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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예술에 비친 성

지식창고지기 2010. 2. 11. 11:43

TV2.0에서 가져 옴

 

외설시비(猥褻是非:Obscenity)

문예에 비치는 성 문제에 있어 먼저 생각해야 할 일이 외설/음란(猥褻/淫亂)에 대한 시비다. 즉 어디까지가 예술이며 어디까지가 외설이냐 하는 시비문제다. 이것은 세계 모든 나라들이 공통적으로 행정당국과 언론간의 시비꺼리이며 문화와 풍습에 따라 제도를 달리하고들 있다. 우리 나라의 외설의 기준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보지 못하여 유감이다.

가까운 일본은 사회통념을 기준으로 외설여부를 판단하는 모양인데 이에 대하여 언론들은 표현의 자유에 관계되는 것을 사회통념에 따라 판단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스러운 일이라고 반박하고 나섰다. 영국과 미국에서는 약 20년 전부터, 외설이란, 널리 일반에게 인정되고있는 품위와 인간성에 대한 시대적 기준을 짓밟는 것이라고 막연한 정의를 내리고 있다. 또한 법에서도 인간을 타락시키고 부패시키는 것이라고 하고있으며, 구체적으로 첫째로 타자위해(他者危害)의 원칙에 입각하여 남에게 나쁜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남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것이라면 단속을 할 수 없다는 이야기인데 이것도 기준이 애매하다.

둘째로 불쾌금지(不快禁止) 원칙이다.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은 공개를 금지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몹시 불쾌스러운 음란물을 즐기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반대로 다소 불건전한 것마저도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고로 이 기준도 일률적인 적용이 곤란하다 하겠다.

셋째로 미성년자 보호의 원칙인데,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즉 어떤 종류의 출판물이라도 미성년자의 눈에 띄지 않도록 공개를 못하게 한다는 것이니, 노상이나 책방 등에 전시하며 판매할 수 없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 등지에는 우리 나라같이 아무 곳에나 포르노출판물을 쉽게 접할 수는 없다. 하기사, Cyber에서도 18세가 아니면서도 18세라고 하면 신원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니 쉽게 Sex site를 볼 수 있지만 반드시 경고문이 있어서 경각심을 환기하는 배려를 하고있으며 또한 ID를 요구하고 있으니 효력 있는 조치이다. 그리고 넷째로는 인쇄물은 아무 제한을 받지 않도록 인쇄권의 보호원칙이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것은 미성년자들에게는 다소의 효과가 있는지 몰라도, 성인들은 음란물을 즐길 수 있는 우행권(愚行權)이 문제가 된다. , 무엇이 나쁘다, 그런 것을 보면 안 된다는 등을 결정하는 것은 개인의 권리에 속하는 것인데, 정부가 그런 것을 간섭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주장이다.

1986Gordon & Snyder에 의하면 음란물(淫亂物)의 기준은 이러하다. , 주제나 자료가 1). 성에 대한 음란함을 느끼는 것, 2). 사회규범을 명백히 위반한 것, 3). 사회적 가치를 되찾을 수 없는 것이라고 규정짓고 있다. 그러나 이런 기준은 여러 불확실성을 유발하게 마련이다.

스칸디나비아 제국(諸國)은 영국과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우면서도 음란물(淫亂物)에 대한 법규가 아주 대조적이다.

덴마크는 1969년 벌써 성을 표현하는 저작물(음란물)에 대한 처벌법을 파기하였다. 하여,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포르노그라피를 구하려 그 나라를 찾았었다. 그러나 그 나라는 그로 인해 성 윤리가 변하지도 않았으며 도리혀 성폭행 등이 감소되었을 뿐 아니라 성고민에 대한 도움을 주었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이 여파로 미국에서도 죤슨(Lyndon Johnson)대통령 시절 음란물에 대한 규제법이 심의되었고 완화하는 추세였으나 1980년 레이건(Ronald Reagan)시절에는 견해를 달리하여 음란물이 유해하며 성범죄를 유발할 수 있다고 보았으나 강력한 조치는 취해지지 않았다.

여하간 우리 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하여 선정적인 아니 저질스러운 외설물들이 너무 많고 쉽게 눈에 띄어서 부끄러울 때가 있다.

고대사회에서는 동서를 막론하고 성의 사회적 규제 내지 억압이 그리 심하지 않아서 비교적 자유스런 에로티즘을 구가한 것 같다.

그것은 힌두의 미투나를 위시한 여러 조상물(彫像物) 그리스-로마 시대의 조각물 남미 잉카의 도기(陶器) 중국 이스람의 회화(繪畵) 등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우리 나라 삼국유사를 보더라도 추리 할수 있다. 그러나 사회가 도시화되고 복잡해짐에 따라 종교적 금기시 내지 정치적 규제 등의 성문화의 억압이 가해지게 되었다.

현대 사회의 안목으로는 자유스런 성 해방 사회란 마치 야수(野獸)를 방사하는 듯한 일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억설일지 몰라도 야수 자체가 위험한 것은 아니다. 울타리 안에 가두어 넣은 후 갑자기 방사(放飼)하니까 위험한 일이 야기될 수 있다고 염려하는 것이다. 실제로 그것은 기우(杞憂)에 불과 할지 모른다.

자유스럽게 산야를 누비는 야생동물과 우리 안에 가두었던 야생동물 중에 어느 것이 더 위험스럽다고 생각이 드는가? 야간 통행금지를 해제하면 사회가 더 혼란스러울 것이라고 염려했지만 통금을 해제하고 난 후 사회는 어떻게 변하였던가.

