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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분양’ 약속 지킨 예술 복덕방 사장

지식창고지기 2010. 4. 14. 11:23

‘사기 분양’ 약속 지킨 예술 복덕방 사장

시사IN | 고재열 기자 | 입력 2010.04.14 10:15

 




6년 전 한 예술가 부부가 예술가들을 상대로 '사기 분양'을 벌였다. 몇 년째 공사가 중단된 서울 목동 예술인회관을 예술가들에게 무상으로 분양한다는 것이었다. 건물주인 한국 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로부터 분양권을 임대받은 적도 없었다. '무데뽀'였다.

임대료 없는 '무상 분양'이었다. 필요한 건 '깡'이었다. 예술가 500여 명이 분양에 참여했다. 그중 100여 명이 무리를 지어 예술인회관을 무단으로 점거했다. 한국에서 벌어진 예술인들의 첫 공간점거(스쾃)의 작전명은 '오아시스 프로젝트'였다.

예술가에게 오아시스는 바로 예술 작업을 할 수 있는 곳이다. 그 오아시스를 찾아 부부는 계속 무단 점거를 도모했다. 대학로 문화예술위원회 부속건물을 점거하기도 하고 홍대 앞에서 예술가들과 포장마차를 열기도 하는 등 계속 '예술할 수 있는 권리를 찾는 예술' 활동을 벌였다.





ⓒ시사IN 안희태 김윤환(44·오른쪽) 1994년 젊은 미술인 그룹 '바람풀' 조직. 2004년 '오아시스 프로젝트' 기획. 2009년 서울시 창작공간조성추진단 단장. 김강(39·왼쪽) 2004년 '오아시스 프로젝트' 기획. 'LAB39' 디렉터.

이들의 예술에는 관객 대신 검찰과 경찰이 반응했다. 검찰과 경찰은 그들이 받은 진한 감동을 소환장에 담아 전달했다. 부부는 움츠러들지 않았다. '사세 확장에 따른 문광부 앞 오아시스 영업소 개점'을 선언하며 1인 시위를 벌였다.

그렇게 5년이 지났다. 기적이 일어났다. 그들의 무모한 싸움이 현실이 되었다. 그들의 '예술사기'를 서울시가 주목했다. 서울시는 지난해 2월 남편 김윤환씨를 서울시 창작공간조성추진단 단장으로 임명했다. 시가 운영하는 '예술 복덕방' 사장으로 임명한 것이다.

서울시의 창작공간 조성 추진사업은 대규모로 진행되고 있다. 다섯 곳은 벌써 입주가 끝났고 세 곳은 입주 예정이고 세 곳이 더 조성될 예정이다. 예술가 150여 명에게 공간을 지원하고 200여 명에게 간접 지원한다. 1년 예산 80억여 원에 관련 직원만 60여 명(정직원 30명)에 이른다.

아내 김강씨는 아직도 거리의 예술가다. 문래동 철공소 지역에 'LAB 39'라는 작업실을 열고 60곳의 예술가 200여 명이 활동하는 문래예술창작촌의 '부녀회장' 노릇을 자처하고 있다.

예술 게릴라에서 장교가 된 남편과 아직 전선의 야전사령관으로 남아 있는 아내를 만났다. '부창부수'였던 부부는 어느덧 '부부유별'이 되어 있었다. 김강씨는 갑근세를 내기 시작한 남편에 대해 아내로서는 호의적이었지만 예술적 동지로서는 냉정했다.





2004년 불법 공간점거 운동 '오아시스 프로젝트'를 벌일 당시의 김윤환씨(위)와 김강씨 모습.

월급을 받아본 것이 처음 아닌가?


김윤환) 만 43세에 첫 직장을 가져보았다. 벌써 13개월째인데 적응하느라 정신 못 차리고 보냈다. 공무원 사회라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힘들게 일하고 있었다. 예술가들에게는 권력으로 보였는데 내부적으로는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었다. 아무도 자기 생각대로 할 수 없게 꽉 짜인 곳이었다.

남편의 취업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나?

김강) 제도의 속살을 아는 것도 유의미할 것 같았다. 평생 할 것 같지도 않았고 한번 겪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반대하지 않았다. 제도든 비제도든 반제도든 다 겪어보는 것이 인식의 지평을 넓혀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업이 가파르게 진행된 것 같다.

환) 다소 서두른 감이 없지 않다. 무르익지 못한 운영계획도 있었다. 부족한 부분도 많았다. 반복적인 작업으로 진행되기도 했다.

