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茶品문화
차의 기원은 중국 남서의 운남(雲南)부터 사천(四川)지대에 걸쳐 거주한 사람들로 부터 찾을 수 있다.
차를 마시는 풍습은 춘추전국시대(B.C 770 ~ B.C 475)이후 중국 전역에 퍼졌다고 한다.
그로부터 당대(唐代 618 907년)에 이르기까지 갖가지로 불리며 점차 고차(古茶)로 지칭되다가 육우에 이르러 오늘날의 차(茶)가 됐다고 한다. 그 뒤 차 마시는 풍습은 당대의 병차(餠茶), 송대의 말차(抹茶),명대의 전차(煎茶)로 바뀌면서 오늘에 이른다.
중국에서는 차가 혼인풍습, 종교적 의례 등과 깊숙한 연관을 맺고 있다. 당대 어느 지방에서는 여자의 약혼을 끽다(喫茶)라고 해 낭자(娘子)는 두집의 차를 마시지 않는다라는 속담이 생기기도 했다.
중국인들은 혼례때 차를 마시는데 한번 차를 마시면 다시는 다른 집의 차는 마시지 않는다란 곧 두 남편을 섬기지 않는다는 의미인 셈이다. 차나무는 다른 나무들과 달리 옮겨 심을 수 없다는 사실도 두 남편을 맞이 하지 않는다는 바람과 일치된다. 또 차나무는 혼수에 쓰였는데 그 배경에는 차나무가 장수의 식물로 여겨진 데에도 이유가 있다.
점잖은 가문에서는 예부터 신부를 맞이할 때 예물로 롱징철관음수선향편 등 값비싼 좋은 차를 보내는 관습이 있다. 중국 문화의 그윽한 깊이를 엿볼 수 있는 참으로 부러운 풍습이다.
● 낭자는 두 집의 차 안마신다
차와 종교적 의례, 특히 불교 선종(仙宗)과의 관계를 살펴 보자. 불교는 인도로부터 중국으로 전래되면서 차와 관계를 맺기 시작한다. 특히 다선일미(茶神一味)라는 표현 그대로 선종에서는 수행에 반드시 차가 따랐다. 선종은 중국 재래 도교의 신선(神仙)사상, 특히 노장(老莊)의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영향을 받아 다문화 형성에 기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 날의 중국 불교는 선종을 포함해 차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
일반적으로 낮에 지내는 제사를 차례(茶禮)로 표현하고 있으나 원래 유교에 따르면 차는 손때가 묻었다해서 공물(供物)로 제상에 올리지 않는 금기식품이었다. 그런데 현재는 이런 풍습도 홍콩과 대만, 도쿄에만 남아있다.
● 仙宗에서 비롯된 '茶神一味'
다문화의 발달은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구성진 다기문화를 일찍부터 발전시켰다. 중국 도자기의 역사에 있어 다문화와 관련, 제일 먼저 꼽을 것은 5000년전 의흥(宜興)의 자사(紫砂) 다기다. 그것은 유약을 입히지 않은 은은한 색조와 질감이 그윽한 멋을 풍겨, 내로라 하는 다인(茶入)들사이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다기로 몹시 탐나는 대상이 돼왔다.
가장 값 비싼 다기로는 원석(原石)을 닦아 광을 낸, 깊은 녹색의 옥 다기가 있다. 한민족은 전통적으로 옥에 대한 신앙이 강하다. 옥은 죽은 자까지도 소생시키는 생명력을 지닌 것으로 여겨졌다. 따라서 옥 다기는 예기(禮器)로 쓰이는 한편 귀족과 군자의 덕의 상징이기도 했다. 일설에 의하면 도자기는 옥을 대신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도 한다.
중국 도자기 역사에 있어 최초의 황금기는 귀족문화가 화려하게 꽃핀 당대(唐代)이다. 당대의 독특한 도기로는 당삼채(唐三彩)가 유명하나 당시 최고의 명품은 남쪽 월주(越州)의, 천봉(千峯)의 취색(翠色)으로 비유되는 청자다.
● 5000년전 紫砂다기 '황홀'
청자는 고려를 비롯해 동양 여러 나라, 그리고 17세기에 이르러서는 유럽에 전해진다. 도자기를 영어로china로 표현하듯이 중국은 세계의 도자기 문화를 리드했다. 육우의 다경은 차에 관한 경전으로서 뿐만 아니라 도자기 역사상 최초의 체계적 문헌사료라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이제 다시 육우로 돌아가자.
● 육우 '越州찻잔이 상품'
육우는 다경에서 정식의 차법(茶法)이란 다기 24기(器) 전체를 써야하며 왕후의 차법은 반드시 다기를 모두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24기중 찻잔에 관해 살펴보자.
(차)잔은 월주의 것이 상품이다. 가령 형주(荊州)의 자기가 은과 비슷하다면 월주의 자기는 옥과 비슷하다. 만약 형주의 자기가 눈을 닮았다면 월주의 자기는 얼음을 닮았다고 할 것이다. 형주자기는 백자이므로 차를 담으면 붉게 보이며 월주 자기는 청자이므로 빛깔이 녹색이 된다. 청색이면 차에 유익하여 차의 빛깔이 백록색을 드러낸다.
육우는 백자와 더불어 황색, 갈색 다기에 대해 차에 마땅하지 않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는 가장 좋은 다기로 옥에 가까운 청자를 꼽는다. 옥이 지니는 윤기와 깊이를 감안해서다. 중국 도자의 최고 황금기를 이룬 송대에는 차의 빛깔로 유백(乳白)이 높이 칭송되면서 이런 빛깔이 가장 잘 비치는 흑색 다기가 소중히 여겨졌다.
유백색은 예부터 중국 궁정에 있어 황제의 총애를 받는 고귀한 미인의 부드러운 살갗을 가리키는 표현으로도 일컬어져왔다. 남송 때인 12~13세기에 만들어진 천목(天目)다기는 마치 어두운밤 하늘에 갖가지 색깔의 별을 아로새긴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며 그 앞에 마주한 사람으로 하여금 발을 옮기지 못하게 만들 정도니 과연 천하의 명품이라고 밖에는 표현할 수 없다.
유애도서겸고기(唯愛圖書兼固器). 옛 선비는 서예와 그림, 그리고 옛 그릇을 더불어 아끼고 즐겼다. 차 달이기를 귀히 여긴 선비들은 고기라 할 때 우선 차그릇을 생각하였으리라.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Blog·Cafe > My Love China'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국의 산업과 업종별 동향 (0) | 2009.07.02 |
---|---|
중국산 발효차 ‘소문과 진실’ (0) | 2009.06.29 |
첫 식차지(植茶地) 몽산, '공차(貢茶)', '몽정차(蒙頂茶)' (0) | 2009.06.29 |
세계적인 명성의 차중진품(茶中珍品) '혜명차(惠明茶)' (0) | 2009.06.29 |
다선일미(茶禪一味) 본고장의 명차(名茶) '경산차(徑山茶)' (0) | 2009.06.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