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불교 이해
● 불교 [佛敎, Buddhism]: 세계 3대 종교의 하나. 기원전 5세기 초엽에 인도의 석가모니가 설법한 가르침.
1) 불교의 명칭
불교(佛敎)란 불(佛:but not, 'Buddha'란 "알다", "깨닫다"의 뜻을 가지는 어근 'buda'의 과거 수동 분사로서 "안 사람", "깨달은 사람"의 뜻이다)의 교(敎)이다. 즉 깨달음의 가르침이다. 깨달음이란 어디까지나 자각, 즉 스스로 깨달음의 체계이기 때문에 불교의 특징은 교주가 없다는 것이다. 불교는 깨달음에 관한 학문이며, 중생으로 하여금 '견성오도(見性悟道: 자기본래의 천성을 깨닫고 번뇌에서 해탈하여 불계에 들어갈 수 있는 것)'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종교이다. 위진 이래로 불교는 여러 종파들이 부분했지만, 모두 '깨달음'을 중시했다.
2) 고타마 싯타르타
불타(佛陀)는 불교의 창시자인 고타마 싯다르타의 존칭으로 신화적인 인물이 아닌 오늘날 불교라고 일컫는 종교를 가르쳐준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인물이다. 그가 생존했던 시기는 확실하지 않으나 기원전 6~5세기 사이로 알려지고 있으며, 이는 공자와 거의 같은 시기이다. 그런데 기원전 6세기경의 인도는 4등급의 신분제도가 있었는데 제 1등급은 브라만(승려)이었다. 따라서, 이들 모든 계급들은 승려들에 대한 반감이 거세어질 수 밖에 없었으며, 이로 인해 사회는 안정을 찾을 수가 없었다. 싯다르타(석가모니)는 승려들의 신권통치의 불만을 갖고 29세 때 왕족의 호화로운 생활을 버리고 출가하여 수도를 하였다. 당시 인도에서는 선정(禪定)과 고행(苦行)의 방법으로, 이른바 '비상비비상(非想非非想)'의경지에 들어서는 것을 해탈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6년의 고행에도 득도하지 못하였던 싯다르타는 마침내 35세 때 보리수 아래 단정히 앉아 해탈을 할 수 있었으며, 며칠이 지난 뒤 큰 깨달음을 자각하고 '무상정각(無上正覺)'을 이루었다. 그로부터 40여 년 동안 항하(恒河)일대를 중심으로 전교활동을 계속하여 마침내 불교를 창건하게 되었다.
3) 불교의 기원
불교는 기원전 5세기경 인도의 동북부에 있던 한 왕국의 왕자로 태어난 석가모니의 가르침에서 기원한다. 이점은 특정한 한 개인의 가르침으로서의 기독교나 힌두교와 성립 자체가 다른 것이다. 석가모니의 가르침은 인도보다는 동남북 아시아 지역에서 뿌리를 내려 20세기까지 지속되고 있다. 이런 과정 속에서 불교는 그 지역의 모든 문화적 측면을 반영하게 되었다. 인도 불교의 중국 유입은 고전적 중국 문화에 대한 도전적 위협으로 받아들여졌다. 이것은 19세기 서양 문화가 제기했던 것보다도 더 직접적인 것이었다. 불교가 처음 중국으로 들어왔을 때는 유가 문화의 심한 배척을 받았다. 유가의 입장에서는 불교야말로 요수의 도와 대립하는 오랑캐의 술(術)로써 황로지도에 기대 생존을 꾀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불교는 중국에서의 발전을 위하여 본토 문화에 의존하는 태도를 보이며 유가의 도덕론이라든지 가치 관념을 수용하였고, 대승 불교의 자비 관념으로써 유가의 인애 사상과 견주어 점점 전파시켜 나갔다.
