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나게 하시는 예수( 요3:1-15)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사람은 열심히 교회를 다니기는 하지만 도무지 예수 믿는 사람다운 점이 없고 선한 일을 행하지를 않습니다. 이 모습을 본 다른 사람이 "나는 절대로 그런 예수를 믿지 않겠다"면서 교회 나오지 않고 부지런히 선을 행하다가 두 사람이 이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천국에 가서 이 두 사람을 찾아 보았는데 두 사람 다 천국에서 찾아 볼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전자는 종교인이었고 후자는 이 세상에서 선하게 사는 선인, 혹은 의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와의 대화 가운데,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3:5)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과연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것은 어떤 의미겠습니까?
우리는 요한복음 1장에서 영원 전부터 계신 예수, 하나님과 함께 계신 예수,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시고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역사와 시간과 문화 속에 찾아 오신 예수인 것을 알았습니다. 또한 만물을 창조하신 그 분이 인류의 빛이 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요한복음 2장에서는 빛되신 예수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킴으로 말미암아 온 인류가 죄의 심판에서 멸망과 형벌을 받을 수 밖에 없었지만 사망에 처한 인간들을 생명으로 옮기신 예수를 보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요한복음 3장에서 영적으로, 종교적으로 파탄지경에 빠져있는 사람이 빛되신 예수를 만남으로 해서 영원한 생명을 받아 구원을 받은 놀라운 사실을 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거듭난다'는 중생의 정의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한자를 풀이한다면 거듭 중자에 날 생자, 다시 태어나다라고 하는 의미가 중생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와의 대화 가운데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남여가 결합하여 육신으로 출생하게 될 때 우리는 그것을 자연적인 출생 혹은 육적 출생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자연적인 출생에 반해서 초자연적인 출생, 육적 출생에 반해서 영적 출생이 있는데 바로 이것이 '거듭난다, 중생한다'라고 표현을 합니다. 헬라어로 중생이라고 하는 말은 '아노덴'이라고 하는데 이 아노덴이라고 하는 말은 '위로부터 태어나다'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남여의 결합에 의해서 자연적인 출생으로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 중생이라고 하는 것은 초자연적인 출생으로서 하나님으로부터 그 영혼이 다시 태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어머니로부터 육적 출생을 받아야 할 뿐만 아니라 우리 예수님의 표현을 빌리면 이 초자연적인 출생, 영적 출생을 하지 아니하면 결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고, 하나님 나라를 볼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하는 말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이해하거나 전혀 알 길이 없다는 뜻입니다. 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거나 누리거나 저 영원한 천국에 결코 들어갈 수 없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자연적인 출생, 육적인 출생을 경험한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를 이해하거나 볼 수도 없고 저 영원한 하나님의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까?
성경은 불신자의 상태를 대략 8가지로 설명을 해주고 있는데 그 첫째는 마귀의 자식이 되어서 그 사람이 사탄에게 소속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죄와 허물로 죽은 자가 되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어져 있다고 말합니다. 세번째는 욕심대로 살고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아래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따라서 도적질하고 죽이며, 멸망시키는 사탄에 의해서 조정을 받고 사탄을 쫒아 가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명예와 권력과 황금이나 세상의 쾌락을 하나님 대신 추구합니다. 그리고 각종 귀신과 악령에게 고통을 받다가 마지막에는 심판을 받으므로 죽어서 영원한 멸망과 형벌에 이르는 존재가 된다는 것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이 창조 하였기 때문에 하나님 자녀가 아니냐구요. 그러나 목수가 나무를 가지고 인형을 만들었다고 해서 그 목각으로 만든 인형이 사람일 수 없고 또 목수의 자식이라고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세상 사람들을 다 창조하였다 하더라도 그 사람들이 모두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성경은, 인류는 사단의 유혹을 받아 하나님을 거역하고 배반하고 불순종함으로 죄가 그 속에 들어가 사탄의 자식이 되었다고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요8:44)
그러므로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지만 불신자들은 그 영혼에 죄가 들어가서 사탄으로 부터 거듭났기 때문에 마귀의 자식이며 사탄에게 소속되어 있는 존재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생명을 받은 사람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흔히 니고데모를 '수줍은 구도자'라고 신학자들이 이름을 붙였는데 그 이유는 사람의 눈을 피하여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갔기 때문입니다.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중의 한 사람이었고 성경을 가르치는 이스라엘의 선생님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최고의 통치기관이었던 산헤드린 공의회의 일원이었습니다.
