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숨결/역사(세계)

이카루스의 날개(Icarus Wings)

지식창고지기 2010. 4. 23. 11:36

이카루스의 날개(Icarus Wings)

http://blog.hani.co.kr/nomusa/26558

 

오늘날 항공기는 각종 첨단 장비와 소재로 무장하고 신속하게 공간을 이동할 수 있는 편리한 교통 수단이다. 그러나 과학성과 실용성으로 대체되기 이전 ‘비행(飛行)’은 인간의 꿈과 환상, 자유 본능의 순연(純然)한 상징이었다.


  기계 메커니즘의 총아로 인식되고 있는 항공기가, 일상에서의 초월을 향한 인간 의지의 형상체로서 많은 예술 작품의 소재가 되어 온 것은 이런 까닭에서다. 신화에서부터 포스트 모던에 이르기까지, ‘항공’을 소재로 한 다양한 장르의 예술 작품을 통해 무한한 자유와 희망의 지평으로 회귀해보자.

  예술은 무한한 자유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창조 행위다. 우리가 예술작품에 감동하고 예술가를 우대하는 이유도, 그 기발하고 통념에 구속되지 않은 상상력과 자유스러움에 대한 선망 때문일지도 모른다.


  끝없는 자유는 하늘에도 있다. 그래서 하늘은 희망과 꿈, 자유의 상징처럼 표현되곤 한다.

그렇다면 예술작품 속에 투영된 하늘, 그 망망허공을 날아다니는 인간은 어떤 모습일까? 인간의 원초적 상상력이 담긴, 문학을 비롯한 많은 예술 작품의 원형이 되고 있는 신화에서 우선 찾아보자.


  인간의 ‘비행’을 다룬 이야기의 원조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카루스의 날개’일 것이다. 비행에 성공한 아버지 데이달루스는 모르는 경우가 많아도 실패한 아들 이카루스의 파라독스는 지금까지 즐겨 인용되는 소재이다.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세상의 중심은 신들의 처소‘올림포스’였다.

그리스인들은 신(神; God)이 나타나기 전에 이미 우주가 창조됐으며, 하늘과 땅의 자식이 티탄(Titan; 巨神)이고 그들의 자식이 바로 신이라고 생각하였다. 티탄들은 우주에서 최고의 지위를 누렸는데, 그 중 가장 중요한 티탄이 크로노스(사투르누스)로, 바로 제우스의 아버지다.

 그리스어 Ζεύς, Zeus

 

제우스 가계 12신이 신들 중 최고
  아버지의 자리를 찬탈하여 최고신에 오른 제우스를 비롯, 그의 남매와 아내, 그리고 자녀 등 제우스의 가계를 이루는 올림포스의 12신이 신들의 중심인데, 제우스는 바다를 포세이돈에게, 나머지 하계(下界)는 하데스 등 형제들에게 맡기고 스스로 하늘의 왕으로 군림하여 사실상 우주의 최고 통치자가 된다.
  그러나 `신’이라는 단어가 풍겨주는 느낌처럼 절대적이거나 전지전능하지는 않았던 것이 그리스 신들의 특징이다.

다른 신에게 적대행위를 하기도 하며, 또 속임을 당하기도 한다. 아내 몰래 다른 여자들을 사랑하기 위해 여러 가지 술수도 부린다.

 

 

 

 


  그리스 신화에는 신이 아닌 인간의 신화도 등장하는데, 데이달루스의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그는 솜씨가 대단한 발명가이며 건축기술가였다.

데이달루스의 아들이 이카루스. 이들이 바로 자유를 찾기 위해 생명을 걸고 비행한 최초의 인간이다.


  아테네 왕족 집안 출신의 데이달루스는 여신 아테네의 후원까지 더해져 기술자로서의 명성을 떨쳤지만, 조카가 톱을 발명하여 더 유명해지자 질투심에 사로잡힌 나머지 조카를 신전 위에서 밀어 떨어뜨려 죽였다. 이 죄로 그는 아들 이카루스와 함께 크레타 섬으로 쫓겨가게 됐다.

크레타 섬의 미노스 왕에게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저주를 받아 낳은 황소의 머리가 달린 흉측스러운 아들, 미노타우르스가 있었다.

크레타 섬 탈출 위해 날개 제작
  미노스 왕은 데이달루스에게 거대한 미궁을 만들도록 하여 그 안에 이 괴물을 가두었다. 그리고 아테네로부터 일곱 명씩의 소년, 소녀를 조공으로 받아 먹이가 되도록 했다. 데이달루스가 설계한 미궁은 구조가 매우 교묘하여 일단 들어가면 다시는 탈출할 수 없었다.

괴물은 미궁을 돌아다니며 이 안에 바쳐진 소녀와 소년들을 잡아먹고 살았다.


  아테네의 왕자 테세우스는 재난에 빠진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자청해서 조공의 일원으로 크레타 섬으로 갔다가 미노스 왕의 아름다운 딸 아리아드네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이를 알게 된 왕은 노해서 테세우스를 미궁 속에 가둔다.


  ‘아리아드네의 실’이라는 이야기도 여기서 나온다.

테세우스는 아리아드네가 준 칼과 실타래를 들고 미로 속을 헤매다가 괴물 미노타우르스를 무찌르고 13명의 아테네 동료들과 함께 미리 풀어 놓은 실을 따라 다시 밖으로 탈출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한편 데이달루스는 매혹적인 왕비와 사랑에 빠지고(?) 마침내 왕의 노여움을 사게 되어 아들과 함께 갇힌 몸이 됐다. 감옥 속에서 데이달루스는 기술을 발휘하여 새의 깃털을 모아 큰 날개를 만들어 아들 이카루스에게도 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고 완성된 날개를 밀랍으로 몸에 붙이고 탈출을 감행했다.
  “바다와 태양의 중간을 날아야 한다.

너무 높이 날아 오르지 마라. 너무 높이 날면 태양의 열기에 네 날개의 밀랍이 녹아서 떨어지고 만다. 그러나 너무 낮게 날지도 마라. 너무 낮게 날면 파도가 날개를 적실 거야.


 

비행은 인간의 원초적 희열
  그러나 이카루스는 하늘을 나는 것에 몰두해서 아버지의 충고를 잊었다. 태양을 향해 높이 오르다가 밀랍이 녹아 바다에 추락하여 죽고 만 것이다. 이카루스가 빠진 이 바다는 후일 그의 이름을 따서 이카리아 해(海)로 불리게 된다. 데이달루스는 성공적으로 시실리아까지 도망쳤다.


  이카루스의 추락은 흔히 인간 욕망의 무모함을 경계하는 데 인용된다. 그의 추락은 날개가 잘못된 탓이 아니라 통제되지 않은 과욕 때문이고, 이것은 기술적인 결함이라기 보다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의 문제인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비행’에 대한 인간의 원초적인 희열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인간에게 금지된 영역, 수직으로의 상승을 꿈 꾸는 것은 이카루스의 이야기처럼 위험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영원한 이상이 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스 신화 속에서 우리는 인간적인 모습의 신들을 만난다. 그리스·로마 문화에 근간을 둔 헬레니즘(Hellenism)의 가장 큰 정신은 인본주의이다. 동서와 고금이 다른 우리들에게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이 제법 익숙한 것은 소설, 연극 등 작품들을 통해서 자주 접해본 이유도 있지만, 어쩌면 이와 같이 보편적인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리라.

<백 준 / 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