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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릉은 훗날 장조로 추존된 장헌세자와 훗날 헌경의황후로 추존된 그의 비 혜경궁 홍씨의 합장릉이다. 합장릉이면서 혼유석은 하나이다. 융릉은 세자의 묘인 원의 형식에 병풍석을 설치하고, 상계 공간과 하계 공간으로 나누어 공간을 왕릉처럼 조영하였다. 병풍석을 설치하였으나 난간석이 없으며, 병풍석 덮개의 12방위 연꽃 형의 조각은 융릉만의 독특한 형식이다. 상계에는 능침, 혼유석,망주석이 배치되어 있으며, 하계에는 문무인석, 석마가 배치되어 있다. 장명등의 8면에 조각된 매난국의 무늬는 매우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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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61년 5월 21일 아버지 영조의 명으로 뒤주 속에 갇혀 숨진 장헌세자는 그해 7월 23일 현재의 동대문구 휘경동인 양주 배봉산 아래의 언덕에 안장되었다. 아들을 죽인 것을 후회한 영조는 세자의 죽음을 애도한다는 뜻에서 ‘사도’라는 시호를 내리고, 묘호를 수은묘라고 하였다. 1776년 그의 아들 정조가 즉위하여, 아버지에게 ‘장헌’이라는 시호를 올리고, 수은묘를 원으로 격상시켜, 영우원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1789년(정조 13)에는 영우원을 현륭원으로 고치고 능을 현재의 위치로 천장하였다. 1815년(순조 15) 12월 15일에는 혜경궁 홍씨가 춘추 81세로 승하하여, 이듬해인 1816년(순조 16) 3월 3일 현륭원에 합장하였다. 1899년(광무 3) 11월 12일 고종은 장헌세자를 왕으로 추존하여, 묘호를 장종으로 올리고, 능 이름을 융릉이라 했으며, 12월 19일에는 묘호를 장종에서 장조로 바꾸고 황제로 추존하여 장조의황제라 했다. 경기도 양주군 남쪽 중랑포 배봉산에 있었으나, 정조가 즉위하면서 아버지의 존호를 장헌으로 올리고, 1789년 현재의 위치로 묘를 옮긴 후 능호를 융릉으로 바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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