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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무드 이야기 8] 탈무드의 발 / '수난의 탈무드' 외 3

지식창고지기 2010. 8. 5. 01:49

[탈무드 이야기 8]

탈무드의 발 / '수난의 탈무드' 외 3

 

 

01. 수난의 탈무드

 

<탈무드>의 편찬은 바빌로니아에서 기원후 500년부터 시작되었다. 그후 1334년에 손으로 직접 쓴<탈무드>가 나왔는데, 이것이 현존하고 있는 것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그리고 처음 인쇄된 <탈무드>는 1520년 베니스에서 나왔다.

 

1244년엔느 파리에 있던 모든 <탈무드>가 기독교인들에 의해 몰수되어 24대의 수레에 실린 채 불태워 없어졌다.1263년에는 기독교와 유태인 대표들이 자리를 같이 하고<탈무드>과연 기독교의 교리에 상반되는 것인가에 대해토론을 벌이기도 하였다. 그후 1415년에 이르러 유태인들의 <탈무드>를 법령으로 금지하였고, 1520년에는 로마에서 또한번 <탈무드>가 불태워 없어졌다.

 

<탈무드>를 읽어보지 못한 기독교인들은 그것에 대해 무지때문에 <탈무드>를 까닭없이 혐오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연유에서 그후에도 <탈무드>의 소각은 수없이 계속될 수밖에 없었다. 1562년에는 기독교의 교회측이<탈무드>를 검열하여 부분부분을 삭제해 버렸기 때문에 오늘의 <탈무드>는 완전한 내용의 것이 아니다.

 

<탈무드>를 마이크로필름에 보관해 두기 위해 찍을 때 페이지와 페이지 사이에서 다른 페이지의 내용이 나오기도 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수백년 동안이나 묻혀 있던 새로운 <탈무드>가 발견된 것이다.

 

그러므로 <탈무드>를 읽다보면, 중간중간 이야기의 연결이 애매한 곳이 간혹 있다. 이것은 행한 교회측의 검열 과정에서 부분부분을 잘라내 버렸기 때문이다.기독교인들은 그리스도를 비난한 것으로 생각되는 곳은 가차없이 잘라 버렸다. 하지만 현재의 <탈무드>는 세계 각국의 말로 옮겨져 읽히고 있어 <탈무드>에 대한 관심은 점차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탈무드>는 일종의 연구서이다. 특히 유태인에게 있어서 공부는 인생 최대의 목표이다. 그러므로 유태인을 이해하려면 , <탈무드>가 유태인에게 있어 얼마나 소중하게 다루어지고 있는가를 알지 않으면 안 된다.

 

유태인들은 신의 뜻을 몸소 실천에 옮기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엇으므로 <탈무드>를 공부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가 없었다. 그러나 <탈무드>에 대한 공부는 지적인 공부라기 보다는 종교적인 공부이고 연구였다.

 

유태인들에 있어 신을 찬양하는 최대의 행위는 공부하는 일이다. '공부와 연구가 옳바른 행동을 만든다'는 말이 유태 민족의 오랜 금언으로 간직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도 알 수 있다.

 

고대 유태의 도시나 고장은 그곳에 세워진 학교의 이름에 의하여 알려졌다. 예배를 보는 곳은 곧 공부하는 곳이기도 하였다.

로마인들은 유태인들의 확산을 막기 위해 유태인들의 <탈무드>에 대한 공부를 엄격하게 금했다. 그들에게서 배우는 일을 빼앗아 버리면 유태인은 이미 진정한 유태인이라고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들은 신의 뜻이라고 믿는 '공부'를 지키기 위하여 수없이 죽어갔다. 그러나 지식은 끝내 모든 것을 물리치고 승리하게 마련이다.

 

나도 유태인으로서, 아침 일찍 일터에 나가기 전에 일어나 <탈무드>에 대한 공부를 진정한 유태인이라고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들은 신의 뜻이라고 이미 진정한 유태인이라고 할 수가 없는 것이다.그들은 신의 뜻이라고 믿는 '공부'를 지키기 위하여 수없이 죽어갔다. 그러나 지식은 끝내모든 것을 물리치고 승리하게 마련이다.