바리새인은 하루에 일곱번 기도를 하는데 자기 집에서 네번 기도를 하고 성전에 가서 세번 기도를 했습니다. 십일조를 분명히 드렸습니다. 토색하거나 불의하거나 결단코 간음하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거의 흠이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종교적인 의무를 감당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더군다나 니고데모는 성경을 가르치는 이스라엘의 선생이요 랍비였습니다. 또 동시에 입법, 사법, 행정부의 최고 행정기관이었던 산헤드린 공의회의 일원이었는데 이 예수님이 심판을 받고 이 산헤드린 공의회에서 정죄를 받아서 빌라도에게 예수를 넘겨준 의회가 바로 이 산헤드린 공의회였습니다. 이스라엘의 12지파에서 4지파의 6명씩을 착출해서 72명으로 구성된 기관입니다. 니고데모는 바로 이 산헤드린 공의회의 일원이었습니다. 사회적인 신분과 명망을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네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비록 성경을 가르치는 이스라엘의 랍비라 하더라도, 하루에 7번 기도하고 십일조를 드리며 종교적인 의무를 완벽하게 이행했다고 하더라도 거듭나지 못하거나, 하나님의 생명이 속에 있지 아니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주님께서는 분명히 하였던 것입니다.
니고데모는 오늘날 종교적으로 혹은 영적으로 파탄지경에 빠져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것이 아직까지 나에게 생명이 되지 못한 사람은 종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록 목사, 장로, 집사, 권사라 하더라도 기도하고 십일조를 내고 새벽기도를 하며 부지런히 봉사를 한다고 할찌라도, 하나님의 생명이 그 속에 없거나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 나라를 이해할 수도 알 수도 없고 또 천국에 결코 들어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거듭나지 못하면 그 속에 하나님의 생명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과 분리되어져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영혼이 사탄에게 소속되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성경은 오늘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시간 당신의 영혼은 거듭나셨습니까? 그리고 형의 영혼속에 하나님의 생명인 영생을 선물로 받으셨습니까? 이 시간이라도 하나님이 형을 부르신다면 형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100% 확신을 가지고 계십니까? 결혼한 사람에게 "당신은 미혼입니까? 기혼입니까?" 물으면 "글쎄요. 나는 잘 모르겠는데요" 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이처럼 거듭난 사람에게 "당신은 이 시간에 하나님이 부르시면 100% 천국간다는 확신을 가지십니까?"하고 묻는다면 비록 부족할지라도 "아멘"이라고 확실히 대답할 줄로 믿습니다.
사회적인 명망과 지혜와 지식, 모든 권력과 황금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 속에 하나님의 생명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과 단절되어 있기 때문에, 더 나아가서 그의 영혼은 엄밀히 따지면 사탄에게 소속이 되어서 마귀의 자식이기 때문에, 가인의 후예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면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무엇이겠습니까?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3:14)
니고데모는 구약성경을 잘 알았고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었다고 하는 그 기사에 대해서 익히 아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너무나도 니고데모가 잘 알고 있는 그 기사를 이용해서, 그가 가지고 있는 영적이고 종교적인 문제에 대해서 해답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니고데모는 주님의 말씀을 받아서 결국 구원을 받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홍해를 건너서 가나안 땅에 인도하는 과정에서 요단강 동편쪽으로 행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에돔과 모압과 암몬족속의 땅을 통과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에돔과 모압과 암몬족속은 이스라엘 백성과 혈족의 관계요 친척이었습니다. 에돔은 야곱의 형이 아니었습니다. 또 모압과 암몬은 롯의 후예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친인척의 관계였습니다. 모세와 히브리 백성들이 그 길을 통과하겠다고 했을 때 그들이 거절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지 않으셨습니다. 동족이 피 흘리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남쪽으로 우회로를 거쳐서 요단강으로 가기로 모세는 결심을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우회로를 통해서 사막을 지나가는 동안에, 길도 험하고 물도 없고 음식도 박하였기 때문에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사막에서부터 불뱀이 여기저기에서 나오기 시작하더니 이스라엘 백성들을 물어뜯기 시작했습니다. 독사에게 물린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기 저기에서 신음과 비명소리를 내며 죽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럴 때 백성들이 정신이 들어서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당신 앞에 죄를 지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해서 이 재앙이 물러가게 해 주십시오" 백성들의 간청하는 기도소리를 듣고 모세가 부르짖었습니다. 모세가 부르짖은 말을 넣었으면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모세야! 놋뱀을 만들어서 장대에 그것을 매달아 높이 세워서 외쳐라 그것을 쳐다보는 자는 다 살리라" 이렇게 외치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장대를 가져오라고 하고 놋뱀을 만들어서 장대에 높이 매달아 세웠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이 놋뱀을 쳐다 본 자는 살리라'고 하는 주의 말씀을 대언했습니다. 이 말씀을 믿고 신음과 비명속에서 죽어가던 사람들이 장대에 매달린 놋뱀을 쳐다볼 때 즉시 뱀의 독에서 해독이 되고 그들은 생명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을 믿지 아니하고 원망하고 불평했던 사람들은 그대로 뱀의 독에 의해서 광야에서 죽어 시체가 되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를 니고데모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으므로 예수님이 이 기사를 통해서 거듭남의 진리, 중생의 도리에 대해서 그에게 이야기 해 준것입니다.
