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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유가문학과 유학의 발전

지식창고지기 2010. 7. 24. 18:52

중국의 유가문학과 유학의 발전

 

 

1.공자의 생애와 사상

2.공자의 제자

3.유가,유학의 정의

4.유학의 발전 과정

5.유교경전

 

-공자의 생애

 

춘추시대 노나라 창평향 추읍 출생  성이 공(), 이름이 구(), 자는 중니 (仲尼) 전통적 문화습득에 노력했으며, 수양을 쌓아 점차 유명해졌다. 처음에는 말단 관리였으나, 50세가 지나서 노나라의 정공(定公)에게 중용(重用)되어, 정치가로서의 탁월한 수완을 발휘하였다. 노나라의 실력자인 3중신의 세력을 눌러 공실(公室)의 권력을 회복하고, 주공의 정신을 살린 질서있는 문화국가를 건설하려는 그의 계획이 드러나 56세때 실각. 그 후 14년간 문하생들을 데리고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유세(遊說)를 계속하며 이상실현을 꾀하였다. 그러나 69세 때 그 불가능함을 깨닫고 고향에 돌아가 제자들의 교육에 전념. 이 무렵 아들 이(), 고제자(高弟子) 안회(顔回) 및 자로(子路)가 잇달아 죽는 불행을 겪었고, 74세로 자공(子貢) 증삼(曾參) 등 뛰어난 제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타계하였다.

 

공자의 주요사상

 

①인()

 

-공자는 "()"을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의 주요내용:다른사람을 사랑하는 것(愛人)즉 사람과 사람간에는 서로 사랑을 해야 한다.

-""에 부합되는 사상 행위 도덕은 모두 "()"이라고 생각함.

-"자기를 극복하고 예로 돌아가는 것이 인이다(克己復禮爲仁)"

   자기를 억제하여 그것을 ""의 요구에 부합하게 하는 것이 바로

   ()"이라는 의미이다.

-仁과禮:정신은 본질적으로 같은 것으로, ""가 강조하는 것은 외재적인 행위규범이고, ""이 강조하는 것은 내심의 도덕자각인데, 양자가 결합되어 사회의 안정과 질서를 유지시키고 사람과 사람간의 우애와 화목을 도모하는 것이 바로 그의 이상이라는 설명이다.

 

②예()

 

-공자는 "()"로써 나라를 다스릴 것을 극력 주장

 

-주례(周禮)

    좁은 의미: 제례(祭禮), 혼례(婚禮), 상례(喪禮), 외교례(外交禮), 작전례(作戰禮) 등의 각종 예의를 포괄,  넓은 의미:주대(周代)의 모든 전장제도(典章制度)와 도덕규범을 가리키는 것

-공자는 등급제도, 사회질서, 도덕규범, 예의요구가 가장 완벽하고 가장 이상적이어서 단지 개개인이 모두 그것을 엄격히 준수하기만하면 사회가 안정되고 천하가 태평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공자는 그의 유가학설 속에서 ""에 대하여 언급한 것이 가장 많은데, 실제로는 사람들에게 노예사회 종법 등급 관계의 합리성을 인정하게 하여 주대(周代)의 전통을 회복하고 계승하고자 하였다.

 

③중용(中庸)

 

- "" ""은 공자의 이상 원칙이고, 정치생활과 일상 사회생활 속에서 이러한 원칙들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정확한 사상방법이 있어야 한다. 공자는 이 정확한 방법이 바로 "중용(中庸)"이라고 생각하였다.

 

- "중용"이란 간단히 말하면 극단으로 치닫지 않고 중간을 취하면서 양단(兩端)을 상호 제약하고 보충함으로써 만족스러운 결합에 도달하는 것이다.

 

- "중용" 사상에 의하면,인과 예 양자가 "중화(中和)"되어 "중정(中正)"에 도달하여 ""에도 부합되고 ""에도 부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자의 이러한 "중용"의 도는 후대에 중국인들이 문제를 처리하는 중요한 사상 방법이 되어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

 

②민자건(閔子蹇)

이름은 손(), ()는 자건(子蹇). 지극한 효성심으로 유명, 벼슬에 큰 뜻을 두지 않음.

 

③염옹

()는 중궁(仲弓). 출생은 천하지만 학식에 정통하고 박학함.