 

나도 유태인으로서, 아침 일찍 일터에 나가기 전에 일어나 <탈무드>를 공부하는 많은 유태인을 보았다. 점심이나 저녁 식사 때, 또는 버스나 지하철 속에서도 유태인들은 쉬지 않고 공부한다. 그리고 안식일에는 어김없이 몇 시간이고 공부에 열중한다. 20권의 <탈무드>중 한 권의 공부만 마쳐도 대단한 경사로 여겨 이웃과 친지들을 모아 놓고 성대한 축하연을 베풀기도 한다.

 

유태인들에게 기독교의 로마 교황과 같은 절대 권위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있어 최고 권위자는 바로 <탈무드>일 뿐이다. 그래서 <탈무드>에 대한 공부가 권위의 척도로 측정되고 있다. <탈무드>에 대한 지식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바로 '랍비'이며, 그래서 랍비가 유태인들의 존경을 받는 권위자가 된 것이다.

 

02. 탈무드의 내용

 

<탈무드>는 모두 6개의 부분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농업, 제사, 여자, 민법과 형법, 사원, 순결과 불순 등이다. <탈무드>는 반드시 '미슈나(mishna)'라 하는 부분에서부터 시작되는 규칙이 있다. 이 미시나는 유태 민족에 있어 오랜 전통의 가르침과 약속이 구전에 의해 전해지고 있는 부분이다. 이 부분은 기원후 200년경에 이르서야 체계적으로 모아져 빛을 보게 되었는데, 500그램에 불과한 가벼운 책이다.

 

이 미시나에 대한 별다른 이견은 없다. 이러한 미시나를 중심으로 더욱 발전된 토론과 논의가 바로 <탈무드>이다. 이 토론은 둘로 나뉘어져 있는데, 하나는 '하라카'라고 하는 토론이고, 또 하나는 '아카타'라고 하는 토론이다.

 

유태인은 세계의 많은 민족 중에서 종교에 대한 계율을 가장 엄격하게 지키는 동시에 그만큼 종교에 심취해 있는 민족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들의 언어에는 종교라는 말이 없다. 왜냐하면, 유태인들의 평소의 생활 그자체가 종교이기 때문에, 종교라는 말을 특별하게 사용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하라카'라는 말은 유태인적인 생활 방법이라고나 할까, 인간들의 모든 행위를 숭고한 것으로 승화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제사, 건강, 예술, 식사, 언어, 대화, 대인관계 등 평소 생활에서의 일체의 행위가 이 '하라카'에 합당하지 않으면 안된다.

 

기독교의 교인은 하나님을 믿음으로써 이미 교인이 되지만, 유태인은 그렇지가 않다. 유태인에 있어서는 오직 행위만이 유태인으로 인정되는 것이다. 또한 '아카타'는 <탈무드>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것은 철학, 신학, 역사, 도덕, 시, 속담, 성서 해석, 과학, 의학, 수학, 천문학, 심리학, 형이상학 등 인간이 발휘할 수 있는 모든 지혜가 담겨져 있다.

 

03. 유태인의 생활

 

해가 뜨는 시간에 맞추어 일어나면, 먼저 씻고 그리고 식사전 30분정도를 기도로 보낸다. 이때는 팔과 머리 위에 성스런 상자를 매어달고 몸에는 목띠를 감는다. 집에서 기도를 해도 되지만, 대부분의 유태인은 근처에 있는 예배당에 가서 기도한다.

이들의 기도문은 어디에서고 같다. 집에서보다는 예배당에 가면 많이 모여함께 기도할 수 있다는 좋은 점이 있다. 게다가 집에서 혼자서 기도할 때는 대개 자기 중심의 이기적인 기도가 되기 쉽지만 모두 모여 함께 기도하면 이런 폐단을 막을 수도 있다.

 

이렇게 아침 기도가 끝나면 아침 식사를 한다. 그때도 역시 손을 씻은 뒤 간단한 기도를 드린다.그리고 식사를 시작한다. 만약 가족이나 친구들과 같이 식사를 하게 되면 반드시<탈무드>에 관한 얘기를 화제로 삼는다.

 

그리고 식사를 마친 뒤에도 간단한 기도를 하는데, 역시 가족이나 친구들과 같이 한자리일 때는 함께 입을 맞추어 낮은 소리로 기도한다. 이일이 끝난 뒤에 각자 자기의 일터로 향한다.

