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대 무신왕(武神王 : 4∼18.10∼44.10) 재위 : 26년
18년: 10월 제 3대 무신왕(武神王/4∼44) (재위 18∼44). 휘(諱)는 무휼(無恤).
유리왕(琉璃王)의 셋째 아들.
대무신왕(大武神王)이라고도 함. 어머니는 송양(松讓)의 딸.
14년(유리왕 33) 태자(太子)로 책봉되어 군국정사(軍國政事)를 맡아보다가
유리왕이 죽은 뒤 즉위
21년: 12월 무신왕 부여선제공격.
22년: 2월 무신왕의 괴유장군 (동?)부여를 공격하여 대소왕(帶素王)을 죽임.
부여, 대소왕의 막내 동생을 옹립하여 갈사국(曷思國)을 건국.
7월 고고려에 귀순 동부여를 공격하여 대소왕(帶素王)을 죽이고, 고구려에 병합(倂合)
23년: 무신왕. 유연/유수 형제 신의 왕망 제거
25년 : 무신왕. 유수 후한의 왕으로 등극(광무제)
26년 :10월 무신왕. 개마국(蓋馬國)을 쳐서 병합하여 국토를 살수(薩水) 이북까지 확대
(고구려 최초로 한반도 진출계기),
12월 구다국 복속
27년: 무신왕 고구려, 낙랑을 멸함.
28년: 7월 무신왕. 한(漢)나라의 요동 태수(遼東太守) 100만 대군으로 위나암성 침략때
을두지(乙豆智) 지략(智略-잉어계책)
32년 : 4월 무신왕 2남 호동(好童王子) 옥저 유람 중 낙랑왕 최리와 만남. 돌아와 낙랑공주에게
북을 찢으면 아내로 삼겠다고 함.
한사군(漢四郡) 중에서 아직 남아 있는 낙랑군(樂浪郡)을 정벌. 어머니 간통누명에 자살.
37년 : 무신왕 대대적인 공격으로 낙랑군(樂浪郡)을 재차 공략(攻略)
낙랑복속-이후 후한의 반발봉착
44년 : 무신왕 후한 유수 낙랑에 병력투입. 낙랑빼앗김.
44년 : 10월 41세이 나이로 무신왕 사망.
시호(諡號)가 대무신왕인 것은 주위의 많은 나라를 공략하여 무공을 세웠기 때문이다.
왕의 능(陵)은 대수촌원(大獸村原)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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