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나라와 당나라 시대의 이론불교
불교는 통일제국 수나라와 당나라에 이르러 통일 이념과 실천 대안으로 자리 잡았다. 그 과정에서 가족 중심 향당 윤리에 기초한 중국인의 협소한 윤리의식에 보편성을 심어주었으며, 신유학에 우주론적 근거를 부여하였다. 그 전까지 중국불교는 부파의 분열과 대․소승이 대립해 온 인도불교의 역사를 알지 못한 채 모든 경전을 석가의 가르침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남북조시대 후반기에 오면 여러 경전의 차이를 인식하고 전체를 하나의 틀로 통합하려는 교상판석(敎相判釋)이 나온다. 남북조시대가 번역된 경전들을 평면적으로 정리하고 통합한 것이라면, 통일 시기는 경전들의 우열과 심천(深淺)을 밝히려는 종파의식에서 기존의 여러 교판론을 취사선택하여 종파의 교의를 만들어 갔다.
종파는 ‘자각적’ 체험의 중요성을 깨달으면서 스승의 진수가 제자에게 이어진다는 ‘사자상승(師資相承)’으로 보증을 받았다. 경전의 참된 뜻을 석가와 동일한 체험을 가지고 ‘지금’ ‘여기’서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하는 현실의 지도자를 ‘조(祖)’ 또는 ‘조사(祖師)’라고 불렀으며, 이 같은 종파적 경향은 교판론과 표리관계를 갖는다. 수당시대에 나온 종파는 삼론종, 법상종, 천태종, 화엄종, 정토종, 선종, 율종, 진언종 등이었으며, 그 가운데 이론불교인 천태종과 화엄종, 실천불교인 정토종과 선종이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천태대사 지의는 『법화경』을 석가의 최종 가르침으로 보고, 『법화경』에 따라 불교 전체를 체계화한『법화현의』, 지관(止觀)의 실천적 명상법을 제시한 『마하지관』,『법화경』을 독자적으로 해석한『법화문구』라는 세 저서를 토대로 천태종을 세워 중국불교의 자주적 모색을 시작하였다. ‘오시팔교(五時八敎)’로 알려진 천태종의 교판론에서 ‘오시’는 석가 설법의 시대 구분을 화엄시(華嚴時)·녹야시(鹿苑時)·방등시(方等時)·반야시(般若時)·법화열반시(法華涅槃時)의 다섯 단계로 나눈 것이며, ‘팔교’는 설법대상의 수준에 따라 돈(頓)․점(漸)․부정(不定)․비밀(秘密)로 교육방법을 나눈 ‘화의사교’와 설법내용의 심화정도를 장교(藏敎)․통교(通敎)․별교(別敎)․원교(圓敎)로 구분한 ‘화법사교(化法四敎)’가 있다.
천태종의 진리관은 중관학파의 공관이다. 지의는 용수의 『중론』을 중국적 논리로 재구성하였고, 진리 체득의 문제에 대해 ‘삼지삼관(三止三觀)’의 역동적 방법을 제시하였다. 천태종의 세계관은 개별 존재가 다른 존재와 상호작용하여 전체 세계를 구성한다고 보고 여기에 ‘십여시(十如是)’라는 열 개 범주를 설정하였다. 그리고 소승불교의 전통적 윤회세계인 육도(지옥․아귀․축생․수라․인간․천상)에 대승불교에서 새롭게 주장한 사계(성문․연각․보살․불)를 덧붙여 ‘십계호구설(十界互具說)’을 말하였다. 십계호구설은 선악 사이에서 멋대로 유동하는 현실적 인간의 알 수 없는 정신적 깊이를 반영한 것이며, 선악상즉의 논리를 담고 있다.
남중국불교와 통일시대 남쪽 변방의 맥을 이어간 천태종과 달리 화엄종은 남북의 불교를 종합하면서 북중국불교와 통일시대 수도권 지역의 정신적 구심체가 되었다. 화엄사상은 『화엄경』을 중심으로 불교사상을 종합하여 중국 현실에 맞게 창조적으로 재구성한 종파이다. 화엄의 세계관은 ‘중중무진(重重無盡, 끝없이 중첩되는 연기)’의 ‘본래적 일승교(一乘敎, 하나로 포괄되는 가르침)’로서 사람이 개입되지 않고 사물이나 사건이 다른 사물이나 사건과 직접 원만하게 상호 작용하는 ‘사사무애(事事無碍)’의 세계이다.
이것이 바로 모든 분별이 사라진 부처의 깨달음에서 바라본 세계이다. ‘갖가지 꽃으로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다(雜華嚴飾)’는 뜻을 가진 화엄(華嚴)이라는 말처럼 모든 존재와 사건은 세계를 참답게 하기 위해 아름다운 꽃으로 하나하나 그 자리에 그렇게 있어야 하는 존재다. 이 같은 시각을 인과원만(因果圓滿)이라고 한다. 인과원만은 원인과 결과가 시간의 선후관계에 얽매어 있지 않고 ‘원만’한 관계에 있다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전체와 개체 사이에도 내포와 외연의 상호교환이 가능하기 때문에 “하나는 곧 전체이고, 전체는 곧 하나이다(一卽一切, 一切卽一)”라고 한다.
모든 세계가 주어진 그대로 완전하다는 화엄의 세계관에서는 고통 받고 살아가는 현실의 인간도 그 순간 그 지점에서 완전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화엄종은 본래적 완전성에 초점을 두고 전체를 통해 개체를 완성시키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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