강) 무리한 진행이었다.
그러다보면 기존 예술 생태계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지 않나?


환) 관 차원에서 대형으로 진행하는 사업이라 기존 입주 프로그램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최근에 쌈지스페이스가 입주 프로그램을 중단했는데 영향이 있을 것이다. 나름대로 젊은 작가 발굴에 일조하고 외국 작가와 교류하도록 도왔는데 안타깝다.

기존 입주 프로그램과 무엇이 다른가?


환)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운영하는 창동스튜디오와 고양스튜디오는 그 목적에 있어서 작가 발굴과 육성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나 서울시 창작공간 추진사업은 일반 작가들의 작업 공간 제공이 목적이다. 여기에 지역 활성화 혹은 도시 재생이라는 서울시의 목적을 접목한 것이다.

이런 공공미술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강) 기존 입주 프로그램은 엘리트적이었다. 잘 키워서 대표 작가로 성장하게 하는 것이다. 이곳은 예술가들이 사회적 기여를 할 수 있게 만드는 곳이다. 1980년대 예술가들이 공장에 들어가 현장미술을 했듯이 지역문제에 예술가들이 개입해 일종의 '커뮤니티 아트'를 하는 셈이다. 예술의 의미를 확장하는 활동이라고 볼 수 있다.





2004년 불법 공간점거 운동 '오아시스 프로젝트'를 벌일 당시의 김윤환씨와 김강씨(위) 모습.

이미 입주가 이뤄진 다섯 곳은 서로 어떤 차이가 있는가?

환) 금천창작센터는 국제 교류 위주로 하는 곳이라 외국 작가를 주로 입주시켰다. 문래예술공장은 기존 예술가 생태계를 지원하는 사업 위주로 진행한다. 신당동은 공예공방촌으로 만들어 그곳에서 만든 작품을 직접 재래시장에서 팔게 해 재래시장 활성화에 기여한다. 서교동 예술실험센터는 홍대 앞의 다양한 문화활동을 매개하고 소그룹을 지원한다. 홍대 클럽문화가 시들해지고 있는데 새로운 에너지가 나오도록 도모하는 것이다. 연희문학창작촌은 말 그대로 문학 작가들을 지원하는 공간이다.

앞으로 입주 예정인 공간은 어떻게 설계했나?


홍은예술창작센터는 환경예술을 위한 곳이다. 성북예술창작센터는 아마추어 동아리를 지원하고 시민 창작 작업을 예술가들이 돕는 곳이다. 관악어린이 창작놀이터는 어린이 예술 전용공간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문래동에 실험실을 두고 있다. 작업을 해보니 어떤가?

강) 한국 사회의 모순이 집합된 상징적인 곳이다. 지역개발 관련 조례가 제정되어 주상복합 아파트와 아파트형 공장이 들어서는 가운데 문화로 도시를 재생하겠다는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개발이 임박한 가운데 예술가들이 '시한부 예술'을 하고 있는 셈인데, 예술가들이 떨고 있는 그 긴장감이 하나의 예술 과정이라고 본다.

예술을 통한 도시재생 작업으로 일종의 '예술 새마을운동'이었는데 성공적이라고 보나?

강) 제도가 요구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지역경제 활성화다. 그러면서 착취와 억압의 관계가 파편화되어 있는 도시를 예술이 치유해주기를 원한다. 그 의도를 그대로 동의해줄 수는 없다. 우리는 문화를 바라보는 색깔이 다르다. 문화로 도시를 재생한다는 것은 허구적 측면이 있다. 문화예술가들의 활동을 창의성 관점에서 바라보지 않고 새로운 도구로만 보기 때문이다.

환) 듣고 보니 나는 앞잡이인 것 같다.
앞잡이로서 보람이 있다면?

환)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성취감이 상당하다. 긍정적인 부분은 자기만의 성에 파묻혀 있던 예술인들이 사회와 접촉점이 생긴 점이다. 예전에는 예술가들의 작업실은 철저히 개인을 위한 공간이었다. 예술가들을 사회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었다. 또 어려운 창작여건을 전반적으로 개선해 더 많은 예술가를 제도로 인입했다고 본다.

하지만 그것이 예술가에게 독이 될 수도 있지 않나.

환) 자존심 하나로 살아온 예술가들을 자본주의 구조에 참여하도록 유도한다는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예술가에게 작가정신과 작가철학을 고양해주지는 못한다. 그냥 멍석을 깔아주는 것이지. 예술의 속성상 때론 정치적으로 위태로운 내용일 수도 있는데 그런 상상력은 이런 공간에서 얻기는 힘들다.

