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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칭짱철도 개통 2개월 티베트 가다]<상,하> 개발 열풍과 역풍

지식창고지기 2009. 5. 30. 08:27
[칭짱철도 개통 2개월 티베트 가다]<상> 개발 열풍과 역풍



중국 티베트의 상징이자 1959년 달라이 라마 14세가 인도로 망명하기 전 집무실로 쓰던 포탈라궁. 14일 오후 비가 그치고 날씨가 화창해지자 관광객들이 열심히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있다. 라싸=하종대 특파원

 

 

 

 

 

 

 

 

 

 

 

 

 

 

 

 

 

 

 

 

 

 

《‘하늘길(天路)’로 불리는 칭짱(靑藏)철도가 개통된 지 2개월 남짓. 티베트는 이제 ‘은둔의 땅’이 아니다. 명승고적마다 관광객이 넘치고 곳곳엔 건축 열기가 뜨겁다. 시내엔 영문 간판이 속속 내걸리고 점원은 서툰 외국어로 손님을 맞는다. 한편에선 경제 도약을 기대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전통문화의 파괴와 경쟁의 심화를 우려한다. ‘독립’이라는 단어는 이곳에서 그 자체로 금기다. 본보 하종대 베이징(北京) 특파원이 칭짱철도 개통 이후 처음으로 중국 외교부의 공식 초청을 받아 11일부터 7일간 티베트 변화의 현장을 취재했다.》

▽넘치는 관광객, 즐거운 비명=13일 오전 시짱(西藏) 자치구의 성도 라싸(拉薩) 시 심장부에 위치한 부다라(布達拉·티베트어 포탈라) 궁 앞. 미처 입장권을 구하지 못한 관광객들이 내일 표를 예약하기 위해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하루 1000여 명이던 관광객이 칭짱 철도 개통 후 갑자기 하루 3000여 명으로 늘어나자 부다라 궁 관리처가 하루 입장객을 1600명으로 제한했기 때문이다. 단 매일 1000명에 이르는 현지 짱(藏)족 농목민은 얼마든지 입장이 가능하다.

“문화재 보호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부다라 궁 관리처 바이마취단(白馬曲丹) 부처장은 설명했다.

시내의 다자오쓰(大昭寺) 사원이건 라싸에서 190km가량 떨어진 나무추(納木操) 호수건 명승고적엔 사람들로 넘쳐난다.

여관과 호텔은 즐거운 비명이다. 종전 380위안(약 4만5600원)이던 3성급 호텔 하루 방값은 580위안으로 50% 이상 껑충 뛰었다.

▽오염되는 티베트 문화=‘하늘길’을 타고 사람과 물자가 쏟아져 들어오면서 티베트의 고유문화와 전통이 급격히 순수함을 잃어 가고 있다.

13일 오후 다자오쓰 사원 앞. 티베트를 처음 통일해 토번(吐蕃·투판)왕국을 세운 송첸캄포가 네팔에서 온 아내 츠준 공주를 위해 만든 이 사원은 항상 참배객들로 붐빈다.

사지와 머리를 한꺼번에 땅바닥에 대고 절하는 오체투지(五體投地)는 가장 성스러운 참배 행위. 5월 라싸에서 463km 떨어진 나취(那曲) 지구 안둬(安多) 현에서 출발해 최근 도착했다는 푸부츠런(普布次仁·20) 씨는 “오체투지는 가문의 전통”이라며 타이어를 잘라 만든 신발을 자랑스레 보여 줬다.

‘정말 불심이 깊구나’라고 생각하며 돌아서려는 순간 그가 손을 내밀었다. 사진을 찍었으니 촬영비를 달라는 것이다.

거리엔 앵벌이를 직업으로 삼는 가짜 라마(승려라는 뜻)가 적지 않다. 관광객을 상대로 부적을 사라고 강요하거나 무조건 돈을 달라며 떼를 쓰기도 한다.

이탈리아 남성복을 비롯해 외국 상표가 들어오면서 예전엔 볼 수 없던 상점의 영문 간판도 속속 늘고 있다.

티베트의 전통도 변하고 있다. 밤에 별빛을 받으며 온 가족이 강가에서 몸을 씻는 무위제(沐浴節) 풍습은 최근 야간 범죄가 늘면서 낮에 하거나 목욕탕에 가는 것으로 대체됐다.

오지산간에 가더라도 말이나 수레를 타고 다니던 유목민은 이제 찾아보기 쉽지 않다. 오토바이와 경운기, 자동차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하늘길’ 기대와 우려=7월 1일 칭짱 철도가 개통된 뒤 2개월 동안 시짱 자치구의 관광객은 지난해보다 최소 40% 이상 늘었다.

