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수 되시는 예수(요4:6-22)
지금까지는 요한복음 1장에서, 영원 전부터 계신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시간과 공간 속에 찾아 오신 분이 예수님이고, 이 예수님은 인류의 빛이시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2장에서는 이 빛되신 예수님께서 갈릴리 가나에 가셔서 빛을 비추심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신 예수를 보았고, 3장에서는 영적, 종교적으로 파탄 지경에 빠져 있었던 니고데모에게 빛되신 예수께서 비추심으로 그에게 생명을 주시고 거듭나게 하시는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이제 요한복음 4장에서 도덕적으로 파탄 지경에 빠져있는 한 여인에게 빛을 비추심으로 영원한 생명수 샘물이 되시는 예수님을 보게 됩니다. 사마리아의 수가라고 하는 동네에 살고 있는 한 여인이 예수님을 만났을 때 어떤 변화가 일어났습니까? 그리고 이 사건을 통해서 예수님은 어떤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겠습니까?
사마리아 여인의 문제점은 무엇입니까? 역사적으로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때 남조 유다는 유다와 베냐민 지파에 의해서 나라를 이루고 북조 이스라엘은 10지파에 의해서 북조 이스라엘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유다와 사마리아는 서로 감정적인 대립이 시작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남조 유다가 BC 586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에 의해서 패망하게 되었을 때 느부갓네살은 인구 이주정책을 썼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을 멀리 옮기기도 하고 외국 사람들을 사마리아에 이주를 시켜서 사마리아 사람들은 피가 섞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전통적인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이 혼혈의 피가 흐른다고 해서 그들을 이방인 취급을 하였던 것입니다. AD 70년 로마의 티터스 장군에 의해서 예루살렘이 완전히 초토화 되고, 그 후에 유다 3차 전쟁에 의해서 사실상 전통이라고 주장을 했던 그 유대 민족들도 이방인의 피가 섞였기 때문에 사마리아 사람들을 무색케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계속해서 반목질시하고 서로 미워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파사왕 고레스 시대에는 고레스가 칙령을 내렸었는데, 그들이 돌아와서 성전을 재건했을 당시만 하더라도 사마리아 사람들이 대표를 보내어서 함께 성전을 재건하자고 제의를 했음에도 유다 사람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의 제의를 거절했었습니다. 그 정도로 그들은 서로가 적대하고 미워했었습니다. 또 예루살렘에서 갈릴리를 가려면 사마리아의 직선 도로를 통해서 가면 대단히 가까운데도 멀리 요단강 쪽으로 우회를 해서 갈릴리를 가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사마리아의 수가라고 하는 동네는 구약성경의 세겜성 이라고 불리워졌던 동네인데, 야곱의 딸 디나가 한가하게 놀러 다니다가 세겜성의 추장의 아들에 의해서 강간을 당함으로 시몬과 레위의 복수의 칼로 피가 흘렀던 곳이 바로 이 세겜성 수가라고 하는 동네였습니다. 원래 수가라고 하는 말은 '술취한 성' '누운 성' 이라고 하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사마리아 지역에 살고 있었던 사마리아 여인의 문제점은 무엇일까요?
"가라사대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요4:16-18)
이 말씀에 보면 사마리아 여인의 문제점을 예수님께서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 여인은 남편을 다섯번이나 거치는 동안에 도덕적인 파탄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때 당시에도 그는 정식 부인이 아니고 남의 첩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양심에 심한 부끄러움과 죄책감과 갈등을 가지고 살아가는 여인이었습니다. 사회적으로도 멸시와 천대, 소외와 압박감 속에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한 방황 속에서도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하지 못한 방황하는 한 영혼을 우리는 이 요한복음 4장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폴 틱일릭'이라는 신학자는 인간은 세가지 불안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죽음의 불안이 있고, 두번째는 나는 죄인이고 쓸모 없다는 죄책감에 대한 불안이 있고, 세번째는 생의 무의미에 대한 불안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하였습니다.
당신의 영혼은 진정한 만족과 평안과 기쁨을 발견하셨습니까? 또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진정한 가치와 목적을 발견하셨습니까? 여기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인의 문제점은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지 남편을 다섯번이나 갈아 보았어도 마음의 만족을 얻지 못함으로 생의 의미와 가치와 목적을 상실해 버리고 방황하는 것이 이 사마리아 여인의 문제점이었습니다.