 

2)언어에 뛰어난 제자

 

②단목사(端木賜)

端木은 복성(復姓)이며 자()는 자는 자공(子貢),위나라 사람. 아첨하지않고도 섬기는 사람을쁘게 할 수 있는, 원칙을 포기하지도 않고 출세할 수 있는 재주를 가짐. 한마디로 잘 적응 하는 성격을 소유.                                          

 

3)정치에 유능한 제자

 

① 중유(仲由)

()는 자로(子路)(계로(季路)라고도 함), ()나라 사람. 제자 중 최연장자, 가장 엄격한 비판자 역할을 수행. 자기 자신에게도  엄격하여 자신의 결점을 자주 지적함.성실하며 강직한 성격의 소유자. 직선적이고 성급하기도 함.

                                       

②염구

()는 자유(子有), 노나라사람. 자로와는 상반되는 성격으로,과도한 정열의 소유자.재빠른 결단력은 정치적 출세에 도움이 됨.화술에도 능하였으며 유능한 정치가이자 장군이기도 함.

 

4)문학에 정통한 제자

 

①언언(言偃)

()는 자유(子游)이며 오()나라 사람. 문학에 재주를 보인 것으로 칭송. 의례에 관심을 가짐.

 

②복상(卜商)

()는 자하(子夏)이며 위()나라사람. 현학적인 사람으로 문학에 뛰어남.

 

맹자[孟子, BC 372?~BC 289?]

 

  -이름이 가(), 전국시대 노()나라 사람

-자신의 정치적 주장의 실현을 위해 사방의 유세(有勢)

-공자의 "()" 사상을 계승 발전 시켜 공자의 ""을 정치에 응용하여 "인정설(仁政說)"을 제기

 

-"성선론(性善論)"을 제기-()과 인성(人性)을 함께 연계시켜 인성은 본래부터 선한 것이며,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공경지심(恭敬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 "()" "()" "()" "()"의 네 가지 도덕 정감, 바로 양심(良心)은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것으로 학습을 필요로 하지 않는데, 이것이 바로 사람이 금수(禽獸)와 근본적으로 구별되는 점.

 

-사람은 모두 동정심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동정심을 정치상으로 확대 응용한 것이 바로 "인정"이라고 생각하였다. 맹자가 제기한 "성선론"은 후세에 매우 많은 영향을 미쳐 고대 중국의 봉건시대에 정통적인 관점이 되었다.

 

순자[荀子, BC 298?~BC 238?]

 

-이름이 황(), 자가 경(), 손경(孫卿)

-전국시대 말기 조()나라 사람

-현실적인 이론 제기: 성악설(性惡說)-인간의 본성이 본래 악하여 후천적 노력, 즉 교육을 받아야 비로소 선

()해질 수 있다고 여겼다.

-유가의 "()"에 대하여 새로운 논리를 진행

-공자(孔子) ""와는 상당한 차이

-천명관(天命觀):"운명을 인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人定勝天)"는 주장을 제기

-순자의 유가사상은 이미 비교적 큰 변화가 발생하여 전국시대 신흥 지주계급의 요구를 대표

 

유가사상과 유학의 정의

 

-중국의 대표적인 사상.

-춘추시대(春秋時代) 말기에 공자(孔子)가 시작하였고, 전국시대(戰國   時代)에는 제자백가(諸子百家) 중 하나였다.

-()나라 무제(武帝) 때인 BC 136년에 국교(國敎)가된 이래 청()나라가 망할 때까지 역대 조정의 지지를 얻으며 정교일치(政敎一致)의 학문으로 중국의 사회문화 전반을 지배해 왔다.

-유학(儒學)과 유교는 서로 비슷한 말이지만, 중국에서는 유교라는 말은 별로 사용하지 않고 학파를 의미하는 유가(儒家)나 학문을 의미하는 유학이라는 말로 나타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유가·유학에 대해서 유교라는 말은 교화적(敎化的)인 면을 중시하여 어느 정도 종교적인 의미를 포함한 말이었다고 볼 수 있다. 유교는 본래가 사대부(통치자 계급·지식인)의 학()이며, 그런 의미에서 유가·유학이라고 하는 것이 적합하다.

 

유가사상의 본질

 

① 인본주의 정신을 기본으로 한다.

-전통적으로 인간의 본성을 좋은 것()으로 보고 이것을 계발(啓發)하는 이론을 정립.