1km에 t당 0.5∼0.6위안(약 60∼72원)이던 화물운송비도 0.1위안으로 80% 이상 내려갔다. 운송비 때문에 외지에 내다 팔기 어려웠던 티베트 특산품의 경쟁력이 크게 향상된 셈이다. 잠재 가치 1조 위안(약 120조 원)에 이르는 티베트 자원 개발도 속속 추진되고 있다.

올해 라싸 시엔 처음으로 출퇴근 시간에 정체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룸살롱, 마사지 업소 등 유흥업소도 속속 들어서고 있다.

시짱 자치구 인민정부 니마츠런(尼瑪次仁) 부주석은 “관광업이 다른 산업의 발전을 유발하는 ‘산업태동률’은 1 대 4, 5에 이른다”며 칭짱 철도가 갖는 의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종족 간 갈등 등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시짱대 티베트어교육과 라무(拉姆·20·여) 씨는 “앞으로 경쟁이 더욱 치열해져 일자리를 얻는 게 더욱 어렵게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낙후된 티베트에 외지인이 몰려오면 짱족이 도태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실제로 1994년 2.8%에 불과하던 티베트의 한족 비율은 6년 만인 2000년 5.9%로 2배 이상 늘어났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짱족 인사는 “티베트에서 짱족이 92.2%를 점유하고 있지만 대부분 못사는 농목민이고 잘사는 사람들은 거의 한족이거나 후이(回)족”이라며 앞으로 이런 추세가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라싸=하종대 특파원 orionha@donga.com

▼열차타기 2, 3일전 고산병 약 먹어야▼

‘세계의 지붕’으로 불리는 티베트는 평균 해발고도가 4200m에 이른다. 해발 3658m인 라싸의 산소 밀도는 평지의 62.6∼64.4%에 불과해 무작정 여행에 나섰다가는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

칭짱 열차를 타려면 건강증명서를 제출해야 한다. 단, 스스로 체크하는 것이지 병원이 발급하는 건강진단서를 내는 것은 아니다.

출발하기 2, 3일 전부터는 산소의 흡수율을 높여 주는 고산증 예방약을 미리 복용하는 것이 좋다.

칭짱 열차 내에는 2명의 의사가 항상 대기 중이다. 열차가 해발 2829m인 거얼무(格爾木)를 지나면 산소가 객실 내에 자동으로 공급된다.

현지에 도착하면 고산증 증상이 없더라도 목욕을 하거나 뛰는 등 산소를 많이 소모하는 행동은 삼가야 한다.

특히 고원에서 감기에 걸리면 폐수종으로 이어져 사망하는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티베트를 가다]“여기서 ‘독립’은 금지된 단어”



라싸에서 463km 떨어진 나취 지구 안둬 현 집을 출발해 5개월간 오체투지를 하면서 라싸에 도착한 푸부츠런(20·가운데) 씨가 티베트를 처음 통일한 손챈감포 왕이 네팔에서 온 아내 츠준 공주를 위해 지은 다자오(大昭)사 앞에서 마지막으로 오체투지 참배를 하고 있다. 그는 집으로 돌아갈 때는 버스를 이용할 계획이다. 라싸=하종대 특파원
《독립국가로서 주권을 누리다 1951년 중국 인민해방군이 점령하면서 중국의 영토로 편입된 티베트.

그동안 여러 차례의 독립 시도가 있었지만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인도에서 망명정부를 이끌고 있는 달라이 라마 14세는 현실적인 힘의 한계를 절감하고 중국 정부에 ‘고도(高度)의 자치’를 요구하는 방침으로 선회했다.

행정권만 주면 독립국가로서의 외교와 국방은 포기하겠다는 것. 그러나 중국 정부는 이를 거부한 채 티베트 지역의 한화(漢化)정책을 오히려 강화하고 있다.

7월 칭짱(靑藏) 철도 개통으로 중국의 티베트 지배력은 더욱 확고해질 전망이다.》

▽‘독립’ 자체가 금기=“마음속의 말을 하면 범죄가 될 수 있어 말하지 않겠습니다.”

“중국의 일부로 남는 것과 독립된 국가 중 어느 게 좋은가”라는 질문에 대한 한 짱(藏)족 지식인의 답변이다. “중국 외교부가 자유취재를 허락한 사안이니 걱정 말라”며 답변을 유도했지만 그는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이처럼 티베트에서는 ‘독립’이라는 단어 자체가 금기의 대상이다. 누구도 쉽게 입을 열려 하지 않는다. 심지어 중국 정부가 듣기 좋아할 말을 한 뒤에도 혹시 무슨 불이익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시짱(西藏)대 짱어(語)교육과의 한 여학생(19)은 “설령 독립하더라도 다른 나라가 다시 점령하면 어떻게 하느냐. 독립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고서도 기자가 대학 정문을 나설 때까지 기자를 따라붙으며 ‘내 사진은 카메라에서 지워 달라’고 끊임없이 졸라댔다.