그러면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오늘 예수님께서는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요4:1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4:13-14)
진정한 만족이나 평안이나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방황하는 영혼들의 해결책은, 예수님께 나가서 주님이 주시는 생수를 마실 때 그 문제에 대한 해답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생수는 영원히 솟아나는 생명수 입니다. 삶의 진정한 만족과 평안과 기쁨을 주는 생명수라고 하였습니다. 도덕적 파탄과 양심의 가책과 갈등, 사회적인 멸시와 천대와 소외와 압박감으로부터 자유케 할 수 있는 생명수 입니다. 생의 진정한 소망을 줄 수 있는 생명수인 것입니다. 인간의 명예와 권력과 황금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또 철학과 윤리와 도덕과 선행이라는 것을 가지고 부지런히 노력함에도 불구하고 결코 만족함에 이르지 못합니다.
"이 물을 먹는 자는 다시 목마르려니와" (요4:13). "내 백성이 두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 (렘2:13)
생수의 근원이 되는 하나님을 버리고 자행자제하면서 명예와 권력과 황금의 우물을 파고 쾌락의 우물을 파며 심지어 가정의 우물을 판다고 할찌라도 생명수의 근원이 되는 예수가 없이는 끊임없는 목말음과 수고와 고달픔과 그리움과 기다림의 연속임을 예수님께서는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한 진정한 해결책은 바로 영원한 생명수 샘물을 우리에게 주시는 예수님께 나아가 그 물을 마시게 될 때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방황하는 우리들에게 진정한 만족이 되고 평안이 되며 영원한 생명의 샘물이 되실 수 있는 것입니까?
인간은 세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을 시간적으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로 나누어서 생각을 해 보면 과거는 죄 가운데서 태어나는 문제가 있습니다.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시51:5). "하나님의 눈에도 달이라도 명랑치 못하고 별도 깨끗지 못하거늘 하물며 벌레인 사람 구더기인 인생이랴" (욥25:5-6). 아담의 후손은 아담이 가지고 있는 죄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채 태어나서 자행자제합니다. 그래서 그 죄로 말미암아 "진자는 이긴자의 종이라"함과 같이 사탄의 종이 되어서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10:10)라고 한 것 처럼 사탄에 의해 우리의 삶 전체를 도적질 맞습니다. 고통을 당합니다. 그러다가 미래에 가서 "죄의 삯은 사망이라"함과 같이 평생 수고의 결과가 죽음으로 마칩니다. 죽고 난 다음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9:27) 라고 하심과 같이 심판을 받으며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계20:15)함과 같이 심판을 받아 영원한 멸망에 떨어지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요 인간의 문제점입니다.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마25:41)
이렇게 과거의 죄로 현재 마귀의 자식이 되어서 끊임없는 고통을 당하며 살다가 미래엔 반드시 죽어서 심판을 받아 영영한 지옥불에 들어가는 것이 인간의 문제점 입니다. 변할 수 없는 과거의 죄와 현재의 고통과 미래의 죽음과 심판과 멸망의 문제점은, 명예와 권력과 황금을 가지고 아무리 아름답게 포장을 해도 문제가 해결 되지 않습니다. 터져버린 웅덩이인 것입니다. 철학과 윤리와 도덕이라고 하는 세척제를 가지고 아무리 씻어 보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여인이 남편을 다섯번이나 거쳤지만 만족이 없었던 것입니다. 평안이 없었던 것입니다. 좌절하고 방황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돈이 있어도 그렇고 돈이 없어도 그렇습니다. 명예를 가져도 그렇고 명예가 없어도 그렇습니다. 많은 지식을 가져도 그렇고 없어도 역시 문제는 마찬가지 입니다. 하나도 달라지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 인간의 죄와 고통과 미래의 죽음과 심판과 멸망을 친히 담당하셨습니다. "피 흘림이 없은즉 죄사함이 없다"라고 하신 말씀처럼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 갚으라"고 하신 말씀처럼 그가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리셔서 심판 받으셨습니다. 죽임을 당하고 버림을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내가 버림받아야 마땅함에도 주님이 대신 버림을 받으신 것입니다. 내가 죽임을 당하여야 함에도 예수님이 내 죄를 담당하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5:8)
그 영혼이 음부에 들어가셔서 마치 여인이 아이를 잉태하고 산달이 되어서 해산의 수고와 또 구로의 진통을 통해서 옥동자를 낳듯이, 우리를 거듭나게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산 소망을 주시기 위해서, 우리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수 샘물을 마시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잉태하고 사흘 낮과 밤을 사망의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그런 후 마귀를 이기고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몰수하신 다음 무덤을 열고 사흘만에 부활하셔서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하는 인정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승천하셔서 당신의 흠없는 피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우리의 죄를 속죄하시고 사탄으로부터 우리들을 구속하여 내셨습니다. 