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동왕자
호동(好童)은 유리왕의 셋째 아들인 대무신왕의 차비(次妃)에게서 난 소생이다.
왕은 그를 심히 사랑하여 호동(好童)이라 이름하였다. 대무신왕 15년 4월에 왕자 호동이 옥저(沃沮)를 유람하였는데, 낙랑의 왕 최리(崔理)가 여기 나왔다가 호동을 보고 "그대의 얼굴을 보니 보통 사람이 아니로다. 그대야말로 북국(北國) 신왕(神王)의 아들이 아니겠는가 ?' 하며 호동을 데리고 돌아가 사위를 삼았다. 그 뒤, 호동이 고구려에 돌아와 낙랑(樂浪)에 있는 아내 최씨녀(崔氏女)에게 사람을 보내어 전하기를 "그대의 나라 무구(武庫)에 들어가 고각(鼓角-북과 나팔)을 몰래 찢어버린다면 내가 그대를 아내로서 맞아들이려니와 그렇지 못하면 우리는 부부가 될 수 없으리라." 하였다. 그 이유는 낙랑에는 옛날부터 신기한 고각이 있어 적이 침입하면 스스로 울리는지라, 그로써 침략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다. 과연 최리의 딸(낙랑공주)은 몰래 무고에 들어가 예리한 칼로 그 고각을 찢어 버리고 호동이게 그 사실을 알렸다. 호동이 그 말을 듣고 왕에게 고하여 낙랑을 공격했다. 최리는 고각이 울리지 않으므로 안심하고 있다가 고구려군이 성 밑에 이르러서야 깜짝 놀라 무고에 가보니 벌써 고각은 부서져 있었다. 그 사실을 안 최리는 마침내 딸을 죽이고 항복하고 말았다.
권14, '고구려본기 제2(高句麗本紀第二) 대무신왕(大武神王)'
해설
인물전설의 하나. 고구려 대무신왕의 왕자 호동에 관한 이야기. 권14 고구려 본기 대무신왕조에 나오는 기록으로,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그 하나는 낙랑에 들어가 낙랑공주와 결혼을 하고 신기(神器)인 고각(高角)을 낙랑공주로 하여금 부수게 하여 낙랑을 쳐서 이겼으나 공주는 죽고 말았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원비가 호동을 시기하여 왕에게 참소하여 호동이 자살하고 마는 비극적인 이야기이다. 본설화는 극적인 구성으로 되어 있어 그것 자체가 휼륭한 문학작품이다. 특히 낙랑으로 대표되는 한족(漢族)과 고구려족 간의 갈등을 신화. 전설에 나오는 신기 쟁탈의 화소(話素)의 원형에 넣어 형상화하였다는 것은 작품으로서도 빈틈없는 구성이다.
또한 호동의 비극적인 일생과 낙랑공주의 로맨스는 후대 문학작품의 훌륭한 소재가 되었다. 현대에서도 희곡. 시나리오. 소설 등에서 이 설화를 소재로 한 작품이 많이 창작되고 있음은 앞에서 말한 사실을 충분히 대변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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