강) 다양한 사회와 접촉할 수 있는 것은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문래동의 경우 근처에 철공소가 많다. 낮에 많이 시끄러울 것 같은데 작업에 방해되지 않을까?

환) 예술가들이 잘 적응한다. 익숙해지면 쇠를 가는 소리가 음악으로 들린다고도 한다. 쿵쾅거리는 작업을 많이 하는 작가들의 경우에는 눈치 안보여서 좋다고도 한다.

그곳 사람들은 잘 받아들이나?

강) 공공예술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미술가들이 갖는 강박이 있다. 대상과 빨리 친해지고 그들을 대변해야 한다는 의식이다. 그럴 필요 없다고 본다. 그도 나를 대변할 수 없고 나도 그를 대변할 수 없다. 그냥 공존할 뿐이다.

공존이 힘들었나?

강) 싸우기도 많이 싸웠다. 예술가들이 작업해준 것을 낡았다고 쉽게 교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럼 난 화가 나서 따졌다. 예술이 시혜적인 것은 아니지만 괘씸한 생각에 참을 수가 없다. 하지만 그들은 헌것을 새것으로 바꾼 데에 대해 따지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제도와의 공존은 어땠나?


환) 공공자금 쓰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규정이 아마추어적이라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전문 영역은 자율적으로 운영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통제 시스템이 그물망처럼 촘촘하다.

그래도 스쾃 시절에 비하면 나아진 것 아닌가?


환) 옛날 생각이 자주 난다. 자유롭던 시절이. 쪼들렸지만 쾌감은 더 컸던 것 같다. 지금은 풍요로운데 힘들다. 정신이 자유롭지 못하니까.

남의 예술 작업은 돕는데 정작 자신의 예술작업은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


환) 예술가들에게 멍석을 깔아주는 것이 우리들의 예술이다. 자본주의 한국사회에서 공간이 갖는 의미를 묻고 공간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우리의 작업이었다. '오아시스 프로젝트'는 현재진행형이다. 작업의 일환이라는 생각을 버리면 제도에 흡수된다.

강) 남편이 하고 있는 작업이 좋은 작업은 아니다. 진짜 작업을 해야지.
환) 맞다. 손에 흙 묻히고 싶다. 내가 지금 하는 것은 '결재 아트'다. 하루에 서류가 30~40개 내게 올라온다.

자신의 작업은 잘 진행되나?

강) 멍석깔기를 통해 예술이 갖는 고전적 개념과 근대적 개념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새로운 것을 촉발하는 창의적 활동을 하고 싶었다. 인간이 갖는 창의성은 다양한 면에서 발현될 수 있다고 본다. 나는 아직 전선에 있지만 나도 달라진 점이 있다. 주목도가 생기면서 발언권이 생겼다. 더 날카롭고 첨예하게 발언하려 노력하고 있다.

좋은 작업이란 어떤 것이라고 보는가?


'착한 사과나무'가 되지 않아야 한다고 본다. 생각 없이 좋은 열매만 맺는 것이 아니라 그 사과를 맺는 토양과 열매맺기를 돕는 기후에 대해서도 성찰할 수 있는 까다로운 사과나무가 더 좋은 사과나무라고 본다. 정치적·정책적·예술적 질문을 끝없이 던져야 한다고 본다.

요즘 관심사는 무엇인가?

강) 옥상 미술관 프로젝트다. 재개발 예정지의 옥상을 미술관으로 바꾸는 것이다. 그런 곳 옥상은 보통 쓰레기장이 되기 십상이다. 쓰레기를 치우고 예술 작품을 설치한다. 관객은 아파트 주민이다. 아파트 창문을 열어 자연스럽게 예술을 접할 수 있도록 만들고 있다.

문래동 부녀회장 김강씨는 한 달에 두 번씩 예술가들의 자율 반상회를 연다. 4월1일 저녁에는 조금 특별한 모임이 열렸다. 'LAB39'에서 조용한 푸드 퍼포먼스가 벌어졌다. 예술가들과 행정가들과 큐레이터와 기자들이 어울려 카레를 먹으며 예술을 논했다. '의식이 족해야 예술이 나온다'는 부부의 술상 위에는 '혁명은 술상으로부터'라고 쓰인 액자가 걸려 있었다.

고재열 기자 / scoop@sisa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