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숨결/역사(한국)

중국동북지역 신석기문화의 전개양상

지식창고지기 2010. 12. 8. 08:41

중국동북지역 신석기문화의 전개양상

 


▶ 만주지역은 중국내륙과는 양상이 다른 신석기문화가 전개되고 있는데, 이름하여 '발해권역신석기문화'라고 칭한다. 이는 시베리아의 세석기문화와 중국내륙의 대형석기문화를 적절하게 조화시키고 있는 전혀 새로운 양상의 신석기시대 문화단계였던 것이다.

  연대\ 지역
          황하유역
        산동지역
        요녕지역

B.C.6000~B.C.5000
자산문화,배리강문화
북신문화
흥륭와문화,신락문화

B.C.4500~B.C.2500
앙소문화
대문구문화
홍산문화

B.C.2000~B.C.1300
이리두문화
용산문화
하가점하층문화




신석기시대에 대한 중국에서의 연구는 활발하게 전개되어 과거의 중국중심의 일원론적(一元論的) 발전관(發展觀)은 지양되고, '다중심발전론(多中心發展論)'이 새로이 강조되고 있는 추세이다. 각 지역의 신석기문화들이 구석기말기 문화와 일정한 연속성을 가지면서 동시에 다발적으로 독특한 성격을 띄며 시작되어 어느 한곳 특별하게 중심적인 역할을 한 적극적인 문화는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중국학계에서는 현재 신석기시대(新石器時代)를 조기(早期)·중기(中期)·만기(晩期)로 구분하고, 다음 단계로 동석병용시대(銅石倂用時代)를 설정하여 또한 조기(早期)·만기(晩期)로 구분하는데 기원전(紀元前) 3천5백년경을 중요한 분기로 삼는다. 이는 취락유적지나 주거지, 묘장법 등을 통해 비교적 평등한 사회양상을 보이면 신석기시대로 분류하고, 빈부의 격차와 사유관념(私有觀念), 계층적인 요소가 보이면 동석병용시대(銅石倂用時代)이후로 분류하는 방식에 따른 것이다.

요하유역(遼河流域)의 신석기시대를 3단계로 구분하는 견해가 있다.

제1단계는 이른 시기의 심양(瀋陽) 신락하층(新樂下層), 내몽골(內蒙古) 흥륭와(興隆窪)와 요동반도남단 대련(大連) 광록도(廣鹿島) 소주산하층(小朱山下層) 유적을 대표로 하며, 압인지자문(壓印之字文) 혹은 연속고선문(連續孤線文)이라 하는 '之'자','人'자 문양이 새겨진 밑이 평평한 평저토기(平低土器)를 특징으로 하고 곡물류나 음식재료를 갈 때 사용하는 석마반(石磨盤), 석마봉(石磨棒) 등을 공통으로 사용하며, 중원지역의 채색토기인 채도(彩陶)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대략 7천년전의 유적으로서 황하유역(黃河流域)의 신석기시대 문화단계인 자산문화(磁山文化)·배리강문화(裴李崗文化)와 같은 단계이다.

제2단계는 홍산문화(紅山文化)와 소하연문화(小河沿文化) 유적을 대표로 하며, 점토질의 홍도(紅陶)와 채도(彩陶)의 공존을 특징으로 마광흑도(磨光黑陶)도 보이고 구멍이 뚫린 루공권족기(鏤孔圈足器)도 출현하였다. 홍산문화(紅山文化)는 전기(前期)와 후기(後期)로 나누어지는데 후기(後期)가 소하연문화(小河沿文化)와 연계되는 시기이다. 중국의 신석기시대 만기에 속하는 것이 홍산문화 전기로 황하유역의 앙소문화(仰韶文化) 전기, 산동반도의 대문구문화(大汶口文化) 전기와 같은 단계이고, 홍산문화 후기와 소하연문화는 중국 동석병용시대 조기(早期)에 속하며 황하유역의 앙소문화 후기, 대문구문화 후기와 같은 단계이다. 요하유역 제2단계 신석기시대 문화는 전·후기로 구분하기까지로 이해하는 데에는 다소 무리가 있으나 청동기를 일부 사용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제3단계는 하가점하층문화(夏家店下層文化)의 조기유적(早期遺跡)을 대표로 하는데, 승문회도(繩文灰陶)와 마광점토질흑도(磨光粘土質黑陶) 등이 특징적 토기이고 유적에서 몇 점의 동기(銅器)가 발견되었다. 중국의 동석병용시대 만기(晩期)에 속하며, 황하유역의 용산문화(龍山文化)와 이리두문화(二里頭文化) 전기와 같은 시기이고 4천-2천5백년전의 연대로 추정된다. 동석병용시대 조기는 물론 청동기가 매우 희소하고 대신 석기제작(石器製作)의 기술이 대단히 발달하여 편평한 석재(石材)나 규칙적인 면의 분할법 등의 수법이 발달 응용되고 이러한 기법 위에 토기의 제작이 성행하던 시기였다.

