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Cafe/주영숙·난정뜨락

이태백의 여자친구

지식창고지기 2010. 12. 13. 22:03

() 나라 때와 당() 나라 때의 남녀간의 사교에 대한 글들은 많이 있으나 이태백의 남녀간의 사교 활동에 대한 글은 그리 많지 않다.

 

이태백은 일생 동안 여러곳을 유랑하며 생활하였기 때문에 비교적 넓은 사교활동을 했다.

 

이태백의 친구들은 왕공대신(王公大臣)들도 있었다. 예를 들면 이태백을 처음 만난 후 당나라현종(玄宗)에게 천거한 하지장(賀知章)과 당나라 숙종 때의 명장으로써 안사(安史)의 난()을 평정한 곽자의(郭子儀 : 서기 687 서기 781 )가 있다.

 

세상을 피해 산속에 숨어서 산 은사(隱士)들과 은둔자들과 문사들도 있었다. 예를 들면 공소부(孔巢父)와 한준(韓準)과 배정(裴政)과 장숙명(張淑明)과 도면(陶沔) 등이 있다.

 

또 도사(道士) 오균(吳筠)은 이태백과 우정을 지닌 절친한 친구였다.

 

또 이태백은 여자 친구들과 다채다양한 관계를 지니고 있었으며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일찍이 양귀비(楊貴妃)가 이태백에게 진귀한 벼루를 선물로 주었던 고상하고 멋이있는 사건은 양귀비 역시 이태백의 여자 친구였음을 증명해 주고 있다. 이태백과 정식으로 결혼한 여성을 제외하고도 많은 여성 친구들이 있었다.

 

이태백의 시를 분석해 보면 이태백의 여자 친구는 몇 가지로 분류해서 생각할 수 있다.

 

첫째 술집 직업 여성들이 있다. 이태백을 주선(酒仙)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이태백은 술집의 여성들과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인연이 있었다.

 

이태백의 시 소년행(少年行)은 다음과 같다.

 

오릉연소금시동(五陵年少金市東), 은안백마도춘풍(銀鞍白馬度春風).

  낙화답진귀하처(落花踏盡歸何處), 소입호희주사중(笑入胡姬酒肆中).”

 

다시 말하면 오릉의 젊은이들 금시(金市 : 번화한 상가) 동쪽에서, () 안장을 한 백마를 타고 봄바람을 맞으며 시간을 보내네, 떨어진 꽃잎을 짓밟으며 어디를  향하여 가고 있는가? 웃으며 호희(胡姬)의 술집에 드네라는 뜻이다.

 

호희(胡姬)는 옛날 노래와 춤을 업으로 삼던 서방이나 북방에서 온 여성들을 일컫는다.

 

또 이태백의 시 송배십팔도남귀숭산(送裴十八圖南歸嵩山)은 다음과 같다.

 

하처가위별(何處可爲別), 장안청기문(長安靑綺門), 호희초소수(胡姬招素手), 연객취금준(延客醉金樽).”

 

다시 말하면 색다른 곳이 어디뇨? 장안의 청기문이라. 그곳의 호희들은 희고 매끈한 손을 흔들어 손님을 초대한 후 사치스럽게 차린 음식과 맛 좋은 술로써 손님들을 취하게 만들어 준다네.” 란 뜻이다.

 

이태백의 두번 째 부류의 여인들은 농가(農家)의 여성들이었다. 이태백이 농촌 여성들을 접견할 때 농촌 여성들은 베를 짜고 있거나 어떤 여성들은 뽕밭에서 뽕을 따고 있었다. 또 어떤 여성들은 연()을 따고 있었다.

 

이태백은 농촌 여성들에 대하여 가지 각색의 시를 읊었다. 예를 들면 베를 짜고 있는 시골 여성들을 노래한 유태산(遊太山)과 뽕을 따고 있는 여성들을 노래한 맥상상(陌上桑)과 연()을 따고 있는 여성들을 노래한 채연곡(採蓮曲)과 월여사(越女詞) 등이 있다.

 

이태백의 세번 째 부류의 여성들은 신분이 비교적 복잡한 여성들이었다. 예를 들면 관환(官宦)의 가정 여인들과 같이 교육을 많이 받아 지식이 풍부하고 예의를 아는 여성들이었다. 이러한 여성들에 대하여 읊은 시들은 상봉행(相逢行)과 맥상증미인(陌上贈美人) 중에 실려 있다.

 

이태백의 시(詩) 맥상증미인은 다음과 같다.

 

준마준행답락화(駿馬駿行踏落花), 수편직불오운차(垂鞭直拂五雲車),

  미인일소건주박(美人一笑褰珠箔), 요지홍루시첩가(遙指紅樓是妾家).”

 

다시 말하면 양마(良馬)들이 우쭐대며 땅에 떨어진 꽃잎들을 모두 짓밟아 버리는구나! 채찍을 위에서 아래로 늘어 뜨리며 때리니 오운차는 곧장 스쳐 지나가고 미인들이 구슬을 꿰어 만든 발을 걷어 올리며 웃음을 짓는구나. 멀리 가리키는 기생집은 작은 마누라의 집이라!” 는 뜻이다.

 

이태백은 다방면으로 풍부한 경험을 쌓았기 때문에  훌륭한 많은 시를 쓸수 있었던 것은 당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