4) 중국의 시대별 불교
● 위진남북조:
불교는 그 취향이 도교와 흡사하여 당시 사람들의 기호와 맞아 떨어졌다. 더욱이 서역으로부터 온 승려들이 나날이 증가하여 예를 들면 불도징(佛圖澄)은 후조(後趙)에, 구마라십(鳩摩羅什)은 후진(後秦)에, 보리달마(菩리達摩)는 후위(後魏)에 들어왔다. 그 밖에 다른 석학고승들은 불경을 번역하거나 교리를 설법하였다. 당시 중국으로 들어온 외국 승려는 3,000여명에 달했으며 이들 이 번역하거나 저작한 불경의 수는 400여 권에 이르고 건립한 사찰의 수는 3만여 개, 출가한 승려와 비구니의 수가 무려 2백만 명에 이른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그 당시 불교가 어느 정도였는지 가히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 불교의 흥성으로 볼 수 있는 불도(佛徒)의 번역사업: 불교는 인도에서 전래되었기 때문에 그 저작은 자연히 대부분 번역에 의존했다. 번역이 극성했던 시대는 동한부터 중당(中唐)에 이르는 약 700년간이다. 당나라 승려 지승(智昇)
● 당/송/원:
불교는 비록 외래종교라고는 할 수 있지만 이 당시에 이르러서는 이미 중국종교사상 속에 융화되어 도교와 더불어 중국의 종교로 그 자리를 굳혔다. 당나라 때에는 육조 때부터 불교를 믿기 시작한 이래 계속 발전하여 그 절정기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고조(高祖)때에는 승려들이 계율을 지키지 않아 한동안 탄압을 받았으나 불교는 끊임없이 흥성하였다. 바로 현장(玄裝)이 불교를 부흥 시킨 장본인으로 그는 새로운 종파를 만들어 교의를 선양했고 번역사업에 있어서도 구마라십보다 많은 업적을 남겼다. 이후 무종(武宗 )은 모든 종교를 탄압하였지만 불교만은 장안과 낙양에 각 4개소, 전국 모든 주에는 1개소의 사찰을 남겨 두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차츰 옛 모습을 되찾아갔다. 오대
● 명/청:
이 당시 불교는 선·강·교(禪·講·敎) 세종류로서 선은 참오를 중시했고, 강은 설법을 중시했고, 교는 기도·예배 등의 의식을 중시했다. 불교의 형식은 이 당시에 완비되었다고 할 수 있지만 정신은 이미 쇠락해져서 라마교의 세력이 불·도를 앞질러 발전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보통 종교 사상은 모두 3교 일치적인 추세로 흘러서 불교 역시 선·정(禪·淨) 2종만이 남아 민간에서 유행하였다. 청나라는 만주족이 중국을 침략하여 세웠기 때문에 몽고인이 라마교를 숭상했던 유풍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청나라 제왕 중에는 유가를 존중하며 불교를 제창하는 방법으로 중국인을 회유하는 정책을 쓰기도 했다. 순치(順治) 때에는 명나라 때처럼 승려의 출가를 제한했지만 유랑인들이 점차 많아져서 정착할 곳이 없자 불사를 찾게 되어 그들의 도피처가 되었다. 따라서 불사에서는 폐단이 점차 심해졌고 불교는 점차 파산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동시에 제왕들이 라마교를 숭상한 나머지 궁전 안에는 라마교 사원만 남게 되 어 진정한 불교는 이미 이렇다 할 만한 것이 없게 되었다. 가도(嘉道) 이후 불교는 내부의 부폐와 태평천국의 영향으로 결국 쇠락해 갔다. 형식적인 불교는 비록 쇠퇴해 갔지만 불교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점점 많아져서 송세륭(宋世隆)·필기(畢奇) 등 모두 불경 조판 사업에 관심을 가졌으며 적보현은 상해 보급소를 설치했을 뿐 아니라 『불학총부(佛學叢報)』를 발간했다.
