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숨결/전설 야담

견훤은 지렁이 소생

지식창고지기 2011. 1. 7. 08:47

견훤은 지렁이 소생

 

옛날 아주 먼 옛날 남편을 여의고 혼자인 과부가 길쌈을 하며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밤이 되면 용모가 아주 뛰어난 선비가 찾아와 자고 아침이면 슬그머니 사라지는 것이었다. 밤에는 정체불명의 남진일색과 만나고 낮에는 길쌈을 하며 세월을 보내던 과부는 아기를 갖게 되었다. 동네사람들은 과부가 아이를 갖게되자 손가락질했다. 그래서 과부는 정체불명의 남자를 찾기 위해서 꾀를 냈다. 길쌈하던 실꾸러미를 가져다가 아침이 되어 슬그머니 일어서는 남자의 뒤꽁무니에 달았다. 실은 남자가 움직이는 대로 계속해서 풀렸고 과부가 풀린 실을 쫓아서 따라가 보니 장독 뒤의 장독대로 들어갔다. 과부는 자신을 의심하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실이 사라진 장독대를 파보았는데 그곳에 큰 지렁이가 하나 있었다.


그리고 얼마후 과부는 지렁이 소생의 아기를 낳았는데, 그 아기가 훗날 후백제의 시조인 견훤이다.

 

 

견훤의 탄생

 

먼 옛날 전라남도 광주의 장재라는 곳에 큰 부자가 살고 있었다. 그 집에는 아직 시집을 가지 않은 무남독녀 외딸이 있었는데, 그 동네에서는 "어떤 사내가 저녁마다 그 처녀의 방을 다닌다"고 소문이 나 있었다. 이를 이상히 여긴 부모가 딸을 불러 묻자, 그 소문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밤마다 어떤 사내가 바람처럼 와서는 자고 새벽이면 또 바람처럼 간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부모는 바람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는 사내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꾀를 냈다. 부모는 바늘에 긴 실을 꿰어 딸에게 주며 그 사내가 다시 오거든 긴실이 꿰어진 바늘을 옷에 찌르라고 시켰다.

그 날밤 딸은 부모가 시킨 대로 변함없이 찾아 온 그 사내의 옷에 바늘을 찌르자 그 사내는 돼지의 소리로 "너의 뱃속에 든 아기는 삼한의 왕이 되어야 할 텐데, 일 국의 왕밖에 못한다. 그리고 네가 나를 이렇게 죽이니, 너의 자식이 너를 잡아먹는다" 라 말하고 달아났다. 다음날 아침이 되어 풀린 실 가닥을 따라가 보니 굴속에 커다란 돼지 한 마리가 배꼽에 바늘을 찔린 채 죽어있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처녀는 임신을 하고 집에서 쫓겨 나와 걸식을 하다가 처마 밑에서 남자아기를 낳았다. 7월의 어느 날 처녀는 남의 집 밭일을 하느라 아기를 소나무 밑에 뉘어 놓았는데, 암호랑이가 산에서 내려와 굶주린 아기에게 젖을 주었다. 그렇게 호랑이 젖을 먹고 무럭무럭 자란 아기가 바로 훗날 후백제를 세우고 왕이된 천하장사 견훤이다
 

 

 

견훤甄萱 [?~936] (재위 900~935).

 

황간견씨(黃磵甄氏)의 시조. 본성은 이(). 아자개(阿慈介)의 아들. 상주(尙州) 가은현(加恩縣: 聞慶市 加恩邑)에서 태어났다. 신라에 태어나 서남해(西南海)지방 방위에 공을 세워 비장(裨將)이 되었는데, 나라가 혼란한 틈을 타서 892(진성여왕 6) 반기를 들고 일어나 여러 성을 공략하고, 무진주(武珍州: 광주)를 점령하여 독자적인 기반을 닦았다.

 

900(효공왕 4) 완산주(完山州: 全州)에 입성하여 스스로 왕이라 칭하고, 나라이름을 후백제라 하였다. 관제를 정비하는 한편, 중국에도 사신을 보내어 국교를 맺으면서, 궁예(弓裔)의 후고구려(後高句麗)와 자주 충돌하며 세력 확장에 힘썼다. 그 뒤 왕건(王建)이 세운 고려와도 수시로 혈전을 벌여 군사적 우위(優位)를 유지했다.

 

926년 신라의 수도인 금성(金城: 경주)을 함락하여 친려(親麗)정책을 쓰던 경애왕(景哀王)을 살해한 후, 김부(金傅)를 왕(경순왕)으로 세워놓고 철수하여 신라인의 원한을 샀다. 929년 고창(古昌: 안동)에서 왕건의 군사에게 크게 패한 후부터 차츰 형세가 기울어 유능한 신하들이 계속 왕건에게 투항하고, 934년 웅진(熊津: 공주) 이북의 30여 성이 고려에 귀속했다.

 

이듬해 왕위계승문제로 맏아들 신검(神劒)이 금산사(金山寺)에 유폐했으나 탈출하여, 고려 왕건에게 투항하여 상보(尙父) 칭호와 양주(楊州)를 식읍(食邑)으로 받았다. 936년 왕건에게 신검의 토벌을 요청하여 후백제를 멸망시켰다. 그러나 고려의 왕건이 신검 등을 우대하는 것을 보고 분을 못이겨 앓다가 얼마 뒤 황산(黃山: 충남 논산군 연산면) 불사(佛舍)에서 등창이 나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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