청동기(靑銅器)의 개시(開始)에 대해서는 다른 장에서 논하겠지만 '동석병용(銅石倂用)'이란 과도기적 시대구분이 개입되는 것이 주목된다. 이는 다분히 청동기의 사용연대를 올려보려는 의도가 깔려있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아뭏든 요하유역을 3단계로 나누는 의견은 다소 수정이 가해져야 하는데, 실제로 구분의 양상을 보면 요하 서쪽지역만을 대상으로 삼은 것임을 알 수 있다. 요하지역의 신석기문화를 구분한다면 지역적으로도 요하이서지역(遼河以西地域)과 요하이동지역(遼河印地域), 요동반도남부지역(遼東半島南部地域) 등의 세 유형권(類型圈)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⑴서요하·대능하유역권(西遼河大凌河流域圈) -
⑵하요하유역권(下遼河流域圈)
⑶여대연해지구(旅大沿海地區)

등으로 구분하고, ⑴에는 홍산문화유형(紅山文化類型) 소하연문화유형(小河沿文化類型) 부하문화유형(富河文化類型), ⑵에는 신락문화유형(新樂文化類型) 편보유형(偏堡類型), ⑶에는 소주산유형(小珠山類型) 곽가촌하층유적(郭家村下層遺跡) 우가촌하층유형(于家村下層類型) 등으로 각각 분류할 수 있다. 지역적유형권(地域的類型圈)의 구분은 시기적 구분에서 볼 때 다소 차이가 있다. 요하이서지역의 내몽골(內蒙古) 흥륭와(興隆窪) 유적은 시기적으로 가장 앞서는 유적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기원전 7천년이전의 문화로 인식되고 있다. 요하동쪽의 심양(瀋陽) 신락(新樂) 유적은 기원전 5천5백년대이고 요동반도남단의 소주산하층(小珠山下層)유적은 신락(新樂)유적보다 늦은 기원전 4천5백년이전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한가지 중요한 문화적 요인을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세석기문제(細石器問題)이다. 세석기문화(細石器文化)는 구석기시대 말기부터 시베리아와 몽고, 북만주지역에 광범하게 분포되어 있는 독특한 요소를 지닌 문화인데, 2만-1만년간의 오랜 기간동안 지속되었다. 세석기의 전통은 중국북부지역 신석기문화에도 존재하고 있는데, 발해연안(渤海沿岸)과 하북지방(河北地方) 난현과 황화, 산동지방(山東地方) 임기(臨沂), 기수(沂水), 담성 등에 까지도 전해지고 있다.

앞에서도 보았지만, 발해북안지역(渤海北岸地域)의 신석기문화에는 토기에 연속고선문(連續孤線文=押印'之'字文)이 시문되어 있는 것이 특징인데 북경지역 상택문화(上宅文化), 내몽골(內蒙古) 흥륭와문화(興隆窪文化), 부하문화(富下文化), 신락하층문화(新樂下層文化) 등에 공통하며, 또한 이러한 문화들이 세석기의 전통도 혼합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요동반도남단 일대의 동구후와(東溝後窪), 대강(大崗), 소주산하층(小珠山下層) 등에는 연속고선문(連續孤線文)의 공통특징은 보이지만 세석기의 전통은 발견할 수 없다.

