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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 전쟁 그리고 인간] <9> 파도를 헤치고①

지식창고지기 2010. 2. 28. 15:05

[무기, 전쟁 그리고 인간] <9> 파도를 헤치고①
사활이 걸린 바다…美·日·中·러 해군강국에 갇히다
대륙간 무역의 99%가 해상으로 운송
바다의 자유 확보 위해 군사력 경쟁
日자위대 전력의 27%수준인 우리는…


우리나라를 ‘아시아 대륙의 끝 한반도’라 부르기 보다 대양(大洋)의 시작이라 부르고 싶다. 이제까지 우리는 지도의 위를 북쪽으로 삼고 살아왔다. 분단의 땅 북한과 중국 러시아 두 강대국이 버티고 있는 북쪽 대륙을 생각하면 갈 길이 막힌 것처럼 막막하고 답답함을 느끼곤 했다. 그러나 지도를 거꾸로 놓고 보니 넓디 넓은 대양이 우리의 눈앞에 확 들어온다. 5대양과 크고 작은 바다들이 모두 한반도 앞에서 시작된다. 이제까지 우리를 짓누르던 모습의 대륙은 넓은 바다를 향해 떠나는 우리의 뒷마당 같이 편안하게 느껴진다. 타율적으로 축소된 반도국의 운명에서 벗어나 대양을 앞마당으로 한 우리의 나아갈 길을 모색해본다.

해양세력, 대륙세력

현재는 큰 의미를 상실했지만 과거에는 보통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으로 국가들을 구분했다. 우리의 주변 국가들 중에 러시아와 중국은 대륙세력으로, 미국과 일본은 해양세력으로 분류됐다. 바다 멀리서 육지를 포격할 수 있는 함포를 지닌 거함거포(巨艦巨砲)의 해양강국들을 늘 머리에 떠 올리며 우리나라도 언젠가는 그런 능력을 갖출 수 있게 되기를 꿈꿔왔다.

해군력으로 표현되는 해양세력은 작전거리를 기준으로 연안해군, 지역해군, 대양해군, 세계해군으로 분류되며 작전 바다의 색깔을 기준으로 황색수역 해군, 녹색수역 해군, 청색수역 해군으로도 나뉘어진다. 국가의 위상에 따른 분류로는 약소해군, 중급해군, 강대국 해군, 초강대국 해군이 있다.

한국 해군은 지역해군, 녹색수역 해군, 중급해군 수준으로 대양해군 또는 세계해군력을 보유한 미국 일본 러시아 중국에 둘러싸여 있다.

미국은 명실공히 세계최강,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전세계적인 배치를 통해 세계 모든 관심지역, 분쟁 지역, 전쟁지역에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일본은 전통적인 전수방위의 개념을 깨고 공중급유기의 도입과 상륙능력의 확대, 그리고 이지스(Aegis)급 구축함의 확보와 잠수함 세력의 확대를 통해 이미 공세적 전력의 면모를 갖추었다. 세계 2위의 경제력에 걸 맞는 군사력 확보를 추진하고 있으며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 진출을 적극적으로 추구하고 있다. 최근에는 러시아, 중국 그리고 우리나라와 각각 영토분쟁도 불사하는 공세적 정책을 펼치고 있다. 1995년의 신방위대강과 97년 미ㆍ일 신방위협력지침을 통해 군사대국화의 길에 들어섰다고 판단된다.

중국은 전통적 대륙 세력으로부터 변화하기 시작했다. 89년부터 3단계 해군군력정비방침에 따라 군사비의 지출을 매년 두 자리 숫자에 달하도록 급속히 증가시키고 있다. 이를 통해 가깝게는 동중국해 및 남중국해의 제해권을 확보하고 장기적으로는 미국과 러시아에 필적할 수 있는 원양 작전 능력을 갖추는 것이 목표다. 구축함, 핵 잠수함 및 항공모함 등 해군력 증강에 힘쓰고 있는데 이르면 금년 안에 항공모함을 확보할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소련 시절보다는 위축된 것처럼 보이지만 아직은 미국에 필적할 해군력을 보유하고 있다. 극동함대는 동아시아 지역에서 각축하는 해군력들중 중요한 한 축이다.

우리의 해군함대는 일본 해상자위대 전력지수의 27%정도로 알려져 있다. 상대방 전력의 70%선을 유지할 경우 전쟁에서 비기거나, 이기지 못할 확률이 50%라는 이론에 비추어 보면 한국해군이 보유한 전력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우리나라 주변의 강대국들이 펼치는 세력의 각축과 그들의 해군력의 내용은 앞으로 몇 회에 걸쳐 자세히 살펴보겠다.

바다로 나가야 하는 이유

옆에 보이는 복잡한 지도는 어느 특정한 시점으로부터 24시간 동안 전 지구적으로 발생하는 전자신호를 기록한 것이다. 초록색으로 표시되는 부분이 그러한 전자신호가 가장 활발한 지역을 나타낸다.

