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Cafe/My Love China

수나라와 당나라 시대의 실천불교

지식창고지기 2010. 3. 30. 09:09

수나라와 당나라 시대의 실천불교

 

 

정토사상은 정토 3부경이라고 불리는『무량수경(無量壽經)』․『아미타경(阿彌陀經)』․『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을 중심으로 진리를 찾으려는 보리심과 아미타불을 부르면서 항상 부처를 생각하는 칭명염불(稱名念佛)의 신심(信心)을 통해 해탈을 얻을 수 있다는 사상이다. 아미타불은 타인구제의 보살수행으로 부처가 되어 다시 끝없이 타인을 구제하는 부처로서 시공간적 제약을 뛰어넘는 보편적 부처이며, 수행의 결과로 나타난 몸이라는 뜻에서 보신불(報身佛)이라고 한다. 이것은 보살 수행을 하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전형을 보여준다. 또한 보살 수행의 핵심이 타인 구제에 있기 때문에 타인 구제의 수행은 부처됨을 보증할 뿐만 아니라 보신으로서의 부처는 타인을 구제해야만 된다는 의미를 가진다. 본래 부처는 인간계와 관계를 갖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의 나를 구제해 줄 부처가 절실히 요구되던 남북조시기가 정토사상이 자리 잡을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사제들의 엄격한 수행만이 아니라 염불 같은 단순한 행위도 자기구제가 가능한 수행임을 강조하면서 중국불교가 대중의 생활과 문화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된 계기가 되었다. 정토종의 해탈론은 ‘보살의 타인 구제’를 출발로 삼아 그것을 ‘아미타불의 타인 구제’로 승화시키고, 다시 ‘아미타불의 타인 구제에 대한 믿음’으로 전환시킨다. 그리하여 정토종은 ‘지금’ ‘여기’에서 누구나 구제될 수 있다는 대중적 실천론을 제시함으로써, 인도불교가 마침내 중국인의 현실적 삶에 굳건히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했던 것이다. 정토종은 아미타불이 내민 구제의 손길에 마음과 몸을 송두리째 맡겨버리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염불(念佛)’을 권한다. 그러나 교학적 치장을 싫어하고 범부의 입장에서 염불 같은 쉬운 방법으로 일시에 부처와 만날 수 있다는 가르침 때문에 비슷한 경향을 가진 선종에 융화되어 갔다.

 

다음으로 선종은 경전이나 교의 혹은 교단으로부터 벗어나 일상적 삶 속에 사는 개별자가 스스로의 완전성을 깨닫는 실천적 자각운동이다. 중국불교의 총결산이라고 할 수 있는 선종은 보리달마에서 시작하여 혜능에 이르러 자리를 잡았다. 본래 5조 홍인에게는 혜능과 신수가 있어 신수가 절차적 수행을 강조하는 북종선을 유행시키고 혜능이 즉각적 깨달음을 강조하는 남종선을 일으켰지만, 결국은 남종선이 중심축이 되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선종이라고 부르는 것은 당 말에서 송대에 걸쳐 나타난 오가칠종(五家七宗)이다. 선종의 특색을 보이는 말은 불립문자(不立文字)․교외별전(敎外別傳)․직지인심(直指人心)․견성성불(見性成佛)이다. 그래서 선종은 스승과 제자가 직접적인 만남을 통해 이심전심(以心傳心)의 방법으로 부처의 마음을 이어가는 ‘사자상승(師資相承)’의 전통을 중요시하였다. 특히 선의 융성기에 나타난 오가칠종은 스승이 제자를 계도하는 독자적인 방편, 즉 가풍(家風)의 차이에 따른 구분일 뿐이다.

 

선종은 명상 수행의 전통처럼 인도불교가 본래 가진 성격에서 유래하였다. 고요히 앉아 마음을 닦는다는 의미의 선은 불도를 닦는 세 가지 길인 계(戒)․정(定)․혜(慧)의 삼학(三學) 가운데 ‘정’에 해당한다. 또한 마음에서 일어나는 선악 대립을 ‘공관’을 통해 재구성한 상즉성(相卽性)에 기초하여 실천적으로 해소하려 한 천태의 지관사상이 큰 역할을 했다. 다음으로 사사무애(事事無涯)의 화엄적 세계관이 자신 이외에 어떠한 권위도 인정하지 않으며 닦아야 할 것이 원래 없다는 선종의 인간관으로 수용되었고, 주체의 대중성과 실천의 간명성 그리고 구제의 일시성이라는 방향을 제시한 정토사상이 큰 영향을 주었다. 또한 북중국에서 일어난 폐불 과정에서 경론과 주해서가 불태워지고 흩어졌기 때문에 교학 불교가 쇠퇴할 수밖에 없었던 것과 달리 경론에 대해 자유로웠던 선종은 이를 계기로 오히려 불교 발전의 유일한 통로가 될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선종은 불상이나 불탑 같은 일체의 종교적 위엄을 버렸으며, 복잡하고 어려운 교학적 치장도 부정하였다. 그러면서 생생히 살아있는 현실의 개별 주체가 적나라한 자기의 본 모습에 직접 대면해서 주눅 들어 있던 삶의 역동성을 일깨우고자 하였던 것이다. 선종의 시각에서는 유동하는 마음 씀씀이 하나하나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 본 모습으로서의 마음 작용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