 

요동반도남단은 시기적으로 늦기 때문에 다른 양상이 나타날 수도 있지만, 이보다 더 늦은 하가점하층문화(夏家店下層文化)와 북만주지역(北滿洲地域)에 세석기의 전통이 전해지고 있음을 볼 때, 시기적 요인 보다는 지역적 요인에 의해 구분되어 이해되어져야 할 필요성이있다. 이러한 지리적 상황은 자연환경의 분포지대와 일치하고 있다. 세석기문화(細石器文化)는 삼림초원지방의 수렵문화(狩獵文化)의 산물이므로 남만주(南滿洲) 일대의 농경문화 지대에는 그 흔적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중국의 발해북안 신석기문화는 대륙의 세석기문화 전통과 독자적 구석기문화 전통을 이어받아 성립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홍산문화(紅山文化)는 북으로 시라무렌강(西拉木倫河)과 노합하(老哈河)로부터 남으로 대능하유역(大凌河流域)과 하북지방(河北地方) 연산산맥이북(燕山山脈以北)까지 광범하게 분포되어 있는 신석기시대 말기까지의 장구한 기간 지속된 신석기문화로서 기원전 4천년경까지 소급하고 있다. 1935년 내몽골 적봉(赤峰) 홍산후(紅山後)유적 발굴을 계기로 근 50여년간 발굴자료가 증가해 왔고 중국선사시대 문화의 한줄기로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시기별로 보면, 적봉지방의 홍산문화가 비교적 전기단계에 속하는데 각종 유형의 세석기(細石器)가 발달하였고 타제석기(打製石器), 석마반(石磨盤), 석마봉(石磨棒) 등과 발형기(鉢形器), 통형관(直腹罐) 위주의 비교적 단순한 토기의 구성을 보이고 있는데 홍산후(紅山後)를 비롯하여 서수천유적(西水泉遺址), 지주산유적(蜘蛛山遺址), 내몽골 오한치(敖漢旗) 사릉산유적(四稜山遺址)과 삼도만자유적(三道灣子遺址) 등이 대표적이며 '홍산후유형(紅山後類型)'이라 칭하기도 한다.

홍산문화 말기에 속하는 요서지방 조양(朝陽) 일대의 소하연문화(小河沿文化)와 근접한 문화를 성자산유형(城子山類型)이라 하는데, 객좌(喀左) 동산취(東山嘴)와 능원현(凌源縣) 삼관전자(三官甸子) 성자산(城子山), 부신(阜新) 호두구(胡頭溝) 등이 대표적 유적이다. 문화적 내용으로서는 마제석기(磨製石器)가 증가하고 타제석기(打製石器)와 세석기(細石器)가 감소하며 구멍뚫린 흑색토기편과 같이 황하지역 용산문화(龍山文化)의 요소가 엿보이고 있다.


홍산문화 말기에 소하연문화(小河沿文化)가 계승하는데 이는 계승이라기 보다 병존한다는 것이 옳을 것이다. 홍산문화이후 하가점하층문화(夏家店下層文化)가 그 지역에 보다 광범하게 확산되어 등장한다. 하가점하층문화(夏家店下層文化)는 홍산문화의 요소를 그대로 이어받아 전개되는데, 연속고선문계(連續孤線文系) '之'자문 토기는 소멸하고 승문(繩文)을 위주로 한 세사갈도(細砂褐陶)·세사회도(細砂灰陶)가 다수를 차지하며, 홍도(紅陶)와 점토질홍도(粘土質紅陶)는 소수 보이고 있다. 또한 세석기의 존재도 사라지고 대형의 마제석기(磨製石器)가 다수를 점하고 있다.

 

내몽골 적봉현(赤峰縣) 지주산유적(蜘蛛山遺址)의 경우 홍산문화층은 적갈색토층(赤褐色土層)에 점토질홍도(粘土質紅陶)와 점토질회도(粘土質灰陶)의 발(鉢), 관(罐), 세사갈도(細砂褐陶)의 관(罐) 등이 연속고선문(連續孤線文)과 함께 보이는데 연속고선문(連續孤線文)과 함께 하가점하층문화층은 회황색(灰黃色), 회흑색(灰黑色), 회갈색(灰褐色) 토층에 력, 언, 정(鼎), 존(尊), 두(豆, 옹(甕), 반(盤), 분(盆) 등이 관(罐)과 함께 출토되고 있다.

 

 

이 게시물은 한사 운영자 백산님으로 부터 자료 제공 받은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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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그림은 고구려 시대 서커스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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