5) 불교의 여러종파
- 모든 종교가 그러하듯 불교는 시대와 장소에 따라 크게 세 파로 구별되는데, 스리랑카, 태국 등 동아시아를 지배하는 소승불교, 중국, 한국, 일본에 뿌리를 내린 대승불교, 티베트와 몽고에서 발전한 바즈라야나 불교가 그것이다. 이 세 종의 불교는 공통적으로 열반(說槃, nirvana)을 목적으로 하고 있지만, 소승불교는 개인적 열반에 초점을 두고 있고, 대승불교는 대중적인 열반을 강조하며, 바즈라야나 불교는 마술적으로 열반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며 그 방법을 제시한 차이가 있다.
중국의 불교 사상이 점점 성숙되자, 경전에 대한 분류와 정리 작업 및 불교 교리를 체계화시키는 작업이 진행되었고, 이 과정에서 중국화한 불교의 여러 종파가 탄생하였다. 불교가 다양한 종파로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은 분류하는 것을 좋아하는 중국인들의 관행에서 기인한 것이다. 대표적인 불교 종파로는 천태종(天台宗), 삼륜종(三倫宗), 법상종(法相宗), 율종(律宗), 정토종(淨土宗), 화엄종(華嚴宗), 선종(禪宗), 밀종(密宗)등이다. 이 가운데 천태종, 화엄종, 선종이 중국 불교에서 가장 유명한 삼종(三宗)이다. 이러한 종파들은 한결같이 중국적 사고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① 천태종:
중국 불교의 대표적인 종파로서, 수나라 시대의 지의가 창시하여 주로 강남 지방에서 유행하였다. 천태종은 절충과 타협을 즐겨하고 분류에 능숙한, 전형적으로 중국적인 요소들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 종파는 대승 불교의 상대적 진리 개념을 발전시켜 서로 모순되는 각각의 교리가 고유한 가치를 지닐 수 있도록 했다. 지의는 "모든 법은 마음에서 생겨난다."고 보았다.
② 화엄종:
법장에 의해 창시되었는데, 중국 불교 중에서 가장 철학적인 유심론을 기초로 하면서도 절대적인 현실 긍정론을 주장했다. 다시 말해서 객관 세계의 아주 작은 것 하나라도 주관 세계의 마음에 느껴졌을 때 비로소 존재한다는 것이다.
③ 선종:
달마가 전한 선에 의해서 도를 깨닫는 종파로 일본식 이름 젠(Zen)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선종이 중국에서 유전되어 온 것에 대해 호적은 이렇게 말했다. "불교는 본래 외국에서 수입된 종교인데, 이 외래 종교가 1,000여 년 동안 중국의 사상 문화의 영향을 받아 천천히 중국화하여 하나의 특이한 중국 신불교인 선학(禪學)을 형성하였다. 이것은 중국 불교사에서 하나의 커다란 운동이며, 불교 내부의 혁신 운동이라 할 수 있다. 이 새로운 형태의 불교는 인도에는 없었다. 이것은 중국 불교 속에서 혁신 운동이 성취한 종교로서 선종이라 부르고 또 선문(禪門)이라고도 부른다." 선종은 명상과 직관적 통찰을 통해 모든 잡념을 끊고 하나의 경지에 몰입하는 수행 방법을 가지고 있는데 이런 점에서 원시 불교와 가까웠지만, 도가 사상으로부터 유래한 바가 크다. 가령 선종에서는 반학문적·반문자적 성향을 지녀 문자 대신 구술 형식에 의한 교육을 통해 일상적 논리로부터 벗어나게 하였다.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선종은 조직성이 빈약함에도 불구하고 당대 이후까지 지적 활력을 보유할 수 있었던 유일한 불교 종파였다.
6) 불교의 진리
불경 자체에는 석가모니의 가르침이 담겨 있지만, 석가모니 자신이 불경을 쓴 것은 아니다. 이런 점에서 불교의 교리를 다양하게 해석하고 풀어쓴 불경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① 사성제(四聖諦), 팔정도(八正道)
불교 교리의 핵심은 사성제와 팔정도 등에 담겨져 있다.