②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일원적 사유를 기본으로 한다.

-유가는 나와 다른 사람, 인간과 만물, 인간과 우주를 언제나 조화적 발전단계로 보는 존재이해의 기본방식을 형성

③ 모든 문화현상을 실천적으로 다루는 실천철학의 성격을 띤다.

④ 유가는 전통의 계승과 새로운 창조를 조화 있게 이룩해 간 철학이다.

      -온고지신(溫故知新)

 

유학의 발전 과정

 

유교의 역사는 한나라 무제 때 국교화된 것을 중심으로 그 이전인 원시유교와 그 이후로 크게 나누어지고,다시 국교화 이후의 유교는 한나라 무제 때부터 당()나라 말기에 이르는 시기,()나라 초기에서 명()나라 말기에 이르는 시기(宋明性理學), 청나라 때(淸朝考證學) 3등분해서 고찰하는 것이 통례이다.

 

원시유교

 

춘추시대 말기의 난세에 노()나라에서 태어난 공자는 밖으로는 예를 실행하여 잃어버린 질서를 회복하고, 안으로는 인으로써 사람을 섬겨야 한다고 하였다.

 

또한 그는 고대적미신적인 하늘의 중압으로부터 사람을 해방시키고,합리적이고 인간 중심적인 사고를 폈다. 이러한 그의 사상에 공명한 인사들이 그의 문하에 모여들었고, 여기서 유교교단(儒敎敎團)이 발생하였다.

 

공자가 죽은 뒤 문인(門人)들은 각지로 분산되어 교세를 넓혀 나갔는데, 이에 자극을 받아 묵가(墨家)도가(道家) 등의 제자백가가 등장하였다. 유가는 가장 유력한 학파로서 백가에 대항하면서, 또는 그 영향을 받으면서 차츰 활동을 전개해 나갔다.

이 동안에 나타난 사람이 맹자와 순자(荀子)이다.

 

한당훈고학(전통적 유교)

 

유교는 난해한 오경을 앞세우고 훈고학[註釋學], 즉 유교 경서의 뜻을 해석하거나 천술(闡述)하는 <경학(經學)>으로 전개하게 되었다. 국교화한 당초 전한에는 <금문경학(今文經學)>이 성행하였는데 이것은 천인상관설(天人相關說)에 입각하여 경문을 신비적으로 해석해서 한왕조의 출현을 정당화한, 정치색이 짙은 경학이다. 후한에 들어서자 이것과 병행하여 문자가 가진 의미에 유의하는 <고문경학(古文經學)>이 생겨서 훈고학으로서의 경학의 기초가 구축되었다. 전한후한 400년간은 왕조의 권위를 배경으로 하여 경학이 가장 번성했던 시기이다. 그러나 위진남북조시대(魏晉南北朝時代)에 들어서 노장사상(老莊思想)과 외래의 불교가 성행하자 유교는 쇠퇴

 

송명성리학(신유교)

 

송나라 때에 들어서면서 유교의 현상에 대한 반성과 함께 혁신적인 기운이 움텄다. 북송에서 시작되어 남송의 주희(朱熹朱子)에 의하여 완성된 송학(宋學朱子學)이 그것인데, 오경을 대신하여 사서(四書)를 존중하고, 윤리학으로서의 본래성을 되찾는 한편 그것을 우주론적인 체계 속에 자리잡게 하는 것이다.

     

청조고증학

 

명나라 말기에서 청나라 초기에는 양명학의 말류를 비판하고 송명 나라의 신유교를 공소(空疎)하다 하여 배척하고 훈고학으로 복귀하려는 기운이 고조되었다. 송학(宋學)은 여전히 관학 위치를 유지하였으나 학술의 주류는 한학(漢學)으로 옮겨갔다. 그것은 후한 때의 고문경학을 기초로 해서 문자학(文字學)음운학(音韻學)역사학지리학 등 여러 학문을 구사하여 실사구시(實事求是사실을 통하여 진리를 구하는 것)를 지향하는 것이었다. 이것을 <고증학>이라고 한다. 그러나 청학의 관심은 점차 전한 때의 금문경학으로 옮겨갔다. 정치색이 강했던 금문경학은 청나라 말기의 동란기를 맞아 여러 종류의 개혁운동에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게 되었다. 캉유웨이[康有爲] 등에 의해 제창된 공양학(公羊學)이 바로 그것이다.