이 도표에서 몇 가지 분명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초록색은 인구가 밀집되어 있고 경제활동이 활발한 지역을 말하며 이는 북미 대륙을 제외하면 서유럽에서 출발하여 페르시아만을 거쳐 서태평양 지역으로 이어지는 호를 그린다. 각 대륙의 윤곽이 비교적 잘 드러나는 만큼, 대부분의 경제활동이 바다와 인접한 해안지역에 집중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자주색 선은 세계 무역의 운송로를 나타낸다. 남아프리카의 희망봉 지역을 제외하고 살펴보면, 이런 무역의 경로가 위에 말한 3개 지역(서유럽, 페르시아만, 서태평양)에서 시작되고 끝나는 것을 알 수 있다.

흑색 선은 광섬유통신케이블의 연결을 나타낸다. 이 또한 우리가 살펴본 3개 관심지역에서 시작하거나 끝난다.

푸른색 점은 16개의 대단위 항구를 나타낸다. 대형 컨테이너선(船)을 다룰 수 있는 항만 설비와 충분한 수심이 필수적인 요건이다. 대륙간 무역에서 물동량의 기준으로 99%, 금액기준으로는 80%가 바다를 통해 운송된다.

이처럼 북미를 제외하고도 3군데 중요지역에서 시작되고 그 중의 한 곳에서 끝나는 국제무역과 경제활동에서 자국의 이익을 확보하고 보호하기 위해 미국을 비롯한 이해 당사국들이 막강한 해군력을 투사하고 있다. 그들은 바다에서의 자유를 확보하기 위해 해군력을 전진 배치한다. 평화시든 전쟁 때든 바다에서의 자유를 확보하는 것은 국가의 사활이 걸린 중요한 사항이다.

도표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우리나라는 3군데의 관심지역과 미국지역에 중요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중 페르시아만에서 시작하여 우리나라를 포함한 서태평양에 이르는 축은 문자 그대로 우리에게는 사활적 이해관계 지역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원유를 비롯한 소요 에너지의 100%를 해상 운송을 통해 수입하고, 수출입 물동량의 90% 이상을 해상운송으로 처리하기 때문이다.

국방은 적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는 일이다. 한 나라가 사느냐 죽느냐 하는 문제를 다룬다. 늘 전쟁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그에 대하여 한치의 어긋남이 없이 대처해야 한다. 때로는 국민의 열렬한 지지와 성원아래, 때로는 여론의 비난과 오해 속에서도 결정적인 힘을 기르고 치밀하게 준비하고 신속하게 행동해야 한다. 그 바탕에는 우리나라를 제외한 어느 나라도 우리의 적국이 될 수 있다는 명확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 세계 어느 나라도 국방을 다른 나라에게만 맡기지 않는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을 다른 나라 용병에게 맡겼다가

멸망한 나라들의 사례를 많이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가 사활적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지역을 우리 국방정책이 포함하고 있지 않다면 이는 전면적으로 재검토돼야 한다.

요즈음 들어서야 우리나라에서 대양해군에 대하여 많은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대양해군이 막강한 화력을 가진 커다란 군함의 함대만으로 실현될 수 있을 것인가? 이미 우리의 사활적 이해관계가 걸린 지역을 휘젓고 있는 다른 나라들이 우리의 진입을 환영하며 길을 터 줄 것인가? 우리의 능력과 자원이 대북억제전력 외에 대양해군을 건설하고 운용할 수 있을 만큼 건실한가?

우리의 국방이념

국방의 이념과 철학은 한 나라가 그 독립성과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생존하고 번영하기 위해 가져야 할 합의된 비전이다. 이제까지 안보정책, 국방정책과 그 상위 지도개념인 국방의 이념과 철학이 불분명한 상태로 혼용되어 왔다. 국방정책, 안보정책이라는 말을 총체적 목표와 수단을 함께 아우르는 말로 많이 써왔다. 정책은 어느 시점의 상황에 따라 국가안보와 국방을 어떻게 운영할 것이냐 하는 방법론과 단기적인 목표의 설정이다.

정권에 따라, 시대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이런 개념의 혼란은 국방의 테크노크라트라 할 수 있는 군부가 한국 정치를 담당해왔던 불행한 역사에서 비롯되었다. 민주화, 문민화를 이룬 정치체제 아래에서도 과거의 국방 테크노크라트가 짜 놓은 틀에 갇혀 국방의 철학과 지도이념을 정립하는 일에 눈 돌릴 틈이 없었다. 환경의 변화에 따라 국방정책의 수립과 조정에 매달리는 일만도 벅찼고 그나마도 그들 전문가의 손에 대부분 의지할 수 밖에 없었다.

이제 지도 이념과 목표를 설정하는 일과 그 수단을 결정하는 일에 대한 지도자와 테크노크라트의 역할 분담이 적절히 이루어져야 할 때가 되었다.

윤석철객원 기자 ysc@hk.co.kr



입력시간 : 2005/04/27 1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