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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식 면요리의 진화…라면, 라멘, 라젠 그리고 쌀국수

지식창고지기 2010. 4. 23. 10:41

외식 면요리의 진화…라면, 라멘, 라젠 그리고 쌀국수


라멘과 라면을 융합했다는 ‘라센’의 삼선우육 라센

점심시간 면요리로 ‘자장면·짬뽕’ 등 중국식 요리에 머물던 선택의 폭이 월남 쌀국수에 이어 일본식 라멘으로까지 넓혀지고 있다. 점심 식사시간이 되면 종로 ‘라멘만땅’이나 홍대 부근 ‘하카다분코’는 손님들로 가게 안이 북적거린다.

2000년 초반부터 생기기 시작한 일본식 ‘라멘’을 파는 음식점들이 2008년을 전후해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월남 쌀국수’ 의 선전

국내에 일본식 라멘이 등장한 것은 1980년대 롯데백화점 개관 때 ‘진짜 라면’이라고 선전을 하며 백화점 식당가에 문을 열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500원)과 일본 음식이라는 거부감 때문에 큰 관심을 얻지 못했다. 당시에 50원대에 머물던 인스턴트 라면의 소매가와 비교해 “무슨 라면이 500원이나 하느냐”는 비판이 신문에 실리기도 했다. 그렇지만 현재 ‘아지겐’ ‘하카타야’ ‘멘무샤’ 등 10개가 넘는 일본식 라멘집들이 성업 중이다. 홍대, 신촌, 압구정을 필두로 생겨났던 일본 라멘 음식점들은 이젠 월남 쌀국수처럼 일상적인 음식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우리의 식습관적 거부감을 가장 먼저 깨뜨린 것은 ‘월남 쌀국수’이다. ‘월남 쌀국수’는 한국인의 기호에 맞는 국물 맛으로 승부를 걸어 성공을 이뤄냈다. 당시 국내에서 활동하던 일본인 영화평론가 쯔지다 마키씨는 “월남 쌀국수의 성공에 힘입어 일본식 라멘의 성공도 조심스럽게 점쳐졌다”고 말했다.

면요리 승부는 ‘국물 맛 ’

패밀리 레스토랑과 경쟁해야 하는 불안한 출발(?)과 달리 쌀국수는 시원한 국물 맛을 무기로 ‘해장음식’으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이미 체인화된 프렌차이즈 업체 ‘포호아’ 등이 다른 동남아 음식에 비해 향신료가 덜 한 메뉴를 개발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여기에 숙주 등 우리에게 익숙한 고명을 거의 무제한으로 서비스 한 것도 쌀국수의 성공에 도움이 됐다.

쌀국수는 ‘후진국’이라는 선입견을 ‘맛’에 대한 기호와 다른 문화에 대한 호기심으로 극복했고 라멘 뿐 아니라 인도나 네팔 요리도 이를 다시 전술적으로 이용하며 외식산업에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멕시코 요리도 ‘패스트푸드’가 아닌 ‘요리’ 형태로 다시 진출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우리나라 외식 문화에 한 획을 그은 ‘월남 쌀국수’

맛에 있어서 일본식 라멘도 승부를 내는 핵심은 ‘국물맛’이다. 돼지뼈를 푹 곤 국물의 깊은 맛에 죽순, 숙주, 돼지고기 등의 고명이 들어가고 즉석에서 뽑은 생면의 꼬들꼬들함이 더해진다.

한국식 인스턴트 라면(이하 라면)도 ‘스프 맛의 현지화’를 통해 반격에 나서고 있다. 방송 등 언론에도 수차례 소개된 ‘틈새라면’의 경우 고춧가루를 기본으로 매운 맛을 내고 계란, 떡 등 고명을 올려 분식집 라면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빨계떡’ 특유의 맛을 만들었다.

여기서 더 진화한 ‘해물맛 빨해떡’은 라면에 해물을 얹고 매운 맛을 강화하여 흡사 매운탕에 끓인 라면을 먹는 듯한 기분을 준다. 라면 국물에 밥을 말아먹는 식습관을 이용해 찬밥 메뉴를 만들고 매운 맛을 간판으로 내세운 ‘불김밥’도 만들었다.

1981년 명동에서 시작해 프랜차이즈로 거듭난 ‘틈새라면’은 GS유통에서 상품화하며 시중 판매를 하는 등 큰 성공을 거두며 인스턴트 제품인 라면을 다시 한번 인스턴트화한 독특한 제품을 만들어 냈다.

일본 라멘의 장점을 수용해 한국 라면의 장점과 결합한 수제라면 집도 등장했다. 목동에 위치한 수제 라면집 ‘라젠’은 일본 라멘의 장점만을 갖춘 한국식 수제 라면으로 승부를 걸고 있다.

20평 남짓한 공간에 라면 만드는 기계를 설치해 면을 직접 만들고 있다. 복잡한 공정과 큰 규모의 생산라인이 필요한 공산품인 라면제조를 소규모 점포에서 자체적으로 만드는 역발상으로 하루 두 번 점포 안에서 생산한다는 것.

면에 강황, 비트, 시금치, 오징어 먹물 등을 첨가해 다양화했고 다이어트 식단을 원하는 사람들에겐 기름에 튀기지 않고 스팀에 찐 라면을 제공한다.

라젠의 사장 강환일씨는 “일본 라멘이 라면 외식계를 평정하는 동안 인스턴트 식품으로만 꼬리표가 붙는 한국 라면의 퇴보가 안타까웠다”며 “친환경 농산물에 관심이 많았지만 새로운 라면을 만들고 싶은 욕심이 생겼고 한국적 라면, 요리가 되는 라면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밝혔다. 라젠이라는 상호도 ‘라멘’도 아니고 ‘라면’도 아닌 새로운 면요리를 개척하는 의미에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경향닷컴 손봉석기자 paulsohn@kha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