 

유교의 몰락

 

19세기 중반, 아편전쟁을 계기로 중국의 유교는 종말기를 맞이하였다. 열강의 침략, 청조(淸朝)의 부패에 궐기한 중국인은 많은 개혁안을 제출하였으며 그 중에서 공양학파(公羊學派)인 캉유웨이[康有爲] 등은 유교의 변법자강책(變法自强策)을 주장하여 근대국가로의 탈피를 꾀하였으나 수구파(守舊派)의 탄압으로 실패하고, 그 후 유교는 밀려드는 근대과학에 자리를 양보하였다.

 

특히 신해혁명(辛亥革命) 이후 전개된 근대화운동은 봉건체제의 모든 것을 부정하여, 유교도 그 정신적 지주였다는 뜻에서 적대시하기에 이르렀다. 그 후 운동의 열기가 식고 평정을 되찾으면서 전통문화가 재검토되었고, 그 결과 유교도 앞으로의 문화창조에 기여할 수 있는 요소가 있음을 지적하였다. 그러나 중국이 공산화된 이후 유교는 탄압되고 많은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유가사상의 계보

유교경전

 

-사서오경 [四書五經:중국에서 유가(儒家)의 기본적 경전(經典)의 총칭.

  ①사서(四書)란 논어(論語맹자(孟子) 대학(大學)

    중용(中庸)을 말하는데, 그 중 대학 중용은 원래 예기(禮記) 중의 두 편()을 각각 독립시켜 별책으로 한 것이다.

②오경(五經)이란 한대(漢代)에 중시된 《시()》《서()》《역()》《예기()》《춘추(春秋) 5서에서 기원된 것이다. 당시 《서()》는 《금문상서(今文尙書), 《예()》는 《의례(儀禮), 《춘추(春秋)》는 《공양전(公羊傳)》을 중심으로 하였으나, 그 후 오경은 《모시(毛詩)》《고문상서(古文尙書) 》《역경(易經)》《예기(禮記)》《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의 5서로 한정되었다. 당대(唐代)의 공영달(孔穎達) 등에 의한 관찬 주석서 《오경정의(五經正義)》의 성립으로 오경의 내용은 앞의 5, 즉 《시경》《서경》《역경》《예기》《춘추》로 확정되었다.

 

①「논어(論語)

-중국 유교(儒敎)의 근본문헌(根本文獻)

-유교 경전

-춘추전국 시대

-논어는 유가(儒家)의 성전(聖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사서(四書)의 하나로, 중국 최초의 어록(語錄)이기도 하다. 고대 중국의 사상가 공자(孔子)의 가르침을 전하는 가장 확실한 옛 문헌이다. 공자와 그 제자와의 문답을 주로 하고, 공자의 발언과 행적, 그리고 고제(高弟)의 발언 등 인생의 교훈이 되는 말들이 간결하고도 함축성 있게 기재되었다.

 

②「중용 (中庸)

공자(孔子)의 손자인 자사(子思)의 저작이라 알려졌다. 오늘날 전해지는 것은 오경(五經)의 하나인 《예기(禮記)》에 있는 <중용편(中庸篇)> 이 송()나라 때 단행본이 된 것으로, 《대학(大學)》 《논어(論語)》 《맹자(孟子)》와 함께 사서(四書)로 불리고 있으며, 송학(宋學)의 중요한 교재가 되었다.

 

    여기서 ''이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다는 것, ''이란 평상(平常)을 뜻한다. 인간의 본성은 천부적(天賦的)인 것이기 때문에 인간은 그 본성을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본성을 좇아 행동하는 것이 인간의 도()이며, 도를 닦기 위해서는 궁리(窮理)가 필요하다. 이 궁리를 교()라고 한다. 《중용》은 요컨대 이 궁리를 연구한 책이다. 즉 인간의 본성은 한마디로 말해서 성()일진대, 사람은 어떻게 하여 이 성으로 돌아가는가를 규명한 책이라고도 할 수 있다.