기독교의 특수성은 개량이 아니라 개조가 되어야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다시 태어나지 아니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을 알수도, 하나님을 누릴 수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이 진리가 세상의 모든 현인 성자의 진리와 다른 점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장대는 갈보리 산상에서 주님이 매어 달렸던 십자가를 말하고 장대에 매어 달렸던 놋뱀은 인류의 죄와 죽음, 가난과 질고, 인간이 당하는 모든 수고와 슬픔, 율법의 저주를 담당하신 예수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위해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마귀를 이기고 3일만에 부활 승천하셨습니다. 보좌 우편에 앉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구속하시고 죄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다리를 놓아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14:6).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5:8). "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벧전3:18)
우리는 사회적인 신분과 명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명예와 권력과 황금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많은 지식을 습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육으로 난 것은 육입니다. 거듭나지 아니하면 결코 주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오늘 각자가 '너는 거듭났는가?'라고 질문하지 아니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듭나지 아니한 자는 멸망과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기에 옛날 광야에서 우리 주님께서 장대를 높이 세워서 놋뱀을 쳐다 본 자는 살리라 하심과 같이 오늘 인류를 향해서 우리 주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오라 나와 변론하자 네 죄가 주홍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과 같이 되리라" 이렇게 우리를 초청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를 보라는 것입니다. 예수를 영접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엡2:8-9)
선물이라는 것은 구걸해서 얻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방이 주면 "감사합니다"하고 받는 것이 선물입니다.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 아무 노력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구원받기 위해서 철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구원받기 위해서 금식할 필요가 없습니다. 구원 받기 위해서 헌금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받기 위해서 봉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요1:13)하였습니다.
혈통이라고 하는 말은 글자 그대로 족보를 말하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장로이고 목사라 해서 그 아들은 자동적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 육정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정열과 노력, 방법을 가지고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윤리와 도덕과 선행에서 흠이 없다고 해도 믿음이 없이는 구원받지 못합니다. 사람의 뜻, 자기의 생각과 노력을 가지고 절대로 구원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다시 태어난자라"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까? 노력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우리에게 주신 예수님을, 장대에 달린 놋뱀을 쳐다보면 구원 받듯이 그 놋뱀은 예수님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갈보리 언덕에서 모든 율법의 저주를 담당하시고 높이 달리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무 공로가 없지만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그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시기만 하면 값없이 의롭다함을 얻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베니스는 운하의 도시입니다. 그 운하를 가로지르는 다리가 있었는데 그 다리 이름이 '한숨의 다리'라고 합니다. 왜 한숨의 다리냐 하면 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이 그 한숨의 다리를 배를 타고 건너가게 되는데 그곳을 건너가게 되면 감옥과 통하게 되어 있다고 합니다. 감옥에 들어가게 되면 감옥에 가두어지게 되는데 쇠약해져서 죽을 때까지 내버려두기 때문에 그것을 '한숨의 다리'라 불리워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감옥문마다 "이곳에 들어오는 모든 자는 희망을 포기하라"는 문구가 씌어있다고 합니다. 어떤 사형수가 재판장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후 배를 타고 한숨의 다리를 반쯤 지나고 있다고 합시다. 그는 아마 가족과 이별을 해야 할 것입니다. 모든 자유는 이제 박탈당하고 포기하지 아니하면 안됩니다. 절망과 통한과 두려움이 그를 엄습해오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럴 때 재판장의 서기가 열심히 쫒아와서, "배를 멈추시오 내가 여기 사면장을 가지고 왔소" 라고 했을 때 그 사형수는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온 인류는 "죄의 삯은 사망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하는 영원한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이 육체라는 배를 타고 한숨의 다리를 건너가듯이 절망의 강물을 따라 흘러가다가 언제 어느때인가는 멸망의 영원한 감옥에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저와 형에게 기쁜 소식, 사면장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잠깐 멈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쳐다보라는 것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계3:20)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1:12)
당신은 거듭나셨습니까? 당신 주위에 아직 거듭나지 못한 형제, 자매, 아내, 남편이 있으신가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고후13:5)
예수님께서 이시간 내 마음속에 계신 것을 스스로 알고 계십니까? 그리고 그것을 확신하고 계십니까? 확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직 확신하지 못하고 계시다면
"보라 지금은 은혜를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라" (고후6:2)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 (잠27:1)
이것보다도 시급하고 이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세상도 정욕도 다 지나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한다고 하였습니다. 기회가 있을 때 이 문제를 분명히 아시고 이 문제에 대해서 확신이 올 때까지 성경을 상고하시기 바랍니다. 또 도움을 요청하시고 또 그 앞에 나아가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내가 하나님의 자녀되고 거듭난 확신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이미 거듭났다고 하더라도 빛 가운데서 주님이 주신 이 은혜의 선물을 놓치지 않기 바랍니다. 끝까지 견고히 붙잡으셔서 저 영원한 천국에 승리의 입성을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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