 

오후가 되면 정오에서부터 해가 지는 시간의 중간에 5분여 정도의 간략한 기도의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밤이 되어 집에 돌아온 뒤에는 근처의 학교에 가서 공부한다. 왜냐하면, 유태인은 하루 일과중 어떻게 틈을 내든 반드시 <탈무드>에 대한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04. 유태인의 장례

 

유태인들은 죽은 사람에게는 반드시 경의를 표하여야 하고, 그리고 죽은 사람은 항상 지켜지지 않으면 안된다고 믿고 있다. 사람이 죽으면 먼저 죽은 이의 몸을 깨끗이 한다. 그 일은 그 지역사회에서 가장 교양이 있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받고 있는 사람이 맡아 한다. 이러한 일은 유태인 사회에서 매우 영예로운 일로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사람이 죽으면 가능한한 빠른 시간 안에 매장하는데 화장이 아니라 매장한다. 원칙적으로는 죽은 다음날에 매장하는게 관례이다. 죽은 사람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장례식에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 참석한 사람 중에서, 이를테면, 랍비가 추도사를 읽고 상주가 기도문을 읽는다.이들은 같은 예배당에서 같은 내용의 기도를 1년동안 매일 반복한다.

 

일단 매장이 끝나면 가족은 집으로 돌아온 뒤 일주일간 같은 일을 반복한다. 1개의 촛불을 켜놓고 10명의 친지가 마루에 모여 앉아 기도문을 외우는데. 이때는 집안의 있는 거울을 모두 덮어야한다.

 

그리고 상주는 일주일 동안 집밖의 출입을 삼가한다. 예배당에 가는 일도 이 일주일이 지나야 가기 시작한다. 상주가 집에 있는 일주일 동안에 그 가족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조문을 하게 된다. 이러한 일주일의 의식이 끝나면 상주 가족은 집밖에 나와 자기 집 둘레를 한 바퀴 돌게 된다. 죽은 뒤 한달 동안에는 얼굴을 씻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죽은 뒤 1년 동안에는 화려하고 즐거움이 넘치는 장소에는 출입하지 않는다. 그후 해마다 죽은 사람의 기일이 되면 반드시 상복을 입어야 한다.

 

가족들이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오면 달걀을 먹는다. 죽은 사람에 대한 유태인들의 사고 방식은 사람은 누구나 가족이 죽으면 슬퍼한다고 여긴다. 그리고 일주일간 추모하고 집밖을 나간다는 것은 그 이상 슬픔에 잠겨 있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서이다. 이것은 사람이 슬픔을 너무 오래 간직하고 있는 것은 불건강한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일주일 뒤 집밖에 나가 집 둘레를 한바퀴 도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렇게 달걀을 먹고 집의 둘레를 한바퀴 도는 것은, 둥근 원이 끝도 시작도 없는 거와 같이 인간의 생명도 끝이 없는 원과 같이 언제이고 돌고 있어야 한다고 믿고 있음을 뜻한다.

 

이들이 가장 깊은 슬픔에 잠기는 것은 일주일 동안이다. 그 뒤의 한달동안은 추모 기간이 있지만, 이 기일에는 일주일이 슬픔과는 같지 않다. 뒤의 1년 동안도 역시 슬픔이 덜한 기간이다.

 

죽은 뒤 1년 후부터는 기일을 빼고는 상복을 입지 않는다. 1년 동안 상복을 입어 추모하는 대상은 부모의 경우일 뿐이고 다른 사람의 경우엔 1일주일과 1개월에 추모의 기간이 끝난다.

 

나의 아버지가 죽었을 때도 나는 슬픔에 싸여 식사마저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달걀을 먹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것은 의무적인 일이었기 때문이다. 죽은 사람만이 현재 살아있는 사람을 지배하고 있어서는 안되며, 죽지 않고 살아 남은 사람은 앞으로도 계속 살아가야만 한다는 중요성을 유태인들은 가르치고 있다 이들에 있어 자살은 큰 죄악이다.

 

유태인들의 장례식은 부자와 가난한 사람에 구별이 없고, 학자와 무식한 사람을 구별하지 않고 똑같은 관과 옷을 입혀 행한다.인간들의 지위나 부위 영화에 따라 장례식이 달라지는 경우는 없다. 이들은 인간 평등을 존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배당에서 같은 모습, 같은 모자를 쓰고 함께 모여 앉아 기도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