 

③「맹자(孟子)

《맹자》 7편은 맹자의 말을 모은 후세의 편찬물이지만, 내용은 맹자의 사상을 그대로 담은 것이다. 주자학(朱子學) 이후로 《맹자》는 《논어》 《대학》 《중용》과 더불어 '사서(四書)'의 하나로서 유교의 주요한 경전이 되었다. 맹자의 사상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책이며, 또 전국시대의 양상을 전하는 흥미있는 내용으로 가득차 있다. 문장은 변론조이며, 예부터 명문으로 여겨진다.

 

④「대학(大學)

『대학』은 사서(四書)의 하나로서 유교의 목적과 정무(政務)의 근본을 서술한 경전이다. 본래 이것은 『예기(禮記) 49편 가운데 제42편이었지만, 다른 편들과 달리 구체적인 사상을 기술하고 있기 때문에 일찍부터 학자들의 주의를 끌어 왔었다.

 

①「시경(詩經)

-특징: 중국最古의 시가집, 중국문학의 출발이며 중국문학 자체의 출발

-시대적 배경: 西周초~춘추시대에 이르는 약 500

-구성: 國風-각 제후국에서 유행하던 민간 가요의 가사(106)

小雅-왕의 직할시에서 유행하던 민간 가요의 가사(74)

大雅-왕실의 연회나 의식에 쓰였던 시가(31)

-종묘의 제사에 불리우던 가사(40)

-유래: 공자 편집설이 유력하나 수록된 시가의 내력이나 편집자, 편집시기가 불확실

-체재: 305편의 시가 (詩三百이라고도 부름)

-목적:주나라 때 중앙의 천자가 각 지방의 풍속과 민심을 살피고 천자로부터 전력을 위임받은 제후와 지방관들의 정치를 조사하기 위해 각지의 민가를 채집하고 조사함.

-작자: 시기와 작자 미상, 대부분 후세의 손을 거쳐 편집,기록

 

②「서경(書經)

-유가(儒家)의 오경(五經) 중 한 경전

-58(). 상서(尙書)라고도 한다. 우서(虞書) 하서(夏書) 상서(商書) 주서(周書) 등 당우(唐虞) 3대에 걸친 중국 고대의 기록

-이제삼왕(二帝三王)의 정권의 수수(授受), 정교(政敎) 등의 기록으로, 고대의 사적(史的) 사실이나 사상을 아는 데 중요한 책

 

③「예기(禮記)

-중국 고대 유가(儒家)의 경전.

-《주례(周禮)》 《의례(儀禮)》와 함께 삼례(三禮)라고 하며 《의례》가 예의 경문(經文)이라면 《예기》는 그 설명서에 해당한다.

-예의 이론 및 실제를 논술한 것이다.

-성립에 관해서는 분명치 않으나, 공자(孔子)의 제자를 비롯하여 한()시대에 이르는 많은 사람들의 손으로 된 《예기》 200편 중에서 편찬

-곡례(曲禮) 단궁(檀弓) 왕제(王制) 월령(月令) 예운(禮運) 예기(禮器) 교특성(郊特性) 명당위(明堂位) 학기(學記) 악기(樂記) 제법(祭法) 제의(祭儀) 관의(冠儀)혼의(婚儀) 향음주의(鄕飮酒儀) 사의(射儀) 등의 제편(諸篇) 《대학(大學)》 《중용(中庸)

 

④「춘추(春秋)

-중국의 고대 사상가인 공자(孔子:BC 552BC 479)가 편찬한 사서(史書).

-중국 노()나라에 전해오는 사관의 기록을 바탕으로 중요한 일의 기록을 편년체로 엮어 놓은 사서이다.

-중국 최초의 편년사이며 간략한 서술을 특징

-문장은 비록 아주 짧지만 자구(字句)의 운용이나 구성은 《서경(書經)》보다 훨씬 발전하여 간결하고 평이하다.

-중국 산문을 새로이 정립하는 주요한 문헌

 

⑤「주역(周易)

-유교의 경전(經典) 3(三經)의 하나인 《역경(易經)

-역이란 말은 변역(變易), '바뀐다' '변한다'는 뜻이며 천지만물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현상의 원리를 설명하고 풀이한 것이다.

-점복(占卜)을 위한 원전(原典)과도 같은 것.

-역점은 본시 시초라는 풀 대공으로 만든 99개의 점가치인 서()로 괘를 이룸.

-거북껍질을 불로 지지어 생기는 균열의 모양을 보고 길흉을 점치는 복()도 숭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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