그리하여 보좌 우편에 앉으셔서 우리들에게 오늘날 성령을 부어 주시고,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14:6).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 (마11:28). "오라 나와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같을 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되리라"(사1:18-20).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넘치리니 이는 믿는자의 받을 성령 가리켜 말씀하심이라" (요8:37-38) 하시며 우리를 향해서 초청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주전 750여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는 그리스도의 이 십자가의 고난을 이와같이 말합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사53:5-6)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참 생명수가 되실 수 있는 이유는, 우리들의 죄를 담당하시고, 율법의 저주를 담당하셨으며, 마귀의 권세를 깨뜨리고 삼일만에 부활하셔서 우리들에게 길이 되고 진리가 되며 생명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지구 전 지역에서 가장 더운 지역가운데 하나가 페르시아만 지역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거기는 사람이 마실 수 있는 물이 거의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이유는 그 바다 속에서 생명수가 터지므로 생수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잠수부가 염소 가죽부대를 어깨에 메고 왼손으로는 그 가죽부대의 주둥이를 꼭 잡고는 오른손에 메달아 놓은 바윗덩어리를 부둥켜 앉고 그 바위 무게에 의해서 바다 깊은곳까지 잠수해 간다고 합니다. 그렇게해서 생수가 터지는 곳에 가면 염소 가죽부대의 주둥이를 열고 솟구치는 물을 받아 떠오르며 주둥이를 빨리 닫아 생수를 얻는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짠 바다속에 있는 생수와 같은 분이십니다. 아무리 인생의 기초인 가정의 우물을 팔지라도 그것은 바닷물과 같아서 생수의 근원을 잃어버리게 될 때 거기에는 만족이 없습니다. 방황할 수 밖에 없습니다. 갈등이 존재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바다와 같은 세상 속에서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는 이 생수를 마실 수 있겠습니까? 본문은 무엇이라고 말을 합니까?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께, "그 물을 내게도 주어 좀 마시우게 하옵소서" 라고 하였더니 "네 남편을 데려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남편은 불의와 불법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의 지식과 재능을 의지하며 자기의 능력을 의지하는 것을 상징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불신앙과 불순종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첫째 이 생수를 마시길 원한다면 우리도 사마리아 여인과 같이 내 남편을 예수님께 내 놓아야 합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남편'은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남편이나 부인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지식이나 경험이나 능력, 자기 생각, 또 자기의 어떤 것을 의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들이 나에게 생수를 주고, 만족을 주며 기쁨을 주는 줄 알고 열심히 쫒아가는 한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남편을 내어 놓고 아무리 마셔도 갈증만 더하고, 만족함이 없으며, 아무리 마셔도 평안을 발견할 수 없는 것을 되풀이 하지 마시고 이제 생수의 근원이 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께 나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우리의 남편을 하나님께 내어 놓아야 합니다. 불의와 불법을 내어 놓고 불신앙과 불순종을 내어 놓을 때만이 주님이 주시는 생수를 마실 수가 있습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행2:38)
어린 자녀가 그릇을 어머니에게 가져와서 "어머니 이 그릇에 맛있는 스프를 좀 넣어 주세요" 하고 말했을 때 그릇이 더럽고 먼지 투성이이면 거기에다 스프를 넣어 줄 수 있겠습니까? 그릇을 당장 빼앗아서 깨끗이 씻어 낸 후 맛있는 스프를 넣어줄 것입니다.
우리의 욕심을 비워야 합니다. 우리의 죄를 하나님 앞에 내어 놓아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의지하던 참 만족이 없는 것에서 벗어나, 착각에서 벗어나, 오직 생명수는 예수님 밖에 없음을 믿고 진리가 되신 예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께 모든 것을 내어 놓을 때 우리는 생수를 마실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 우리가 주님께 나아가서 주님을 모셔 드려야 합니다.
"여자가 가로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하시니라" (요4:25-26)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요4:28)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메시야라고 하는 것을 나타낼 때 그것을 그대로 받아 들였습니다.
