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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넘기 어려운 이질 문명의 나라 (9)-고동소리에서 가져 옴

지식창고지기 2009. 12. 30. 20:17

사우디, 넘기 어려운 이질 문명의 나라 (9)

 

4)  사우디의 객가 상인

 

사우디에서 살다 보면 부지런하고 싹싹하며 질긴 풀 뿌리처럼 강한 생명력으로 성공해
올라가는 그래서 식품 도매상, 자동차 부품상, 중기 임대업 등등에 자리 잡고 있는 예멘
상인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들에게 예멘인가 묻고 어디 출신이냐고 물으면 으례 자랑스럽게 대답한다. 하이드라맡
이라고. 마치 세계적으로 이름 높은 중국의 화교상인 중에서 유명한 상인들이 중국 남부
출신의 객가 상인이듯이 중동 지역에서 상인으로 이름 높은 상인은 하이드라맡이다.

 

오사마 빈 라덴이 속하는 빈 라덴 패밀리 외에도 한때 National Commercial Bank 회장
이었던 빈 마푸즈, 에디오피아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 ABV Rock 회사의 회장 알 아무디,
사우디의 전기제품 과 송전탑등의 유명한 제작사 알 밥틴, AT & T의 사우디 에이전트인
북샨등이 다 하이드라맡 출신이다. 사우디의 한국 타이어 독점 수입상인 빈 시온도 마찬
가지이다

 

91년 걸프전이 일어난 후 사우디 정부는 기회를 타 아주 커다란 정책을 시행했는데 사우디
에서 활동하는 모든 예멘인들에게 스폰서를 두거나 그렇지 않으면 귀국하도록 그 동안
주어 왔던 특혜를 취소한 것이다. 이때에 에멘인 50만이 귀향했다. 예멘인의 대 추방이
이루어 진 것이다.

초기의 부동산 소유권이 취소될 때 예멘과 사우디는 전쟁이 있었으나 걸프전 당시에는
예멘이 남북으로 갈리어 있어서 사우디의 조치에 강력한 반발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예멘은 통일 되었고 살레가 이끄는 통일 정부는 사우디에게 영토 문제를 항의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양국은 전쟁을 통한 해결방법이 아닌 대화를 통해서 해결하기로 했으며 양국간의
대화는 10년이 넘게 진행되고 있다.

5.  파하드 국왕 사망에 즈음한 사우디의 오늘


 

사우디 아라비아 파하드 국왕의 사망 소식이 알려진 2005. 8.1. 한 때 정유업체들의 공급
차질 등에 따른 우려로 국제 유가가 사상 최고 기록을 경신했었다.

 

사우디의 파하드 국왕 사망에 따라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왕세제가 왕위를 계승
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 석유시장에서는 세계 최대의 석유 수출국인 사우디 아라비아가
정국 불안에 휩싸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81세인 압둘라 국왕의 왕위 계승
이후 왕세제로 지명된 술탄 빈 압둘 아지즈 국방장관 역시 80세로 고령이라는 점이 향후
사우디 아라비아 정국의 불확실성을 더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우디 아라비아에서는 지금까지 왕이 사망하거나 퇴위할 때 초대 국왕 압둘 아지즈의 아들
대에서 돌아가며 왕위를 계승해 왔다. 2대부터 5대 국왕이 모두 형제인 것이다.

 

