역을 창출하는 것이므로 메갈로폴리스에 비해 좀더 균형잡힌 도시성장을 할 수 있게 된다.


황해공동체는 바다를 중심으로 하는 도시공동체이므로 불가피하게 대도시 중심이 될 수밖에 없으나 중소도시와 농촌이 새로운 도시형식인 도시연합전략을 세운다면 모든 도시가 공동체의 동등한 일원이 될 수 있다. 대도시와 대기업이 주도한 지금까지의 산업화·도시화와 달리 중소도시와 농촌이 산업클러스터와 도시연합을 이루게 될 황해공동체는 서구세계가 이루지 못한 새로운 도시문명의 미래를 열 수 있을 것이다.


황해공동체가 국가를 넘어선 세계화와 블록화의 이상을 실현하고 대도시와 농촌이 공생할 수 있는 도시연합을 이룬다면 황해공동체와 도시연합은 21세기 도시문명의 새로운 키워드가 될 수 있다. 황해공동체는 국가를 넘어 도시 공동체가 문명의 새로운 만남을 시도할 수 있는 세계이며, 도시연합은 도시와 농촌, 대도시와 중소도시, 다국적기업과 중소도시 산업클러스터가 상생하는 새로운 협력과 경쟁의 장이다.

황해공동체를 이루는 일은 유럽의 여러 나라를 유럽연합으로 통합한 일보다 어려운 일이지만 공동체의 기반인 도시군 집합을 성공적으로 수행한다면 부분적으로는 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

 

 


새로운 형식의 바다중심 도시공동체


황해공동체는 세계경제를 이끌어가는 두 축인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 공동체나 EU와는 다른 독특한 형식의 공동체다. NAFTA가 초강대국 미국을 중심으로 캐나다와 멕시코 등 주변국가를 끌어들인 연대인 데 비해, EU는 비교적 대등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들간의 공동체다. 지상의 도시인프라를 통해 연결되는 대도시·중소도시·농촌을 망라한 모든 경제주체들은 NAFTA나 EU라는 경제공동체 속에서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서로 경쟁과 협력 그리고 분업을 이루어가고 있다. 육로와 철도 그리고 항로로 이어지는 네트워크를 통해 역사적·지리적·인문적으로 거대한 관계성의 그물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 이들 경제공동체의 모습이다.


바다를 중심으로 하는 황해공동체의 도시들은 NAFTA나 EU와는 달리 하나 하나의 도시가 독립하여 협력과 교류를 이루기보다는 거대도시를 중심으로 도시들이 집합하거나 대도시와 중간도시 혹은 중간도시들끼리 모인 도시연합이 국제항만과 국제공항을 통해 교역과 교류의 거점이 된다. 결국 건너야할 바다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이기 때문에 도시집합체들이 공항과 해안도시를 통해 연대하는 것이다.


 

황해공동체는 대도시를 중심으로 한 메갈로폴리스와 내륙도시 및 해안도시 연합이 산업클러스터를 이룬 어반클러스터를 주축으로 한다. 뻬이징은 내륙도시이기 때문에 황해공동체에서 커다란 역할을 할 수 없다. 텐진은 보하이만(渤海灣)이 최대 항만이기는 하나 내륙과의 연계가 부족하고 자립할 수 있는 경제권역으로서의 규모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뻬이징·텐진을 아우르는 메갈로폴리스를 구성하여 황해공동체에서의 입지를 확보하고 세계를 상대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메갈로폴리스가 가진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도시연합과 어반클러스터라는 도시형식을 도입해야 하는 것이다.

황해도시공동체는 결국 중국 동부해안과 동북3성, 한반도와 일본열도 서남해안 도시군이 메갈로폴리스나 어반클러스터라는 새로운 형식으로 황해를 중심으로 이루게 되는 바다중심의 도시공동체인 것이다.


 

21세기의 세계중심, 황해공동체


유럽은 전후 50년 동안 지속적인 통합과정을 통해 경제적 번영과 지속적 평화를 유지해왔다. 유럽연합은 유럽의 발전방향을 제시해온 원천으로 이 시대의 위대한 혁명이다. 유럽연합은 급부상하는 중국과 초강대국 미국에 대응하는 강력한 통일유럽으로 향하고 있다. 한반도가 동북아시아의 변방에서 떨쳐 일어난 것은 미국 및 일본과의 강력한 군사·경제협력을 배경으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중국의 등장으로 인해 주변강대국의 세력균형이나 협력 없이는 자립하기 어렵게 되었다. 이럴 때 한반도가 미묘한 중심의 역할을 할 수 있는 황해공동체를 주도해 유럽공동체 못지않은 경제·문화공동체로 이끌어갈 수 있으면 제2의 경제도약도 가능해지며 역사상 유례가 드문 찬란한 문화 건설을 꿈꿀 수 있을 것이다.


21세기의 새로운 세계중심으로 떠오를 황해공동체에서 한반도의 역할을 찾는 일이 백년 만에 다시 찾아온 한반도의 기회라는 점을 깨닫는다면, 동북아 경제중심국가라는 국가 단위의 국정지표 대신 동아시아의 새로운 중심이 될 황해공동체의 의미를 바로 인식하고 이에 대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남북한의 화합 역시 황해공동체에서의 동반적 화합으로 나아가는 지혜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