우리가 이 생수를 마시기를 원한다면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를 받아 들여야만 합니다. 병든 사람이 의사를 거절하면 병을 고칠 수 없습니다. 의사의 지시를 받고 의사를 환영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내 영혼의 치료를 받고 우리의 영혼의 진정한 만족을 얻기 원하며, 인생의 진정한 의미와 목적과 가치를 발견하기를 원한다면, 목표있는 평안한 삶을 원한다면 생명수가 되시는 예수님께 나가서 그분을 열렬하게 모셔 드려야만 하는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인과 같이 그 예수를 모셔 드려야 합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을 영접했을 때 얼마나 기뻤으면 창피한 줄도 모르고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로 들어가 증거를 했겠습니까? "내가 메시야를 만났다 내가 행한 과거의 모든 것을 말한 이 사람에게 와 보라"
우리가 이 생명수 샘물을 마시게 되면 우리의 삶은 변화를 받게 됩니다.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멸시되고 자유가 없었던 영혼이 이 생명수 샘물을 마시게 될 때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는 자유를 주 안에서 얻는 것을 확실히 믿으시길 바랍니다.
셋째 우리는 주님께 나가서 구하여야 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요4:10)
이 말씀은 우리는 예수님께 나아가 그분에게 생수를 구하라는 이야기 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생수를 주신다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명절 끝날 곧 큰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요7:37-39)
우리가 성령의 생수를 마시게 되면 우리의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이 생수가 영원히 솟아 납니다. 영원히 계속해서 솟아나는 것입니다. 목마를 때 언제든지 마실 수 있습니다. 이 물을 마시게 되면 영혼이 만족하게 됩니다. 생수가 우리를 만족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정말 살아갈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은혜는 맛을 본 사람만이 압니다. 은혜는 받는 사람 이외에는 알 수 없습니다. 가나 혼인잔치 때에 물이 포두주로 바뀐 것을 아무도 몰랐지만 물떠온 하인들은 알았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적극적으로 순종하고 무조건 순종하고 넘치는 순종한 사람밖에는 모릅니다. 연회장도 몰랐습니다. 제자들도 몰랐습니다. 마리아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물떠온 하인들은 알았습니다. 그 말은 참 심각합니다. 오늘날 예배당에 참석 하실 때 교회에 손님으로 오시는 분이 있습니다. 가나 혼인잔치 때에 손님으로 간 사람이 있고, 신랑 신부가 있고, 제자가 있고, 예수님이 있고, 마리아가 있듯이 오늘 우리들이 예배를 보지만 청중을 분석해 보면 여러종류로 나누어 집니다. 제자도 모르고, 예수의 모친 마리아도 몰랐지만 물떠온 하인은 알았습니다. 하인이라는 말에 우리가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어머니도 아니고 제자도 아니고 손님도 아니고 오로지 종입니다. 그것을 믿으실 때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 앞에서는 종이 되어야 합니다. 종으로서 순종할 때 물이 포도주로 바뀌는 신비한 은혜를 경험합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셔라" 사모해야 합니다. 눈만 감으면 돈이 보이고, 출세할 생각만 나며, 어떻게 하면 재미를 좀 볼까 하는 생각으로 꽉 차 있으면, 믿는 사람은 사실 그렇게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시며 부하게도 하고 가난하게도 하십니다. 높게도 하고 낮게도 하며 귀하게도 하고 천하게도 하십니다. 왕이라도 마음대로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나라와 권세와 주권이 다 주께 속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을 모르고 자꾸 자기 힘으로 무엇인가를 해 보려고 하고, 자기 생각으로 무엇을 해 보려고 하면 되는 일이 없는 것입니다.
"네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네 패역이 너를 책할 것이라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렘2:19)
생수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버릴 때 내 마음에 고통이 옵니다. 만족이 없습니다. 갈등이 옵니다. 좌절이 온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우리는 사는 자이지 살리는 자가 아닙니다. 하나님만이 스스로 존재하는 자입니다. 하나님만이 창조자요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우리는 자가발전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회전하는 빛도 그림자도 없으신 분입니다. 하나님만이 자존자입니다. 그분이 살려 주니까 우리는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살려 주는자를 무시하고 자기 스스로 살 수 있겠습니까? 자기 스스로 아무리 도를 닦고 자기 스스로 아무리 노력을 해도 거기에는 만족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인간은 스스로 구원받는 존재가 아닙니다. 인간은 스스로 자기를 건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살리는 자요 하나님이 우리를 건지시는 자요 그 분만이 우리의 영혼에 만족함이 되시고 생명수 샘물이 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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