이번에 사망한 파하드 국왕은 지난 1992년 새 왕위 계승법을 도입, 초대 국왕 아들대의 자동
승계 조항을 없애고 손자대에서도 왕위를 계승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 그러나 이 법에
따라 왕위를 계승한다 해도 현재 왕위를 물려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초대 국왕의 자손이
5,000
여명이나 되어 그 부작용을 감안해, 그 동안의 관습에 따라 이번 6대 국왕으로 파하드
국왕의 이복 동생인 압둘라 빈 압둘 아지즈가 왕위에 오르게 된 것이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야기된 걸프전 때는 이라크의 공격을 막기 위해 미국을 비롯한
서방 연합군을 사우디로 불러 드리는 등 파하드 국왕의 친미적 외교에 대한 반감은 2001
9.11
테러범 19명 중 15명이  사우디 출신이었고 특히 대 서방 테러의 대명사가 된 오사마
빈 라덴도 사우디 국적 소유자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알 호바르에서 발생한 유혈 인질극의 배후가 테러조직 알카에다로 알려
지면서 사우디와 알카에다의 이슬람 원리주의 정통성 논쟁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알카에다를 이끌고 있는 오사마 빈 라덴은 이슬람 원리주의의 한 분파인 와하비즘에 이념적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아이로니컬하게도 알카에다가 테러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사우디
왕가의 통치이념 역시 와하비즘에 근거하고 있어 이들은 같은 교리에 대한 이념적·해석적
갈등을 빚고 있다.

 

90년대 들어 알카에다가 반미 테러를 주도하기 시작하자 사우디는 같은 이념적 뿌리를
가진 빈 라덴과 거리를 두고 적극적인 개입을 꺼렸다. 그러나 미국의 동맹국인 사우디가
알카에다의 테러 대상으로 떠오르자 결국 사우디는 알카에다의 이념적 정통성을 부정하고
전면전을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사우디 정부는 알카에다가 인명을 존중하는 이슬람의 신앙적 진정성을 상실한 일탈세력
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미국 주재 사우디 대사인 반다르 빈 술탄 왕자는 30일 알 호바르
인질극을 벌인 테러범들을 이슬람의 원리원칙과 거리가 먼 세력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알카에다는 사우디 왕가가 이교도인 미국과 손잡고 부정·부패를 자행함으로써 마호
메트의 탄생지인 이슬람 성지를 더럽히고 와히비즘의 순수한 가르침에서 멀어졌다고 비난
하고 있다.

 

1995년 파하드 국왕이 뇌졸증을 겪고 건강이 악화된 이후 왕세제인 압둘라가 실질적으로
국사를 보살펴왔고 국내방위를 담당하는 국가방위군 (National Guard) 총사령관을 맡고
있는 그가 건강에 적신호가 없기 때문에 당분간 왕위 계승에 따른 정치적 충격이나 권력
지도체제상의 흔들림이 거의 없이 현실노선을 걷고 사우디 아라비아의 유가 정책도 별다른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전망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는 부패나 방탕한 생활과는 거리가 멀어 국민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으며 서방과 아랍
국가들 사이에서 균형을 추구하는 정책을 견지해왔다. 이교도 미국에 대한 지나친 의존을
지지할 입장이 아니지만, 빈라덴 식의 테러에도 반대한다. 미국 부시 대통령은 텍사스 개인
목장으로 압둘라를 초청하는 등 그에게 친화적 제스처를 보이고 있고, 압둘라도 대미 관계
에서 현실적이고 실리적인 외교정책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라크가 아직 안정이 안된 상태에서 파하드 국왕의 죽음으로 혹시 깨뜨려질지도 모르는
사우디의 정치적 안정은 국제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관심사로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었다. 물론 그 관심의 한 축에는 석유가의 인상요인에 대한 것이 깔려 있다고 할 수
있으리라.

 

1970년 대 후반부터 1980년대를 거치면서 중동에서 쌓아 올렸던 한국 건설 역군들의 큰 성과
를 바탕으로 다시 이라크에 전쟁이 종식되고 평화가 온 뒤 실시될 국가 재건 프로그램과 그리고
사우디를 비롯한 아라비아 반도에 건설 붐이 일어나게 될 때 다시 한번 우리 한국 건설업체들이
중동 건설 시장에서 위대한 성가를 떨치는 날이 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21세기 첨단 IT 산업 사회를 살아가는 오늘날 사우디는 언제까지 차토르를 둘러쓴 여인들의
나라로 남을 지 궁금한데 사우디 아라비아는 오늘도 우리에게 여전히 넘기 어려운 이질적
문명의 나라로 섬처럼 외롭게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