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숨결/역사(한국)

[신비의 고대왕국 .18] 에필로그…그들은 우리의 뿌리이자 정신이다

지식창고지기 2010. 11. 10. 10:03

[신비의 고대왕국 .18] 에필로그…그들은 우리의 뿌리이자 정신이다
 ))) 다시보는 고대왕국의 흔적들안의 왕국 이름을 맞춰보세요
경주 오릉
경주 오릉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던 고대국가. 그 흔적을 찾아 산과 바다, 들판을 누빈 지 4개월여. 하지만 2천여년 전 고대국가의 실체를 밝히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기자의 능력과 전문성 부족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아직도 기원 전에 형성됐다 사라져 그 흔적조차 찾지 못한 고대국가들이 적지 않다. 취재를 하면서 우리가 알고 있던 고대국가뿐만 아니라, 나라의 기틀을 갖췄을 것으로 추정되는 미지의 소국(小國)들이 있음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최근 발굴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영천시 신녕면 호남리 고분군의 경우 영천 골벌국과 의성 조문국 사이에 있어, 또 다른 소국이란 주장도 있다. 발굴작업이 30% 정도에 불과하지만, 발견된 유물만 1만5천여점. 신라의 유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경주시 서면 사라리 130호 고분에 대한 의견도 학자에 따라 엇갈린다. 이 무덤의 주인이 경주손씨의 시조라고 하지만, 지역 경계로는 영천에 아주 가깝다. 그렇다면 영천 골벌국과 경주 사로국 사이의 또 다른 소국일 것이란 주장도 있다. 신라의 모태인 사로국과 고령 대가야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진·변한 고대국가가 언제 형성됐는지, 왕이 누구였는지조차 알 수 없다. 이는 패자의 역사는 승자의 역사 뒤에 가려지기 때문이 아닐까.

삼한시대 진한과 변한을 통일한 신라보다 사라진 고대국가들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그들의 찬란하고 독특했던 문화를 우리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천재와 바보는 백지장 차이라고 한다. 국가의 흥망성쇠도 같은 이치가 아닐까. 신라의 모태인 사로국도 2천여년 전 경주 일대의 조그만 나라에 불과했다. 삼국사기삼국유사에 나오는 사로국의 건국과정을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촌장 중심의 사로국은 힘이 분산되면서 세력 확장에 한계점을 드러냈다. 하지만 BC 57년 박혁거세의 등장은 변방의 사로국을 진한의 맹주국으로 만드는 구심점이 됐다. 반면 AD 42년부터 562년까지 고령 일대를 호령했던 대가야는 554년 백제와 함께 신라의 영토였던 관산성(충북 옥천)을 공격했다 대패함으로써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비옥한 옥토를 바탕으로 경제적 부를 쌓아가던 상주 사벌국과 지리적 요충지로 일본의 고대국가와 혈맹관계를 유지하던 의성 조문국도 급변하는 대외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서 멸망의 길을 걷게 됐다. 고대국가의 유산과 풀리지 않은 비밀은 여전히 신비롭게 남아 있다.



'신비의 고대왕국'을 취재하며 가장 안타까웠던 점은 제대로 보존된 유적이 얼마 없다는 것이었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지난 6월말 상주 사벌국을 취재하면서였다. 상주박물관 관계자와 사벌국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지역 최대 고분군이자, 5~6세기 신라시대 지배층의 것으로 추정되는 상주 병풍산고분군(尙州
김천 동부연당2
김천 동부연당
이서국 - 청도 지석묘군3
이서국 - 청도 지석묘군
의성 금성산성 봉수대터4
의성 금성산성 봉수대터
고녕가야 - 상주 공검지5
고녕가야 - 상주 공검지
울릉 사자바위6
울릉 사자바위
고령 지산 고분군7
고령 지산 고분군
屛風山古墳群)이 단 한 기를 제외하곤 모두 도굴된 것. 며칠 뒤 찾은 병풍산고분군은 말로 듣던 것보다 더 비참했다.

산 중턱에서 마주친 폭 20m·높이 10m에 이르는 대형 고분에는 커다란 도굴갱이 드러나 있었고, 유물은 모두 도굴된 상태였다. 기자와 동행한 상주박물관 석병철 학예연구사의 설명은 이러했다. "병풍산고분군은 대부분 피장자의 머리쪽과 발쪽에 유물을 안치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전문 도굴범들은 풍수지리에 능하기 때문에 피장자의 머리 위치가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어 고분의 파손을 최소화하면서도 모든 유물을 가져갑니다."

뿐만 아니다. 전설과 고문서로만 전해지던 압독국의 실체는 아이러니하게도 도굴범에 의해 밝혀졌다. 1982년 2월 도굴된 금동관, 순금제 귀고리, 장신구, 은제 허리띠, 금으로 도금된 큰칼 등 국보급 유물이 해외로 반출되려다 당국에 적발됐다. 당시 해외로 반출하려던 한 유물을 "경산지역에서 도굴했다"는 도굴범의 진술을 바탕으로, 영남대 박물관이 임당동 고분군을 중심으로 발굴을 시작하면서 압독국의 실체가 밝혀졌다.

골벌국의 도읍지로 추정되는 영천시 완산동에 위치한 금강산 일대는 다른 형태의 파괴였다. 50여년 전 군부대가 들어서는 과정에 수많은 고분이 발견됐지만, 변변한 발굴작업 한 번 없이 대부분 파괴됐다. 또 1970년대 초 영천시 고경면 대의·대성리 일대에서 복숭아밭을 개간하다 400여기의 고분이 발견됐다고 한다. 주민들은 이곳에서 발견된 원형 그대로의 토기를 국립경주박물관에 건네고, 수고비로 얼마씩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얼마 뒤 경주박물관측에서 토기를 가져와도 돈을 주지 않자, 주민들이 이를 그냥 방치해 버렸다는 것.

정부와 행정기관의 태도도 문제다. 경북지역에는 수많은 고분이 있지만, 제대로 된 발굴이 이뤄지는 곳은 손으로 꼽을 정도다. 최근까지 발굴된 고분 대부분이 도로 건설이나 주택단지 조성과정에서 발견되자, 건설업체들이 어쩔 수 없이 발굴을 의뢰했다. 행정기관은 예산 탓만 할 뿐 고대국가에 대한 관심이 없다. 사실상 직무유기인 셈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고령 대가야다. 1977년 지산리 44·45호 고분 발굴을 계기로, 고령군은 지속적인 복원작업을 통해 유적지를 관리하고 있다. 또 1988년부터 계속된 대가야체험축제는 이제, 고령을 대표하는 축제로 자리잡았다. 올해 축제를 찾은 관람객만 38만명, 경제유발효과는 180억원 이상이 될 것으로 고령군은 추산하고 있다. 먼 외국의 사례를 들지는 않겠다. 우리의 조상이자, 뿌리인 고대국가를 찾아 보전하는 것은 후손인 우리의 당연한 의무이자, 마땅히 해야 할 책임이란 것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협찬 : eride GyeongBuk
2010-10-06 08:09:15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