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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역사인물

지식창고지기 2009. 12. 27. 11:12

1.오다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일본의 전국시대 혼란은 오다노부나가과 도요토미히데요시를 거쳐 도쿠가와이에야스에서 완성되는 형태로
3인의 노력에 의해서 통일되었다. 이들 중 노부나가와 히데요시를 이어 전국의 통일을 완수하고
에도(江戶)에 막부를 설치한 도쿠가와씨는 근대화로의 개혁의 물결에 묻혀 그 지배력을 잃게 된
1968년의 메이지유신(明治維新)까지 이러한 독특한-지방분권과 중앙집권이 교묘히 결합된 형태의-정치체제로
일본을 지배하였다. 250여년간이나 지속된 도쿠가와막부의 정치형태는 봉건제의 이형(異形)으로서의 중앙집권적인
봉건체제, 혹은 반대의 의미에 중심을 둔 지방분권적인 중앙집권체제(전제지배체제)등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2.가또 기요마사(1562~1611)
히데요시와 같은 나까무라 출생.
히데요시 어머니의 4촌 여동생의 아들인데, 3살때 아버지가 죽어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다가 히데요시의
부하가 되어 후일 구마모도 성주가 되었다.
조선침공이 결정되었을때 "전쟁이 끝나면 중국땅 20개주를 주겠다고 히데요시가 약속했다"며
좋아 하였으므로, 그를 주전파라 부른다.
임진왜란 때에는 서울을 거쳐 함경도로 진격, 임해군과 순화군을 포로로 잡았으며,
조선의 호랑이를 잡아 히데요시에게 보내주었다.
이후 함경도에서 정문부가 지휘하는 의병의 공격에 패전하여 서생포에 왜성을 짓고 주둔하였다.
히데요시 사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도쿠가와측에 가담하여 승리, 고니시의 영토인 우도를 빼앗아
구마모도의 영주가 되고, 지금의 구마모도성을 축성하였다.

3.고니시 유끼나가(1558~1600)
사까이 출신으로 약품무역상의 아들.
당시 대조선 무역을 독점하고 있던 소 요시도시의 장인이다.
히데요시가 조선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키려 하자, 사위와 히데요시에게 가장 영향력있는
이시다 미쓰나리와 협력하여 전쟁을 방지코자 하였으나 허사가 되었다.
임진왜란때에는 제 1군의 장수로 18,700명의 지휘관이 되어 참전.
1592년 4월 14일 첨사 정발이 사수하는 부산진성과 윤홍신이 사수한 다대포진성을 함락시켰고,
4월 15일에는 동래부사 송상현이 결사 항전한 동래성의 통과에 있어,
"싸우려고 한다면 싸우겠다. 싸우지 않으려면 길을 비켜라" 라는 나무판자 를 성앞에 세우니,
송상현이 "싸워 죽기는 쉬우나, 길을 비켜주기는 어렵다" 라고 하여 공방이 시작되고, 이내 함락시켰다.
계속 북상하여 제1차로 서울에 입성하는 전공을 세웠으나, 평양성 전투에서 패하여 병력의 2/3이
희생되고 건강이 악화 되었다.
이윽고, 평양성 패전의 명예를 회복키 위해, 권율장군이 지휘하는 행주산성을 4만명으로 공격하였으나,
2차에 걸친 공격 끝에 실패하고 퇴각하여, 웅천 남산에 왜성을 축성하고 머물렀다.
그후 정유재란에도 출병하였으나, 히데요시의 사망으로 철병하였다.
고니시 부대의 선단이 노량해협을 지나 신성리로 향하는 것을 저지하려는 조.명 연합함대와
싸움이 벌어졌으나, 이순신 장군이 전사함으로 전투가 끝나고, 신성리에 도착한 배로 남해남단을 돌아
본토에 도착하였다.

4.고바야가와 다까가게(1533~1597)

다까가게는 모리 모도나리의 셋째 아들인데, 고바야가와 가문에 양자로 갔다.
깃가와가로 양자간 형 모도하루와 같이 모리 가문을 잘 이끌었다.
히데요시의 양자중에서 다소 문제가 있던 히데아끼를 자신의 양자로 맡아 히데요시의 신임이 두터웠다.
왜란때에는 1만 2천 7백명을 지휘하여 서울에 입성한 후 전라도에 진격하였는데,
1592년 7월 8일 금산에서 전주로 들어가는 이치에서, 전라절제사 권율, 동복현감 황진이 이끈
약 1천 5백여명의 조선군의 반격을 받고 패전하였고,
2차에 걸친 금산전투에서 전라도민의 반격을 당하여 전라도 점령을 단념하게 된다.
일본군은 전라도에서 패전한 고바야가와 다까가게의 명예회복을 위하여 벽제에 잠복,
방심하고 있던 명군을 기습 공격하니, 원래 전투의지가 없었던 명군은 평양까지 퇴각하고
싸우려 하지 않았다.
덕분에 다까가게는 일본 역사에서 일약 명장으로 기억되었다



그 나라를 알기 위해서는 그 나라의 역사부터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첫번째 세 인물들 외에도
한국의 임진왜란과 관련된 역사인물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적이지만 일본에서는 명장으로 기억되고 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