성의 해방이라 해서 인간들이 원시(原始)에의 복귀(復歸)나 야성에의 회귀(回歸)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고대 힌두의 미투나, 잉카의 도기들을 보면서 극히 자유스러웠던 성, 그 에로틱한 매력이 결코 현대의 눈과 같이 사악(邪惡)하였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는 야생동물은 야생 그대로 방치하던가 아니면 모진 규제와 훈련으로 사람의 지시대로 따를 수 있는 곡마단의 야수 같이 사육하는 것 과 같이 성의 규제에 대하여 신중한 고려를 해야 될 것이 아닐까 한다.

현대의 음란물(Erotica)은 아무래도 포르노그라피가 그 주종일 것이다. 포르노그라피(Pornography)는 그리스어에서 포로로 끌려와 창녀(娼女)가 된 여자를 뜻하는 Porne과 그린다는 뜻의 graphos의 합성어이다. 그리고 성애(性愛)를 다룬 하나의 예술을 의미하였다. 그러나 요즘은 그 본래의 의미가 퇴색하여 음란물로 인식되어버렸다.

소위 외설이라는 에로티카(Erotica),포르노그라피 등, 성에 관한 문예(文藝)의 기준도 어디까지가 외설이고 어디까지가 예술이냐가 참으로 애매 모호하다. 어떤 면으로는 성희도(性戱圖:포르노그라피)가 성의 Text일수도 있고, 반대로 다만 욕구충족을 위한 자극물에 지나지 않을 수 도 있다.

지난 세대에는 출가하는 딸에게 성교 체위의 지남서적(指南書的) 역할을 하는 춘화(春畵:Erotica)를 은밀히 보냈다는 외국의 이야기가 있다.

춘화가 단순히 교과서적 목적 이였다면 도식(圖式)으로도 충분하지만 예술성을 가미하였다. 그렇다고 그 춘화가 예술품일까? 예술이 상품과 다른 것은 상업성 여부에 있다.

대부분의 포르노그라피는 성 상품이다. 고로 음란물이다라는 등식이 성립되는 것일까? 여하간 성 상품으로서의 포르노그라피는 Cyber-sex상품도 예외 없이 예술적 표현이라기보다는 상업화를 위한 성기의 과장표현 내지 체위의 부자연스러운 표현 등이 있다.

에로티카(Erotica)를 예술이 아닌 성의 자극적 역할로서 본다면 외설물이다. 그렇더라도 그것은 힌두 사원(寺院)의 조형물 같이 노골적이고 적극적이지 못하고 제약을 받은 탓일까 에로티즘 표현이 충분하지 못하다고 보여진다. 또한 성기 미학적인 표현은 있어도 성교 미학적인 것은 가히 힌두의 카주라호 사원들의 것을 비길만한 것이 없다. 이런 견지에서 힌두의 미투나는 예술이고 에로티카는 외설이라고 단정하게 되는지 도 모른다.

아마도 요지음, 회화(繪畵)에서는 음모(陰毛)의 묘사가 외설이 아니지만, 사진예술에서는 음모의 노출이 외설인 것으로 되어있는 듯 하다. 스트립쇼에서도 같은 기준이 적용되기에 스트립티져(Stripteaser)들이 음모가 들어날세라 염려하여 음모를 짧고 예쁘게 극소화하여 깎아버린다 한다. 그러나 동양 삼국에서는 여성의 음모는 남녀관계에 있어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무모증(無毛症)을 소위 백판(白板: 白虎: 光根兒)이라 하여 기피시 하였던 것이다. 음모의 삭발(削髮)풍습은 고대 그리스 터키 이스람 인도(印度) 등의 욕탕(浴湯)에서 남. 여 모두에게 행하여졌던 관습이었다.

사회 관습에 따라 문화가 다르듯이 외설의 기준도 다른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이 책을 엮으면서도 여러 가지 제약 때문에 본 저자의 소신대로 내용을 게재 할 수 없음이 유감이다.

Sexology라는 학문도 근래에는 성과학(性科學)이라고 하지만, 사실 재래적인 관념으로는 성교학(性交學) 또는 성애학(性愛學)이다.

이것이 교육적이고 의학적인 의미를 일탈(逸脫)한다면 외설과 에로티즘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근자에는 의학의 발달로 모든 것을 체계적이고 과학적으로 정립하였지만, 과학의 개념이 없는 체험적 철학적 바탕에 근거한 고대 의술에서의 성애학(性愛學)은 현대의 안목으로는 외설적으로 보여질 수도 있다.

고대 중국의 신선술(神仙術)이라는 것이 바로 오늘날의 성 과학인데, 기원전 2,000년부터 발달한 성애술이 후한(后漢)대에 와서 소녀경(素女經) 동현자(洞玄子)라는 책을 저술하게 된 것이고, 그것들은 일반서민들에게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것들이었고, 오직 황실(皇室)을 위시한 호족(豪族)들의 성애생활에 활용하기 위한 것일 뿐이었다. 옥방비결(玉房秘訣)도 인도의 카마수트라 같이 성행위의 방법 양태 성 기능부전 등에 대한 성전(性典)인바, 체험적이고 당시 의술에 근거한 저서이라서 현대의 안목으로는 비과학적인 부분이 많고 외설적이라고 보여지는 부문이 있다. 그 한 실 예로 여성성기에 대한 신도인(愼道人)의 음호십이류(陰戶十二類)를 본서 <성과 보건 의학> 편 미녀와 성기에 기술한다.

출처 : http://myhome.hanafos.com/~suprim/sx2-1.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