▽마음 놓지 못하는 베이징=중국 정부도 불안, 초조하기는 마찬가지다.

1951년 중국 인민해방군이 무력으로 티베트를 점령한 뒤 1959년과 1987년 두 차례 대규모 독립시위가 일어났다. 1959년 3월 봉기 때는 12만 명이 학살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87년 시위는 유혈사태 끝에 계엄령을 13개월 동안이나 유지해야 했을 정도로 심각했다. 그 뒤에도 1993년의 라싸(拉薩) 폭동 등 크고 작은 시위가 빈발했다.

반(反)중국 정서에 대한 중국 정부의 불안은 곳곳에서 확인된다. 티베트 전역에 걸쳐 중국 어느 지역보다도 오성홍기가 많이 게양돼 있다. 사원이나 대형 건물은 물론 시골의 농목민 집에도 중국 국기가 걸려 있다. 티베트가 중국 땅이라는 것을 의도적으로 확인하고자 하는 ‘강박증’이 엿보인다.

시짱 박물관과 사원 등 어디를 가도 중국과의 오랜 군신관계 및 교류 역사를 강조하는 안내문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역사적으로 티베트가 중국의 일부임을 강조하려는 ‘서남공정’의 결과로 해석된다.

▽당근과 채찍, 양면정책=티베트 지배를 위한 중국 정부의 정책은 ‘당근과 채찍’으로 요약된다. 대표적인 당근 정책은 경제적 지원이다. 1989년 대규모 독립 시위 이후 중국 정부는 117개의 티베트 개발 프로젝트를 수립해 1994년부터 2004년까지 11년간 800억 위안(약 9조6000억 원)을 지원했다. 1989년부터는 해외로 망명한 짱족의 귀국사업도 추진 중이다. 독립운동 참가 여부와 상관없이 귀국만 하면 집과 직업이 제공된다.

반면 독립운동에 대해서는 매우 강경하다.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인도에서 독립운동을 벌이고 있는 달라이 라마를 숭배한다는 말만 해도 감시가 뒤따른다.

▽동화(同化)정책이 최고(?)=중국 정부의 강온정책이 그다지 효과적인 것 같지는 않다. 15만 명의 해외 짱족 가운데 중국의 귀국정책에 따라 들어온 사람은 전체의 1.3%인 2000여 명에 불과하다.

‘티베트는 중국의 일부’라고 배운 젊은이들 역시 내심으로는 여전히 독립을 갈망하고 있는 것도 중국 정부로서는 부담스럽다. 결국 중국 정부는 티베트 지배를 위한 정책으로 인적인 교류·동화정책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칭짱 철도 개통 역시 티베트에 한족을 많이 들여보내 짱족 비율을 낮추며, 나아가 교류를 활성화함으로써 짱족을 한족에 동화시키려는 베이징 측의 계산이 깔려 있다.

독립에 대한 짱족들의 희망도 갈수록 사그라지고 있다. 시짱대 짱어문학과 자시핑차오(찰西平操·24) 씨는 “(독립운동을 펼치는) 달라이 라마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에 “쓸모없는 것(을 하는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독립은 불가능하다고 보는 셈이다.

라싸=하종대 특파원 orionha@donga.com

■달라이 라마 독립의 꿈 깨지나

1959년 인도로 망명한 뒤 반세기 동안 티베트 독립운동을 펼치고 있는 달라이 라마 14세(71). 그러나 그의 희망은 갈수록 실현 가능성이 희박해 보인다.

독립 가능성이 제법 높아 보이던 시기도 있었다. 미국 의회는 1987년 6월 처음으로 티베트 인권 문제를 제기한 뒤 같은 해 9월 달라이 라마를 초청했다. 당시 미국과 달라이 라마는 공동으로 중국 군대의 철수와 한족 이민정책의 중지를 요구했다.

이에 고무된 티베트인들은 같은 해 10월 대규모 민중봉기를 일으켰다. 당시 티베트 당 서기였던 후진타오(胡錦濤)는 이를 무참하게 유혈 진압했다.

그 뒤 달라이 라마는 완전 독립 노선을 포기했다. 대신 외교와 국방권을 중국이 행사하되 행정권만 티베트가 행사하는 ‘고도의 자치’ 요구로 선회했다. 1990년대 들어 중국의 국력이 날로 커지고 서방국가의 지원도 줄면서 완전 독립의 희망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거부한 중국은 갈수록 느긋한 자세다. 지난해 중국의 국내총생산이 세계 4위에 오르고 올해 칭짱 철도가 개통되면서 티베트 장악에 대한 자신감도 붙은 모습이다. 반면 달라이 라마의 카리스마에 의존하고 있는 티베트 망명정부는 이미 칠순을 넘긴 달라이 라마의 사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라싸=하종대 특파원 orionha@donga.com

출처 : 중국 티벳 대탐험
글쓴이 : 인천싸나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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