* 사성제:
사성제란 인생에 대한 객관적 사실에 대한 진단으로, 고체(苦諦)·집체(集諦)·멸체(滅諦)·도체(道諦)를 말한다. 고체는 인생과 자연은 근본적으로 고통스럽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주로 감정상의 고통만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번뇌를 핍박하는 의식을 총괄적으로 가리킨다. 집체란 세상에서 인생의 고통을 만드는 원인을 말하며, 불교에서는 그 원인을 무명(無明)에 있다고 본다. 멸체는 세속의 고통을 만드는 모든 원인을 끊는 것으로, 생사 윤회를 벗어나 '열반(涅槃)'의 최고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도체는 고(苦), 집(集) 한 세상의 인과 관계를 벗어나 '열(涅)'에 이르는 방법과 수단이다. 이 사체 중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고체이다.
* 팔정도:
그 진단을 근거로 처방하는 것이다. 팔정도는 옳게 보는 '정견(正見)', 옳게 결정하는 '정사유(正思維)', 옳게 말을 하는 '정어(正語)', 옳게 행동하는 '정업(正業)', 옳게 운명짓는 '정명(正命)', 옳게 노력하는 '정정진(正精進)', 옳게 마음을 쓰는 '정념(正念)', 옳게 마음을 집중하는 '정정(正定)'을 가리킨다.
② 연기(緣起), 윤회(輪回)
* 연기:
모든 사물은 연에서 일어나며 일정한 조건하에서 존재한다는 사물의 인과 관계를 가리킨다. 즉 "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겨나면 저것이 생겨나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고, 이것이 소멸되면 저것이 소멸된다."는 사상이다. 불교에서는 인생이 12인연, 즉 무명(無明)·행(行)·식(識)·명색(名色)·육처(六處)·촉(觸)·수(受)·애(愛)·취(取)·유(有)·생(生)·노사(老死)로 구성된다고 보고 있다. 12인연 가운데 앞의 두 개는 전생, 중간의 8개는 현생, 앞의 5개는 현재의 과(果), 뒤의 3개는 인(因), 맨 뒤의 두 개는 내생을 가리킨다. 현재의 과는 반드시 과거의 인이 있으며, 현재의 인은 반드시 미래의 과를 발생시킨다.
* 윤회:
생명이 있는 개체는 모두 해탈이 있기 전에는 반드시 인과율(因果律)에 따라 생사가 윤회되어 영원하다는 주장이다. 이 윤회설은 업보 윤회설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업(業, Karma)'이란 문자상 행동 혹은 작위를 뜻한다. 불교에서는 하나의 존재가 업에 의해 다른 존재에 매여 있기 때문에 인생은 끝이 없다고 하는데, 여기서 업은 인연을 의미한다.
③ 무상(無常), 무아(無我)와 열반(涅槃)
불교에서는 인생의 무상과 무아를 논쟁하기 위해 제행 무상(諸行無常), 제법 무아(諸法無我), 열반 적정(涅槃寂靜)의 삼법인(三法印)설이 제시되었다.
* 제행 무상이란 만민이 변화무상함을 지칭한다. '행(行)'이란 세간의 일체 사물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변화하는 것이고, '상(常)'은 항상을 가리킨다. 인생은 무상하기 때문에 고통으로 가득하다.
*제법 무아란 일체의 현상은 인과 연의 화합으로 이루어졌으며, 독립적인 실체 혹은 주재자가 없음을 가리킨다. 여기서 '제법'이란 현상과 본질을 포괄하는 개념이고, '아'는 이합 집산(離合集散)이 없이 독립적으로 자생하고 영원 불변하는 주재자이다. 제법 무아의 핵심은 자아에 집착하는 아집을 제거하는 것이다. 열반은 불교에서 추구하는 이상적인 경계로, 제행 무상과 제행 무아를 선행하는 궁극적인 목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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